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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의 상징성[연재 - 성서와 문학2]신발을 벗어 경외감을 표하라
홍성남 위원 | 승인 2009.03.18 20:41

신발의 상징성

홍성남(한신대학교 인문대 국어국문학과 외래교수 / 한국 고전산문 전공)

‘신발’(footwear / footgear)은 ‘신’과 ‘발’의 합성어로, 발에 신는 것으로 발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에 신발이라 하였는 바, 신과 발이란 의미보다도 신의 의미로 쓰이는 말로 고정된 듯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신발은 본래 추위나 더위로부터 신체의 발을 보호하는 실용적인 도구의 기능 외에도 재해와 악령을 피하게 해주는 원시신앙의 토테미즘설, 안전안산(安全安産)으로 우리의 발을 지켜주는 호부설(護符說), 성별 혹은 신분계급에 따라 신발의 모양을 다르게 만들어 신게 되었다는 성차설(性差說) 등이 거론되고 있다. 신발의 생성은 주위의 환경이나 기후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기에 추운 지방에서는 털가죽을 재료로 한 장화형의 신발을, 따뜻한 지역에서는 짚신이나 목이 짧은 가죽신을 신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신발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BC 1700년경 이집트에서 발견된 샌들이다. 이집트, 그리스, 로마시대에도 사람들은 짐승의 가죽이나 나무, 풀잎에다 끈을 달아 발에 걸었다. 이 신발은 한자로 신이란 뜻의 ‘이(履)’에 해당한다. 샌들이 만들어진 것은 아마도 뜨거운 사막지대에 적응하기 위한 환경요인과 무관하지 않다.

고대 근동인들 가운데 샌들을 신었던 사람들은 사제나 귀족층이었고, 가난한 피지배층의 사람들은 식물의 줄기로 만든 신발을 신거나 맨발로 다녔다.

예수님 시대의 샌들은 보통 종려나무 줄기 또는 나무 껍질이나 질긴 가죽을 이용해서 바닥을 만들고 가죽끈을 고정시킨 형태로 대부분이었고, 유대인들은 우리의 풍습과 마찬가지로 집안에서는 샌들을 신지 않았다. 팔레스티나 지역은 땅이 건조하고 먼지가 많기 때문에 사람들은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반드시 신발을 벗고 발을 씻었다. 부자들은 하인이 와서 신발 끈을 풀어서 신발을 벗기고 발을 씻겨주었다. 

우리 신발의 연원은 수도경작(手稻耕作)으로 인하여 짚을 이용한 것은 오래되었고, 짚신은 1910년 양화(洋靴)가 등장하기 전에 남녀노소, 상하귀천을 막론하고 누구나 신었던 신발이었다. 짚, 칡넝쿨, 왕골, 회나무 등을 이용한 짚신 외에도 삼으로 만든 삼신(마혜; 麻鞋), 나무로 만든 나막신(목혜; 木鞋), 한지(韓紙)로 만든 종이 신발, 고분에서 출토된 신라의 금동 신발, 가야의 토기(土器) 신발, 백제의 금동 신발 등 여러 종류의 신발이 있었는데, 하층민은 주로 짚신을 신은데 반하여 왕이나 지배층은 가죽신으로 만든 갖신(혜; 鞋)이나 금동제 신발을 신었다.
 
신라, 고려, 조선왕조의 신분이 엄격히 통제된 때에는 신분계급에 따라 신발을 신는 것이 차등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관료나 하층민이 화려한 신발을 신고 다니자 왕이 이런 폐단을 지적한 기사가 『삼국사기』, 『고려사』, 『세종실록』 등의 문헌에 보인다.

짚신은 우리 나라 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은 물론이고 멀리 멕시코 지역의 사람들도 짚신을 신었다. 길 떠나는 나그네가 가장 먼저 챙겼던 것이 짚신이다. 짚신은 짚으로 만들었기에 잘 떨어지는 것이 그 속성이다. 때문에 괴나리 봇짐 밑에 몇 켤레의 짚신을 매달고 길을 떠나는 장면은 텔레비전 사극에서 종종 볼 수 있다.

옛사람들은 짚신에는 주술력이 있어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나쁜 병마도 물리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짚신이 사람의 발 밑에다 두고 밟히면서 먼 곳을 왕래하였고, 진창이나 자갈밭길 할 것 없이 험한 곳을 밟으면서도 마멸되지 않고 남아 있기에 아주 강하고 질긴 저항력이 있다고 여겼다. 때문에 질병이 돌때는 마을 입구에 금줄을 치고 짚신을 나무에 묶어 두기도 했으며, 집의 대문에도 짚신을 매달아 병마를 내쫓고자 하였다.

1939년 조선총독부에서 발간한 『조선의 풍수』에 보면 평남 지역에서는 병의 예방 차원에서 우측 발의 짚신을 천장에 걸어 두었고, 전북 지역에서는 신굿 끝에는 반드시 짚신을 모아 태우는 등의 예문은 병마 방지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경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신라의 ‘짚신 장식 잔’ 무늬의 신발은 짚신의 주력(呪力)으로 마액(魔厄)을 쫓고 술의 신비성을 보호한 것으로 볼 수 있고, 이집트 파라오가 신던 신발의 바닥에 접전 상대국의 군장으로 여겨지는 단색화가 그려져 있는 것은 아마도 신발 바닥에 적을 그려 넣어 이를 짓밟음으로써 전승을 기원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 가난한 선비들이 체면상 상민들이 신는 짚신을 신을 수가 없어 비가 오지 않는 데도 나막신(나무신을 잘못 발음한 음이 굳어져 나막신으로 불려지게 된 설이 있음)을 신고 다녔기 때문에 남산골에 살던 가난한 선비들을 두고 ‘딸깍발이 남산골 샌님’이라 불려졌다는 신발에서 신분의 표시를 읽어낼 수 있다.

예전에 상을 당한 상주는 부모를 잃은 죄인이므로 苦行을 겪어야 한다는 의미로 엉성하고 투박한 ‘엄짚신’을 신었고, 상중에 대문 밖에 사자밥을 차려 두되, 짚신 서너 켤레를 놓는 것은 저승사자들이 망령을 데리고 저승 갈 때 신고가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불교에서 고승대덕이 도(道)를 이룬 상징으로 짚신을 신고 표연히 나타났다가 사라진 때에 고승이 신은 짚신은 도의 상징으로 생각하고 있다. 우리 한문학의 비조(鼻祖)로 여겨지는 최치원이 가야산에서 학과 벗삼아 노닐다가 짚신을 놓고 홀연히 신선이 되어 사라졌다는 설화는 수도(修道)의 상징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사랑하는 여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방법으로 신발을 선물하거나 상대방의 짚신이나 버선 속에 옆전이나 예쁜 꽃을 넣는 것은 모두 사랑을 전하는 징표가 된다. 또한 과부를 보쌈해서 업어가겠다는 것을 예고했는데, 대개는 사전에 신발이나 버선을 몰래 가져감으로써 업어 가겠다는 것을 예고했는데, 이것도 여자를 데려 가겠다는 사랑의 표시로 보아진다.

짚신이 때로는 여자의 심볼로 상징되는데, 그 모양이 여자의 심볼과 비슷하다는 일차적인 의미 말고도 늘 밑에 깔린다는 이차적인 의미로도 그렇게 상징된다. 신발과 스타킹은 여성의 성기관을 상징하며 그같은 상징적 용법은 신데렐라의 동화에서도 응용된다. 이 밖에도 상사병이 걸린 사람을 치유하기 위한 비방으로, 사랑의 대상자에게 짚신이나 버선을 훔쳐와서 코 부분을 불에 태워 먹으면 상사병이 낫는다는 습속, 사랑을 차지하기 위해 연적의 신발을 훔쳐와서 신발의 코를 도려내어 불에 태워 먹으면 사랑을 독차지한다는 믿음이나 첩의 짚신을 불태워 먹으면 첩이 떨어진다거나 죽은 쳐녀의 짚신을 그 어머니가 처녀가 생전에 신었던 동네 총각이 신어 주는 것은 불문율인데, 이를 두고 항간에서 ‘짚신 장가 갔다’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상징적인 남녀의 교제를 의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조헌(趙憲; 1544~1592)이 정사에 불만을 품고 입사(入仕)를 거부, 초야에 묻혀살 때, 반드시 네 날 짚신을 신고 다녔던 것은 곧 그 신발이 상민의 상징이기 때문이기에 그의 저항정신을 읽어낼 수 있다. 이 밖에도 신발은 신을 신는 모습을 보고 그 사람의 됨됨이를 가늠하는 척도가 되었으며, 옛날 중국에서는 발이 작아야 미인이 된다고 하여 신발을 보고 미인을 가리는 기준으로 삼기도 했다.

한편 2003년 미-이라크 전쟁에서 미군이 이라크 바그다드를 장악하자 거리로 나온 주민들 상당수가 사담 후세인의 동상이나 초상화에 신발을 벗어서 때리는 장면과 2008년 12월 중순 조지 워커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퇴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이라크 말리키 총리와 회담을 마친 후 기자 회견 도중에 무탄다르-알-자이디 기자가 벗어 던진 신발을 가까스로 모면한 봉변 장면이 지구촌 전역에 방송매체를 통해 방영된 바 있으며, 부시에게 신발을 던진 알-자이디 기자는 1심에서 3년형을 언도받은 기사가 며칠전 보도되었다. 이라크인들이 부시나 후세인에게 신발을 벗어서 던진 것은 분명히 그들에게서 분(憤)함으로도 설치(雪恥)할 수 없는 큰 과오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ㄷ

고대 근동 지방에서 신발은 더러운 흙, 불명예, 굴종 등을 상징한다. 신발로 체벌하는 것은 크나큰 모욕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신발은 하인, 도적, 창녀를 때릴 때 많이 사용되었다. 따라서 부모가 자녀를 때릴 때는 막대기나 손을 사용하여 때리고 신발을 벗어서 때리는 행위는 반드시 금지되어 있다. 따라서 이라크인들이 신발을 벗어 후세인의 동상을 때리거나 부시에게 신발을 벗어 던진 행위는 후세인과 부시에 대한 극도의 분노를 표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과거 우리네 조상들은 반가운 손님이 찾아오면 반가운 내색을 드러나지 않게 표정을 짓는 것이 점잖은 것으로 인식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반가움을 모조리 감출 수가 없어서, 반가움의 표시로 짚신을 거꾸로 신고 나서 손님을 맞이했다. 너무 반가운 나머지 짚신을 신고 나갈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는 간접적인 표시였다. 이 외에도 신발에 관한 우리네 설화로 『필원잡기』 소재 정도전의 흰색, 검은색 신발 이야기, 『용천담적기』 소재 허종(許琮)의 신발 일화, 『태평한화골계전』 소재 기생 옥매향 일화, 아리랑 민요 등이 있으나 여기서는 생략한다.

   
구약성서 출애굽기 13장 1절-6절 가운데 5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는 구절에서 신발을 벗는 행위는 모세가 하나님의 소명에 부응하되 예를 갖추어 하나님과 거룩한 장소에 대한 경외심의 표시이고, 구약성서 여호수아 5장 15절 “여호와의 군대 장관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는 구절 또한 신발을 벗으라는 명령은 하나님의 군대 장관을 만난 여호수아가 하나님과 거룩한 처소에 대한 경외의 마음을 갖게한 것으로 이해된다. 과거 전두환 정권 때 교회나 성당의 집회 장소에서 군화를 신은 병력들이 군중을 해산하려고 최루탄을 쏘며 성스러운 곳을 진입하려는 시도는 앞 성서 두 구절의 상징성을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신약성서 마태복음 10장 10절과 신약성서 마가복음 6장 9절에 드러난 예수님의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 여행 채비의 말씀가운데 여행에 필요한 것 외에는 소지하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신약성서 사도행전 13장 51절은 신발에 묻은 먼지를 털어버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불합리한 것과의 절교를 의미하는 상징이다. 누가복음 15장 22절은 잃었던 아들의 비유로, 돌아온 탕자에게 종을 시켜 가장 좋은 옷과 발에 신을 신기라는 부친의 명에서 새로이 거듭나기를 바라는 아들의 희원(希願)을 의미하는 상징이 내포되어 있다.
    
동서를 막론하고 신발을 신는다는 것은 신체의 발을 보호하는 의미 외에도 적과의 전투에서 승리의 기원, 길 떠나는 나그네의 필수품, 여성의 상징, 여성의 성기,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신분 표시, 거듭난 삶 등의 상징과는 대조적으로 신발을 벗는다는 행위는 저항, 굴욕, 폭력, 죽음, 경건, 수도자의 길, 검소함, 남녀의 교제, 손님 맞이, 사랑의 징표, 질병이나 액막이, 절교 등의 상징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홍성남 위원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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