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국사회는 복지국가 담론은 많은데, 실제는 ‘복지부재’의 덫에 걸려있다. 2007년도 국가예산 중 복지관련지출은 국민총생산의 6%를 약간 웃돈다. 이는 서유럽 복지선진국의 1/5을 넘지 못하는 수치이며 OECD 꼴찌를 기록하고 있고 제 3세계의 평균수준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실업급여의 소득 대체율은 선진국의 1/4정도인 20%조차 밑돈다. 극빈층을 대상으로 한 공공부조의 규모는 특히 저급해서, 복지 선진국의 1/10수준이다. 국가복지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차상위 계층의 비율은 남한 총인구의 거의 10%에 달한다.

한 사회의 발전 혹은 성숙정도를 가르는 기준은 그 사회의 가장 취약한 계층이 어떻게 취급되는지(혹은 대우 받고 있는지)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이 규준점을 받아들인다면, 분명 우리는 아직 야만 사회에 살고 있다. 잔여적 복지 국가인 우리나라는 현재 약자에 대한 복지의 일차적 책임을 국가 이전에 가족이나 시민 사회가 떠안는다.

이웃사랑을 황금률로 여기는 기독교는 복지와 결코 무관한 종교가 아니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회복지국가의 형성에 있어 중요한 원리인 ‘연대’라는 가치와 기독교에서 말하는 이웃사랑은 그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이다. 지나온 서구의 기독교 역사는 그러한 이웃사랑의 실천을 디아코니아라는 이름으로 이어온 영향사라 할 수 있다. 특히 오늘날 서유럽, 북유럽의 사회국가라는 사회체제는 개신교의 디아코니아실천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한국기독교는 어떠한가? 근래에 디아코니아, 섬김이란 운동이 붐을 일으키고 있다. 정치지도자나 교회지도자 그리고 신학자들의 주제가 요즘처럼 섬김과 많은 연관을 가지고 있던 적은 없을 듯하다. 하지만 이러한 섬김이라는 용어의 사용은 ‘섬김에 대한 신학적 이해의 부재’로 여러 혼란이 가중되는 상황에 있다. 하여 말로는 섬긴다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지배하거나, 엉뚱한 대상(?)을 섬기는 일들이 우리앞에 전개되고 있다. 한국 기독교인들과 교회가 세계역사상 가장 급성장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이웃사랑을 실천하면서 연대를 통한 복지국가형성에는 그리 좋은 영향을 가져오지 못했다는 사실은 우리의 복지현실을 지켜보면서 확인되는 사안이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섬김이라는 운동이 선교의 방편으로 이용된다든지, 우리안의 욕심을 극대화하는 우리안의 잔치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1992년 로마의 발덴저 신학교의 저명한 교수인 파오로 리카가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디아코니아학연구소에서 자신의 디아코니아에 대한 이해를 피력한 적이 있다. 그의 강연은 참여한 이들로 하여금 아주 긴장케하고 아주 도발적이었다. 그 내용은 다음의 세가지로 압축된다:

1) 교회의 계시의 장으로서 디아코니아. 리카는 “교회는 디아코니아이다”라는 테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디아코니아는 교회의 존재이다. 교회의 현실성은 교회가 디아코니아적 교회일 때 아주 분명하게 드러난다. 예수는 자신을 시중드는 이, 디아콘(눅22,27)이라 명명한다. 하지만 제자들은 지속적으로 예수를 주님, 선생님, 주인님으로 명명하고자 한다. 당시 제자들과 교회는 자신들의 교회가 단지 디아콘의 교회로 존재한다는 것에 대하여 부끄러워했다는 사실이 명백하다. 때문에 그들은 예수를 전능한 지배자(Pantokrator)로 문서화했고 전체 계시를 날조했다. 또한 교회의 직제신학은 그리스도의 예언자적, 제사장적, 왕적 직제라는 세 가지 직제로 발전되어 나갔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교회가 디아코니아적인 교회가 아니라 지배에 의해 구축되는 교회로 남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고백안에 역설적으로 “사랑”이나 “디아코니아”가 빠져있다는 사실은 흥미로운 일이다.

2) 교회의 유혹의 장으로서 디아코니아. 디아코니아는 섬김을 권력으로 바꾸려는 유혹에 놓여있다. 섬김을 통하여 당신은 지배할 수 있다. 또한 당신은 섬김을 통하여 부자유 할 수 있다. 섬기는 이는 동시에 포로가 될 수있다. “인간에 대한 가장 고결한 섬김은 자유한 가운데 섬기는 것이다.” 예수는 디아코니아와 권력사이의 유혹을 극복했다. 자유하지 못한 가운데 섬김을 도용하는 이들의 특이한 모습은 디아코니아를 선교의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사실이다. “디아코니아를 인간에 대한 섬김이 아니라 선교의 역할로 이해한다면, 이 둘은 썩게 마련이다.” 어떤 다른 것에 도달하고자 하기위한 섬김은 바로 사탄의 고안물일 뿐이다. 유혹의 세 번째 형태로 리카는 국가로 하여금 그 자신의 디아코니아적 책임을 방기하게 하는 경향을 지적하고 있다. 오늘날 국가의 사회적 역할은 무엇인가?

3) “디아코니아는 가장 소외된 이웃에게로 향한다”고 리카는 진술한다. 예수가 나병환자를 가장 소외된 이웃의 전형으로 내세우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가장 소외된 이웃이 디아코니아의 목적이다. 여기에 두 가지 입장을 언급할 수 있다: 모든 사회는 그들 나름대로 특별한 나병환자들이 있다. 이들을 찾아내어 우선적으로 관심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리카의 테제는 여러 면에서 디트리히 본훼퍼의 “교회의 미래”에 관한 평가서와 커다란 연관이 있다. 1944년 8월 테겔의 감옥에서 작성된 이 문서는 현재의 그리스도교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요구하고 있고 교리적이고 신앙고백에 경도된 신앙의 입장들로부터 단절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본훼퍼는 예수가 타자를 위해서만 존재하였다고 본다. 또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타자를 위한 존재안에서 새로운 삶으로 이끌어지고, 그 안에서 예수의 존재에 참여하는 것이기에 교회는 “타자를 위한 존재”이다.

세 번째 장에서 본훼퍼는 다음의 결론을 도출한다: “교회는 타자를 위한 교회일 때에만 교회이다. 이를 시작하기 위해서 교회는 모든 소유를 곤경에 처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 목사는 오직 교회의 자율적인 헌물을 통해서만 살아가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 목사는 세상의 직업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교회는 인간적이고 공동체적인 삶의 세상적인 과제에 참여해야 한다. 하지만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돕고 섬기면서 참여해야 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 또한 ‘타자를 위한 존재’가 무엇인지에 대해 모든 이들에게 말해야 한다.”

얼마 전, 강의를 위해 새벽에 일어나 유성가는 아침 첫차에 오른 적이 있다.  옆에 자리한 두 여자가 구슬프고 서러운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전화하는 대화의 내용을 미루어 누군가 자살한 것이다. 급히 연락을 받고 첫차에 오른 것이다. 전화 온 이에게 아이들에게는 사고사라 말했단다. 유성에 도착하기 전까지 마음이 혼돈스러웠다. 현재 한국의 45세부터 59세까지의 남성 중 5명중 1명이 우울증으로 시달리고 있고 그중 3분의 2가 자살을 생각하고 있다는 기사를 읽은 지 오래되지 않았다. 도대체 한국사회는 어디로 가는 것인가? 끝없는 추락을 인식할 새도 없이 그저 바쁜 일상만이 우리들을 내 몰고 가는 것 아닌가? 서로 보듬어주고 연대하려는 마음들의 결핍이 오늘의 기막힌 현실을 결과한 게 아닌가?

시중드는 자로 오신 예수는 전적으로 타자를 위한 존재였다. 그러한 예수의 존재에 참여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타자, 이웃을 위해 전적으로 존재하는 교회는 어떠한 교회인가? 일그러진 얼굴로 오늘도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절망과 무력감속에서 바닥으로 내몰림 시대의 희생자들에게 섬김의 교회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차가 도착할 무렵, 안개걷히고 아침햇살이 오른다. 아주 육중한 교회건물이 여기 저기 보인다. 전도와 선교의 현란한 프랭카드가 보이고 그 사이로 아까 옆자리에 타고온 두 여자들이 바삐 어디론가 사라진다. 

홍주민 위원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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