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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방앗간역사, 지금도 써내려가는 중.안성에서 '전통 정미소'운영하는 부부가 들려주는 방앗간 70년사.
송상호 기자 | 승인 2008.10.08 11:29
 
 

여기 가면 기간을 말하는 단위가 차원이 다르다. 몇 달이라느니 몇 년이라느니 하는 단위는 축에도 못 낀다. 무얼 했다고 하는 단위가 10년이다. 10년 밑으로는 감히 명함을 못 내민다. 옛날 같으면 ‘강산이 한 번 변한다는 기간’. 요즘 같으면 10번은 변하는 기간이다. 그래서 이 방앗간이 생긴 지도 어언 70년인 게다.

 

70년이라고 하니 부자가 대를 이어서 하는 방앗간인가보다 추측하겠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그렇다고 굳이 아니라고 말 못하는 이유가 따로 있다. 지금으로부터 70년 전, 그러니까 1938년(일제 강점기 말기)에 현재 방앗간 안주인의 작은아버지가 ‘신창 정미소’를 개업해 30년을 운영했다. 그 후 안주인의 큰오빠가 바통을 이어받아 또 20년 정도 방앗간을 운영했고, 20년 전부터 지금의 방앗간 주인 부부가 20년 동안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작은아버지 30년, 큰오빠 20년, 현재 부부 20년 등이니 도합 70년인 셈이다. 보기 드문 70년 역사만큼이나 이어져온 전통도 특별하다.

  
▲ 도정기 20년을 같이 해온 도정기 앞에서 조춘형 씨. 그의 타고난 낙천적 성격 때문인지 웃는 것이 몸에 베었다.
ⓒ 송상호
정미소

 

“10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방앗간이 잘 나갔시유. 직원이 7명이나 되었고 가을이면 쌀 도정한다고 밤샘 하는 게 거의 일상이었응께. 우리 방앗간 바로 앞에 ‘안성 5일장’이 들어서면 사람들이 북적대는 것은 기본이었고, 우리 방앗간에서 쌀 사가는 사람도 많았지유. 지금은 이 지역이 안성에서 제일 낙후된 거 같아 보이지만, 그 때까지만 혀도 여그가 ‘안성 명동거리’였다니께. 그 뿐이간디요. 지금은 우리 방앗간이 쌀만 도정하지만, 그땐 밀, 보리까지 도정했고 떡 방앗간까지도 했응께. 하이고 그러고 본 께 그 때가 정말로 좋았던 겨.”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바깥주인 조춘형 씨(66세)가 잠시 그때의 전성기를 그리워하는 듯 추억에 젖는다. 1996년이 되던 해부터 방앗간(정미소) 대형화가 되고, 신식 기계들이 농협에 설치되니 조금씩 지금의 방앗간이 뒤로 밀려난 것. 그러다보니 7명이나 되던 직원들도 하나둘 떠나가고. 자연히 그 좋던 전성기 시절도 떠나가고. 말하자면 ‘신창 정미소’의 전성기는 60년이었던 셈.

 

그러고도 10년을 더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바깥주인 조춘형 씨의 기술 덕분이다. 방앗간이 곧 그들의 집이기도 하니 다른 곳을 선택하기 쉽지 않았던 것도 ‘한 이유’가 된다. 원래부터 기계를 다루는 것이 전공이었던 바깥주인이 초창기부터 도정기를 직접 운영하고 관리하고 수리해왔던 것이다. 그나마 옛 도정기가 멈추지 않고 지금까지 돌아가는 것은 다 그 이유에서다. 

 

“요즘은 우리가 추수하고 남은 논에서 이삭 주워 먹는다는 마음으로 방앗간을 돌려유.. 옛날 같았으면 지금이 한창 바쁠 때이지만, 요즘은 농협이나 정부양곡정미소 등에서 한창 바쁠거유. 큰 방앗간서 대규모로 ‘쌀 도정’이 끝나고 나면 나머지 소규모로 쌀 도정하는 몫이 우리 방앗간에도 조금 돌아온단 말여유. 그러고 본 께 남들 바쁜 거 끝나고 나면 우리가 바쁜 거지유. 호호호호”

 

방앗간 안마당에서 이루어진 우리의 대화 내내 바로 그 옆자리에서 추수한 ‘콩 달린 나뭇가지’들을 일일이 챙기면서 우리의 이야기에 간간히 양념만 치던 안주인 박안순 씨(62세)가 모처럼 길게 입을 열었다. “우리의 복이 거기 까지니 워쩌 것시유. 시대가 그런 것을. 자기 복 닿는 대로 사는 거 지유.”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지나간 영광의 시절도 운명이라 여기며 이들 부부가 현실에 잘 적응하며 사는 것도 모두 안주인의 재빠른 현실적응이었으리라. 그러고 보면 잘나가던 방앗간 전성기가 끝나고도 10년을 더 버텨낸 것은 바깥주인의 기술과 안주인의 내조가 어우러져 만들어낸 작품이 아닐까 싶다.

 

지금의 상황에서도 부부가 합의하는 마음이 있다. 그것은 ‘남들이 보면 없어 보이지만, 하루를 살아도 즐겁게 살자’인 것. 옛날은 어디까지나 옛날이니 “왕년에 우리도 잘 나갔어”라는 식의 지나간 이야기에 매몰 되지 않고 하루를 살다보니 주위에서도 그렇게 인정받는다는 이들 부부는 요즘은 텃밭에서 직접 재배한 콩, 고구마, 땅콩 등을 추수하는 재미로 산다.

  
▲ 정미소 70년된 바로 그 자리 앞에서 활짝 웃고 있는 바깥주인 조춘형 씨. 안주인은 한사코 사진 찍기를 사양하는 바람에 이렇게 단독사진이 되었다.
ⓒ 송상호
정미소

 

그런데 눈치 챘는가. ‘신창 정미소’라는 이름이 70년 전의 이름 그대로라는 것을. 농경사회가 주를 이루던 시절부터 근대산업사회와 현대정보사회에 이르기까지 파란만장했던 우리 사회의 변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네 마을 한 귀퉁이에서 우리의 기본 밥상을 챙기는 곳으로 살아왔다는 것을. 그래서 그들이 고마울 수밖에 없다는 것을. 

송상호 기자  shmh0619@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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