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저녁 6시 30분, 서울 서대문에 있는 한백교회 안병무홀에서 한국민중신학회의 월례세미나가 개최되었다. 이날 이병학 교수(한신대, 신약학)는 “대량학살의 기억과 반제국주의 운동”이라는 주제로 논문을 발표하였다.

이 교수는 이 논문에서 전세계적으로 1900년부터 1988년까지 비전투적 상황에서 제국주의 국가들의 절대권력에 의해 의도적으로 학살당한 민간인의 숫자가 1억 7천만명에 이른다고 지적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제국주의의 학살에 대하여 성서는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요한묵시록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이교수에 따르면, 요한묵시록에는 “출애굽의 기억이 재현”되고, 또 “로마제국이 자행한 대량학살의 희생자들에 대한 기억이 보존”되어있다. 요한묵시록의 저자는 로마를 심판하는 근본적인 이유로 로마제국이 그리스도인들만 박해하고 학살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교 울타리 밖에 있는 수많은 무죄한 사람들을 역시 잔혹하게 학살하였기 때문”이라고 본다.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이 성 중에서 보였느니라(18:24).

이교수는 논문에서 출애굽 기억의 재현과 반제국주의적 성격을 보여주는 본문으로 8장부터 11장까지의 일곱나팔에 관한 보도를 분석한다. 처음 여섯나팔은 로마제국에서 재현되는 새로운 출애굽의 사건으로 로마제국에 대한 실재적 심판의 도래에 관한 증언이다. 첫 네 나팔은 당시의 유대적 우주관을 구성하는 네 요소 즉 땅, 바다, 강, 천체에 대한 파괴선언으로서, 이것은 우주의 종말에 대한 환상이라기보다는 “로마제국에 의해서 조직되고 유지되는 우상숭배적인 체제로서의 세계”에 대한 심판선언이다. 이로서 로마제국이 영원히 존속할 견고한 제국이 아닌, “이러한 타격 앞에서 속수무책인 취약한 체제라는 사실을 그의 수신자들에게 각인시키는” 기능을 갖는다고 말한다.

처음의 네 나팔이 로마제국에 의해 조직된 체제로서의 세계에 대한 심판이라면, 나머지 세 나팔은 그 체제의 질서를 떠받치고 있는 우상숭배자들에 대한 심판이다. 다섯째 나팔로 무저갱에서 나오는 황충은 출애굽의 여덟째 표징을 연상시키는 것으로서, 하나님이 새로운 출애굽을 위해 동원한 심판으로서의 기능을 한다.

이 발표의 새로움은 여섯째 나팔에 대한 해석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이교수는 결박되어 풀려난 <네 천사>와 그리고 학살당한 <사람 삼분의 일>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을 버린다. 전통적으로 네 천사는 하나님의 심판을 수행하는 선한 천사로서 이들의 지휘에 의해 살육된 “사람 삼분의 일”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와 우상숭배자로 이해되어왔다. 그러나 이교수에 따르면, 풀려난 네천사들은 이스라엘을 차례로 지배했던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제국의 왕들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사람 삼분의 일”은 그들에 의해 학살 당한 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네 천사들은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이기로 예비된 자들이더라” (9:15)는 이 논문의 부제는 학살에 대한 기억의 기록으로 읽혀진다. 이럴 때, 대량학살에서 제외된 죽지 않고 남은 삼분의 이가 행한 행동(9:20-21)이 이해될 수 있고, 이때 여섯째 나팔이 바로 이들에 대한 경고와 심판이 된다.

여섯째 나팔이 울린 후 연속적으로 일곱째 나팔이 울리지 않는다. 이 사이에 간격이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간격은 바로 요한과 그의 수신자들이 서 있는 현재의 시대를 표현한다. 이 현재의 시대는 바로 일곱째 나팔이 울리면서 시작될 평화의 나라에 대한 현재적 결단과 참여의 시기를 대변한다. 이 시기는 또한 학살당한 자들에 대하여 어떠한 태도를 취할 것인가를 판단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것은 “한 사회가 억울하게 처형된 민간인 집단학살의 희생자들을 어떻게 대하느냐 하는 것은 곧 그 사회가 산 자들에게 대하는 태도와 직결”되는 문제이기에 중요한 오늘의 문제이기도 하다.

여전히 오늘 우리가 사는 시대에도 제국주의적 패권주의는 총이나 무기로서가 아니라, 시장이라는 이름으로 빈곤과 부채로 사람들을 몰아가며 가난한 사람들을 대량학살하는 현상이 세계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 1997년 이후 10년동안 자살한 인도의 농민은 16만 6천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러한 시대에 “평화와 정의와 생명이 지배하는 대항현실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은” 단순히 종말의 믿음으로 들뜬 종교인이 아니라 “제국주의의 사악하고 무정한 권력에 온 힘을 다해서 저항하고 투쟁하는 증인들, 예언자들, 짐승의 인침을 받기를 거절하는 자들, 순교자들, 그리고 열사들이다.” 그리고 “새로운 대안적 세계인 메시아의 나라는 대량학살의 희생자들에 대한 기억을 보존하기 위한 기억투쟁에 참여하면서 눌린자들과 가난한 자들의 인권과 해방과 자유를 위해서 지금 함께 싸우고 있는 남녀 그리스도인들의 고통스러운 투쟁 가운데서 이루어 나가는 승리와 연대 속에서 선취되는 것이다.” 

에큐메니안은 다음주부터 이병학 교수의 발제문 전문을 나눠서 연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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