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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바보 목사가 있다바보같은 삶을 살았던 허병섭 목사의 병동일기
김민수 | 승인 2009.04.17 01:57

* 기장회보 제503호에 실린 김민수 목사님의 글을 허락을 받아 싣습니다.

 

바보 같은 삶을 살았던 허병섭 목사의 병동일기


   
나는 바보 목사인가? 자문할 때가 있다.
나는 기장목사라는 것이 자랑스럽다. 바보 목사들이 많기 때문이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수지타산 맞지 않는 일이지만
묵묵히 바보스러운 삶을 사는 목사를 만나면 참 행복하다.
약사 빠르게, 적당하게 세상과 타협하면서 살아가고 싶을 때
그들을 생각하면서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모르고 밤새 뒤척일 때가 잦다.
아직 바보가 아니라서 그럴 것이다.
난 바보 목사가 좋다. 바보 목사를 만나면 숙연해진다.

 

여기 바보 목사가 있다.

목사라는 직분 자체를 ‘무기’라고 생각했기에, 그 무기를 버리고 발가벗은 상태에서 하나님 앞에선 바보 목사가 있다. 그는 목사라는 직분을 포기했지만, 모두가 그를 목사라 부른다. 그는 2009년 새해 벽두 이름도 생소한 ‘상세불명의 뇌증’이라는 병으로 투병 중인 허병섭 목사다.

   

하나님은 참으로 알 수 없는 분이다. 이 세상에서 바보 목사로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버거운데 짐에 짐을 더하신다.

1 월 6일 이정진 사모가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하는 증세로 서울 강남성모병원에 입원했다. 이정진 사모가 입원하고 10일, 돌연히 허병섭 목사도 사라졌다. 3일이 지나 실종 신고되었던 허병섭 목사를 경찰이 근처 지하상가에서 발견했다. 그도 이정진 사모가 보인 증세와 비슷한 증세를 보였다. 현재 허 목사 부부는 무동함구증으로 움직일 수도 없고, 말을 하지 않는 증세를 보이고 있다. ‘상세불명의 뇌증’으로 원인이 정확히 밝혀지지도 않았다.

‘ 허병섭 목사, 이정진 선생 치유를 위한 모금 위원회’의 오용식 목사는 곳곳에서 모금하고 있지만, 병원비와 병간호비를 충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란다. 게다가 귀농하면서 교회로부터 받은 돈으로 산 땅, 전 재산은 마을 재산으로 환경국민신탁에 기증해 아무 재산이 없는 상태다. 정말 완벽한 바보다. 3월 20일 현재에도 별 차도 없이 병원비만 3,000만 원 정도가 들었다. 입원 초기에는 부족하지만, 이런저런 후원이 들어오기도 했는데 현재는 뜸한 상태란다. 바보들은 잊히기도 잘 잊히는 모양인가 보다.

나는 가난한 현장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더불어 있으면서, 나라는 존재가 형성되었다. 그러므로 가난한 사람과 함께 가난의 문제를 해결하고 가난한 사람과 운명을 함께해야 한다. (허병섭 저 <일판사랑판> 중에서)

작가 이철용의 <어둠의 자식들>과 <꼬방동네 사람들>에서 공병두 목사 모습으로 허병섭 목사를 소개했다. 그는 뉴스엔조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 김수환 추기경더러 바보라고 하지만 47세에 추기경이 된 것을 보면 바보는 아니다. 진짜 바보는 허병섭 목사다. 허 목사가 바보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믿는 거다. 모두 자기 욕심만 차리려 할 때 허 목사는 내색하지 않고 속으로 끙끙 앓았다……. 십자가를 무기로 편하게 사는 자가 있지만, 십자가를 이고 가는 사람이 허병섭 목사다. 십자가 뒤에 숨어서 안일하게 살지 않고 십자가를 메고 갔다. 세상의 고통을 등에 메고 세상을 헤쳐나갔다.”

필자는 1985년, 허병섭 목사가 담임하고 있던 동월교회로 목회실습을 나갔다. 털털한 노동자 복장으로 목후생들을 맞이한 허병섭 목사는 산동네 사글세방을 다니면서 방을 얻어보라는 과제를 주었다. 산동네를 돌아다니면서 가난한 이들의 삶이 얼마나 고단한지를 훔쳐볼 수 있었고, 교회가 이들에게 어떤 희망을 줘야 하는지를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다. 어떤 목회자가 되어야 할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당시의 목회실습은 큰 도움이 되었다.

허병섭 목사는 <넘치는 생명세상 이야기>에서 자신을 ‘밀알노동자’라고 했다.

“ 나는 감히 밀알노동의 삶을 도시에서 살았다고 말할 수 있다. 첫째는 도시 빈민을 위한 밀알노동이었다. 체념과 비굴, 자포자기에서 해방하고 떳떳한 인간으로 살도록 돕는 삶을 살았다. 빈민들을 위해 할 수 있는 희생과 봉사, 섬김과 나눔의 삶을 살았고 그들의 노동에 참여했다. 둘째는 한국 교회 갱신을 위한 노동이다. 교회의 미래를 바로 세우려 했다. 교회 담임 목사로, 교단의 목회자로, 사회의 성직자로 최선을 다한 것이 밀알노동이다. 우리는 70년대와 80년대를 거쳐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의 발전을 위한 십자가의 행진을 멈추지 않았다. 밀알노동의 참 모습이다. 기독교인이 십자가 행진 즉 밀알노동을 멈추었을 때 병들고 나약해지고 생명력을 잃었다. 밀알노동을 잇기 위해 농촌으로 내려왔다.”

(허병섭 <넘치는 생명세상 이야기> 중에서)

   

3월 24일, ‘허병섭, 이정진 선생 쾌유를 위한 카페’의 병상일지에는 ‘칸나’님이 올린 소식이 올라왔다.

‘ 많은 분들이 허샘의 하루하루를 궁금해 할거라 생각되지만, 병의 차도가 미미한지라 병상 소식을 자주 알리지 않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도 어느덧 간병이 손에 익어 능숙하게 행동하다 문득 정성이 결여되었음을 자각하고 찔끔하기도 합니다.

병실을 옮긴후 간병의 수준이겠지만 조금이나마 치료에 도움이 되는 행동이나 돌봄의 행동들을 더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여전히 샘께서는 누군가를 알아보고 말을 하거나 의식적 행동을 하실 수는 없으시지만, 몸을 일으키려 하면 목을 가누시기도 하시고 일으켜 세우면 중심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시다 부축한 상태에서 서 계실 정도는 된답니다. 잠들어 계실 때 깨우면 눈을 크게 뜨고 정신을 차리는 모습은 지극히 건강한 허샘이십니다. 어떨 때는 표정이 정말 건강한 허샘이여서 금방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여기가 어디냐고 물으실 것 같기도 하다가 또 어떨 때는 뇌 손상이란 것이 이렇게도 치명적인가 하는 절망감이 들 때도 있습니다.

어쩌다 허샘과 눈이 마주치면 시간은 빠르게 가까운 과거로 가서 허샘을 깨웁니다. 순간 허샘하고 부르며 다가가면 대답은 없고 현실입니다. 허샘을 가만히 대하고 있노라면 현실인지 꿈인지 가늠하기 어려워집니다.

어제는 옛날 야학하실 때 제자분이 30년 만에 와서 눈물을 보이자 허샘께서도 같이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몸에 부착하고 있는 것은 콧줄 하나입니다. 이 콧줄을 때고 입으로 식사하게 되실 날을 기대합니다…….’

   

이 시대에서 ‘바보’로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시대는 너무도 영악해서 바보처럼 살지 않겠다고 하고, 세상의 눈이 판단하는 것에 목줄을 멘다.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목줄을 메고, 어떤 목사들은 교인들이 자기를 어떻게 평가하는가에 목줄을 멘다. 하나님 앞에서 ‘나는 누구인가?’, ‘하나님은 나의 메시지를 어떻게 생각하시는가?’,‘하나님은 나를 어떻개 평가하시는가?’보다는 세상의 평가에 일희일비하는 것이다. 영악함으로 바보가 된 것이다. 이런 바보는 밀알이 될 수 없다. 열매를 맺는 밀알, 그것은 진짜 바보만이 될 수 있다.

   
마음 아프고 힘들지만 가야만 하기에 묵묵히 십자가를 지고 가는 바보 목사가 많은 교단, 그래서 대형교회도 많지 않은 우리 기장, 그러나 나는 기장이 좋다. 바보 목사, 바보 교인들이 많아서 좋다. 벼 이삭 하나에는 600여 개의 낱알이 열린단다. 기장이 개신교에서 양적으로는 적어도 낱알 600여 개를 맺는 볍씨 한 톨이 되어 생명의 밥이 되어 그나마 이 사회가 이만큼 숨 쉬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글/김민수 목사

사진 / 후원카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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