사람들이 연말연시가 되면 무언가 들뜨는가 보다. 그도 그럴 것이 망년회니 송년회니 하는 것도 정신없을 텐데 크리스마스까지 끼어 있으니 오죽하겠나 싶다. 해마다 반복되는 일인데도 사람들에겐 뭔가 대단한 일을 해내고 있다는 마음으로 몰려다니는 듯 하다. 이런 일에 텔레비전이 단연 일등공신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렷다.

사실 많고 많은 날들과 무한한 영원에 비하면 한 해가 가는 것은 가소로운 일일 터인데 말이다. 해가 바뀌는 것에 대해 성대하게(?) 의미를 붙이는 것도 좋지만 꼭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다른 평범한 날 넘어가듯 넘어가도 되지 않느냐는 게 지금의 내 생각이다.

▲무슨 입시 시험을 치루 듯 열심히 달력을 보며 옮겨 적고 있는 아내의 모습에서 인류를 살게하고, 살아가게 할 근원적인 힘(사랑)을 느낀다.

하여튼 우리 집에도 연말과 연시가 찾아와 인사를 한다. 2005년 마지막 날 저녁에 아내와 내가 누워 쉬면서 잡담하고 있는 데 휴대폰으로 문자메시지가 한통 날아든다. ‘근하신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000 정치인 올림’ 이라고. ‘내 참. 이분들도 연말연시 되면 꾀나 바쁘겠구나’ 싶다. 평소 얼굴 한 번 보기 힘들던 사람들이 일일이 인사하려면 말이다.

하여튼 그 문자 메시지를 받고 나서야 ‘아하 오늘이 올해 마지막이었구나.’라고 느끼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내년 되면 아내는 몇 살 되고 나는 몇 살 된다며 세월을 이야기 하는 것으로 화제가 자연스럽게 넘어 간다. 사실 아내는 나보다 한 살 더 많은 누나인 셈이다.

그러더니 아내가 나에게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고 우리 친정 사람들에게 새해 인사나 좀 해줘요”라고 부탁해 온다. 그래서 내가 또 누구인가. 의리와 친절의 사나이 아닌가. “네 마님. 누구 분부이신데요. 히히히”라고 말한 후 지체 없이 휴대폰으로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새해엔 좋은 일들이 많을 겁니다. 건강하고 행복하소서’라는. 그러고 나서 나의 두 동생들의 집에도 보내는 센스를 발휘한다. 휴대폰이 그런 면에선 참 맘에 든다.

이런 일이 있은 며칠 뒤 아내는 달력을 바꾸려고 2005년 달력을 내린다. 아내가 새 달력으로 바꿀 때면 꼭 하는 일과 함께. 지난해 달력에 표시된 생일들을 새 달력으로 옮기는 일이다. 거기엔 친정집 식구와 시가집 식구, 우리 가족과 아내의 친구들의 생일 날자가 매월 달력에 드문드문 기록되어 있다. 주로 옛날 사람들은 생일을 음력으로 보내니까 생각 없이 옮겼다간 실수하기 딱 좋다. 아내도 가끔 실수를 하곤 한다. 옮겨 기록하는 작업이 결코 만만치 않지만 아내는 새해가 되면 꼭 실행한다.

생일을 적어 놓았다고 해서 생일 당일에 무슨 거대한 이벤트를 치러 주는 게 아니라 고작해야 전화 한 통화 하는 게 다이지만 그렇게 관심 가진다는 게 어딘가. 사실 지나간 세대의 우리 어머니들이 해왔던 이런 아름다운 전통이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절실해지는 세대가 되었다. 우리 인류에게 희망이 있다면 서로에게 가지는 이런 작은 관심에 있으리라. ‘새해 달력에 생일 옮기기’ 문화는 다른 나라엔 어쩌는지 모르지만 우리나라에 있는 참 좋은 전통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하여튼 그런 모습을 보며 ‘송상호가 장가 하나는 잘 갔지’라며 쾌재를 부르는 팔불출(?)이 바로 나다. 그래도 좋은 걸 어떡하나.

송상호  shmh0619@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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