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운영(紫雲英)은 무리지어 피어 있는 모습이 연분홍색 구름 혹은 연분홍색 옷감을 펼쳐 놓은 듯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저 남도의 끝 해남의 어느 작은 마을을 방문했을 때 논에 무리지어 피어 있는 연분홍의 물결, 다가가면 구름처럼 멀어지는 연분홍빛은 늘 한 걸음 멀리에서 나를 향해 손짓합니다. 연분홍 구름을 잡으려 한 걸음 한 걸음 연분홍 꽃밭을 걷다 뒤돌아보면 내가 걸었던 그곳에 연분홍 구름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곳에서 비로소 공선옥 작가의 <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라는 산문집을 절감할 수 있었습니다. 자운영 꽃밭에서 즐거운 노래를 부르면서도 우는 어린 소녀, 엄마가 되어서 아이들을 데리고 자운영 꽃밭에서 눈물을 흘리며 자운영꽃 무더기 속에 얼굴을 콕 묻어버리는 작가의 심정이 자운영 꽃밭에 그냥 피어 있었습니다.

자운영은 남도에서 피어납니다.

남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진행되면서 유신독재정권은 수출주도형 정책을 펼치면서 노동자들의 저임금정책을 유지하려 농촌을 피폐화시키는 고도의 전략(?)을 구사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빚더미에 앉을 수밖에 없는 현실, 새마을운동으로 겉모습만 그럴싸하게 포장하고 지금껏 농촌을 수탈해온 것입니다. 그 최대의 피해는 남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역사적인 아픔 때문에 자운영이 슬퍼 보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젊은이들이 다 떠나버린 농촌, 텅 빈 초등학교는 왁자지껄했던 지난날의 메아리만 을씨년스러운 교실 복도를 타고 운동장으로 총총 걸어나와 허공으로 사라져 버립니다. 아이들이 깔깔거리며 어깨를 맞대고 걸었을 좁다란 골목길은 허리 구부정한 노인네가 힘겹게 유모차를 의지하여 걸어가도 넉넉할 만큼 인적이 끊겼습니다.

사람이 없다는 것, 세대가 단절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삶의 현실이 척박하다는 이야기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곳은 사람이 넘쳐 일자리가 없어 난린데 남도의 들녘은 넘치는데 일꾼이 없습니다.

자운영은 ‘거름’이 되는 꽃입니다. 거름이 되어 다른 작물들을 풍성하게 키워냅니다.
자운영의 연분홍빛이 사라지고 나면 논밭에는 초록생명이 풍성합니다.
그는 거기 없지만,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기를 드러내고 싶은 욕심은 결국 자신뿐 아니라 이웃도 죽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드러내지 않고 하는 일입니다. 자기마저도 속이는 일입니다.
그때 비로소 이웃을 살리는 ‘거름’이 되었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민수 위원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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