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돼지고기를 좋아한다. 그런데 찔린다.

지난 부활절 때, 교회의 큰 행사라 평소 때와는 다르게 음식준비에 매우 바쁜 손길을 움직였다. 떡도 하고, 과일도 사고, 고기반찬도 마련을 했다. 삼겹살을 금겹살로 부를 정도로 가격이 치솟아 엄두를 못 내고 있었는데 날이 날인지라 눈 딱 감고 교인들이 먹을 만큼 구입했다. 뒤 늦게 성가대 연습을 마치고 온 성가대원들은 돼지고기가 모자라 딴 반찬에 밥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먼저 먹은 교인들이 ‘고기는 비싸야 맛있다’는 등 하면서 몇 번 씩 갖다가 먹는 통에 수급조절에 실패한 것이다. 성가대원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교회에서 돼지고기 소동을 겪은 후 얼마 되지 않아 이번엔 진짜로 돼지파동이 발생해 전 세계가 시끌벅적하다. 멕시코의 돼지 인플루엔자(SI)는 150명이 넘는 사람을 죽게 하고 북미대륙을 넘어 유럽과 아시아 등 전 세계로 확산되더니 국내도 비상이 걸려 있다. 국내에서 의심환자와 추정환자가 발견되면서 급속도로 사회적 공포로까지 이어지는 추세다.

최근 소와 닭, 오리에서 광우병과 구제역이 발생해 전 세계가 발칵 뒤집혀 홍역을 치룬 지 얼마 지나지 않았고 그 후유증이 이어지는 시기에 돼지독감이 또 발생해 그 충격이 더 큰 듯하다. 첨단 과학화 시대에 왜 동물로 인한 독감바이러스가 끊이지 않고 발생해 인간을 공포로 몰아넣는 것일까?

우리 교회 주변에는 동물농장들이 많이 있어 자주 접할 기회가 있다. 교인들 중에서도 닭을 집단으로 사육하는 분이 계신다. 아이들이 이곳에 갈 때보면 ‘닭 농장’에 간다고 하지 않고, ‘닭 공장’에 간다고 하는 말을 듣게 된다. 아직 소는 덜 하지만 돼지, 개도 형편이 다르지 않다. 대량생산을 위해 끊임없이, 오차 없이 기계가 돌아가는 공장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

아이들의 표현에 공감을 한다. 돼지는 활동성 동물이다. 잠 잘 때를 제외하곤 정신없이 돌아다닌다. 어찌나 말썽이 심한지 돼지우리를 만들어 주었고 그 후로 돼지와 인간은 공생하며 별 탈 없이 지내왔었는데 어느 날부터 돼지는 상품이 되어 동물이 아닌 물품으로 취급되었다. 우리 안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녀야만 직성이 풀리는 돼지는 철장 안에 갇혀 평생을 뒤를 한 번도 돌아보지 못한 채 납품일자에! 맞춘 제품으로서의 생을 마감해야 한다. 인간과 더불어 살아온 돼지는 돼지죽이 아닌 평생 흙냄새 한번 맡지 못하고 사료, 그리고 항생제와 성장촉진제에 온 몸을 맡기고서 기계로서만 존재하는데, 화가 나거나 미치지 않고서는 어느 돼지가 버틸 방법이 있겠는가?

국내 농업은 세계 농업과 경쟁한다는 이유로 저비용, 고효율의 기치 아래 집단화, 시설화 정책의 개방농정을 추진해 오고 있다. 개방농정은 비료와 농약, 그리고 기계에 의한 농사방법을 말한다. 그 결과 땅은 죽었고,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먹거리가 사라졌다. 가축농사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어느 정도로 기간을 단축시켜 몸집을 불리느냐가 경쟁력의 전부다. 한탕주의의 희생물인 돼지는 약과 주사로 상품성이 결정될 뿐이지, 동물로서의 존재, 인간과의 교류, 자연과의 순환관계 등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진 지 오래 되었다. 닭에서 나오는 알과 돼지 몸에서 나오는 고기는 알과 고기가 아니라 독 덩어리라는 지적은 전혀 지나치지 않는다. 국내 축산물 현장, 어디나 가서 잠시만 지켜봐도 이 사실은 바로 확인할 수 있다.

5월에는 어린이날, 어버이날을 비롯해 행사가 많다. 각종 행사에는 먹을거리가 따를 수밖에 없고 그 날도 어김없이 또 고기를 먹을 것이다. 혹시라도 고기를 빼게 되면 ‘돼지가 문제 있으면 돼지만 빼면 되지, 해물, 소, 닭은 고기가 아니냐’고 아우성을 칠 것이다. 3월에 정기노회가 끝나고 각 교회들의 행사가 줄을 이었다. 어느 교회를 막론하고 식사에 고기를 쓰지 않은 교회는 없었다. 고기 없는 음식 대접은 상상할 수도 없는 교회 음식문화다. 당장 다음 주에 있을 야외예배가 걱정이다. 그런데 이렇게 질질 끌려가다 보면 집단사육, 공장사육은 피할 길이 없고 신종 바이러스 독감은 또 다시 찾아 올 수밖에 없다. 수요가 있는 곳에서 공급을 막을 길은 없다. 단 한번만이라도 5월 중 교회 행사 때 고기를 쓰지 않고 음식준비를 마련할 일이다.

농업과 축산업에 있어서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할 때다. 돼지들이, 닭들이, 소들이 아우성치는 소리를 인간은 들어야 한다. 교회는 생명을 살리는 곳이다. 동물들이 던지는 경고장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유기농 농축산물 찾아 사먹는다고 해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죽임의 개방농정에서 벗어나 다품종, 가족 중심, 지역농업, 순환농법인 살림의 농업정책과 농사방법의 전환이 필요하다. 구약에서는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고 하고, 예수님은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하셨지만 그 말씀의 해석을 떠나 지금 가장 복음이 필요한 곳은 돼지를 비롯한 동물들임이 분명하다. 동물들을 복음의 자리에 초청해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그들의 화를 풀어주고 분노를 치유하는 길이다. 동물들이 신음하면서 어떤 복수를 인간에게 가할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이세우(들녘 교회 목사, 한국기독교장로회 농민선교목회자연합회 회장, 한미FTA기독교공동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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