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복음교회 교단의 죄책 고백과 회개 사건

2006년 병술년 1월부터 한국 개신교 역사에 매우 뜻깊고도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다. 

▲복음교회 창립자 최태용 목사

금번에 창립 70주년을 맞는 기독교대한복음교회(이하 ‘복음교회’) 교단이 한국 개신교 역사상 최초로 교단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과거의 친일 행적을 고백하고 회개하였던 것이다. 그것도 교단을 창립한 창립자 최태용 목사에 대한 죄책 고백이어서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바야흐로 복음교회는 정직한 자기부정을 통한 새로운 창조적 발전으로 도약하고 있었던 것이다.

듣자하니 이번 복음교회 교단이 이룩해 낸 거사에는 그동안 뜻있는 젊은 목사들의 한국교회 개혁을 향한 진취적 열정과 교단 전체 총회의 자리에서 어느 한 장로 분의 "죄책 고백과 회개의 문제는 표결로 지을 문제가 아니다"라는 감동어린 연설이 결정적 밑거름이 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성령받음'의 현상적 차원이란 절묘한 타이밍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이번 복음교회 교단이 70주년을 맞아 남긴 이 발자취는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도 선구자적인 것이기에 매우 중요한 사건이자, 비로소 한국교회에도 제대로 된 희망을 말할 수 있는 의미있는 사건이라고 생각된다. 복음교회의 70년 역사를 찾아보면 알겠지만, 복음교회가 교세는 작아도 어느 진보적 교단 못지않게 지금까지 역사적으로도 참 옹골져왔던 한국교회 속의 <작은 겨자씨 교단>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교단 홈페이지 http://www.kec21.org 참조)

장공 김재준이 창립한 기장 교단에 드리는 글

반면에 복음교회와 비교해서 소위 진보적이라고 널리 알려진 기장(한국기독교장로회) 교단은 어떤지 알아보자. 기장은 장공 김재준 목사가 창립한 교단이다. 그러나 그 김재준 목사 역시 일제 시대의 신사참배의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런데 그동안 진보적이라는 기장의 반응은 이점에 대해 말하기를 불편해하거나 거론한다고 해도 매우 변명 일관이 많았었다.

즉, 그 당시에는 조선신학교를 살려야 하기 때문에 장공도 어쩔 수 없었다는 논리였고, 또한 장공 역시 겉으로는 신사참배를 하면서도 속으로는 ‘일제야 망해라’라고 기도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런 얘긴 여전히 구차하게 들릴 뿐이다. 어느 분의 지적대로 당시 신사참배 문제로 목숨마저 잃은 신앙인들에게는 뭐라고 얘기할 것인가? 그래도 여전히 어쩔 수 없었고 정당하다고 변명할 것인가?

분명히 말하지만, 장공이 신사참배를 했다고 해서 이후의 나머지 다른 공로들이 죄다 모두 퇴색되거나 빛이 바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나로선 더 깊은 애정과 연민을 느낄 것 같다. 그러니 굳이 변명으로서 일관할 것도 없잖은가. 오히려 자신의 오류와 잘못을 인정하고 새롭게 나아가는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십자가의 길이요, 예수를 따르는 자세라고 본다. 기장일수록 장공을 제대로 더 정직하게 볼 필요가 있잖은가.

개인적으로도 본인 역시 한신대 신학부를 나왔었다. 그렇기에 장공 김재준은 내게 있어서도 자랑스러움이었다. 나 자신이 기장 교단에 몸담았다는 게 뿌듯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알게 된 김재준 목사의 신사참배 행적은 웬지 다 정화되지 못하고 남아있는 찌꺼기처럼, 마음 한 켠의 찜찜함으로 자리했었다.

나는 기장(한국기독교장로회) 교단의 관계자들에게 이 지면을 빌어 정중히 말씀드리고 싶다. 기장 역시 교단차원에서 죄책을 고백하고 참회하여 다시 새롭게 나아가길 바란다 고. 제발 장공을 두 번 죽이는 짓은 하지 말길 바란다고. 누구에게나 오류와 잘못은 있다는 식으로 어물쩍 넘어가진 않길 바란다. 진정한 신앙의 영웅은 그 자신의 오류와 잘못에도 늘 겸허한 자일 것이리라.

▲ 장공이 신사참배를 했다고 해서 이후의 나마지 다른 공로들이 죄다 모두 퇴색되거나 빛이 바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여러 가입교단을 두고 있는 KNCC에게 드리는 글

KNCC는 한국의 대표적인 진보 기독 단체로 알려져 있다. 한국의 역사에서 과거의 군사독재 정권 시절에 펼쳤던 빛나는 기독운동의 열매들은 현재의 KNCC의 영광을 빛내주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나 자신이 그러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단체에게 드리고 싶은 얘기가 있다. 제발 좀 아무 교단이나 받지 말라 는 것이다.

더 분명하게 말하자면, 적어도 과거 죄책 고백도 하지 않는 교단만큼은 제발 좀 받아들이지 말라고 부탁드리고 싶다. 할 수만 있다면 오히려 교단 차원의 죄책 고백을 유도하길 바란다. 예컨대, KNCC는 유신 체제하에서 저질렀던 숱한 잘못들이 있는 한국교회들도 그저 심드렁하게 가입시켜 줄 것인가?

물론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 없듯이, 교단 차원에서 죄책 고백 하지 않는 교단만큼은 받지 말라고 하면 남아 있는 교단들은 거의 없을 수 있다. 그렇다면 적어도 KNCC가 유신체제와 군사독재 정권 하에서 그토록 에큐메니칼 및 민주화 운동을 했었다면, 과거에 그러한 KNCC 운동과 대립적으로 있었고 군사정권에 동조하기까지 했던 보수적인 교단과 목회자들에 대해서만큼은 더욱 분명하게 죄책 고백을 요구할 수 있잖은가.

한때는 전두환 정권을 찬양하고서 이제와선 슬그머니 KNCC에 가입하는 기독 교단과 교회가 있다면 나로선 분명하게 문제제기를 해야 할 것으로 본다. 그것은 오히려 KNCC가 쌓아왔던 정체성을 그 스스로 허물어버리는 것은 아닐는지.

예컨대 나는 기하성(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같은 꼴보수 교단이 KNCC에 왜 덩그라니 가입되어 있는지 묻고 싶다. 저들은 군사독재 정권시절의 행적을 죄책 고백하고 참회한 적이라도 있었나? 조용기 목사는 정말 제대로 회개를 했었던가? 그 교단이 저질렀던 묵과하기 힘든 병폐와 비리들은 없었던가. KNCC가 국보법 폐지에 동의할 때 저들은 국보법 수호를 외쳐대고 있진 않았는지.

생각해보라. 역사적으로 한국의 보수 교단과 교회들은 진보적인 KNCC 운동과 대립적 위치에 있을 때도 많았잖은가! 그렇다면 앞으로도 KNCC의 입장과 가입된 산하 교단들의 입장이 하나님과 역사앞에서 자꾸 그런 식으로 상충된 행보들이나 보여주고 싶은 것인가? 왜 자꾸 분명하게 보수반동 짓을 하는 교단들마저 가입시키거나 연합하려고 하는가.

노파심에서 하는 얘기지만, 행여 한기총 작당들과는 -적어도 저들이 제대로 회개치 않는 한- KNCC와의 일치와 통합구상 로드맵 같은 얘긴 얼씬도 나오지 않길 바란다. 그것은 에큐메니칼도 아닌 <변질>일 뿐이다. 물론 지속적인 대화와 설득 작업은 할 순 있어도 적어도 변질까지 해선 안될 것이다. 또한 설마 가입교단으로부터 받는 지원금 때문에 고민하진 않을 것으로 믿는다.

솔직히 말해서 특히 90년대 후반 이후부터의 KNCC 행적들은 그다지 마음에 들진 않지만, 그래도 전체 한국교회의 지형에서 볼 때 그나마 나은 단체라 여전히 애정은 가지고 있다. 제발 어중이떠중이 교단들 들어온다고 해서 죄다 가입 받진 말라. 다양성들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자기 정체성과 충돌하는 모순들마저 보지 못한다면 그러한 다양성이란 그저 <무뇌아적인 혼재>요, 정체성이 희석되는 모호함일 뿐이다.

▲ 적어도 지금까지 KNCC가 쌓아온 정체성과도 상충되었던, 과거 죄책 고백도 하지 않는 기독 교단과 교회만큼은 앞으로는 제발 좀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한다. 차라리 진정한 참회와 변혁을 그 가입조건으로 걸든지-.

KNCC여, 앞으로는 제발 개념 없이 운영하진 말길 바란다. 적어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에 가입하려거든 교단 차원의 공식적인 죄책 고백 같은 자정능력들을 먼저 요구하라. 그럼으로써 가능하면 한국교회 전체 시스템이 정화되는 방향으로 유도되었으면 한다.

이번 복음교회 거사는 작은 자를 통해 큰 자를 부끄럽게 만든 사건

겨자씨 교단인 이번 복음교회의 뜻깊은 역사적 사건은 작은 자를 통해 큰 자를 부끄럽게 만든 사건이요, 작은 것이 오히려 더 크고 아름다운 것임을 예증한 사건이다. 진보적이라는 기장은 얼마만큼 한국교회의 역사에서 새로운 발전들을 일궈낼 수 있는가. KNCC는 얼마 전에 발전개혁특위를 구성했다고 한다. 정말로 발전적 개혁을 하고 싶은가.

진정한 발전과 개혁은 오류와 잘못을 성찰함으로써만이 가능할 것이다. 
물론  하나님과 역사 앞에 진정으로 참회한다는 것은 힘든 용기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진정한 회개 없이는 거듭난 새로움의 삶으로 발전할 수도 없잖은가.

그렇기에 이번 복음교회의 선구자적 사건은 비단 기장이나 KNCC만이 벤치마킹해야 할 사건은 아니다. 기본적으로는 한국교회 전반이 이번에 복음교회가 남긴 발자국을 본받고 따라야 할 사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금 여기서 굳이 기장과 KNCC를 대표적으로 들먹이는 것은, 일단은 가장 희망을 둘 만한 가능성의 끈을 놓치고 싶지 않은 곳들이기 때문이다.

혹시 관계자분들이 이 글을 본다면, 택도 없는 나 자신이 무슨 자격으로 기장과 KNCC 단체에 감놔라배놔라 하느냐고 따질 진 모르겠다. 그렇게 나오면 나로서도 할 말은 없다. 어차피 내가 감놔라배놔라 해도 최종적인 결단은 오로지 그 스스로들이 알아서 하는 것일 게다.

결국 하나님 나라는 회개하는 자의 것이며, 잘못을 성찰한 자의 것일 뿐이기에!

정강길  minjung21@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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