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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고 성적의 딸이 왜 공고 갈까?인문고 성적으로 공고를 지원한 딸을 보면서
송상호 기자 | 승인 2009.10.31 15:36

요즘 한창 중3들의 고교진학 상담 및 입학지원 기간이다. 우리 집 딸도 중3. 어디로 갈까 고민하더니 며칠 전 학교에 다녀와서 말한다. 

"아빠, 저 공고갈래요." 

뜬금없다. 3학년이 되면서 진학, 진로, 장래 비전 등의 문제로 딸과 이야기를 나눈 바 있지만, '공고'라는 항목은 없었다. '어느 인문고를 갈까, 아니면 타 지역으로 학교를 갈까'를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는 딸에게 운명적인 만남이 주어졌다. 안성에 있는 고교들이 자신의 학교로 학생을 유치하려고 각 중학교를 향해 선전 작전에 돌입했던 것. 딸은 이 설명회를 듣고 마음을 굳혔단다. 

딸의 결심을 반대하는 다른 과목 교사나 친구들의 반응은 이랬단다. 

"아니 왜 그 성적으로 인문고를 안 가고 공고를 가려고 하니?" 

사실 딸의 내신 성적으로는 충분히 인문고를 가고도 남는 성적이다. 평소 반에서도 항상 상위 그룹에 속해 왔다. "너 완전 천재 아냐. 그렇게 평소 잘 놀면서도 성적이 그 정돈데, 맘 잡고 공부하면 서울대도 거뜬하겠네 그려"라며 우스갯소리를 해오던 터였다. 그런 딸아이가 안성 고교 중 지원 성적으로는 하위 그룹에 속하는 공고를 간다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딸아이가 공고를 지원한다는 사실보다도 지원하는 이유가 더 눈에 띈다. 

"아빠, 사실 제가 죽으라고 공부하는 스타일이 아니잖아요. 제 자신을 잘 알기에 공부를 죽으라고 해야 하는 인문고는 안 가려고요. 그 대신 내가 원하는 걸 가르쳐주는 공고에 가려고요." 

딸아이는 평소 컴퓨터로 디자인, 손 글씨, 포토샵 등을 하며 잘 논다. 또래 친구들에 비해서 컴퓨터에 앉아있는 시간이 많은 편이다(덕분에 항상 컴퓨터 과목은 거의 최고 점수에 가깝도록 받아왔다). 또래 친구들은 학원 가랴 과외 하랴 공부 하랴 바쁘지만, 딸아이는 이 모든 것으로부터 상당히 자유를 누려왔다. 우리 집은 공부든 뭐든 자신이 자율적으로 하게 하는 분위기다. 학원도 딸아이가 원하지 않아 한 번도 보낸 적이 없다. 공부도 시험 기간 동안 바짝 하는 게 고작이다. 평소 숙제 잘 하고 수업시간에 잘 경청한다는 전략으로 딸아이는 해왔다.  

딸아이가 가려고 하는 공고에 웹디자인과가 있는데, 잘 가르쳐 준단다.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컴퓨터와 관련된 곳이어서 가기로 했단다. 거기엔 장학금제도가 잘 되어 있는 것도 선택 요소로 한몫했다고. 자신의 성적으로 장학금을 받아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도 하고, 대학입학금도 직접 마련하겠다는 야무진 계획도 있다. 영어나 수학과목도 필요에 의해서 찬찬히 해나가겠다며 벌써 영어단어를 열심히 외우고 있다. 대학 진학으로 말하면 일류 이류를 따지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과를 소신 있게 지원한 꼴이라고나 할까.  

그 다음날 아내와 나, 그리고 딸 셋이서 가족회의를 했다. 딸아이의 진학 문제를 두고. 아내와 나는 언제나 딸아이의 결정을 존중해왔다. 우리 부부는 "지 인생은 지 인생이다"라는 기본에 충실한 편이다. 자신이 알아서 한다는 것은 그만큼 책임도 뒤따른다는 것을 딸아이에게 가르쳐왔다. 이번에도 약간의 설왕설래는 있었지만, 딸아이의 결정을 기꺼이 따르기로 했다. 

이 사실을 딸아이는 자신의 담임교사에게도 알렸다. 담임교사는 고맙게도 기분 좋게 인정해주었다. 딸아이가 공고를 가려는 이유가 분명하다는 것 외에 평소 딸아이의 자율성과 의견을 존중하는 우리 집의 가풍을 익히 알고 있는 터였다.  

또래 친구들은 시험 준비 하랴 진학 결정하랴 고민 중인데 반해 딸아이는 요즘 '룰루랄라'다. 얼굴에 생기가 돈다. 자신이 가고 싶은 곳을 간다는 것,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에 부모가 전적으로 지지해준다는 것 때문일 게다. 딸아이는 하루 빨리 공고를 가고 싶어 하기까지 한다. 자신이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는 그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는 듯 보인다.  

두 가지 면에서 나는 딸아이의 결정에 찬성을 보낸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자신이 알아서 찾아 간다는 것, 성적에 대한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고 당당하게 공고를 지원한다는 것. 벌써부터 딸아이는 주변에 이끌리지 않는 자신만의 길을 가고자 하고 있다. 자기 주도적인 길을 가려하는 딸아이가 참으로 대견스럽다.

 

송상호 기자  shmh0619@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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