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는 느리고, 호박은 못생겼다?>(김민수 지음, 만우와장공)를 읽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 그들은 신이 얼마나 느리고 무뚝뚝한지, 그러나 얼마나 정답고 가까이 있는 존재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독자들은 김민수 목사의 글과 사진을 보면서 시간의 균열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착각이 아니다. 언제나 같은 진동으로 같은 걸음을 걷는 것 같은 시간의 행보가 놀랍게도 때로 느리거나 멈추고, 때로 돌아보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것은 그저 좋은 사진기에서 생산된 이미지와 맛깔스러운 글솜씨의 예측 가능한 합작 결과가 아니다. 그 순간을 감지하는 눈과 마음, 그리고 속깊은 신앙이 함께 하지 않으면 이같은 시간은 그 사람 앞에서 멈추거나 느리게 걷지 않는다.

<가족>과의 일상에서 만나는 대화와 일화들은 정해진 목표를 달성하는 기능적 협동이나 속도를 느낄 수 없다. 그곳에는 종으로 달리는 현대의 시간이 아니라 횡으로 퍼져가는 '관계'의 따뜻함이 느릿느릿 번져나온다.

일상이 없는 사람은 없다. 가족이든 친구든, 혹은 혼자 살아도 모두에게는 일상이 있다. 그리고 그 일상은 그다지 특별하지 않기에 늘 다가왔다가 흘러가버린다. 그런데 거기서 사랑을 발견하는 사람도 있고 권태에 짓눌리는 사람도 있다. 저자는 가족과의 일상을, 우리와 많이 다를 바 없는 일상을 소개하면서 아주 많은 발견을 내어놓는다. 옥상 텃밭을 가꾸는 저자 어머니의 마음, "느그들 생각하면서 농사짓는다"(97쪽), 이 한 마디가 그 많은 발견을 모두 요약해준다.

흔히 추상적으로 <자연>이라 부르는, 인간 이외의 모든 것들을 보는 일에서 저자의 손과 눈은 좀더 정밀하게 움직인다. 수많은 야생초들, 수선화, 달팽이, 나무, 야생란 등과 바다, 등대, 석양, 하늘 등 모든 것이 그에게는 신으로부터의 편지이면서 그림이 된다.

'자연은 아름답다'고 섣불리 말해버리면 그것으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끝나버린다. 누구나 알고 있는 대상화된 객체일 뿐이다.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다'보다는 낫지만 여전히 사람과 신이 혼재하는 자연이라는 공간에 대해서는 부족하기만 하다.

김민수 목사는 자연을 보면서 그 만남의 공간을 말하는 능력을 가졌다. 느린 자연을 보면서 신이 우리에게 말하는 소리를 좀더 자세히 듣고, 그걸 우리에게도 권유한다. 아니 어쩌면 자연 그대로를 받아들일 수 있는 가능성을 조심스레 묻는다. 사람와 자연이라는 부자연스런 분리 관계를 의심하게 만든다.

<텃밭>은 좀더 적극적으로 자연과 사람이 교류하는 곳이다. 자연을 가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아이들과 텃밭이 서로 씨름하는 모습은 그래서 읽는 이들을 더욱 즐겁게 한다. 시금치와 호박, 감자를 거대 슈퍼마켓 진열대가 아니라 흙에서 보는 그들에 축복이 있으라. 그리고 이 책에서 그 교감의 순간을 엿보게 되는 독자들에게 축복 있으라.

저자 김민수 목사는 <희망우체통>, <내게로 다가온 꽃들>, 그리고 <달팽이 걸음으로 제주를 보다> 등을 내었으며, 제주도 동쪽 끝에 있는 종달교회에서 목회를 하다가 현재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에서 일하고 있다.

그의 사진은 전문가의 그것을 능가하는 탁월한 영상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글이 보조적으로 따라오는 것은 아니다. 글은 오히려 넘기는 책장에서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답게 마음을 적신다.

<가족>, <자연>, 그리고 <텃밭>으로 이루어진 그의 글과 사진은 옳고 그름, 빠름과 느림, 성공과 실패, 내것과 네것, 분노와 행복 사이에서 속절없이 진동하는 현대인들에게 가장 따뜻하고 굼뜬, 그래서 행복한 기회를 제공하리라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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