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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니께유.”장애형제 아들 등 6남매 둔 윤채엄마 스토리
송상호 기자 | 승인 2008.09.08 19:36

   
▲ 2005년 더아모의집 식구들이랑 이 가족 최초로 부산으로 바캉스를 가서 찍은 것이다. 이때는 그나마 휠체어를 타고 형제들이 움직였지만, 이젠 남의 도움 없이는 식사와 대소변을 해결할 수 없는 몸이 되었다. 그것을 고스란히 엄마가 해내고 있다. l 송상호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다고 하니 자녀가 많은 집의 이야기인가 보다 할 수 있겠다. 물론 자녀가 6명이니 적은 숫자는 아니다. 그런데 그 6명이 제각기 사연이 있는 자녀다. 홀로 된 40대 중반 아줌마가 만들어가는 억척스러운 이야기는 분명 특별한 데가 있는 게다.

“따르릉~”

“여보세요?”

“아. 목사님. 저 윤채 엄마예유. 아 글쎄…….”


바람 잘 날 없는 윤채 엄마네집

어제(9월 4일) 오후 한 통의 전화. 그렇게 시작된 통화에서 윤채 엄마(사람들은 윤채 엄마라고 부른다)는 참았던 마음을 나에게 마구 쏟아낸다. 속은 터지고 말할 때도 없어서 그렇다며 마치 억울한 일을 당한 어린아이가 엄마를 만나 그 품에 안겨 흐느끼며 쏟아내듯 계속 '줄줄이 사탕'이다.

“목사님도 아시다시피 저번에 맨 큰 놈이 동생들을 괴롭혀서 맨 작은 놈이 두어 달 가출하고 난리였잖어유. 근디 그게 잠잠해지니까 중간 놈이 친구하고 싸워서 법원까지 가서 재판 받고 6개월 '집행유예'가 떨어졌지 뭐여유. 내가 못 산다 못살아.”

“아하. 그 사건이 결국 그리 처리었구먼유.”

“조카 친구의 부모와 합의를 봤지만, 이제 법이 바뀌어서 합의를 봐도 재판받는다네요. 요즘 그 녀석 단속(현재 보호관찰 대상)하느라 속이 터져유.”


정말 이 집 바람 잘 날 없다. 내가 그 집을 만난 것은 안성 일죽에 온 초기(약 7년 전)였다. 그 집에 가보니 조그만 시골 흙집에 어른 4명, 아이들 6명이 살고 있었다. 윤채 엄마와 남편, 그리고 친정아버지와 시누이 등 어른 4명. 윤채 엄마가 낳은 자녀 3명과 윤채 엄마의 조카들 3명 등 자녀들이 6명. 참 대단한 가족 구성이었다.

그나마 4년 전 윤채 엄마의 남편은 술병으로 이 세상을 떠났다. 속이 터지니까 술로 풀었고, 그것이 병이 된 것이다. 그의 병상 생활과 장례까지 함께 한 나로선 그 모습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왜 그토록 윤채 아빠도 윤채 엄마도 속이 터졌을까.

윤채 엄마는 조카 3명을 키우고 있다. 맨 큰 자녀(현재 21세)는 돌 때부터 큰엄마 집에 와 있었으니 윤채 엄마가 키운 것이다. 둘째와 셋째 조카는 초등학생 때부터 와 있었으니 이제 거의 10년이 다되어 가는 셈이다. 세 명 모두가 부모님들의 불화로 인해 오갈 데가 없어서 큰엄마가 거둬 키운 것. "이왕 먹는 밥에 숟가락 하나 더 얹으면 되지"라는 게 그들을 거둬들인 윤채 엄마의 맘이었다.

하지만 그런 맘만으로 그들을 키워내기엔 벅찼다. 왜냐하면 윤채 엄마가 속으로 낳은 아들 2명이 근육병 장애인이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초등학교 입학할 때까지는 멀쩡했던 자녀들이 어느 순간 다리를 절룩거리더니 '근이영양증' 판정을 받고 지금까지도 일어나지 못하고 병상에만 누워 있다. 이런 형제를 보며 윤채 아빠는 속이 터져 술로 속을 달래다 술병으로 돌아가신 것이다.

장애 형제에 조카 3명까지, 엄마는 대단했다

그래도 엄마는 대단했다. 현실을 원망도 하고 장애 아들들을 보며 죽고도 싶었겠지만(자신의 죄가 많아 그런 것 아니냐며) 꿋꿋하게 버텨냈다. 비록 남자인 그녀의 남편은 일찌감치 운명 앞에 두 손 들고 저 세상 사람이 되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자신이 정작 속으로 낳은 아들 둘은 자기 힘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장애인이니 애를 먹일 일이 없었다. 그리고 맨 큰 딸은 속을 한 번도 썩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지금은 혼자서 돈 벌고 대학을 다닌다고 다른 도시로 유학을 가서 열심히 살고 있는 터. 운명도 얄궂다. 자신의 자녀들 때문에 평생 속 썩을 일 없으니 자신이 거둬 키운 조카들 때문에 속을 썩어야 한다니.

조카들이 요즘 한참 사춘기를 지나고 있다. 안 그래도 청소년기를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교과서에서 그렇게 떠들어 대는데, 조카들이야 오죽하겠는가. 내가 옆에서 계속 지켜보았는데 장난이 아니었다. 한 녀석이 괜찮으면 다른 녀석이, 다른 녀석이 끝나면 또 다른 녀석이 일을 만들어 냈다(이들을 윤채 엄마는 충분히 이해하고 품는다). 그러다가 괜찮을 만하면 자신의 아들 둘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정말 바람 잘 날 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윤채 엄마가 진 운명의 짐이 버거운 듯 보였다. 왜냐하면 조카들을 처음 거둘 때는 '아무 말썽 없이 잘 크리라'는 기대로 시작했는데 키워보니까 그게 아니라서 그런단다. '내가 괜히 이 아이들을 거둬 키우는 바람에 더 잘못된 것이 아닌가'라는 자괴감에 시달리는 것이다. 그렇다고 자신의 아들 둘은 호전되지도 않고 저 세상으로 가게 될 텐데. 어찌 생각하면 자신에게 희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그 운명의 줄을 놓을 수도 없고.

“윤채 엄마. 그것은 윤채 엄마의 탓이 아니에요. 아무튼 윤채 엄마가 마음을 더 넉넉하게 잡수세요. 걔들이 잘못되어도 걔들 인생이고, 걔들이 잘되어도 걔들 인생이니 어쩌겠어요. 윤채 엄마는 할 만큼 했잖아요.”

윤채 엄마, 힘내세요!

   
▲ 두 아들이 병실에 누워있다. 무슨 이야기 끝에 윤채 엄마가 웃음보가 터져 감당을 못하고 있는 장면이다. ㅣ 송상호

이게 전화 통화를 통해 해줄 수 있는 나의 미미한 ‘처방전’이었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자신의 속사정을 나에게 털어놓아서인지, 나의 '처방전'이 먹혀 들어가서인지 전화 말미에는 목소리가 화사해진 것이다.

그동안 그 집을 내 집처럼 섬겨온 나의 지난 전적(?)과 마음이 윤채 엄마와 통해서일지도 모를 일이다. 하여튼 1시간 정도 이어진 상담 아닌 상담은 일단 성공적으로 끝났다. 그렇게 윤채 엄마는 그의 운명의 줄이 끈끈하게 이어지고 있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나는 윤채 엄마는 잘해낼 것이라고 본다. 그녀는 타고난 낙천가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힘든 현실 속에서도 조금만 말을 시키면 어디서 나오는지 웃음보가 마구 터져나오기 일쑤였다. 목소리도 경쾌한 '솔' 음에 가까웠다. 초면에 윤채 엄마의 목소리와 웃음소리만 들으면 '평소 걱정할 것 없는 부잣집 안방 주인으로 사나보다'라고 속단하기 쉬울 정도다.

오늘도 윤채 엄마는 여전히 장애 형제 둘을 간호하고 거두느라 여념이 없을 것이다. 추석 명절이 다가와도 준비할 여유조차 있을까 싶지만,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면 즐거운 마음으로 해내고야 마는 윤채 엄마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을 게 분명하다.

송상호 기자  shmh0619@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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