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안전한 피난처는 어머니 품속입니다 - 사진 이인수

시절은 봄꽃 향기 그윽한 5월입니다. 그런데 어째 싱숭생숭합니다. 가슴 한쪽이 아려오기까지 합니다. 계절 탓이 아닙니다. 원인은 아주 간단합니다. 어머니 생각으로 너무 아픕니다. 어머니는 서울에 사시고 저는 광주에 살고 있거든요. 근근이 병원을 오가시며 생활하고 계십니다. 어버이 날인데도 목사라는 이유를 들어 안부전화 한 통으로 자식의 도리를 대신했습니다. 오매불망 자식 걱정으로 평생을 살아오신 어머니 이십니다. 통화 말미에 예의 당부도 잊지 않았습니다. “건강 신경 쓰고. 하나님 사랑받는 아들 되고. ” 낮은 땅에 납작 코 박고 살아가야 하는 자신이 종당 얄미워졌습니다. 뚱하니 앉아있다 콧노래로 흥얼거려봤습니다.

그렇군요. 누구나 때로는 청승맞게 유행가 가락을 흥얼거리고 싶은 때가 있나봅니다. 유행가 가락이라기보다 가슴은 빠개질 만큼 아파오고 눈물이 쏙 나올 노래를 목 놓아 부르고 싶은 경우가 있다는 겁니다. 지금 제 심정이 그렇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친구 아버님의 천국환송 예배를 집례하고 돌아와 컴퓨터 앞에 앉아 있습니다. 어르신과의 만남과 사랑을 곱씹어보다 뜨악하게도 장사익의 ‘찔레꽃’을 몇 번이고 불러 제겼습니다.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죠. 밤 새워 울었죠.’ 와락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전 ‘찔레꽃’ 노래만 들으면 어머니 생각이 납니다. 서른둘에 홀로 되어 6남매를 키워 오신 어머니를 말입니다.

웬 찔레꽃 타령이냐고요? 운구차가 오가는 도로 변과 장지에는 찔레꽃이 지천이었습니다. 그런데 암만 맡아봐도 찔레꽃 향기가 슬프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되레, 싸한 향기에 세포 하나하나가 춤을 추는 것 같았습니다. 환장할 만큼 자극적이었습니다. 가객도 이 사실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노래했다니. ... 저는 찔레꽃 향기를 맡으면서 이 땅을 지켜낸 선조들의 삶과 신앙을 곱씹어 봤습니다. 가시 줄기 사이로 피어난 흰 꽃송이는 꼭 제 어머니 이력서 같았거든요. 모름지기 세상에 태어나 처음 배운 단어는 필시 ‘엄마’일 것일 입니다. 저 역시도 그렇습니다. ‘엄마, 어머니.’ 얼큰한 생기와 소망을 가져다주는 단어임에 분명합니다.

시인 박목월의 「어머니」 “서시”는 이렇게 노래되고 있습니다. “어머니를/ 나는 노래 할 수 없다.// 나는 너무나/ 부족한 인간이므로.// 어머니는 너무나/ 크신 분이므로.// 어머니를/ 노래할 수 없다.// 그래도 나는/ 어머니를 노래하려 한다.// 어머니를 노래하려고 애쓰는 동안만이라도/ 내가  자랄 수 있으므로./ 나는 너무나/ 부족한 시인이므로./ 어머니를 나는/ 노래할 수 없다.// 그래도 나는/ 어머니를 노래하려 한다.// 어머니를 노래하려고 붓을 가다듬는 동안만이라도/ 마음 속 가까이 어머니를 모실 수 있으므로.// 어머니를 노래하는 동안에 나는/ 걸음걸이가 조심스러워지고.// 어머니의 사랑의 물줄기가 나의/ 가슴에 이어와서/ 내 눈빛이 한결 부드러워진다.// 어머니를 노래하는 동안만이라도 나는/ 마음에 환하게 등불이 켜지고/ 가슴이 더워 오는 행복감에 잦아들게 된다.//

눈치 채다시피, 오늘 주제는 어머니입니다. 시인의 고백처럼 저는 어머니를 노래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를 노래하는 동안 저는 꿈꾸는 질그릇이 될 수 있기에 감히 어머니를 감히 노래하고 싶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도처에 가 있을 수 없어 어머니를 만들었다’는 유대인 격언이 있습니다. 또한 ‘어머니와 하나님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는 인도 속담도 있습니다. 어머니! 저에게는 땅에서 만난 하나님입니다. 그러기에 ‘나의 나 된 것은 어머니’ 라고 말할 수 있답니다. 저한테 어머니는 종교며 교주이고 저는 어머니의 신도인 셈입니다.

논리와 감정의 비약이라고요? 아닙니다. 천국은 어머니 품 속 같다고 하잖습니까. 생각해 보세요. 어머니가 없는 세상을요. 아마, 지옥과 다를 바 없을 거예요. 더욱이 제 어머니는 그분을 향한 믿음과 자녀들을 통한 소망과 먼저 세상을 등진 아버지를 향한 불꽃 사랑으로 광폭하고 험악한 세월을 이겨냈거든요. 또 있습니다. 어머니에겐 살았고 운동력 있다는 그분의 말씀이 생명이었습니다. 67년도 발행 성경책이 남편이었고 가장이었고 울타리였던 셈입니다. 어머니의 연작시를 쓰다 얼마 전에 건져 올린 시 한편입니다. 

잦은 이사 뒤에 달랑 남은
어머니의 몇 가지 살림살이
그 중 제일은 까만 표지의
퀴퀴한 냄새가 숨어 있는 한 권의 성경책
손때 묻은 그 성경책이 지금 내 책상에 놓여있다

풍파 많은 세상, 바람 잘날 없던 살림
젊은 아낙의 후견인 되고 비밀 창고였던 성경책
페이지마다 한 여인의 기도와 간구가 스며있다
어머니의 둘도 없는 친구였다가
여섯 형제의 밝은 미래로 자리 잡고 있는 성경책

서울 가셔서 허드렛일 하다
사망의 골짜기 벗어나는 탈출구가 있단
솔깃한 얘기 듣고선
한 달 생활비 털어 마련한 성경책
그 성경책은 어머니와 희로애락을 함께 해 왔다

나는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어머니의 성경책을 읽으면서
믿음에 굵게 밑줄 긋는다, 부활의 소망 사재기 한다
구절마다 페이지마다 한 여인의 눈물이
피 끓은 기도가 생명으로 열매 맺은 성경책

나는 지금 어머니의 그 성경책을 읽어나가다
두 아들 위한 재형저축 다짐해본다
세상이 줄 수 있는 유산은 없어도
어머니의 성경책이 데려다 준 만복을 물려주고자
묵상하고 기도하는 아버지가 되어간다

어머니의 성경책, 1967년 11월 20일 6판
대한성서공회 발행 세로판
「관주 성경전서」는 대를 이어갈 우리 가문의 유산
하늘의 보화를 캐낼 귀중한 보물이다
아들 손자 증손자 대를 이어서
 
 -어머니의 성경책; 미발표-

신문 보도에 따르면 어머니로서 살기 좋은 나라를 평가한 순위로 우리나라가 세계 158개국 가운데 50위에 머물렀다고 합니다. 국제아동권리기관인 `세이브더칠드런'은 `2009년 어머니 보고서'를 통해 `어머니가 되기 좋은 나라' 순위에서 한국이 50위를 기록했다고 밝혔습니다. 그간 단체는 2000년부터 세계 각국을 대상으로 의료와 경제수준, 영아사망률, 여성의 평균수명과 교육수준 등 각종 지표를 토대로 여성과 아이들이 얼마나 살기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는지를 평가하는 `어머니 보고서'를 발표해 왔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여성의 출산 사망률은 6천100명 중 1명이며, 의료전문가에 의한 출산율은 100%, 피임도구 사용률은 67%로 나타났습니다. 또 한국 여성의 평균 수명은 82세, 여성의 평균 교육기간은 15년, 여성의 정치적 참여율은 14%로 나타났습니다. 여기서 눈길을 사로잡는 순위가 세계 158개국 가운데 50위에 머문 ‘어머니가 되기 좋은 나라’ 순위입니다. 너무도 열악하다 못해 버거운 어머니 노릇이라 볼 수 있습니다. 비단 우리나라 어머니뿐이겠습니까? 세상의 모든 어머니 노릇이 땀과 눈물과 피의 희생을 요구합니다.

오죽했으면 성경은 축복을 약속하며 효도를 강조하고 있을까요?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장수는 효도로부터 비롯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만큼 부모 노릇이 힘들고 어렵기에 하늘의 명령으로 지켜야 하며 그 명령에 신실했을 때 상급 또한 크다는 것입니다. 참, 부모가 되고나니 報恩(보은)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더라고요. 조금 철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럼, 지금 형편에서 부모님에 대한 최선의 효도는 무엇일까요? 필시, 모세가 경험한 노년의 삶을 위한 기도가 아니겠어요.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신28:7- 벗님들! 부모님을 위해 기도드리자고요. 노년을 위해 기도해보자고요. 우리의 부모님은 여태 기도해 오셨습니다. 그 결과 대한민국이 존재하고 우리가 살아있는 것입니다. 특히, 어머니의 기도가 있는 가정은 망하지 않습니다. 기도해준 어머니가 계신 자녀의 삶은 반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어머니. 아니, 어머니의 기도. 어머니의 기도 속에 축복의 열쇠가 숨어 있습니다. 입 속의 혀와 같은 이름, 가슴에 맺혀 지워지지 않을 애달픈 이름 어머니. 아, 어머니! 오늘은 모처럼 금쪽같은 이 땅의 자녀들이 당신을 위해 기도합니다. ‘당신이 건강하고 오래 사시는 것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구하지 않겠습니다.’

윤영배 위원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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