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막골에 들어오면 누구나 아이가 된다.

동막골에 들어오면 누구든지 아이들이 된다. 인민군도 국군도 미군도 동막골에 들어오면 모두 아이가 된다. 동막골은 ‘아이처럼 막 살아라’ 라는 마을이기 때문이다. 이곳 동막골 어른들도 모두 나이만 먹었지 아이처럼 막 살아 모두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기만하다. 동막골은 말하자면 일반 세상사의 근심 걱정과는 단절된 ‘무릉도원’ 'Arcadia' ‘에덴동산’인 셈이다.

동막골로 들어오게 된 두 명의 국군과 세 명의 인민군 그리고 한 명의 미군, 이들을 전쟁이라는 미친 살육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이념이라는 미친 명분으로부터 해방시킨 것은 바로 이 동막골이라는 동화 같은 장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동막골의 여일이라는 ‘미친 소녀’이다. 미친 소녀 여일이 이곳에 들어온 군인들을 전쟁의 미친 살육과 이념에서 해방시킬 수 있는 것은, 여일에게는 전쟁도, 남도 북도, 공산주의도, 자본주의도, 그 어떤 구별개념이 들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곳에 들어오는 사람들 모두 여일에게는 친구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는 동막골 사람들 모두가 여일과 다르지 않다고 하겠다.

여일과 나비는 이 영화를 한편의 시화가 되게 한다

이 영화의 장르를 가벼운 판타지 정도의 영화로 분류하고 싶지 않다. 기존의 어떤 장르라는 굴레에서 해방시켜 이 영화를 단지 ‘시화(詩畵)적 영화’로 부르고 싶다. 영화란 기본적으로 Moving visual art이기에 그림 같은 영화만으로는 이 영화의 변별력이 잘 들어나지 않겠지만, 그림 같은 화면들의 시적인 구성과 편집이란 관점에서 보면 이 영화는 한편의 시로 그리고 시가 있는 그림, 시화로 보기에 충분하다.

이 영화를 무엇보다 시적인 영화로 보게 하는 것은 아름다운 화면의 시적 구성이다. 화면의 시적구성이란, 거칠게 정의 내린다면, 무엇보다 최소한의 화면으로 많은 다층적인 의미를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 할 수 있겠다. 이런 시적 구성의 바탕에는 이 영화의 원작이 이미 연극무대에서의 오랜 공연으로 탄탄한 각본과 구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연극에서의 여러 가지 상징적인 무대기법을 영화라는 매체에 실험적으로 옮겨놓는데 비교적 이 영화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단지 움직이는 화면과 그에 따른 사건전개만이 아니라, 겉으로 보여 지는 화면과 진행되는 사건 뒤에, 밑에, 혹은 그 속에 여러 다층적이고 함축적 의미들이 주도면밀하게 총체적관점에서 구성되어있는 것이다. 마치 한 편의 시처럼, 그리고 한 장의 그림처럼.

이 영화를 한편의 시화로 보게 하는 시적 구성의 중심에는 미친 소녀 여일과 그리고 여일과 상징적으로 오버랩 되는 나비가 있다. 먼저 이 영화에서 나비는 마치 연극 무대의 막과 같은 역할을 한다. 중요사건의 한 단락을 지을 때마다 막이 내려지듯 화면에 나비가 등장한다.

▲이 영화를 한편의 시화로 보게 하는 시적 구성의 중심에는 미친 소녀 여일과 그리고 여일과 상징적으로 오버랩 되는 나비가 있다.

영화의 시작 타이틀 자막, 웰컴 투 동막골에서부터 나비는 마치 애벌레에서 막 우화(羽化)한 듯 날아와 관객을 동막골로 인도한다. 곧 이어 이 영화 첫 장면에서, 세 명의 인민군들이 여일을 앞세우고 동막골로 들어갈 때 그들 뒤로 마치 누가 따라오나 감시라도 하듯 뒤 따라오며 관객을 새로운 무대 동막골로 안내하는 것도 이 나비이다.

마을 사람들이 잡아 파묻은 멧돼지를 몰래 여섯 명의 병사가 함께 구워 먹으며 적아의 대결구도를 푸는 상징적인 장면에서 막을 내리는 것도 역시 나비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연합군 폭격으로 죽은 다섯 명의 남, 북 병사들의 눈 덮인 시신 위에 내려 앉아 혼령들의 넋을 위로하며 동막골의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것도 역시 나비이다.

이런 유기적 구성을 어떤 구체적 스토리나 대사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나비를 등장시켜 상징적으로 처리하는 장면은 한 편의 시로 한편의 그림으로 보기에 풍부한 시화적 은유와 상징이 넘쳐난다고 할 수 있다.

토속신앙의 상상력 안에서 마술적 사실성을 지니는 나비

이 영화에서 나비는 연극의 막과 같은 역할을 할뿐만 아니라, 대사 없는 배우이기도 하다. 나비는 다름 아닌 이 마을을 지키는 신비한 수호신인 것이다. 미군 비행기 두 대가 이 지역을 비행하다 원인 모르게 레이더에서 사라지고 실종하게 되는데. 그 이유로 미 연합군은 이 지역에 북한 인민군의 대공포대가 있다고 추측한다.

하지만 나중에 이 곳에 추락한 미군 스미스 대위가 이 곳에 추락한 또 다른 연합군 비행기 잔해를 발견하는 장면에서 슬며시 그 이유를 흘려놓는다. 이유는 다름 아닌 나비 때의 공격이다.

스미스는 비행기 동체 내에 죽어있던 모시나비 한 마리를 유심히 바라보다 비행기 동체 밖으로 햇빛에 눈부시게 날아다니는 나비 때를 본다. 하지만 스미스는 비행기가 추락한 이유가 나비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대신에 하늘을 보며 “저 구름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스미스 대위를 구하기 위해 연합군이 낙하산으로 투하될 때 겨우 다섯 명만 무사히 착륙하게 되는 것도 바로 이 나비 때들의 공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황당무계한 내용을 어떻게 받아드려야 할까? “그 까짓것 판타지인데 뭐”라고 하며 가볍게 장르 탓으로 돌리고 그냥 별 의미 없이 지나가면 될까? 다시 환기하건데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이 영화의 소재와 내용으로 볼 때 ‘판타지’라는 단어는 참을 수없이 가볍다. 그렇다고 이 영화를 충실한 사실주의 영화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바가지 장승과 더불어 동막골 수호신 나비도 이 동화 같은 마을의 성격으로 보면 우리의 토속신앙의 상상력 안에서 충분히 마술적 사실성을 지닐 수 있을 것이다.

문학적 용어를 빌어 편이 상 분류한다면 이 영화는 “마술적 사실주의(Magical Realism)"정도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미 남미의 대표적 작가인 가브리엘 마르께스가 그의 대표작 『백 년 동안의 고독』에서 보여주었듯이, 남미와 제삼세계만의 독특한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새로운 장르가 우리의 문화와 의식의 풍토에서도 상당부분 적용가능하다고 생각된다.

우리나라 사실주의 작가의 대표주자라 말할 수 있는 황석영은 이미 자신의 근년 작 『손님』에서 파격적으로 이 “마술적 사실주의”를 실험하고 있기도 하다. 마술적 사실주의 세계란 한마디로 생과 사, 인간과 자연, 현실과 상상의 세계가 명확한 구분 없이 사람의 일상생활과 의식 속에 자연스럽게 혼재 하는 세계를 말한다. 이는 서양의 근대 합리적 사회에서는 일어날 수 없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덜 미분화된 제 삼세계권만의 특유한 세계인 것이다.

이런 세계는 이미 수 천 년 집단 무의식처럼 내려오는 우리 민족의 애니미즘적 토속신앙을 고려해 본다면 우리에게 그렇게 낯선 세계는 아닐 것이다. 동막골 초입 숲길에 널려있는 바가지 탈 같은 것은 동막골을 지키는 수호신 장승들이라는 것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 관객들은 곧 알아차렸을 것이다.

이 바가지 장승과 더불어 동막골 수호신 나비도 이 동화 같은 마을의 성격으로 보면 우리의 토속신앙의 상상력 안에서 충분히 마술적 사실성을 지닐 수 있을 것이다. 자연 같은 ‘순수함’ 혹은 미련할 정도로 속화 되지 못한 ‘순진함’은 오랜 세월을 거쳐 동막골 사람들의 의식으로 피로 전달돼 내려오는 것으로 영화적(혹은 시적, 회화적)표현 장치로는 나비라는 상징물로 대치되어 이 산골 웃 마을 동막골을 지켜온 것이다.

이것은 만화 같은 판타지가 아니다. 이미 우리 조상들은 집안 구석구석에 귀신들을 모셔놓고, 도깨비에게 친구처럼 말을 걸며, 절기 때마다 찾아온 귀신들에게 한 상 잘 대접하고 보내면서 수천 년을 함께 살아온 사람들인 것이다.

'나비소녀' 여일은 동막골의 정신적 순수의 상징

마지막으로 이 영화를 시와 그림 영화로 만드는 또 다른 결정적인 요소는 미친 소녀 여일의 상징성이다. 이 영화에서 동막골이라는 상징적 장소와 나비의 상징을 유기적으로 연결시켜주는 인물이 바로 여일이다. 여일은 말하자면 ‘나비소녀’인 것이다.

머리에 항상 꽃을 꽂고 다니는 여일은 꽃을 찾아 날아다니는 한 마리 나비이다. 한 폭에 아름다운 수채화 같은 하얀 감자꽃 밭 위를 둥둥 날아다니는 여일, 마을 축제에 사람들 사이사이를 너울너울 춤추는 여일, 무엇보다 여섯 명의 군인들 사이를 날아다니며 동막골의 꽃가루 화수분을 그들 머리위에 뿌려대며 전쟁이라는 광기를 씻어 내주는 여일은, 한 마리 나비인 것이다.

▲지나치리만큼 미친 바깥 세상과 단절된 동막골 사람들은 어쩌면 여일처럼 정신적으로 아직 어른이 못 된 바보 같은, 아이 같은 사람들일지 모른다.

나비소녀 여일은 동막골을 지키는 나비처럼 이 동막골의 정신적 순수의 상징이다. 지나치리만큼 미친 바깥 세상과 단절된 동막골 사람들은 어쩌면 여일처럼 정신적으로 아직 어른이 못 된 바보 같은, 아이 같은 사람들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 미친 살육의 바깥 세상과 단절된 채 제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동막골 사람들의 어린아이같이 때 묻지 않은 순수함, 혹은 아이 같은 순진함일 것이다. 그 순수함, 순진함의 상징이 여일로 대변되고 여일은 다시 나비로 상징화 된 것이다.

이 둘이 상징적으로 합친 나비소녀를 통해 살육전쟁에서 미쳐버린 사람들을 치유하게 된다는 것이 이 영화의 주 스토리인 셈이다.

오늘 우리에게 밀려오는 굉장한 나비효과

소위 현대 물리학의 카오스 이론 중에 ‘나비효과’라는 것이 있다. 흔히 말하길, 어느 한 장소에서 나비가 한 날개짓이 그 지구 반대편의 거대한 폭풍의 원인이 된다는, 우주와 자연의 질서에 불가해한 복잡성을 이르는 말이다.

나비와 여일을 상징적으로 결합시켜 나비소녀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낸 이 영화를 한 폭의 수채화와 시를 결합시킨 ‘시화’로 본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그것을 읽을 수 있는 눈을 가진 자에겐 분명 이 영화는 굉장한 나비효과를 갖고 있는 영화다. 한편의 수채화로, 한편의 시로, 그리고 한편의 시화로.

이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꼽으라면 주저함 없이 마지막 장면을 꼽고 싶다. 미군 폭격기에서 투하되는 포탄이 붉은 발자국을 찍으며 흰 눈밭을 한발씩 다가오는 걸 보며, 리수화, 표현철, 막내 북한 병사, 셋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환한 웃음을 짓는다. 이어 화면을 가득 채우는 포화 속으로 사라지는 환한 웃음의 장면은 정말이지 명장면이다.

북남연합군이 되어 미군을 향해 싸우는 이 다섯 명은 동막골 나비들을 지키는 “독수리 오형제”같았다. 이 영화에서 다섯 명의 북남연합군이 미군을 상대로 동막골을 지켜낸 것이 계기가 되어 남북이 힘을 합쳐 미 제국을 상대로 이 지구를 지켜낼 날이 올 거라고 말한다면 이것 또한 ‘나비효과’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다섯 명의 북남연합군이 미군을 상대로 동막골을 지켜낸 것이 계기가 되어 남북이 힘을 합쳐 미 제국을 상대로 이 지구를 지켜낼 날이 올 거라고 말한다면 이것 또한 ‘나비효과’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마지막 장면에서 표현철의 가슴 뭉클한 대사 “우리 여기 말고 다른 곳에서 만났더라면....” 가 불연 듯 오래 전에 읽었던 영시 두 편을 생각나게 해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어 옮겨봅니다(내게는 또 다른 나비효과였답니다).

The Man He Killed

Had he and I but met
By some old ancient inn,
We should have sat us down to wet
right many a nipperkin!

But ranged as infantry,
and staring face to face,
I shot at him as he at me,
and killed him in his place.

I shot him dead because--
Because he was my foe,
Just so: my foe of course he was;
That's clear enough; although

He thought he'd 'list, perhaps
Off-hand-like--just as I--
Was out of work--had sold his traps--
No other reason why.

Yes; quaint and curious war is!
You shoot a fellow down
You'd treat if met where any bar is,
Or help to half-a-crown.

-Thomas Hardy[1840-1928]

그가 죽인 사람

오래된 선술집에서
그와 내가 만났더라면
우린 서로 마주 앉아 여러 잔의 맥주를
단숨에 비웠을 텐데!

하지만 우리는 보병으로 사선에 정렬해
서로 얼굴을 향해 총을 겨누고
나는 그를 그는 나를 향해 쏘아댔지
그리고 그를 대신해 나는 그를 죽였어.

내가 그를 죽인 이유는, 그러니까--
이유는 그가 내 적이었기 때문이었어,
단지 그 이유 때문인 거야: 그래 맞아, 그는 내 적이었어;
그건 분명해: 비록

그는 아마 별 생각 없이
입대했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르지만,
그래 내가 실직해서 입대했던 것처럼-그도 세간을 다 팔아버렸던 거야-
다른 이유는 없지

맞아; 전쟁이란 이 얼마나 해괴망측한 짓인지!
너는 그 친구를 쏴 죽였어
어디 선 술집에서 만났었더라면 술 한 잔 샀을,
아니면 돈 한 푼이라도 도와줄 수 있었을, 그 친구를.

Range-Finding

The battle rent a cobweb diamond-string
And cut a flower beside a ground bird's nest
Before it stained a single human breast.
The stricken flower bent double and so hung.
An still the bird revisited her young.
a butterfly its fall had dispossessed,
A moment sought in air his flower os rest,
Then lightly stooped to it and fluttering clung.
On the bare upland pasture there had spread
O'ernight 'twixt mullein stalks a wheel of thread
And straining cables wet with silver dew.
A sudden passing bullet shook ot dry.
The indwelling spider ran to greet the fly,
But finding nothing, sullenly withdrew.

-Robert Frost[1873-1963]

가늠쇠 조준

총알은 마름모꼴 거미집을 찢어놓고
땅 새 둥지 곁에 피어있는 꽃을 베어 버렸다
사람의 가슴을 피로 물들이기 전에.
꽃은 모가지를 숙인 채 꽃대에 매달려 있다
새는 다시 제 새끼를 찾아가고
내려앉을 곳을 잃어버린 나비는
허공에서 잠시 쉬어갈 꽃을 찾더니
가볍게 몸을 굽혀 꽃에 매달리려 파드닥거린다
간밤 벌거숭이 언덕 위
풀잎 사이사이에 처 놓았던 거미줄에는
은빛 이슬이 팽팽히 맺혀있다.
갑자기 총알 하나가 이슬을 털고 지나간다.
잠에서 깬 거미가 먹이를 향해 뛰쳐나오다
그만, 아무것도 없는 걸 보고는, 심뚱히 제 자리로 돌아간다.

박경장  sinawy20@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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