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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개인의 영성, 공동체의 영성평신도들이 말하는 영성 ②
도토리 위원 | 승인 2009.01.19 05:18

* "항상 젊은 교회, 젊은 영성"라는 주제로 교우들이 생각하는 영성에 대하여 릴레이 토크 형식으로 올립니다. 강남향린교회는 교회설립 때에 아홉가지 신앙고백을 정하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강남향린}지에 아홉가지 신앙고백 중에서 하나씩을 주제로 교우들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강남향린} 37호(2008년 12월 발행)의 주제는 "항상 젊은 교회"입니다. 그 글들을 하나씩 나누고자 합니다.

 

 

 

“개인의 영성, 공동체의 영성”

평신도들이 말하는 영성 ②

조영희 집사(ccc1226@hanmail.net)

 

 

 

1. 내가 가졌던 편견

‘영성’이라니! 나와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주제 때문에 ‘절대 못쓰지~잉’ 빠져나갈 구멍만 찾고 있는데, ‘내가 생각하는 영성, 내가 생각하는 하나님’에 대해 평소에 가지고 있는 생각을 쓰면 된다고 해서 마음이 한결 가뿐해졌다. 앞의 수식문자 ‘내가 생각하는’이라는 말에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므로, 편한 마음으로 우리 생각을 나누는 데 만족하련다.

엉뚱한 말일지 모르지만, 난 사람들의 미각이 다르다는 것을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했었다. 객관적으로 달콤하고 맛있는 것이면, 똑같은 맛을 느낄 수 있는 혀의 구조를 가지고 있으므로 모두가 맛있게 여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취향에 따라 비릿한 것이나 약간 혐오스러운 것을 잘 먹는 사람도 있지만, 단순히 혀가 느끼는 감각은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거다.)

그런데, 우연히 보게 된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나의 이런 생각이 얼마나 편협한 것이었는지 깨닫게 해 주었다. 우린 대부분 밥을 찰지고 윤기가 날 때 맛있다고 하는데, 그곳 사람들은 완전히 하나하나 분해되는, 껄끄럽고 찰기도 없는 밥을 맛있어하고 찰진 것은 모두 싫어 하는 것이었다. 한두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고, 그 곳 사람들 모두 그렇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객관적 사실이라고 믿는 것도 사실은 주관적인 생각에 불과했다니….

그때 내가 깨달은 것은 ‘우리가 어떤 사실에 대해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도 사실은 자신의 삶의 경험과 문화 배경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사실이었다. 아주 작은 단면이었지만 그 후부터는 어떤 문제에 대해서든 서로가 생각하는 사고틀 자체가 틀릴 수도 있음을 인정하게 되었고, 상대방의 의견에 대해 내 의견과 똑같은 비중으로 인정해 주어야 함도 깨닫게 되었다. 이것이 다양성의 존중이리라. 이렇게 서론이 긴 이유는 아마도 나의 생각에 대해 한심스럽다고 평가받을까 봐 미리부터 보호막을 깔고 나를 변명하고 싶어서일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영성’이란 ‘모범적인 신앙생활’로 평가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고 생각하므로….

비슷한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한 교회를 이루고 있다 할지라도, 모든 사람들의 외모가 다르듯이 우리의 속 모습, 그리고 영성을 표현하는 방법은 다 다를 것이다. 우리가 사람 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지 않은 이상 다른 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그러므로 어떤 사람의 영성이 깊이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행동 양태를 통해 평가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보통 ‘기도생활을 열심히 하는 사람, 그래서 때로는 명상과 기도를 위해 기도원까지 다니는 사람, 또는 성경공부와 교리공부를 열심히 하고 교회활동에 헌신하는 사람, 개인적인 차원을 벗어나 사회변혁이나 이웃을 향해 자신을 내던지는 사람’을 ‘영성이 깊은 사람’으로 여긴다. 이 중에서도 기독교 전통에서는 특히 ‘기도생활 열심히 하고, 조용하고, 성경 열심히 읽는 사람’을 영성이 깊은 사람으로 간주하고, 좀 더 객관적이고 사회적인 눈으로 볼때는 ‘자신의 편함이나 이익을 추구하기보다는 남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칠 때, 또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것을 초월하여 사는 종교인’을 볼 때 우리는 그를 ‘영성’이 강한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2. 나에게 영성이란?

하지만 나는 ‘영성’을 지극히 주관적인, 개인적인, 내면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영성’이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내적인 힘의 동력, 에너지를 말하는 것이고, 그 힘은 타자와의 관계성 속에서보다는 조용한 가운데서 하나님과 나누는 대화 속에서 성숙되는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기도, 명상, 성경공부, 조용히 앉아 차분히 자신을 돌아보는 데서 이루어지는 과정을 통해서 얻은 깨달음과 그것을 통해 내적으로 축적된 에너지가 삶의 한가운데를 흔들림 없이 뚫고 나갈 수 있을 때 난 그 힘을 ‘영성’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영성부재란 바로 이런 것들이다. 주변의 힘들에 의해 내가 상처받고 흔들릴 때, 군중 속에 묻혀 떠밀려가는 대로 사는데도 ‘이건 아니야. 여기서 멈춰.’라고 내 속에 있는 내가 아무런 소리를 치지 않을 때, 그래서 결국 내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목적 없이 살아갈 때, 조용함 가운데 하나님과 대화하고픈 영적인 갈급함을 못 느낄 때, 남을 포용하고 배려하기보다 판단과 비난이 앞 설 때, 그 사람의 영성은 죽어있다고 생각한다.

내게 영성 강한 사람이란, 하나님과의 교제가 친밀한 사람이다. 먼 곳에 하나님을 두고 가끔 찾아가는 관계가 아니라 친밀한 관계로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다. 정식으로 무릎 꿇고 기도드리지 않아도 바로 옆에 있는 사람과 대화하듯 하나님과 이야기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영혼이 맑고 깨끗한 사람이고, 그 삶의 중심에 욕심보다는 나눔이 자리 잡은 사람이다. 어떤 것이든 그에게 부딪혀도, 바로 맞받아쳐 튕겨내지 않는 스펀지 같은 사람이다.

밖으로 나타나는 행동이 신실하든지 않든지, 기도를 유창하게 하든지 않든지, 실천적이든지 비실천적이든지, 흔히 말하는 날라리 신앙인이든지 아니든지 이런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하나님은 우리가 즐겨보는 겉모습 보다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내면을 보시는 분 이라고 하지 않던가?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내적인 평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훨씬 폭이 넓고 판단하지 않는다. 자신의 에고를 주장하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인다. 물질적 소유가 궁극적 목표가 아니고, 다만 살아가기 위한 도구일 뿐이라는 것을 삶으로 받아들인다.

‘모든 일상 언어에서 신앙적인 용어들이 줄줄 나오는 사람, 어떤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하나님께 맡기면 된다는 강한 확신으로 사는 사람, 기도와 교회생활에 열심인 사람.’ 만약 이러한 모습이 자신 안에 강력한 하나님과의 내적 교류로 이루어진 확신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라면 그 강한 확신과 열정이 나는 무지무지 부럽다. 그렇지만 한걸음 더 나아가 “왜 하나님이 다 해결해 주실 것을 어리석게 걱정하고 있나? 기도만 하면 만사형통인데. 왜 세상을 즐기려고 하나? 너무 인간중심적으로 살려고 하는구나!” 하면서 자신보다 덜 종교적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어리석고 한심한 사람들, 구원받아야 마땅한 사람들, 그래서 끊임없이 충고 받아야 할 부류로 바라본다면 깊은 영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하나님 앞에서 남을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3. 공동체에서 발현되어야 할 내 영성

나의 이런 생각에 대해서, 아무리 개인적 영성훈련이 잘되어 있다 하더라도, 그 표현이 공동체로 발산되어 나오지 않는다면 무슨 유익함이 있겠나? 공동체와 함께 나누는 삶을 통해 나타나는 영성이어야 바른 영성이라고 할 수 있지. 그것은 혼자 이 세상을 조용하게 살다간 의미 외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 사람의 존재의미가 없지 않느냐?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어떤 개인이 공동체를 지향하든, 아님 개인적 삶의 완성을 지향하든, 그것은 사람의 타고난 본성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므로 어느 쪽이 더 비중이 큰지는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함께 더불어 살아감에서 의미와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혼자 있을 때 안정감을 느끼고 행복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개인 본성은 교육을 통해 쉽게 고쳐지는 성질이 아니다. 다만 부족한 부분을 보충할 수 있을 뿐. 각 개인의 내면에 형성된 ‘영’이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이 두 가지를 서로 조화시키는 것이 각자 인생의 목표가 될 것이고, 이렇게 조화된 삶이 되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교회교육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영성 깊은 사람이 공동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도록 지음 받은 하나님의 창조물인 유기체기에 하나님은 반드시 자신을 넘어선 보다 넓은 세계로 그를 이끄실 것이다. 또한 공동체 속에서 함께함으로써만 삶의 의미와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더라도 개인적 영성이 없다면 ‘내어줌’의 삶도 결코 오래 지탱할 수 없을 것이다. 예수님도 제자들과 함께 하시면서 항상 ‘혼자만의 조용한 기도의 시간’을 즐겨 찾지 않으셨던가?

도토리 위원  dotorikey@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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