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탓하지 마라
누가복음 1:5-17

정진우 목사

  여러분 올해 참 힘드셨죠? 특별히 사업하시는 분들은 많이 힘드실 것입니다. IMF보다 더 어렵다는 말로도 다 설명이 되지 않는 심각한 경제 불황을 호소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립니다. 2008년 겨울, 우리는 지금 참으로 어두운 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올겨울 지구온난화로 어느 해 보다 따뜻하다는 겨울이 이상하게 역사를 걱정하는 사람들의 가슴에는 찬바람이 들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를 덮고 있는 어두움은 단지 미국발 금융위기로 촉발한 경제적 어려움만이 아닙니다.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야 전 세계가 함께 겪고 있는 것이니까 우리라고 예외일 수도 없고 우리만이 겪은 어려움도 아닙니다. 그리고 살다보면 경제라는 것이 순환 사이클이 있어서 나쁜 때가 있으면 좋은 때도 있고 다 그런 것이 아닙니까? 너무 경제, 경제 하지 마십시다.  

  문제는 단지 우리가 경제적 불황속에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푸는 방식에 있어서 우리 사회가 이상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위기의 진원지인 미국은 물론이고, 지금 전 세계가 왜 이런 위기가 왔는지에 대한 깊은 반성 속에서, 새로운 사회적 패러다임을 만들기 위해 제 나름대로 혼신의 노력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미국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흑인 대통령을 뽑았고 지난주에는 의회가 자동차 회사를 지원하는 법안을 부결시킵니다. 희생과 고통이 따르더라도 적당히 넘어가지는 않겠다는 것입니다. 기존의 작은 기득권을 버리더라도 함께 사는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 보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미국의 모습에서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저는 한편으로 미국이 무섭고 한편으로 미국이 부럽습니다. 미국이 강대국이라서가 아니라 그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치열한 토론과 내부 민주주의를 관철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이 무섭고 부럽다는 것입니다. 자동차 회사, 힘세지 않습니까? 그러면 국회는 정치인들은 대개 거기 그냥 따라가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그렇게 일방적으로 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저는 그게 무섭습니다. 흑인 혼혈이 대통령이 되다니 저는 그게 부럽습니다.

  세계가 지금 이렇게 새로운 사회적 변화를 모색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데 우리 사회는 정말 엉뚱한 방향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온 국민의 마음을 모아 이 난국을 헤쳐 나가도 모자랄 판인데 소위 기득권층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기 위해 일방독주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 봉착한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전 세계가 가난한 사람들의 구매력을 증진시키기 위해 중산층과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는 세금정책을 통해 이 난국을 헤쳐 나가려고 하는 반면에 10년 만에 정권을 잡은 사회기득권층은 자신들의 잔치를 벌이기 위해 사회적 약자들을 희생양으로 삼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부자들의 세금을 일방적으로 깎고 대통령의 고향을 지원하는 예산 을 날치기로 편성합니다. 대통령이 되면 일 년 안에 주가를 3000포인트 되게 하겠다고 하더니 이미 주가는 반토막이 되었지만 사과 한마디 없고, 소위 강부자 내각, 고급주택 소유 재판관들은 든든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 사이 가난한 사람들의 일자리는 이주 노동자들, 비정규직 노동자들부터 해고통보가 줄을 잇고 있습니다. 민생이 어지러운 것은 당연하지 않습니까? 어디 그것뿐입니까?

  그간 우리 사회가 정말 많은 의로운 이들의 희생을 통해 쌓아온 민주주의의 기본가치들이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경제적인 것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민주화를 부정하는 시도들을 보면 정말 걱정이 커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민주주의라는 것이 그렇게 가벼운 것이 아닙니다. 그건 역사 발전의 기본 동력과 같은 것입니다. 엔진이 죽으면 자동차를 쓸 수 없듯이 민주주의가 죽으면 그 사회는 결코 앞으로 전진 할 수 없습니다. 4.19를 부정하고, 안기부를 강화하고, 국민기본권을 억압하는 악법들이 수없이 양산되는 현실 속에서 민주주의는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한반도의 평화통일의 도정은 또 어떻습니까? 정말 어렵게 이어져온 남북의 평화노력은 물거품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금강산이 막히고 개성이 막히고.  

  민생, 민주, 평화, 통일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거부하거나 부정할 수 없는 숙명 같은 가치, 오늘 한반도를 살고 있는 사람 누구라도 거역할 수 없는 가치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현대사 발전의 이러한 최소한의 기본 가치들이 모두 무너지는 현실에서 역사는 깊은 어두움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입니다.

  민생, 민주, 평화, 통일, 이것은 진보와 보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민생과 민주를 거부하는 진보가 있다면 그 진보는 망할 것입니다. 평화와 통일을 거부하는 보수가 있다면 그건 역사에 의해 거부당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건 무슨 당파적 이해관계의 문제가 아닙니다. 누구라도 어떤 정파라도, 어떤 이념을 가졌건, 여건 야건, 보수건 진보건 이 가치들을 거역하면 역사에 의해 거역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민생을 부정하고 민주를 파괴하면, 평화를 거부하고 통일을 막아서면 결코 우리 역사는 앞으로 갈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한해가 저물고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는 계절, 우리는 조용히 가던 길을 멈추고 이 어둔 역사에 세 빛이 어디서 오는지 깊이 묵상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이런 시대 성탄절을 어떻게 준비하고 맞이해야 하는 것입니까?

  오늘 말씀은 비단 오늘 우리만이 아니라 2000년 전 예수님이 탄생하던 그 시절에도 역사의 어둠이 짙어가고 있었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1장 5절 “유대왕 헤롯 때에”라고 시작하는 오늘 본문은 그 시절 예수가 오시고 그분이 오심을 준비하던 그 역사가 어떤 역사인지 우리에게 아주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그 시절 역시 깊은 역사의 어둠이 감싸고 있었습니다.

  헤롯이 얼마나 못된 왕이었는지 우리가 새삼 들추어 낼 필요가 없습니다. 그건 상식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단지 그가 유언으로 자신이 죽게 되면 이스라엘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람을 감옥에 가두고 그를 처형하라고 했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어둠속에 예수가 오셨다는 말은 무슨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입니까?

  시대를 탓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역사가 어두워져도 예수는 오시는 것입니다. 아니 더 적극적으로 말하면 어둠이 가장 깊어 질 때 예수가 오시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시대를 탓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둠이 짙어짐으로써 예수가 오시지 못한다면 우리는 시대를 탓해야 하겠지요.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거꾸로 역사의 어둠이 깊어짐이 예수의 오심을 촉발하고 있다는 것, 그것이 성경의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사가랴와 엘리사벳, 그들은 그 어둠속에서 시대를 탓하는 대신 자신들에게 주어진 일을 묵묵히 성실하게 수행합니다. 사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어두운 시대에 태어난 것만이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큰 불행을 겪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늙도록 자식이 없었다는 것은 그들이 얼마나 불행한 개인사를 지닌 사람인지 잘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무슨 지위가 높고 명망이 높은 사람도 아닙니다. 그저 낮은 하급 제관에 불과합니다.

  불평할 일이 많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들은 묵묵히 자신들에게 주어진 생의 과제 앞에서 성실합니다. 오늘 성경은 그들의 삶을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 주의 모든 계명과 규율을 지킨 사람으로 소개합니다.

  참된 역사를 사는 삶은 이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불평할 줄 몰라서가 아닙니다. 불만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그러나 단지 자신에게 주어진 생에 충실하기 위해 그 모든 불평과 불만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새 시대를 사는 길을 찾기 위해 오늘 해야 할 작은 일들 앞에서 성실합니다.

  시대가 어둡다고 탓하지 맙시다. 시대가 어둡다는 것은 불평과 절망의 이유가 아니라 소명과 책임의 기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여기 이렇게 살게 하신 무슨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시대를 향한 우리 생의 소명이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에스더에 4장 14절에 모르드개는 왕후가 된 에스더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왕후께서 왕후에 자리에 오르신 것은 바로 이런 일 때문인지 누가 압니까?” 하나님께서 바로 그 시대 그 상황 속에서 어떤 목적이 있고 그 책임을 맡길 사람을 선택하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무슨 목적이 있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향한 우리 소명이 있는 것이 아닙니까? 소명을 깨닫기 전까지 우리는 불평과 불만에 사로잡혀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소명을 발견한 사람은 자신의 삶의 조건, 그 시대, 나의 형편 이런 것에 매여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바로 그 시대 한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 뜻의 실현을 위해 자신을 비우는 것입니다.

  바로 그런 이들을 통해 하나님은 오늘도 주의 길을 예비하는 책임을 맡기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사가랴와 엘리사벳을 주목하고 그들을 통해 요한이라는 예수의 스승이라고 하기도하고 예수의 선구라고 하기도 하는 요한을 잉태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나타남을 탄식으로 기도하며 기다리는 때입니다. 이러한 때 우리는 신실한 사가랴의 집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시대가 어두울수록, 세상이 캄캄해질수록 더 빛나는 사람, 하나님 앞에서 의롭고 정직한 길을 걸었던 사가랴와 엘리사벳 같은 이들이 써낸 그 역사를 우리 온몸으로 다시 써야 하겠습니다.

  우리 이 시대를 거슬러 진정으로 나를 오늘 이 시대에 살게 하신 그 뜻을 깨닫는 대림절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시대를 탓하지 말고 나를 오늘 나의 삶의 조건에 보내신 그분의 뜻을 살피고 그 분의 뜻을 깨닫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옳은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현재가 아무리 어둡고 희망이 없어 보여도 여기에 희망의 싹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진실로 이번 성탄에, 우리 안에 주의 길이 새롭게 열리고 평탄케 되는 하늘의 역사에 우리 삶이 소중하게 쓰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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