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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마을 팔순할머니, 종교를 바꾸다.천주교에서 개신교로 개종한 까닭은?
송상호 기자 | 승인 2008.09.02 10:28

   
▲ 일죽 더아모의집 시절, 마을에 계신 독거할머니들을 지금의 15인승 승합차에 모시고 온천 목욕을 다녀 오는 중이다.  ㅣ 송상호

“할머니, 타셔요. 더우셨죠?”

“아이고 고마워서 어떡혀유.”

“뭘요. 가는 길인데.”

아직도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낮에 버스를 놓치고 발을 동동 구르는 아내를 15인승 승합차로 태우러 갔다가 우리 마을 팔순할머니를 태우면서 이뤄진 대화다. 시골할머니 특유의 감사 인사에 미안한 것은 오히려 나와 아내였다. 적당히 인사하시면 우리가 덜 미안할 텐데.

시골마을엔 이런 일이 종종 있다. 나이 드신 노인들은 죽어라 걸어 다니고, 나 같은 젊은 사람은 자가 차량 타고 다니고. 물론 나도 웬만하면 버스를 타고 다니지만, 이렇게 급한 일이 생길 때는 자가 차량을 이용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어쩌겠나. 그게 현실인 것을.

하여튼 15인승 뒷좌석에 아내와 함께 자리를 잡은 할머니는 이런 저런 이야기보따리를 꺼내신다. 그러다가 할머니의 한 이야기에 내 귀가 솔깃해진다.

“목사님 말여. 지가 이번에 기독교(개신교)로 종교를 바꿨지 뭐여유?”

“아하, 어떻게 그런 일을. 평생 함께 한 종교를 바꾸기가 쉽지 않으셨을 텐데.”

“아, 그게 말여유”


이렇게 시작된 할머니의 사연은 이랬다. 할머니가 사랑하는 조카가 안성시내에 교회를 개척했단다. 그런데 워낙 없는 살림으로 시작한 교회라 조그맣게 시작한 교회인지라 교회가 힘들었던 것. 아시다시피 요즘 교회가 워낙 많아서라도 교회에 신자가 안 간다는 것은 상식. 더구나 조그만 개척교회엔 신자들이 가지 않는다는 것은 이제 일상적인 일이 되어버린 지 오래지 않은가.

이런 조카 내외가 2년이 지나도 펴지 못하고 고생만 하는 것을 차마 지켜보지 못한 할머니가 자신이라도 도와줘야겠다며 평생 다니던 천주교회를 접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개신교나 천주교나 똑 같은 기독교인데 개종이라며 너무 오버하는 것 아니냐고 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한국 정서에선 개종이 맞지 않을까 싶다.)

사실 말이 쉽지 평생 다니던 천주교를 접는 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특히 시골에 살면서 말이다. 천주교회에 다니면서 그동안 쌓아온 인간적 친분을 어쩌면 포기해야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좁은 시골에서 종교를 바꾸면 ‘배신자’소리를 듣기 마련이다. 시골엔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으니 소문도 빨리 나는 것이다. 사실 할머니 신자가 개척교회에 한 명 더 간다고 뭐가 그리 힘이 되겠느냐마는 할머니는 차마 조카 내외의 고생이 안쓰러웠던 것이다.

“근디 말여유. 다른 조카 내외가 평택에서 교회를 다니는데, 그이들도 좀 와서 도와주면 좋겠더마는 교파가 달라서 안 된다네유. 여기 교회는 장로굔가 뭐시긴가라 하고 그 아그들은 감리굔가 뭔가라서 안된다지 아마. 내 생각엔 좀 도와줬으면 좋겠다 싶은디. 목사님요. 기독교는 다 같은 기독교가 아닌 갑지유.”

그 할머니의 뜬금없는 질문에 대충 얼버무려 넘기긴 했지만, 입맛은 씁쓸했다. 팔순 할머니는 이 대목에서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면서 또 말을 잇는다.

“사실 개신교회에 다닝께 이것저것 불편하더라니께유. 천주교회와 찬송가도 많이 다르고, 예배 방식도 많이 다르고. 그라고 꼭 주일예배 보고난 후 점심을 먹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라 그만 두었으면 좋겠더만 한사코 하는 것도 힘들어 보이던디.”

할머니는 자신이 평생 해오던 대로 하지 않는 불편보다도 조그만 교회지만, 그 교인들 때문에 식사를 준비해야하는 조카며느리의 수고가 더 안쓰러웠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런 이야기를 하는 할머니가 안쓰러움을 표할지언정 표정은 밝았다는 것. 그러니까 조카 때문에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한다는 것이다.

할머니의 길지 않은 ‘개종 스토리’를 나의 등 뒤로부터 조곤조곤 들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교차했다. 할머니가 참 대단해 보였다. 개종한 그 마음 씀씀이 때문에 그 조카 목사는 참 행복한 양반이라 싶기도 했다. 젊은이들이 목숨처럼 여기는 종교도 팔순 할머니에겐 그런 존재였던 것이다. 종교보다는 사람이 먼저였던 것이다. 적어도 그 할머니에게 만은.

그렇게 할머니의 신앙 간증(?)을 들으면서 이루어진 드라이브는 마을에 도착하자 끝이 났지만, 그 할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는 내 마음 속에서 내내 끝나지 않았던 것이다.

송상호 기자  shmh0619@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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