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의 전능
이사야 53:1-6

정진우 목사

오늘은 교회력으로 사순절 셋째주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다시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우리의 신앙을 성찰하며 부활을 준비하는 절기입니다.

이 시간 우리 예수 믿으면서 몇 번째 사순절을 맞이하는 가를 한번 헤아려 봅시다. 여러분, 여러분이 신앙생활하면서 2009년 올해가 몇 번째 사순절입니까? 어떤 분은 처음 사순절을 맞이하는 분도 있을 것이고 수 십 번 사순절을 맞이하는 분들도 계시겠지요.

그러나 우리가 몇 번째 사순절을 보냈느냐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정말 몇 번째 사순절을 보냈습니까? 처음입니까? 아니면 수 십 번째 입니까? 아니면 단 한 번도 제대로 사순절을 보내지 못한 것입니까? 아무리 여러 번 교회에서 사순절이라고 광고하고 우리가 교회에서 사용하는 달력, 교회력이라는 달력에 사순절이라고 써있는 절기를 보낸다 하더라도 그것은 단지 달력의 이야기이지 내 신앙의 사순절은 아닙니다. 진정으로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제대로 대면하지 못했다면 거기 그렇게 달력에 적혀 있는 절기를 수 십 번 보냈다 하는 것이 무슨 대수이겠습니까? 그런 점에서 여러분 숫자에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신앙의 현실은 숫자가 아닙니다. 오늘 현대인들이 그렇게 집착하는 숫자 거기 하나님의 진실이 담겨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이란 질량의 세계, 크기의 질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외적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내용이며 깊이이며 진실이며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겉모양을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숫자를 세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중심, 삶의 내용, 찢어진 가슴, 애통하는 마음, 그 절절한 깊이를 헤아리시는 것입니다.

마음의 사순절, 깊이의 사순절! 달력의 사순절이 아니라 내 신앙 내 존재에 부딪혀 오는 그래서 내가 십자가 밑에서 깨지고 부서지고 다시 태어나는 그런 사순절이 와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진정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고난당하신 메시야! 한없이 무력했으나 그 무력함으로 진정한 전능을 드러내신 그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오늘 성경은 바로 그런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오늘 지금부터 약 2500년 전 이름 없는 한 예언자 소위 제2이사야서라고 불리는 무명의 한 선지자가 전하는 고난 받은 종의 노래라는 꽤 유명한 성경을 우리는 함께 읽었습니다. 이 노래는 후에 예수님의 수난에 관한 예언이라고 교회에서 해석해 온 유명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노래는 어떻게 시작합니까?

우리가 들은 것을 누가 믿었느냐? 무슨 말입니까? 누가 믿었느냐? 쉽게 믿어지는 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고난 받는 종, 하나님의 사람, 신의 뜻을 위해 헌신하는 하나님의 종이 고난을 당한다. 그게 쉽게 믿어지는 말입니까? 쉽게 믿어지는 복음은 따로 있는 것입니다. 교회 다니면 복 받는다. 교회 잘 다니면 성공하고 출세한다.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말씀을 더 믿고 싶습니까? 어느 것이 더 잘 믿어지십니까?

그런 사람이, 주님의 뜻을 위해 헌신해 온 그런 사람이 고난을 당한다는 것은 그렇게 쉽게 믿어지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그가 고통을 받고 있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아서 그리된 것이라고, 그가 무슨 잘못을, 죄를 지어서 그리된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지 않습니까?

더 놀라운 것은 두 번째 문장입니다. 주의 능력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여러분 주님의 능력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은 누구에게 나타납니까?

늘 승리하고 늘 부자 되고 늘 성공하는 사람들입니까?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오르는 이들입니까?

우리가 들은 것을 누가 믿었느냐? 주의 능력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이 짧은 문장으로 시작되는 고난 받는 종의 노래는 우리에게 전혀 낯선 신, 인간이 기대하는 하나님과는 전혀 다른 하나님, 인간의 종교적 상상력에 의한 신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실재한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 하나님의 구원 사건의 역설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죄악의 인간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진정한 능력, 참된 신의 전지전능에 대한 전혀 새로운 시각! 무력한 자들을 일으키고 눌린 자를 해방시키시고 절망한 자를 다시 희망의 길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에 대해 전혀 새로운 깨달음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노래의 배경은 바벨론 포로기입니다. 주전 587년 이스라엘은 신흥제국 바벨론에게 패배하고 대다수 주민들이 포로로 잡혀갑니다. 주전 538년 까지 약 50년간 그들은 바벨론 식민 지배를 받았습니다. 이민족 지배의 시기, 그 억압과 수탈의 고통이 어떤 것인지 일제 36년의 역사적 경험을 가진 우리로서는 조금은 짐작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스라엘의 위기는 단지 그런 정치 경제적 억압과 수탈의 문제만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그런 것은 어쩌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정작 이스라엘에게 결정적으로 이시기가 위기의 시기였던 것은 바벨론에 의해 이스라엘의 종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부정당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 시대는 한 민족의 신이 참 신이면 그 신을 믿는 민족이 잘되고 그 신이 거짓 신이면 그 민족의 운명 또한 망가질 수밖에 없다는 자명한 믿음이 있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야훼 신을 믿는 이스라엘에 마르둑 신을 믿는 바벨론에게 패배하여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한 중요한 신앙적 문제를 제기 합니다. 과연 그 패배한 신 바벨론 이방신에게 패배한 그 신이 참된 신일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바벨론 포로기를 통해 엄청난 종교적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현실적으로 승리한 바벨론의 신 마르둑이냐 아니면 패배했지만 여전히 야훼 하나님을 신앙해야 하느냐?

야훼를 따르는 이들은 지금의 현실에 그저 순응하고 따를 수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벨론 정복자들의 신 마르둑을 거부하고 야훼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입니다. 물론 이것은 당시 바벨론의 입장에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이때쯤 누군가 끌려가고 매 맞고 망가지고 부서집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망가지고 부서진 사람들 현실 속에서 넘어지는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해대기도 합니다. 그가 징벌을 받아서 하느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다시 세월이 흘러 그들이 바벨론 포로기에서 해방되어 다시 잃은 나라를 되찾게 됩니다. 오늘 이사야서 40-55장은 바로 이시기 바벨론 포로기 귀환직후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익명의 예언자가 기록한 노래입니다.

그들은 나라를 되찾게 되었을 때 바벨론 포로기 시절 그 암울한 시대 속에서 끝끝내 바벨론 이민족 지배를 거부하고 야훼를 따르려고 했기에 고난당했던 이들을 생각하게 되고 바로 그들의 고난과 죽음 당함의 의미를 새롭게 깨달은 것입니다.

우리는 그가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고 그가 상처를 받은 것은 우리의 약함 때문이다. 그가 징계를 받아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매를 맞음으로써 우리의 병이 나았도다.

그들의 고난은 그저 신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고난과 죽음은 바로 우리의 허물을 고치고 우리의 약함을 치유하는 하나님의 방식이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고난이야말로 신의 가장 깊은 사랑의 방식이었음을 그들은 마침내 깨달은 것입니다.

그로부터 500년이 흐른 후 갈릴리 예수라는 청년이 십자가에 달려 죽어갔습니다. 그 이는 물론 하나님의 아들로 이미 당시 유대사회에 널리 소문이 나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십자가에서 처절하게 죽어갑니다. 사람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의 아들! 앞에서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가 진정으로 하나님이라면 전지전능하신 분이어야 하는데 어떻게 십자가에서 물한방울 피한방울 남기지 않고 그렇게 처절하고 무력하게 죽을 수 있느냐?

가능성은 두 가지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무력하신 하나님이다’라는 말은 성립할 수 없으므로 그는 극적으로 십자가에서 탈출하여 하나님의 전지전능을 증명하든지 아니면 그가 처절하게 죽어감으로써 스스로 자신은 하나님의 전능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개 필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 그가 땅위에서 3년 동안 이런저런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한 모든 것은 거짓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길.

사람들의 경험에 의하면 이미 판정은 난 것입니다. 천백번 넘게 십자가형을 보았지만 아직 거기서 탈출하거나 뛰어내린 사람은 없었으니까요. 이미 결론은 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비웃었고 조롱했습니다.  뛰어 내려오라고 오 전능하신 예수여!

그러나 그 조롱과 비난에도 예수는 끝까지 무력했고 그냥 거기서 온갖 조롱을 받아가면서 죽었습니다. 도대체 이 하나님의 무력과 십자가 죽음 처절한 고통은 무엇입니까?

저는 어제 고 최의건 형제의 묘소에 다녀왔습니다. 그가 억울하게 죽어갈 때 하나님은 어디 계셨습니까? 고난당하는 종,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그 순간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의건 형제의 고통 속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께서 거기 함께 계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의 무능하심과 무력하심은 무력한 이들의 무력에 참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세계 구석 어디에서라도 억울하게 당하는 이들이 있는 한 지구 끝까지라도 역사의 마지막 페이지까지라도 함께 당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스스로 무력하심으로써 무력한 이들의 하나님이 되신 사건! 그것이 십자가입니다. 그것은 실로 새로운 신의 모습입니다. 승리하고 힘센 자들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스스로 힘없는 자리에까지 임재 하셔서 힘없이 당해야 하는 이들의 하나님이 되시겠다는 하나님의 결단 바로 그 결단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사랑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철저하게 무력하신 하나님은 그래서 역사의 마지막 한 사람까지도 구원해내는 하나님의 전능입니다.

만약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뛰어내리셨다면 그래서 그 조롱하던 자들을 심판하셨다면 잠시의 호쾌한 서부활극 같은 장면이 연출되었겠습니다만 오늘 여전히 이 세상 어디에선가 억울하게 고난당하고 죽어가야 하는 이들에게 무엇으로 희망과 구원을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유대인들은 기적을 요구하고 헬라인들은 지혜를 찾지만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선포할 따름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그 무력하신 하나님이 유대인들에게는 비위에 거슬리고 이방인들에게는 어리석어 보이지만 그러나 부르심을 받은 자에게는 그가 곧 메시야이며 하나님의 힘이며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오늘도 누군가 울고 있습니다. 어딘가에서 억울한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혹시 우리도 그중에 하나는 아닙니까? 우리 생에 그 고난과 슬픔 억울함은 없습니까?

오늘도 누군가 어디선가 억울한 죽음이 있습니다. 그 죽임당하는 자리에 하나님은 스스로 무력하게 참여함으로써 저들의 기도에 응답하고 계십니다. 이제 그 어떤 억울한 자리도 신의 부재를 증명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은 바로 그 자리에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지금 십자가의 고통 속에서 다시 부활의 싹이 자라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서 새 생명,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생명의 움이 트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 이 하나님의 생명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정진우 위원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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