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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총련 수배자 이영훈과의 대화
이정훈 기자 | 승인 2005.07.30 00:00

한총련 정치 수배자 중의 한 명인 이영훈 군을 만나 인터뷰를 하기 위해 종로 5가에 있는 기독교 회관을 찾아갔다. 이영훈 군은 한신대 신학과 96학번으로 지난 2003년도에 한총련 임원 활동을 하다가 정치 수배자가 되어 현재 수배 3년차라고 한다. 지난 7월 26일(화)부터 기독교 회관에 위치해 있는 NCCK 산하 인권위원회에서 무기한 농성 중에 있었다.

   

▲ 모의 감옥에서 세상과의 단절을 보여주고 있는 한총련 정치 수배자 학생들.

기자가 찾아갔을 때는 기독교 회관 앞마당에 마련된 모의 감옥을 통해 한총련 정치 수배자들이 겪고 있는 세상과의 단절된 상황을 보여주고 있었다. 기자의 지인을 통해 소개받은 터라 약간은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그들이 농성을 하면서 생활하고 있는 EYC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특별히 기독교 단체인 NCCK를 찾아오게 된 동기가 있는가? 일반적으로 알려지기로는 한총련 하면 종교와는 무관한 단체로 인식되고 있는 상황에서?

농성을 하기로 결정하고 장소를 물색했다. 그리고 우리를 보호해 줄 단체도 필요했다. 그러던 차에 그동안 알고 지내던 분들이 계시는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무기한 농성을 하고 있는데 단식도 함께 하고 있는가?

단식은 아니고 무기한 농성을 하고 있는 중이다. 한 가지 고마운 것은 여러분들이 격려해주시고 찾아주셔서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

한총련은 더 이상 이적 단체일 수 없다!

   

▲ 농성을 하고 있는 한신대 신학과 96학번 출신의 이영훈 군.

한총련을 이적 단체에서 해제하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내가 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96년이었다. 그 당시 한총련은 4기가 출범했다. 나는 2003년도에 한총련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그 동안 운동을 해 오면서 여러 가지를 느꼈고, 한총련 내부에서도 이적 단체 해제를 위해서 많은 토론을 거쳤다.

이에는 두 가지 정도의 이유가 있는데, 첫째는 이적 규정으로 인한 피해가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운동의 자체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에서이다. 아직까지도 수배자 생활을 하고 있는 학생들이 48명인데, 얼마 전에 다른 곳에서 인터뷰를 하던 동지 한 명이 구속되어 지금은 47명이 수배자 생활을 하고 있다.

짧게는 2~3년에서 길게는 8년까지 수배자 생활을 하고 있는 동지들도 있다. 이들의 삶이 너무 힘들고 어려운 처지에 있다. 그리고 한총련 13기 의장이 얼마 전에 방북을 했다. 명분상으로는 한 대학의 총학생회장으로 간 것이지만, 그는 분명 한총련 의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 한총련의 이적 단체 규정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러한 것을 생각해 볼 때 이적 해제를 위해 농성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한총련의 이적 규정이 해제되면 남측 통일운동 선봉에 있던 한총련의 운동 방향이 느슨해 질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떤가?

그럴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난 이러한 운동도 하나의 생명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자라고 고민하면서 더 나은 발전 방향을 잡아가는 것이 더 좋으리라 생각한다.

수배자 생활이나 무기한 농성을 하면서 힘든 점은 어떤 것인가?

수배 때는 집에 갈 수 없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개인적으로 조부모님과 살고 있었는데 많이 그리웠다. 무기한 농성을 할 때, 기자들이 찾아와 인터뷰를 하게 되면 그 때마다 묻혀있던 감정을 올라와 눈물도 많이 흘렸는데, 지금은 나의 감정을 많이 추스릴 수 있게 되었다.

한총련에게 가장 시급한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한총련에게 덧씌여져 있는 선입견의 타파가 제일 시급하게 생각된다. 정말 제대로 된 운동도 해 보기 전에 규정되어 버리는 모습이 가장 안타깝다.


본회퍼와 욥을 좋아한다!

개인적으로 영향을 받은 성서의 인물이나 신학자는 누구인가?

신학자는 본회퍼를 좋아한다. 잘 알거나 책을 많이 읽은 것은 아니지만 학교에서 배우며 존경하게 되었다. 성서의 인물로는 욥을 좋아한다. 대학에 입학하게 될 때 부모님께서 돌아가시고 여러 가지로 어려운 점들이 많았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어려울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그러면서 참 나와 많이 닮았구나 하는 생각들이 들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좋아하게 되었다. 

어떤 개인적인 계기로 한총련에 가입해서 운동을 하게 되었나?

나의 부모님은 교회를 다니시지 않았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의 교회에서 자랐다. 우리 교회에 이미 많은 분들이 사회 운동에 참여하고 계셨다. 자발적인 참여는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그런 주위의 모습을 보면서 자랐다. 그래서 특별히 운동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참여하게 되었다.

운동을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어떤 것이었나?

방금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내 개인적인 주위의 상황들이 너무 어려워서 이런 데도 계속 운동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이런 운동을 할 자격이나 있는가 하는 자괴감도 많이 들었다. 그러다가 96년 3월 27일 신혜숙 철거민 집회에 가게 되었다. 깡패들을 동원해서 집을 태웠던 사건이었다. 그곳에 가서 보니 그 분의 자녀들이 학교를 가야하는데 모두 불타버린 상황에서 가방없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너무 안타까웠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운동을 계속해야 한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가? 목회를 할 생각인가?

운동한다고 이수하지 못한 학점들이 남아있다. 학교로 돌아가게 되면 학점도 이수해서 일단 졸업을 하고 싶다. 그리고 신학대학원도 갈 것이다. 그리고 기회가 계속되면 목회도 할 생각이다. 

무더운 여름인데 건강하게 잘 하기 바란다.

관심을 가져줘서 고맙다.

아픔이 하나 벗겨지는 8월이 되기를...

이영훈 군을 인터뷰 한 기자의 느낌은 이들의 순수함이 한반도의 통일 운동에 밑거름이 되고 있음을 느꼈다. 나이는 기자보다 한참이나 어리지만 대견스러웠다. 이번 8.15가 되면 이들의 농성이 가시적인 결과를 갖게 될 것이다.

   

▲ 한총련 정치 수배자들을 격려하기 위해 찾아 온 생명선교연대 목사님들과의 대화.

이영훈 군과 인터뷰 하는 도중에 채수일 한신대신학전문대학원 원장님이, 인터뷰 후에는 최의팔 공동대표를 비롯한 생명선교연대 목사님들과 여러 인사들이 찾아와 격려하기도 했다.  

바라기는 이들의 아픔과 아니 이 땅의 아픔이 하나 정도 벗겨지는 8월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정훈 기자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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