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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적 경제, 어디로 가야 하나예수님의 마음을 담은 경제 이야기(10)
구교형 | 승인 2008.10.28 14:45
Ⅴ. 대안적 경제, 어디로 가야하나?

3. 농업과 농촌, 농민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는 경제

나는 농업, 농촌문제에 관심이 많다. 대안적 경제 가치와, 더 나아가 성경적 생명가치를 재발견하는데 그것이 중요한 길목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아주 쉽고 당연한 것 같지만 매우 간과하기 쉬운 용어정리로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농업이란 농사를 주업으로 삼는 산업형태요, 농촌은 바로 그런 농업을 주업으로 삼는 촌락이요, 농민은 농업을 주업으로 하는 사람들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농업, 농촌, 농민 모두의 공통적 매개체는 농업(농사)이다.

그러나 내게 한국정부의 농업, 농촌, 농민 정책을 한 마디로 말하라면 서슴지 않고 탈농업, 농업포기 정책이라고 하겠다. 한 마디로 말해서 한국정부는 농업, 농촌, 농민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다. 그나마 식품가공 산업으로 연결될 수 있는 품목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농업부문은 경쟁력을 상실했기 때문에 하루속히 퇴출시켜야하는 대상이다. 그러므로 이들이 생각하는 농민과 농촌은 관광업, 숙박업, 외식업, 농공단지 일용노동 등으로 더 이상 농업이 아닌 도시흉내내기로 먹고 살라거나 정부 보조금이나 타서 연명하라는 것에 다름 아니다(내 말이 의심스러우면 정부의 농업정책을 찾아보라). 더 이상 농업을 주업으로 하지 않고 적당히 소득이나 맞춰주겠다는 것이니 농업, 농촌, 농민정책이라 할 수 없는 아닌 것 아닌가?

경쟁력 없는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는 이주금과 보조금 주어 하루 속히 탈농(脫農)하게 만들고 필요한 농산물은 수입하면 되는 것이고, 그렇게 필요 없어진(?) 농지는 서둘러 개발해서 집짓거나 관광지, 골프장 만들어 수입이나 늘려주면 된다는 사고다. 그래서 농업부문 관료나 국회 농수산 상임위 자리는 전문성과 상관없이 계파나 지역, 이해관계 조정차원에서 숫자나 맞춰 갈라먹는 전리품으로 전락한다. 어차피 다룰 정책도, 의지도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이러한 농업에 대한 무개념, 무정책, 무관심은 개혁정부라던 노무현, 김대중 정부라고 해서 현 정부를 비롯해 이전 보수정권보다 나을 것은 거의 없었다.

물론 모든 책임을 정부에만 돌리고 농민 자체의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흔히 말하듯이 농민들 스스로가 적극적인 대안농업 개발 노력에 나서기 보다는 각종 혜택이나 받고 현상유지에 급급했거나 농민들 스스로도 농업 존중적 삶을 살지 않는 점이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 1차적 책임 돌리기 힘들다. 정부나 국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도시민들도 농업과 농촌, 농민의 희생을 담보로 발전하려 했음을 생각하면 말이다.

그러나 농업과 농촌, 농민은 단순한 동정의 대상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이제는 농업부문의 현대적, 대안적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려는 창조적 노력이 절실히 필요한 순간이다.

우선, 건강한 먹거리, 삶의 질에 대한 도시민들의 관심은 바로 우리 농업, 농촌, 농민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직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내가 건강하려면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하는 사람들의 건강성을 먼저 생각해야만 한다.

둘째, 식량주권, 식량안보의 문제는 갈수록 국민적, 민족적 생존권에 직결되기 때문에 우리는 농업을 포기할 수 없다. 이미 서구 선진국들은 21세기를 지배할 화두는 더 이상 민족이나 인종 등 전통적 주제가 아니라 식량, 자원, 환경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그것들의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올해 농업투기자본 등의 농간으로 발생한 세계적 식량가격 폭등 사태에서 최소한의 농업적 기반을 지켜온 나라들은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었지만, 농업을 그저 사양산업 정도로만 여기고 수입에 의존하던 나라들은 엄청난 식량재난을 경험했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필리핀이다. 필리핀은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100% 쌀 자급을 하고 남는 20~30만t을 수출하는 나라였지만 94년 이후 수입국으로 굳어졌고 지금은 세계 최대의 쌀 수입국가로 전락해 이번 국제 쌀 가격 폭등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했다. 우

리는 너무나 쉽게 농업을 사양산업으로 몰아붙이지만 세계 최대경제대국이며 자유무역의 전도사인 미국은 물론 프랑스, 영국, 독일 등 서유럽국가들과 풍요한 북유럽국가들도 자유무역 위반 위험을 무릅쓰고 각종 보조금 등을 줘가면서 농업의 가치를 지키려 하는 노력을 주의해야 한다.

셋째, 단지 생존을 위해 먹고 사는 차원을 넘어 더 건강한 음식을 먹고 더 쾌적한 환경에서 살아가기 원하는 관심으로 인해 농업적 가치는 갈수록 고부가가치 산업이 될 수 있음도 역시 명심해야 한다.

나를 포함한 도시민들은 기본적으로 이기적 속성이 있다. 도시민들에게 농업과 농촌, 농민은 ‘불쌍하지만 국가발전을 위해서는 어쩔 수없이 희생해야 하는 사양산업(촌 무지랭이)’정도 생각이 지배적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 여전히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는 삶이나, 도시 생활의 풍요를 만끽하면서도, 입으로는 늘 “나이 들어 은퇴하면 욕심없이 농사나 짓고 살겠다”며 낭만적이고 목가적인 망상을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스스로 성장방식과 삶의 스타일을 바꿔서라도 농업적 가치를 살리겠다는 실천적 의지가 없다면 우리의 대안적 삶의 질은 결코 스스로 찾아오지 않는다. 이러한 문제들은 단지 우리 개인의 행복과 건강한 먹거리 차원을 넘어 생명과 생태적 삶, 지속가능한 성장을 지탱하는 터전인 것이다.

농촌, 농민을 살리는 것은 적당히 소득이나 맞춰주는 것이 아니다. 농촌에서 사는 사람들도 엄연한 사람으로서, 생활인으로서 살아갈 최소한의 여건과 생활환경을 존중하는 것이다. 그리고 농업의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농업을 포기한 농촌, 농민정책은 아무리 좋게 말해도 살농정책(殺農政策)이다. 유난히 농업을 통해 하나님나라를 많이 설명하셨던 예수님의 마음(마 13장)을 생각한다면 ‘농자천하지대본’은 하나님의 마음이다. 농업과 농촌, 농민 가치의 재발견, 이제는 그게 선진화다.

4. 통일시대를 담는 경제

우리나라와 민족은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대비하든 생각조차 못하든 상관없이 반드시 직면해야할 사태가 있다. 그것은 바로 남과 북의 통일(통합)과정과 그 이후에 벌어지게 될 지금과는 확연히 다른 시대의 삶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지금부터 예측하고 대비하지 않는 가운데 만들고 추진하는 모든 경제정책은 통일(통합)과정과 그 이후의 사태전개에 따라서 전혀, 또는 거의 의미를 잃어버릴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남북통일(통합)은 지난 60여 년간 너무나 달라져 버린 남과 북의 모든 영역을 새롭게 구성해야할 엄청난 과제이기 때문이다.

한 예로 우리는 너무 쉽게 한미 FTA협정이 발효되면 개성공단제품이 한국산으로 인정받는 등 남북간 협력의 혜택이 부각될 것이라고만 생각한다. 그러나 한미 FTA협정은 단지 자유무역이 활성화되는 정도가 아니라, 극단적 신자유주의 그 자체인 미국의 경제구조를 우리가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면, 당연히 통일 후 북한경제도 그 시스템에 결정적으로 노출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이미 심각하게 벌어져 있는 남북간 경제격차의 부담에 더해 미국식 구조까지 소화해야하는 더 큰 부담으로 나타나거나, 남북간 산업연계적 발전전망은 없이 북한이 단순한 생산기지화나 하청지대화로 전락할 수도 있는 가능성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몇 가지만 언급하려고 한다.

우선, 북한경제의 회생을 염두에 두지 않는 우리만의 모든 경제정책이나 시스템은 허상이다. 거시적 평화정책을 통해 북핵문제를 풀어내고, 북한경제가 실질적으로 살아나 회생할 수 있도록 국제적 환경을 조성하고 시스템적 차원에서의 대북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현 정부 들어 지난 10년간의 대북정책을 퍼주기라며 비난을 높인다. 그러나 우리가 명심해야할 것은 설령 통일 및 평화비용이 아무리 막대하더라도 분단 및 냉전유지비용보다는 훨씬 싸다는 점이다. 그러나 전자(인도적 지원, 경제협력, 교류 비용, 화해정책을 추진하는 정치적 대가 등)가 수치적으로 금세 계산되어 눈에 드러나는데 반해, 후자(필요 이상의 국방비, 안보유지비용, 장기적 체제대결로 인한 국제적 손실, 분쟁사태로 인한 총체적 비용 등)는 이미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 스며들어 있어 인식하기도, 찾아내기도, 계산하기도 힘들어 무시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의 통일 및 평화비용이 아무리 많은 부담을 준들, 전쟁과 분쟁이 일어났을 때의 정치, 경제, 사회적 비용에 비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순수 경제손익 기준으로만 살펴봐도 적대감에 사로잡혀 끝까지 북한을 옥죌 게 아니라 남북간 신뢰와 협력을 적극 추구하여 북한경제 자체의 회생에 적극적으로 협력해야할 것이다.

둘째, 앞의 주장과 연결되는 것으로 한국경제 방향과 구조를 북한경제와의 연결성, 연속성 차원의 구상하고 입안해야 할 것이다. 북한을 단순히 하청기지화하거나 사양산업만 떼어넘기는 차원이 아니라, 북한의 사회적, 환경적, 산업적 특성과 장점들을 적극 찾아내어 육성하도록 돕고, 그 과정에서 남북산업이 유기적 연계성을 갖출 수 있도록 구상해야할 것이다.

끝으로, 통일한반도시대를 염두에 두어서라도 우리의 심각한 식량자급률을 다시 끌어올려야 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고작 27% 정도에 불과한데, 그것도 95%정도의 쌀 자급률을 보탠 덕분이고 쌀을 제외하면 그 수치는 5%를 밑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절대적 식량난에 시달리고 있는 북한 몫을 염두에 둔다면 식량자급률은 거의 바닥을 헤맬 것이다. 식량주권, 식량안보시대라는 21세기를 살고 더구나 우리가 통일한국을 염두에 둔다면서도 시대착오적 비교우위론에만 사로잡혀 농업을 포기한다면 그 대가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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