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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왕자님’, 하늘로 날아가다.윤채의 죽음, 그리고 남은 자들의 이별여행.
송상호 기자 | 승인 2008.09.24 13:05

   
▲ 제작년 바람 쐬기로 약속했기에 외출을 하려고 더아모 15인승에 태웠다. 그동안 윤채가 이렇게 활짝 웃는 것을 보지 못했는데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진이 이번 상에서 윤채의 빈소에 걸린 영정사진이 되었다는 것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l 송상호

내 친구 박윤채를 소개합니다. 올해 나이 21세. 장애 병명은 ‘근이영양증’. 취미는 독서하기. 별명은 ‘거울왕자’. 이 친구를 소개하는 것은 얼마 전 9월 15일에 하늘나라로 갔기 때문입니다.

윤채가 10세, 동생 완채는 8세가 되던 해에 다리가 약해지기 시작하다가 계속 마비 증세가 와서 그 후로 제대로 걸어보지도 못하고 윤채는 생을 마감한 셈이네요. 그런 윤채와 완채를 평생 수발하던 완채 엄마의 사랑을 뒤로 하고 윤채가 가버렸습니다. 그동안 다리로 걷지 못했는데 이젠 날개를 달고 다시는 오지 못할 나라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가는 길에 마음이 놓이지 않았는지 상을 치렀던 마지막 날 밤에 형 윤채가 동생 완채의 꿈에 나타났다고 하네요. 완채의 이야기가 이렇습니다.

“형이 걸어서 집으로 왔어요. 형이 나보고 같이 따라 가자고 했어요. 그래서 따라 나섰는데 형을 놓쳐 버렸죠. 형이 어떤 산으로 계속 걸어갔어요. 그러더니 검은 구름을 타고 날아가 버렸어요. 하지만 형이 말했어요. ‘완채야, 하늘에서 너를 지켜 줄게’라고요.”

   
▲ 2006년도에 장애 형제 생애 최초로 더아모의집 식구들과 함께 부산으로 해수욕을 다녀왔다. 이때만 해도 이들은 휠체어를 탈 수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누워서 생활한다. 그나마 윤채는 그 생활을 청산하고 하늘나라로 가버렸지만 말이다. l 송상호

사실 그 시간 경기도 이천 장호원에 있는 송산장례식장에서 보내던 마지막 밤이었는데 말이죠. 윤채는 정말로 하늘나라로 보내주었어요. 왜냐고요. 윤채를 화장한 화장터 이름이 충주 ‘하늘나라’라는 상호를 가졌지 뭐에요. 그런 형국이니 윤채는 하늘나라로 갈 운이었나 봅니다.

완채 엄마도 상을 치던 내내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잘 견뎌내더군요. 하지만, 하지만. 결국 윤채의 시체가 화장기계에 들어가려는 순간 가슴을 치며 우시더군요. “미치겠다. 정말 정말 미치겠다”며 말이죠. 그동안 참았던 눈물을 모두 쏟아내는 듯 보였어요.

그리고 우리는 점심시간이 되어 화장터 식당으로 향했죠. 윤채의 시체가 다 타기를 기다리면서.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며 식당에서 먹은 것은 갈비탕이었습니다. 의외로 완채 엄마도 씩씩하게 먹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웃으며 갈비탕을 먹었습니다. 완채 엄마의 한마디가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거든요.

“살아있는 완채를 위해서라도 더 잘 먹어야죠.”

   
▲ 오래간만에 바닷가로 바람을 쐬러 간다고 하니 완채가 좋아 죽는다. 하루 종일 집에만 누워있었으니 오죽하겠는가. 잠시 형의 죽음을 잊어버리는 순간이다. l 송상호
   
▲ 거울왕자님 지금 완채가 거울을 통해 바다를 보고 있다. 그래서 완채는 거울왕자님이 별명이다. l 송상호

완채 엄마는 갈비탕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습니다. 슬퍼할 겨를도 없다는 것이 딱 어울리는 장면이더라고요. 오히려 조그만 우스갯소리가 들리면 박장대소를 하는 완채 엄마를 보면서 결코 평탄치 않은 인고의 세월을 어찌 버텨 왔는지 잘 알 수 있지 않나 싶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윤채를 하늘나라로 보내주고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날이 수요일(17일) 이었는데 이틀 후 금요일에 바다로 떠나기로 약속을 하고 말이죠. 완채 엄마가 답답해서 바다로 가고 싶다고 하네요. 바다로 가서 마음껏 소리 지르고 싶다고 해서요.

그래서 떠난 것이 오늘(9월19일) 떠나는 ‘윤채와 이별 여행’입니다. 행선지는 가까운 바다 제부도로 정했습니다. 먼 바다를 가면 완채가 힘들어 할 것 같아서죠. 이별 여행에 앞서 면사무소에다가 윤채의 ‘사망신고’를 했습니다. 그런 후 제부도로 떠났죠. 완채와 완채 엄마는 신이 났어요. 왜냐하면 그동안 외출을 못했으니까요. 윤채가 살아 있을 때 한 달에 한 번 바다 보러 가기로 나와 약속을 했지만, 윤채가 계속 몸이 좋지 않은 바람에 그 약속이 무산되어 버렸거든요.

   
▲ 완채 엄마는 그저 신났다. 오래간만에 쐬는 바다 바람이어서 일게다. 사진은 나와 완채 엄마가 하늘을 찌르는 삿대질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장면이다. l 송상호
   
▲ 완채 엄마가 바닷가에서 놀고 있는 것을 거울로 보고 있는 완채. l 송상호

제부도로 가는 차 안에서 가요를 들었어요. 그러다가 윤채가 평소 좋아하는 곡이 나오면 완채 엄마는 꼭 그러시더군요.

“이 곡은 우리 윤채가 좋아하던 건데. 목사님, 이곡 참 좋죠?”

“아, 예. 윤채 짜슥~. 수준 있단 말여.”


이렇게 말하고는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곤 했죠.

그렇게 도착한 제부도는 마침 물길이 열려 있더군요. 완채엄마도 평소 드라마에서나 보아 왔던 제부도를 오고 싶었다고 하네요. 바다를 보자마자 완채엄마는 환호성을 지르더군요. 저렇게 좋을까 싶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점심부터 완채 엄마가 한턱을 단단히 쏘네요. 그동안 나에게 고마웠다면서 이렇게 대접하고 싶었다나요. 하여튼 ‘스페셜 모둠회’라는 것을 시켰는데 가격이 장난이 아니더라고요. 입이 쫙 벌어졌지만, 그 입으로 회는 잘도 들어오더군요. 물론 완채 엄마도 아주 씩씩하게 먹었죠.

   
▲ 완채 엄마가 멀리 있는 섬을 가리키고 있고, 완채는 거울로 그것을 보고 있다. 아마도 그 섬의 이름은 ‘자유의 섬’일 듯. l 송상호

그러고는 바닷가 모래사장을 거닐었죠. 완채엄마는 마치 아이가 된 것처럼 신나해 하네요. 바다를 향해서 “야호”라고 외치는 것부터 시작해서 두 팔을 벌려 고함을 치는 것까지. 무슨 오랜 감옥생활을 청산하고 나오는 사람 같았죠. 아마도 윤채로부터의 자유를 외쳤을 테고, 나아가서 이 세상 고생으로부터 탈출한 윤채의 자유를 환호했을 거라 봅니다.

그러고 있는 모습을 완채는 차에 누워서 거울로 보고 있었죠. 이제 완채가 왜 거울 왕자인지 아시겠죠. 완채는 자신의 힘으로 고개조차 못 들고 매일 누워 있죠. 다행히 손은 조금 놀리기 때문에 항상 거울을 들고 누가 오는지를 보게 되죠. 그러니까 거울을 통해 세상을 보는 셈이죠. 지금도 바다를 직접 보지 못하고 거울을 통해 보는 것이죠.

이렇게 우리는 ‘거울왕자님’을 우리들의 마음속에서 조금씩 떠나보내는 이별여행을 만끽하고 있었죠. 스무 한 살, 꽃다운 나이로 생을 마감한 우리들의 친구 윤채를 드넓은 바다에 보내고 왔던 것이죠. 그리고는 또 다른 ‘거울왕자님’인 완채를 데리고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부디 좋은 곳에서 행복하게 살아라. 내 친구 윤채야”

   
▲ 완채 엄마는 지금 윤채에게서 자유, 그리고 윤채가 세상에서 자유 등을 담아 외치고 있다. 이날의 명장면이자 이날에 있었던 이별 여행의 의미를 잘 드러내주는 한 장면이다. l 송상호

송상호 기자  shmh0619@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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