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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슈퍼아줌마는 슈퍼우먼4곳의 가게와 함께 하는 강명자 씨의 억척스토리
송상호 기자 | 승인 2009.05.09 15:55

이불 가게, 슈퍼마켓, 복덕방, 식당. 이 4곳이 그녀가 어떤 식으로든 운영에 참여하는 가게들이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어떤 돈 많은 아줌마의 이야기인가 보다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야기를 다 듣고 나면 우리의 판단이 빨랐음을 바로 알 수 있다.  

이불가게와 슈퍼마켓은 강명자씨가 직접 운영을 하고, 복덕방과 식당은 도우미로 일을 한다. 4곳의 위치(안성 죽산 터미널 근처)는 거의 같은 곳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불가게는 4평 남짓, 슈퍼마켓은 1평 남짓이다. 도와주고 있는 복덕방은 4평 남짓, 식당은 8평 남짓이다.

  
▲ 강명자대표 노점상 시절, 펼쳐 놓은 이불 노점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텐트 뒤에 이불을 실고 다니는 봉고차가 보인다.
ⓒ 송상호
강명자

이불공장에서 이불 노점상으로  

그녀는 6년 전만 해도 인천에서 여성 혼자의 힘으로 이불공장을 경영했다. 지하 공장에서 거의 혼자서 이불을 만들고, 바쁘면 사람을 쓰는 형식이었다. 그러다가 IMF 외환위기의 여파와 경영난 위기로 공장 문을 닫을 땐 앞이 캄캄했다. 그래도 먹고 살기 위해 선택한 것이 이불 노점상. 봉고 차량에 직접 만든 이불을 실고 다니며 여주, 이천, 서울, 장호원, 대구 등 웬만한 큰 도시를 방문했다.  

이불 노점상을 3~4년 하는 동안 사연도 많았다. 이불을 구입해간 손님에게 돈 떼인 적도 심심찮게 있다. 이불을 받을 때는 갖은 애교를 다 부리던 사람이 이불을 받고 나면 이불 값을 차일피일 미루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어떤 때는 그녀가 만든 이불의 진가를 알고는 두고두고 고맙다는 사람을 만나면 그 모든 것을 잊어버리곤 했다.  

그렇게 떠돌다가 안성 죽산에 겨우 이불 가게(4평 남짓)를 얻었다. 그나마 월세가 아주 값싸서 얻었다. 이젠 단골도 적지 않다. 한 번 이용한 사람들은 그녀가 직접 만든 '손누비 이불'에 반해버린 게다. 그곳은 이제 이불가게이자 공장이다. 

슈퍼마켓 사장은 이렇게 되었다 

이불가게를 포함한 옛날식 상가 건물주인 할머니와의 만남이 계기가 되었다. 할머니가 직접 운영하던 조그만 슈퍼가 장사가 시원찮았다. 이야기 끝에 강명자씨에게 슈퍼를 인수인계할 것이 합의가 되었다. 그래서 1년 전에 '은하수 슈퍼'가 시작되었다. 

  
▲ 은하수슈퍼 지금 슈퍼에서 담배를 꺼내어 손님에게 팔려하고 있다. 1년 전 인수한 슈퍼는 1평 남짓한 크기이지만, 그녀의 번듯한 사업장이기도 하다.
ⓒ 송상호
강명자

슈퍼라고 해야 5명이 들어가면 꽉 차는 1.5평 규모다. 한마디로 옛날 구멍가게다. 하지만 그녀에겐 사업장. 할머니가 경영하던 방식을 포기하고 과감히 그녀만의 판매 전략을 도입했다. 판매 전략이라고 해봐야 별 것 아니다. 손님들이 좋아하고 주로 찾는 상품 종류로 대폭 교체했다. 과자나 음료수 등은 순환이 빠른 것으로 판매했다. 한 푼이라도 더 남기는 방식이 무엇인지 연구해 상품을 구비했다. 무엇보다 손님에게 친절하게 대했다. 시작한 지 1년이 지난 지금, 장사가 힘들 거라는 예상은 온데간데없다.  

그녀의 억척 스토리는 끝나지 않았다 

그녀의 슈퍼는 '21세기 공인중개사'라는 사무실과 같은 공간을 사용하고 있다. 아직 중개사 자격증은 없지만, 따로 독학을 해서 부동산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조금은 알고 있는 그녀다. 부동산 대표의 일을 심심찮게 도와주고 있다.  

얼마 전 슈퍼마켓 맞은편에 개업한 식당에 가끔씩 나가 주방 일을 도와주고 있다. 그녀가 몇 년 전 인천에서 식당을 직접 운영하며 음식을 만들었던 실력을 발휘했다. 그녀의 음식 솜씨에 앞 집 식당에 손님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현재 서울엔 총각인 큰 아들이 생활하고 있고, 인천엔 지하철 상근병인 작은 아들이 생활하고 있다. 그녀가 한 번 마음먹고 움직이면, 인천과 서울을 오가며 집안을 보살펴야 한다. 서울, 인천, 안성 등 이 3곳은 강명자씨가 제집 드나들 듯 움직여야 하는 곳이다. 이런저런 덕분에 하루에 4~5시간이 보통 그녀의 수면 시간이다.  

  
▲ 이불작업 중 손누비 이불을 손 댄 지 30년이 되었다 이제 눈감고도 작업을 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4평 남짓한 가게는 이불공장이기도 하다.
ⓒ 송상호
강명자

이렇게 억척스럽게 살아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너무나도 간단했다. '자식들을 위해서'. 우리 시대 어머니들의 아주 단순한, 그러면서도 위대한 이유였다. 요즘 누구나 그렇듯 장사가 잘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에게도 꿈은 있다.  

"열심히 하면 앞으로 내 집이라도 마련할 수 있겠죠. 호호호호"

송상호 기자  shmh0619@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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