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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묻기 전에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라
정연복 기자 | 승인 2009.02.16 13:46

'죄'를 묻기 전에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라

 이현경(인성교육 강사)

『마음이 지닌 치유의 힘』을 쓴 조앤 보리센코가 그녀의 심신 클리닉에 온 환자들에게 설문을 해보니 환자들 대부분이 자신이 죄로 인하여 벌을 받고 있다거나 받아야 한다고 믿는 경향이 있었다. 이는 심리적으로 비관적인 사람들이 병에 더 잘 걸릴 수 있고, 여기에 신에 의해 벌을 받는다는 종교적 비관론이 결합되면 병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사고가 굳어진다는  얘기일 수 있다. 자칫 종교가 심약한 사람들을 더욱 두렵게 만드는 역할을 할지 모르는 것이다.

외부자로서 구체적인 교리를 모르면서 갖는 문제의식이기는 하나 죄를 먼저 묻고 그것을 시인한 사람에게만 구원을 약속하는 선-후의 단계 구분이 혹시라도 종교 안에 있다면, 이는 몸과 마음, 인간과 신성, 물질과 정신의 통합적 단일성을 이해하게 된 오늘날의 의식에서는 매우 진부하기 짝이 없는 단순논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70년 넘게 가톨릭 교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한번도 참된 구원을 말씀을 접하지 못하고 오래도록 '죄인'이라는 무거움에 짓눌려 온 엄마의 삶을 지켜보면서, 나는 다른 종교보다 가톨릭 교회에서 '죄를 묻고 벌을 주는' 권위자의 모습을 많이 느꼈다.

세례명이 데레사인 우리 엄마는 72세로 현재 전신마비 상태이며, 60세 직전부터 파킨슨병이 시작되어 십여 년의 세월을 근육이 굳어 가는 아픔과 찢는 듯한 통증, 심한 불면증의 고통 속에서 보내셨다. 매우 신앙심이 깊고 순교자도 배출한 황해도 '황씨'가 외가 혈통인 엄마는 모태신앙의 천주교인이시다. 하지만 성경을 제대로 통독해 본 적이 없었으며 결혼하고 나서 가난과 불화로 인해 점차 성당에 나가지 않는 '냉담자'가 되었고 불가피한 낙태 경험으로 가톨릭에 대한 깊은 죄의식을 지니고 사셨다.

10여 년 전 파킨슨병 판정을 때문에 입원한 병원에서 우연히 고백성사를 받고 "이 병원에서 고백성사를 받게 된 것이 나로서는 가장 기쁜 일"이라고 반기셨을 정도로 마음에 '죄인'이라는 의식이 깊었던 엄마는 그후 다시 성당에 나가시게 되었다. 하지만 병세가 계속 악화되자,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벌'로 병이 생겼다고 믿으면서 한편으로는 '죄인'이라는 두려움과 다른 한편으로는 하느님에 대한 억울함과 원망으로 내적인 갈등을 겪으셨다. 하루는 괴로움이 극에 달해 "혼자 십자가를 상대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 내동댕이치기까지 했다"고 말씀하며 두려움의 눈물을 흘리기도 하셨다.

나는 엄마의 온전한 치유를 위해서는 약뿐 아니라 마음속의 죄의식과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기에, 주변의 가톨릭 신자들을 통해 어떻게든 성직자들로부터 도움이 되는 말씀을 듣거나 상담을 받아보려고 하였지만 매우 어려웠다. 상담을 해주실 만한 신부님, 수녀님들이 있다 해도 교구에 매여 있어 다른 지역의 신자들을 방문하러 와 주기 힘들었고, 엄마 본당의 신부, 수녀님들도 늘 모임과 업무가 많아 집에 누워 있는 환자를 위해 일일이 찾아와 말씀을 전해줄 시간이 없었다. 그 이전에 보행보조기에 의지해서 떼어지지 않는 걸음으로 매주 미사를 참석하실 때에도, 곧잘 "신부님의 강론은 너무 교리적이라 잘 이해하기 어렵다"고 하셨고, 내가 모시고 가 보아도 성직자나 다른 교인들과 별로 교분을 나누는 일이 없이 그냥 뒷자리에 앉아 있다가 미사가 끝나면 바로 나오곤 하셨다.

알고 지내는 가톨릭 신자들이 개별적으로 따뜻한 위로를 보내준 일은 많았다. 구역 미사를 맡으신 분들이 1-2주에 한 번씩은 찾아와 손잡고 기도를 해주었고, 멀리서 개인적인 인연으로 가끔 방문하거나 치유기도를 하시는 분을 모셔와 함께 기도해 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분들의 위로는 엄마에게 죄를 넘어설 수 있는 구원의 약속은 되지 못했다. 당신의 내적 어둠과 혼란이 깊은 만큼, 보다 밝고 희망에 찬 생명과 치유를 약속해 줄 '자비로운 권위'의 가톨릭이 필요했던 것 같다.

외국의 병원에서 이루어진 한 연구 조사에 의하면 훈련받은 목회자 상담원의 방문이 수술 후 재발에 미치는 영향은 입원기간을 27% 감소시키고 진통제 사용은 33%나 줄였다고 한다. 요즘에는 기도가 환자들의 치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도 많이 이루어진다. 나는 환자들의 치유에 종교가 필요하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종교의 본래 역할이 내적 혹은 영혼의 치유라고 보는 것이다. 이 내적 치유를 위해서는 '당신은 중환자이다'라거나 '상처가 심각하다'는 얘기보다 '당신은 나을 수 있다', '상처는 깊지 않다'는 희망의 메시지가 더욱 필요하다.  

그런데 어떤 신자들이 성당에 들어갈 때마다 감사와 평화로 마음이 가벼워지기보다는 감독자 앞에 죄를 고백하기 위해 들어가는 두려움으로 마음이 무거워지게 된다면, 또 성직자들을 통해 자신이 죄인이라는 의식을 반복해서 각인받게 된다면, 비관적이고 내적인 두려움이 많은 사람들은 가톨릭 교회에서 희망과 은총을 발견하기 어려울 것이다.

나는 온 우주를 사랑과 지혜로 채우는 신의 일이 인간들이 정해놓은 시간적 순서나 선-후 관계에 얽매여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구원의 손길이 먼저 다가오면 그 손을 잡은 안도감에 비로소 자신의 죄를 고백할 수도 있고, 구원의 약속과 죄의 고백이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어리석고 약한 자들에게 지금, 바로 이 순간 구원이 일어났다고 기꺼이 말해줄 수 있는 가톨릭 성직자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가톨릭 교회에 70년이 넘도록 의지해도 진정한 구원의 복음을 만날 수 없었던 우리 엄마처럼, 혼자서 '죄의식'의 강을 건널 수 없는 사람들을 너무 오래 어둠 속에 방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매일 매 순간 마음의 치유를 실현하는 그런 가톨릭 교회를 기대해 본다.


(이현경·인성교육 강사, 서울대학교 교육학과 평생교육 박사과정)

 * 정연복 목사는 이야기로 천착하는 민중신학을 사색해온 젊은 민중신학자 중의 한 분입니다. 이어지는 묵상과 기도는 전체로서 하나의 이야기를 이루는그의 신학적 서술방법으로 이해됩니다. 많은 텍스트와 이에 대한 묵상이 보다 풍부한 이해를 돕고, 새로운 명상과 해석을 가능케 하리리고 믿습니다. - 편집자

 

정연복 기자  pkom545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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