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斑指)는 몸 가운데서도 특히 손을 치장하는 장신구이면서 또한 일치를 상징한다. 귀걸이, 목걸이, 팔찌, 행운의 열쇠, 반지 등의 장신구 중에서 유독 반지만이 맹세나 계약의식의 징표로 오늘날까지고 이어지고 있다. 

중년 이상의 나이에 접어들고 시골이 고향인 분들의 아련한 추억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친구들과 토끼풀 꽃을 뜯어 예쁜 반지나 손목시계를 만들어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상대방의 손가락이나 손목에 매듭을 짓고서 미래에 함께 살 것을 언약한(?) 놀이의 일화가 없는 분은 드물 것이다.

최근 몇 년간 영국 작가 톨킨의 동명 소설인 『반지의 제왕』이 애니매이션 영화로 제작되면서 원작은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영화는 전세계인들로부터 많은 이목을 받은 바 있다. 게다가 이미 온라인 게임 시장에서도 이에 대한 열풍은 대단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 내용은 악의 군주 사우론과 호빗족의 평범한 영웅 프로드 배긴스, 그리고 엘프, 인간, 드워프 족들 사이에 신비로운 반지를 놓고 대결을 벌이는 작품이다.

우리네 고전 작품 가운데 『춘향전』의 삽입 소재로 등장하는 옥지환(玉指環)의 교환, 즉 신물(信物) 교환 모티프는 두 남녀가 사랑하다 잠시 이별하지만 이후 남녀의 만남을 이어주는 표상임에는 틀림없다. 또한 김부식의 『삼국사기』 열전에 나오는 수기설화(手記說話)의 주인공인 가실과 설씨의 파경설화(破鏡說話)도 이와 흡사하다.

조선 후기 3대 야담집 중 하나인 이원명(李源命; 1807~1887)의 『동야휘집(東野彙輯)』에 실려 있는 홍섬(洪暹; 1504~1685)의 일화와 조위(曹偉; 1454~1503) 등의 일화는 바로 이 옥지환 모티프와 관련된 설화이다.

서양에서 반지를 끼기 시작한 것은 고대 이집트 때부터이며, 금 · 은 외에도 조개껍질이나 옥(자수정) 등으로 만들어 사용했다. 보석류의 절정기는 15-16세기로 이 시기에는 남녀간에 반지가 유행했으나 이후로는 장식용으로 주로 여성이 착용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반지는 '원'의 상징으로, 영원성을 나타내는 이집트 상형문자도 일종의 반지로 알려졌으며, 하나의 끈을 맺어서 매듭을 만들어 고리 모양의 형태를 띠고 있다. 고대 근동에서 마법의 반지는 인간의 질병이나 재앙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그리스에서 반지를 끼는 것은 자유 신분의 남자에게만 허락된 특권이었고, 로마에서 반지는 그 지위를 나타내는 징표의 하나였는데, 원로원 의원은 금, 일반 귀족은 은, 노예는 철로 만들어진 반지를 끼었다.

약혼식이나 결혼식에서 예비 신랑과 신부가 반지를 상대방에게 끼어주는 관습은 중세 유대인들의 관습에서 비롯된 것인데, 그것이 기독교의 예배의 관행이 되면서 점차 전세계로 확산되었다 한다. 이때 결혼반지는 정절의 징표, 진실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서양 중세에 반지는 또한 대관식에서 왕과 그 나라의 결합을 나타내며, 카톨릭 사제의 품위의 상징이었고 신앙의 모범을 보여주는 징표로 9세기 무렵에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한다. 또한 인장(印章)이 딸린 반지나 봉인된 인장이 딸린 반지는 접촉해서는 안 되는 불가침의 의미와 존경 대상의 징표로 여겨졌다.

성서에 등장하는 반지의 징표를 살펴보자. 창세기 41장 41~42절에서 “바로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로 애굽 온 땅을 총리하게 하노라 하고 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사슬을 목에 걸고”라고 한 대목은 이집트의 국왕 바로가 요셉에게 총리대신의 전권을 위임하는 장면이다. 여기서 바로는 옥새 반지를 요셉의 손가락에 끼워주고 고운 모시 옷을 입히며, 이어 목에 금목걸이를 걸어준다.

또한 에스더 3장 10절 “왕이 반지를 손에서 빼어 유다인의 대적 곧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에게 주며”의 구절은 페르시아 국왕 아하수에로가 그의 심복인 하만에게 유다인 박해의 전권을 위임하는 자리에서 그 표시로서 왕이 끼고 있던 반지를 하만에게 넘겨주는 장면이다.

신약 누가복음 15장 22절에서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고 한 구절은 돌아온 탕자의 비유로, 유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아들을 위해 아버지는 비천한 신분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좋은 옷과 금반지, 새신을 신게 하여 본래 부자간의 자리를 회복하게 했다.

야고보서 2장 2절에서도 “만일 너희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더러운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는 금반지를 낀 사람이 부자라는 사실을 나타내며, 성도는 대인 관계에서 사회적 신분 · 경제적 능력 등 외모에 근거해서 판단하거나 편애, 차별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다.

오늘날 반지는 과거처럼 특정 부류의 전유물만은 아닌 것 같다. 아기 돌잔치, 어른 생신, 약혼, 결혼, 졸업, 정년퇴임, 등 각종 경사에 관련된 반지는 물론, 여러 종교를 상징하는 반지를 끼고 다니는 분들을 오가는 길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이렇게 반지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남녀의 결연을 맺어주는 신물이기도 하지만 각종 의식에서 사람들과의 약속이나 일치를 이행하는 징표의 하나였던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반지의 형태나 모양은 제각기 다를 수도 있겠지만 그 반지가 가지고 있는 맑은 영(靈)의 의미를 되새겨 보아야야 할 때가 아닌가?

홍성남(한신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외래교수 / 고전산문전공) 

홍성남 위원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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