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사회를 들여다보면 요즘 한국은 거대한 아스피린이 필요한 때라는 생각이 든다. ‘사회의 양극화’라는 어려운 단어를 아무 일에나 적용해 쓰지 않더라도 얼마 전에 있었던 비정규직 법안에 대한 진통이나,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KTX 여승무원들의 파업, 그리고 철도 노조 파업에 따른 지하철 마비 등의 사건들은 그냥 넘기기에는 참으로 큰일들이었다. 제 정신 가지고는 머리 아파서 살기 힘들지 않나 싶다.

특히 작년 말부터 불거지기 시작한 ‘전략적 유연성’에 따른 평택미군기지 확장 문제는 너무 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멀쩡하게 자기 땅에서 살던 분들이 하루아침에 쫓겨나 갈 곳도 없게 만드는 정부는 도대체 어느 나라 국민을 위한 정부인지도 모를 정도로 말이다. 거기에 용역 직원들까지 동원해 나이 드신 분들을 강제로 끌어내려는 시도는 울화가 치민다.

이런저런 말도 말이지만, 평택 문제에 대해 추상적으로 알고 있던 일들을 구체적으로 진행되는 상황도 알게 되면서, 피부로 와 닿는다고 하면 과장일지 모르나, 가슴 한 구석에 부담감을 가지게는 되었다. 문제는 내가 어떻게 느끼는가 하는 문제도 그렇지만 우리 기독교계는 무얼 하고 있을까 하는 분에 넘치는 공명심도 가져본다.

물론 드러나지 않게 조용히 평택의 문제를 위해 기도하는 목사님도 장로님도 계시고, 그곳에 직접 방문해 위로하시는 분들도 계신다. 그리고 대추리 분교를 환수하기 위해 밀고 들어왔을 때 그 자리를 지키며 있었던 몇몇 목사님들도 계셨다. 하지만 왜 이걸 교계가 안고 가지 못할까 하는 생각이다. 이렇게 말하면 당장 제기 되는 반론도 있다.

“그럼 지금 있는 미군은 어디로 가라고 하냐? 오키나와로 가라고 할까? 처음부터 되지도 않는 싸움만 하면 기운 빠진다.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일들도 없는데, 성명서만 내면 뭐하냐?” 등등.

성명서 하나 내는 것도 목숨 걸고 해야 했던 엄혹한 시절이야 그런 목소리 내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었으리라. 하지만 이제는 그런 시대도 아닌데, “성명서 하나 던져 놓고 내 할 일 다 했네!” 하는 것도 정말 염치없는 일이다. 이럴 때마다 생각나는 신학자가 있는데, 본회퍼(D. Bonhoeffer)이다.

철없던 학부시절 본회퍼의 책 하나 들고 세상의 모든 신학을 다 안 것처럼 떠들었던 때도 있었다. 그래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교회는 다 썩었고 예수의 정신을 배반했다고 비판했던 때도 있었다. “술 먹은 미친 운전사가 차를 몰고 인도를 누비며 생명을 빼앗고 있는데, 기도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일인가? 난 그 차에 뛰어들어 그 미친 운전사를 끌어내리겠네!” 그리고 히틀러 암살단에 가담했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비운의 천재 신학자!

세상이 복잡해져서 그럴까? 아니면 정말 생각해야 할 것들이 많은 것일까? “운동은 순수한 사람이 할 수 있다”고 들었다. 그러고 보면 난 순수한 사람은 아니다. 겁도 많고 생각나는 것들도 많다.

오늘도 한 인터넷 신문을 보면서 지난 월요일 평택에 밀고 들어온 용역 직원들과 전경들에 맞서 자신의 몸을 대추리 분교 철조망에 쇠사슬로 묶고 지켜낸 사람은 어느 NGO 단체의 운동가이자 자녀를 둔 젊고 연약한 한 어머니였다.

난 그렇게 할 수 없으면서,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지 모른다. 그것도 아주 못돼 먹은 꿈 말이다. 그것도 기독교 우월주의자라는 욕도 들을 그런 꿈 말이다. 그런 사람이 모두 기독교인이었으면 하는 꿈 말이다!

이정훈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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