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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어찌 국가라고 할 수 있느냐?”[인터뷰] 국치100년 공동대표 이해학 목사
김민수 위원 | 승인 2010.08.13 15:50

   
 이해학 목사  (사진: 에큐메니안)
2010년은 일본제국주의가 우리나라를 강제로 병합한 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1910년 8월 29일, 일제에 병합되는 국가적·민족적 치욕을 당했기에 ‘국치(國恥)’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후 민중의 삶은 침략자들에 의해 농락당하고, 최소한의 권리마저 박탈당한 채 식민지 노예의 삶을 강요당했다. 1945년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로 일본이 항복함으로 그해 8월 15일 해방을 맞이했지만, 아직도 우리나라는 친일파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외세의 간섭 속에서 민족최대의 비극인 한국전쟁을 겪었다. 최근 천안함 사건이후 남북관계가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면서 분단 상황이 우리 민족에게 얼마나 큰 비극인지 우리는 극명하게 피부로 느끼고 있는 중이다.

8월 4일(수), 8월 5일부터 10일간 국치100년을 맞아 일본 역사탐방을 준비하고 있는 ‘국치100년 공동대표’이자 ‘야스쿠니 반대 공동대표’ 이해학 목사(주민교회)를 만나 ‘강제병합100년’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김민수 : 8월 5일부터 10일간 일본 역사여행을 떠나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국치100년 혹은 강제병합100년을 맞이하여 일본 역사탐방을 준비하신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이해학 : 부산에서 배를 타고 우리 조상이 일제에 의해서 끌려가던 길을 더듬어 학살의 현장을 돌아보고자 합니다. 40여 명이 함께 이 여행을 함께 하는데 여행이라기 보다는 ‘우리를 찾아가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김민수 : 인권위에서 활동하시다가 2008년 ‘국치100년 공동대표’로 활동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계

   
기는 무엇이었는지요?
이해학 : 2010년은 일본제국주의가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병합한지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1876년 강화도조약을 필두로 일본은 우리의 자주적 근대국가 건설을 위한 노력을 무력으로 짓밟았습니다. 마침내 1910년 8월 22일 강제로 ‘한일합병조약’을 체결하고 8월 29일 한일합병조약문을 공표하면서 한반도는 완전히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일본이 아시아와 태평양지역을 침략하면서 자국의 국민(일본인)은 물론이요 조선인마져 침략전쟁의 총알받이로 내몰았습니다. 내선일체, 동조동근, 황국신민 등을 내걸고 언어와 문자의 사용금지와 동방요배, 신사참배, 창씨개명을 강요하여 민족의 정체성을 말살하고, 한반도의 자원과 물자를 약탈했습니다. 징병, 징용, 정신대 등의 명목으로 수백만 명의 한국인을 전쟁 도구로 강제동원 했습니다.


김민수 : 1945년 패망 뒤 오늘날까지도 일본은 과거 식민지배의 범죄행위를 부인하고, 침략의 역사를 옹호하며, 우익 세력을 중심으로 역사교과서를 왜곡하고, 독도영유권을 주장할 뿐 아니라 최근에는 평화헌법9조까지 폐지를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해학 : 문제는 일본 사회뿐 아니라 한국 사회 또한 일제 식민지의 과거청산이 일소되지 않고 그 상처와 후유증이 더 커지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민족 최대의 비극이라 할 분단 역시도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 지배에 근본원인이 있습니다.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에 따른 정신적 피해와 물적 피해가 심대하지만, 그 실상 조차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은 우리 내부에서도 일제 식민지 지배 덕분에 문명개화가 이뤄졌다는 식민지사관이 부활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김민수 :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일들, 예를 들면 친일파 후손들이 자신들의 땅을 되찾겠다는 소송 같은 것들이 스스럼없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결과, 지금까지도 친일을 했던 가계를 중심으로 한 이들이 소위 이 나라의 지도층에 포진하여 과거를 정확하게 정리하지 못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강제병합100년 공동행동의 출범의의에 대해서 설명해 주십시오.
이해학 : 지금도 동아시아는 과거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의 역사를 둘러싼 갈등을 반복하면서 극복하질 못하고 있습니다.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 전쟁의 역사적 청산과 재발방지를 위한 노력이 결실을 맺어야 합니다. 죽은 과거가 살아있는 현실과 앞으로 살아야할 미래의 발목을 잡고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본은 물론 아시아 각국의 시민들과 연대하여 비극으로 점철된 20세기, 제국주의와 식민지 그리고 전쟁이라는 역사의 실상을 직시하고, 식민지 과거사를 청산함으로써 21세기 주역인 후손에게 평화와 공존의 살아있는 동아시아사회를 물려줄 의무감에서 출범을 했습니다.


김민수 : 이번 일본 역사탐방의 경우에도 일본 시민단체와 연계해서 진행된다고 들었습니다. 양국을 오가며 다양한 활동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난 겨울에는 ‘평화헌법9조’와 관련된 일본시민단체가 한국을 방문해서 일본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는 정신대할머니들을 지지방문해서 무릎을 꿇고 사죄를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감정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사죄와 용서는 이런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국실행위원회와 일본실행위원회가 공동으로 하시고자 하는 일들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이해학 : 크게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나라의 근대가 식민지로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규명하고, 반성할 것입니다. 동시에 일제 식민지배의 폐해와 청산되지 않은 식민지 과거사의 실상을 알리고 식민지 과거청산이 동아시아 평화의 출발점이라는 것을 적극적으로 홍보할 것입니다. 둘째,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피해실태를 밝히고, 피해를 회복하기 위한 정치적, 법적인 조치를 튀하도록 일본정부에 요구할 것입니다. 셋째, 한일 시민사회가 연대해  시민공동성명을 채택하고 그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8월 22일에는 일본에서 공동성명서를 발표할 예정이고, 8월 29일 국치일(강제병합)에는 서울(오후 2시 서강대)에서 발표할 예정입니다.


김민수 : 오늘 뉴스에 8월 15일, 일본 정부차원에서 자신들의 입장을 밝히겠다고 합니다. 크게 기대는 하지 않지만, 일본 정부차원에서도 과거사를 정리하려는 움직임들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 정부에는 어떤 움직임이 있는지요?
이해학 : 우리 정부는 이런 운동과 활동에 대해 일체의 지원과 협력이 없습니다. 참으로 답답한 일이지요. 그럼에도 국민들 역시도 우리 정부에 이런 요구를 강력하게 하질 않습니다. 강제합병 이후 일제시대, 해방이후 좌우의 이념대립과 한국전쟁, 분단의 고착화, 광주민주화운동 등의 과정을 보면 청산되지 않은 과거가 얼마나 큰 아픔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단지 일본과의 관계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경우에는 미국과도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강제병합의 과정, 분단의 과정, 광주민주화운동 등 일련의 역사적인 사건에 미국이 깊이 개입되어 있습니다. 물론, 긍정적인 측면을 다 무시하자는 것은 아닙니다만, 결국 우리 나라를 대하는 미국의 입장은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수단인 것입니다.


김민수 : 최근 미국이 이란을 압박하는 과정에서 한국이 끌려갈 수밖에 없는 상황도 결국 같은 맥락에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본 시민사회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을 보면 그 열정이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국치100년 워크숍을 하면서 교류가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이해학 : 지난해(2009년) 일본인으로서 강제동원진상규명 단체를 이끌어온 후꾸도에 선생이 한 말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강제동원과 관동진제부터 태평양전쟁 기간 내내 계속된 한국인에 대한 학살과 인권유린이 있어왔는데 한국정부는 어떻게 일본정부를 향해 한마디도 못하는가, 그것이 어찌 국가라고 할 수 있느냐고 눈을 부라리셨습니다. 그 분은 금년에 이미 고인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제 피해자도 증인도 살라져가고 있습니다. 국가는 국민의 목숨을 책임져야 국가입니다. 지금까지 일본과 외교를 해야 한다고 양보만 일삼는 한국 정보의 외교는 방향전환을 해야 합니다.


김민수 : 목사님은 1973년 긴급조치 1호로 구속수감 된 이후 지금까지 민주화 운동의 선두에서 약한 자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삶을 살아오셨습니다. 여기에는 신앙적인 결단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고 봅니다. 오늘 날 한국은 가히 개신교의 천국이라고 할 만큼 대형교회도 많고 교인들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신앙인으로서의 역사의식은 희박한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서 한 말씀 듣고 싶습니다.
이해학 : 개신교 목사니까 개신교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겠습니다. 신앙인이라면 역사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느껴야 합니다.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이스라엘의 역사, 유목민의 역사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셨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우리의 역사에 하나님이 개입하신다는 인식을 하지는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역사에 개입하신다는 것을 망각하고 오히려 힘 있는 자들의 편이 되어 불의한 현실정치에 동조를 합니다. 끊임없이 약자를 배려하시는 하나님의 모습과는 정 반대의 길을 가는 것이지요. 결국 우상숭배는 물론이요 불의와 타협을 하고 대형교회를 짓고 교인 숫자 늘리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몇 명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인데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지난 6월 25일에도 전쟁광 부시를 평화기도회 강사로 초청한 한국의 대형교회 지도자들이 있습니다. 이번 8월 15일에도 보수대형교회 위주로 대형집회가 열리는데, 거기에 무슨 역사의식 같은 것들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소위 예언자를 거부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지요. 성서의 정신은 힘의 횡포에 고난을 당하는 불쌍한 영혼에게 ‘아, 여기 이웃이 있다!’고 위로해 주는 것입니다. 강제병합100년이 되도록 그 상처를 제대로 감싸지 못한 것은 정부의 책임도 있지만 신앙인들의 문제, 교회의 문제도 있습니다. 작은 교회들이 큰 교회를 회개시키는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김민수 : 오랜 시간 감사합니다. 후꾸도에 선생의 “그것이 어찌 국가라고 할 수 있느냐”는 일갈이 부끄럽습니다. 일본 역사기행 몸 건강히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강제병합 100년,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진실 속에서 고통의 삶을 강요당하는 이들이 있다. 그것은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국가의 삶, 민족공동체의 삶을 지금도 옭아매고 있다. 교과서에도 배우지 못한 아픈 과거들이 산재해 있건만, 분단의 전초가 된 해방을 자축할 줄만 알았지 약소국가가 감내해야할 해방의 의미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해 왔다. 과거를 청산하는 일, 그것은 단순히 추함을 들춰내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굴곡의 역사를 바로잡아 후대들에게 올곧은 나라를 물려주자는 것이다. 이런 일들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나서서 해야 할 일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국가라고 할 수 있는가?

김민수 위원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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