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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장, 한신 그리고 전태일정신전태일을 통해 깨닫는 기장 정신 부활의 필요성
조헌정 목사 | 승인 2010.11.12 16:33

기장, 한신 그리고 전태일정신(요한복음 2장 13-22절)

나뭇잎들은 햇빛이 비추는 한쪽 방향으로 자라납니다. 그래 숲속에서 길을 헤맬 때에 잎사귀의 방향이나 나무테의 모양을 보고 방향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나무가 왜 나는 한 방향으로만 자라는 것일까 하고 좌우의 균형을 맞추어야지 하며 억지로 반대방향으로 자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고 합시다. 과연 그게 가능한 일일까요? 그 나무는 자리를 옮기기 전까지는 그렇게 자라도록 자기 정체성으로 주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숙명이라고 하든 은혜라고 하든지 말입니다.

기장성 혹은 한신의 정신 그게 무엇일까요? 사람에 따라 강조점이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고, 길게는 우리 한반도의 오랜 역사와 문화적 전통, 짧게는 70년간의 외세 침략과 독재 그리고 인간 욕망과 독점 자본이 주도하는 오늘날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에 근거하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반도나 지구라는 조건 안에 결코 제한된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정신은 세계의 지역성을 뛰어넘어 하늘의 절대 진리에 맞닿고자 하는 갈릴리 예수 정신에 맞물려서 생각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목회를 할 사람이라는 전제하에 여러분이 맞닥뜨려야 할 남한의 교회의 미래에 대해 잠깐 언급을 하자면, 한 15년전 만 해도 남한교회의 성장은 남한 인구 4분지 1이라는 세계 역사에 전무후무한 경이적인 기록은 계속 될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렇게 생각하는 목사들은 거의 없습니다. 물론 야베스의 환상에 사로잡혀 봉은사 절내에 들어가 땅밟기를 하는 근본주의자들을 제외하고 말입니다.

그저 기독교가 개독교로 목사가 먹사로 평신도가 병신도로 매도되는 비참한 역사 현실 속에서, 개신교의 미래는 암담하다 못해 처참하기까지 합니다. 적어도 오늘 개신교회의 주류를 이루는 6,70대 이상의 교인들이 사라지는 2,30년 후가 되면 지금 숫자의 반 아니 어쩌면 3분지 1 그 이하로 축소될 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학생시절일 때, 도시 농촌을 막론하고 교회마다 어린이로 가득 찼던 시절을 보면서남한 교회의 밝은 미래를 내다보았듯이, 이는 불을 보듯 뻔한 사실입니다.

엊그제 어느 철학교수를 만나 식사를 하는데, 이렇게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목사님, 요즘은 목사들이 교회에서 성경을 가르치면 쫓겨난다면서요?’ 오늘의 남한 교회의 실상을 그대로 폭로하는 말입니다. 여러분 복음서에 예수님께서 나를 믿으면 부자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나요? 오히려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고, 부자들은 화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어떤 목사가 부자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설교하면 그 자리에 계속 머물러 있을 수 있습니까? 목사가 예수 말씀대로 설교하면 쫓겨나는 현실. 기독교가 개독교로 목사가 먹사로 비웃음을 사는 일보다 더 뼈아픈 지적입니다.

이런 암담한 미래 전망 속에서 제가 오늘 기장정신을 얘기하고 한신정신을 얘기하고 그리고 전태일정신을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여기에 우리의 살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해하는 기장 정신을 대략 다음의 3가지로 정의하고자 합니다.

첫째는 김재준목사님과 뜻을 같이했던 동지들이 품었던 학문과 신앙의 자유 사상입니다. 서구 선교사 특히 미국 선교사들의 보수적인 교리신앙 그리고 한국문화와 전통을 무시하는 오만에 저항하고 자기 주체적인 교회와 교리에 억매이지 않는 비판적 학문을 세우고자 했던 것입니다. 출애굽 4장에서 모세에게 나타나신 하느님, 야웨 아쉐르 야웨. 나는 나다. 이 말은 한마디로 말하면 너의 인간들의 좁은 언어로 편협한 머리로 나를 규정하거나 제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름이 무엇입니까? 라고 묻는 질문에 나는 이름이 없다. 그렇게 답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계속하여 이름을 만들어부치고, 신학이라는 이름하에 계속 규정짓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 그분의 본성은 자유입니다. 스스로 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또한 그분의 형상을 띄었기에 우리 또한 자유의 존재들입니다. 물론 이 자유는 인간욕망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방종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 안에 보여진 진리 안에서의 자유를 말합니다.

두 번째 기장 정신은 송창근목사님에게서 보여지신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영성입니다. 기도의 영성 그러면 우리들은 곧잘 소나무 하나를 뿌리 뽑는 우격다짐이나 혹은 이웃과 단절되는 신비스런 현상을 생각합니다만, 예수께서 보여주신 기도의 영성은 한마디로 말하면 광야에서의 기도처럼 돈과 명예와 권력의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는 영원한 가치의 회복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처럼, 나의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자기 포기입니다.

선배목사님들이 말씀하시기를, 송창근목사님이 살아계셨다면 기장 예장 갈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그분의 깊은 기도의 영성 속에서 나오는 넓은 인품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625의 민족전쟁이 채 끝나기도 전에 교권 싸움으로 인해 기장 예장의 분열을 시작으로 장로교회의 세계 역사상 유래가 없는 수많은 분열이 우리 땅에서 일어났습니다. 남북분단에 못지 않은 우리 민족의 큰 수치입니다. 그런데 그 분열의 원인은 여러 가지를 말할 수 있지만, 가장 직접 원인은 무엇이었습니까?

1952, 53년 조선장로교 총회가 이단 결의를 할 때는 엄격히 말하면 김재준목사를 지지하는 총대 숫자가 더 많았습니다. 그런데 전쟁 중이었기에 작전지역과 여행금지 지역에 있는 총대들은 총회에 참석할 수가 없었고, 이때 미국 선교사들은 미군들의 차를 이용해 지지파 총대들에게만 교통편의를 제공하여 자기 사람을 모집했었고 이 당시 표 대결은 항상 5표가 모자랐는데, 그때 20명 이상의 선교사들의 표만 없었더라도 교회 분열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민족분단이나 교회 분열의 책임을 미국인들에게만 그 책임을 돌려서는 안되겠지만, 그래도 민족분단과 교회분열이 미국인들에 의해 조장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깊이 뉘우쳐야 할 역사적 사건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수치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미FTA 밀실 협상은 말할 것도 없고, 전시작전권 환수 연기 등등. 국력이 성장하면 독립적이 되어야 하는데, 점점 더 모든 부분에서 미국에 예속되어가고 있습니다. 사회의 지도자로 나서는 여러분들이 깊이 성찰하여할 부분입니다.

세 번째로 말하고 싶은 기장 정신은 문익환목사님과 장준하선배님으로 대변되는 역사 변혁의 주체로서의 민중사상입니다. 그런데 이 민중 사상을 발견하는 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신 분이 전태일열사입니다.

1970년대 초 제가 이곳에서 공부하던 시절, 유신독재가 절정에 다다랐던 시기였습니다. 자유를 갈망하는 학생들과 시민들의 요구로 시위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신학강단에서 들려지는 학문의 소리는 어거스틴 바르트 불트만 틸리히 본훼퍼 부버 등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위대한 신학자들이긴 하지만, 모두가 서구사람들입니다. 히브리 노예 탈출과 암픽티오니의 평등공동체 그리고 갈릴리의 오흘로스로 관통되는 성서의 일관된 자유와 해방, 그리고 평등에 관한 민족 주체로서의 학문의 소리는 그리 크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전태일열사의 분신 그리고 사회고발적인 성찰의 글을 접하면서 우리 스승들의 목소리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들이 평생을 걸려 공부하여 왔던 서구신학으로부터 탈출하여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소위 말하는 민중신학의 태동입니다. 안병무 서남동 문동환목사님이 주역을 맡으셨지요. 김재준목사님께서 서구 선교사로부터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위해 조선신학교를 시작한 이래 교권이나 재정에서는 독립을 하였지만, 실은 학문에 있어서는 아직 탈출을 하지 못했던 것인데, 비로소 전태일님의 죽음을 기점으로 완전 탈출을 한 것입니다. 그분의 영향으로 우리는 서구 신학을 공부함에 있어 비판을 통한 동등한 대화를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전태일님은 가정형편으로 12살에 초등학교 2학년으로 입학했다가 그것도 2년만 다니고 4학년 초까지 다닌 것이 학력의 전부입니다. 그런데 그의 삶과 결단은 당시 서구에서 박사라는 학위를 갖고 돌아온 수많은 교수들과 대학생 사회에 큰 소용돌이를 일으켰고, 지금도 천만이 넘는 노동자들과 올곧게 살고자 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신약학자 제임스 로빈슨은 그의 책 Q 복음서에서 주장하기를 예수는 초등학교 교육도 받지 못한 당시로 말하면 백성 대다수에 해당하는 글자를 읽지 못하는 문맹인이었다는 것이지요. 이는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하메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세상 성공의 기준이 학력이 되고 진리 추구의 상아탑인 대학이 직업 학교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만, 글에 의한 지식이라는 것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참 사람, 참 인간이 되는 조건에 학력이 전제되는 것은 아니겠지요.

저는 신학대학생 시절 전태일님의 이름을 듣기는 하였지만, 실제 그의 글을 접한 것은 어느 노동자의 이야기라는 지은이의 이름이 없는 전태일님의 삶을 노래한 조영래변호사님의 책이었습니다.

박사가 되어 고국으로 금의환향 하겠다고 막 유니온 신학교에 입학하였던 때였습니다. 밤을 새워 눈물과 감동으로 그의 삶과 결단을 접한 이후, 저의 삶은 이땅의 소외된 자를 향한 낮은 자의 삶을 살리라고 다짐했고, 지금까지 그의 삶은 저에게 항상 보이지 않는 채찍으로, 십자가로 나타나곤 합니다.

그래 미국에서 목회할 때에도 빨갱이 목사라는 소리를 들어가면서 민주화와 통일 운동에 열심을 내었고, 그런 연유로 향린교회에 부임을 했고, 7년전 부임하면서 전태일동상이 세워지자 그해부터 전태일열사기념주일을 제정하고 그의 뜻을 기리는 주일 설교를 하고 오후에는 온 교우들이 청계천 5가의 그의 동상 곁에 모여 거리기도회로 다시 한번 그의 뜻을 되새겨오곤 했습니다. 그런 인연이 전태일재단 이사장에 이르게 했습니다. 2대 이사장으로 계셨던 문익환목사님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애를 쓸 따름입니다.

올해 40주기를 맞아 여러 기념 행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시청광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시민축제도 가졌었고, 지난 토요일에는 민주노총이 주관하는 ‘오늘의 전태일이 되자’는 구호 아래 수만 명이 모이는 노동자대회 또한 있었습니다. 모든 신문 잡지 방송이 전태일을 다루지 않는 언론이 없습니다. G20이라는 미키마우스 20마리가 찍찍거리는 날에 이어 이번 주 토요일에 전태일다리 명명식과 그의 40주기 추모식이 진행된다는 사실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는 우연이 아닌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서에서 40이란 숫자가 갖는 상징적 의미가 무엇입니까? 노아 홍수 40일 히브리족속들의 광야 40년, 예수의 광야 40일 금식기도 등등 40이란 숫자는 하느님의 역사 개입을 말하는 카이로스의 시간인 것입니다.

성서에서의 기록으로서의 역사 시작이 출애굽 해방인 것은 다 알고 계시겠지요? 애굽제국의 노예로 400년을 살아가야 했던 히브리 족속 혹은 계급들이 야웨 하느님의 인도아래 탈출을 하고 광야 40년동안 훈련을 받습니다. 여기서 그들은 오직 야웨 하느님만이 그들이 섬겨야 할 왕임을 배우게 되고 지켜야 할 계명도 받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거기서 매일 아침 만나와 메추라기를 선물로 받으면서 많이 거둔 자나 적게 거둔 자나 되로 재어보면 똑같아지는 신비를 경험하면서 삽니다.

그리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갑니다. 물론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성서에서 말하는 히브리족은 오늘날의 이스라엘나라가 아닌 팔레스타인이 되겠습니다만, 40이라는 숫자가 상징하는 신앙적 의미는 분명합니다. 그건 힘을 기초로 한 제국의 억압으로부터의 해방과 인간 평등입니다.

예수의 광야 40일 기도. 여기서 예수님은 돈과 명예와 권력에 대한 유혹을 말씀으로 뿌리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40의 신앙적 의미는 무엇입니까? 세상에 억매이지 않는 자유 인간입니다. 세상의 자녀로서가 아닌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인간 자유선언입니다.

전태일열사 40주기.

전태일열사의 책을 유심히 읽어보면 그의 삶과 결단은 모두 야웨 하느님 신앙에 기초한 행동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이소선어머님의 영향 아래 그는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고, 중고등부 학생 회장와 주일학교 반사로 봉사했고, 일 때문에 교회를 나가지 못할 때에는 매우 마음 아파했습니다.

그의 삶에 있어 가장 빛나는 사건 둘이 있습니다. 하나는 풀빵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분신 사건입니다. 그는 자기와 함께 일하는 12,13살 밖에 되지 아니한 여성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을 직시합니다. 연약한 몸으로 하루 15시간 때로는 잠 안오는 주사를 맞아가며 자정이 넘도록 야근까지 해야 하기에 때로 각혈로 피를 통하는 모습, 쥐꼬랑지만한 월급은 오빠 남동생 교육을 위해 시골 집으로 보내고 점심을 굶고 파릿파릿해져가는 저들의 모습을 보고 결딜 수가 없어. 어느 날 돌아가는 버스표를 팔아 1원짜리 풀빵을 사서 나눠줍니다.

그리고 그는 청계천에서부터 도봉산 판자촌까지 거의 3시간을 걸려 걸어갑니다. 그러다 통금에 걸려 파출소에서 잠을 자기 일쑤였고, 그런 때에는 새벽녘에야 겨우 집에 도착해서 눈을 부칠까말까 하다 다시금 일을 나가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런 일을 하루이틀 혹은 한달두달을 하다 그친 것이 아니고 무려 3년 넘게 합니다. 자신만 할뿐만 아니라 함께 일을 다니던 동생에게 강요까지 한 것입니다.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이런 얘기도 있습니다. 저희 교회 집사님 한분이 방송 PD로 3년넘게 전국의 유명하다는 음식점을 찾아다녔습니다. 한번은 청계천에 40년이 넘은 국밥집이 유명하다고 해서 찾아갑니다. 자리도 몇 개 안되고 음식도 별로입니다. 촬영을 포기하였는데, 갑자기 전태일열사 생각이 나서 물어봅니다. 할머님 전태일을 아세요? 그런 아다마다. 여기 자주 와서 바로 그 자리에서 국밥을 먹곤 했지. 때로는 여자 시다들에게 국밥을 사주곤 했지. 자기 것은 시키지 않고 돈이 없는 것을 알기에 하루는 내가 그냥 국밥을 하나 더 주었지. 그런데 그걸 안먹는거야. 그래 그 다음 번에 왔을 때, 뭐라고 했지. 아니 주는 것도 안먹는 바보가 어디 있냐? 그랬더니 싱긋이 웃으면서, ‘아이 어머님, 저는 이미 먹었다고 그랬거든요.’

노동현장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던 마지막 시기에는 어머니에게 돈을 꾸도록 만들어 그 빛이 자신의 월급보다 몇 배나 많았습니다. 이런 자기 살을 깎는 나눔의 희생을 그토록 오랫동안 가능케 했던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이는 단순히 복지시혜 차원의 나눔을 넘어선 인간 사랑, 이는 너와 나는 야웨 하느님 앞에서 한 형제요 자매라는 하느님 신앙에 기초한 인간 사랑, 인류애의 발현이었던 것입니다. 돈이 있어 밥을 사준 것이 아닙니다. 밥은 하늘이기에 돈을 꿔서라도 배고픈 형제를 먹인 것입니다.

분신 사건. 많은 사람들은 쉽게 노동현실을 고발하고 투쟁해온 어느 노동자의 울분에 찬 항거로 말합니다. 그러나 그건 아닙니다. 그가 분신을 결심하기 전 그는 부러 어머님께 강요하다시피 요구하여 삼각산기도원 공사판에 가서 4개월을 머뭅니다. 그가 일할 곳이 없이 기도원에 갔을까요? 아닙니다. 그는 기도하러 간 것입니다. 일을 하러 가겠다는 것은 어머님을 안심시키기 위한 방법이었습니다.

그는 거기서 성서를 읽고 묵상하고 그곳에 있던 목사님과 예수님의 삶과 말씀을 놓고 논쟁을 벌리기도 합니다. 거기서 그는 분명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를 읽고 또 읽고 하였던 것입니다. ‘아버지여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그의 일기에 이런 성서구절이 보입니다. ‘살고자 하는 자 죽을 것이고 죽고자 하는 자 영원히 살 것이다.’

그의 분신은 결코 분노에 찬 순간적인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깊은 고민과 자기 성찰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묵상한 이후에 내린 비장한 신앙적인 결단이었습니다.

이 결단을 두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망설이고 괴로워했던가?
지금 이 시각 완전에 가까운 결단을 내렸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을.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생을 두고 맹세한 내가. 그 많은 시간과 공상 속에서, 내가 돌보지 않으면 아니 될 나약한 생명체들.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조그만 참고 견디어라.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

그는 자신이 사랑했던 어린 여자 노동자들의 곁에 영원토록 남아 있기 위해 죽음을 결단한 것입니다. 영원히 남아 있기 위한 죽음, 그게 부활이 아니고 무엇이 부활이겠습니까? 그것이 모든 이에게 살아 움직이는 오늘의 현실, 그게 바로 문익환목사님과 안병무선생님이 말씀하셨던 민중부활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사랑하는 한신 학도 여러분, 기장의 정신을 되살려야 할 시기입니다. 여러분 앞에는 많은 난관들이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주님 되시는 예수께서는 저 곤고하게 높이 우뚝 선, 차가운 예루살렘 돌담을 향해 외쳤습니다.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사흘만에 다시 세우겠다. 사흘만에 다시 세우시겠다는 성전. 그게 보이는 성전입니까? 아닙니다. 저 예수께서 심혈을 기울려 함께 하고자 했던 갈릴리의 가난한 사람들, 병든 사람들, 마을 밖으로 쫓겨난 죄인들, 저 거리의 외딴 곳으로 내어 몰린 여성들과 어린이들. 해임의 불안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500만의 비정규직 노동자들, 단속의 공포 속에 살아가야 하는 100만이 넘는 이주노동자들, 그들 가운데 이루어지는 자유 평등 생명 평화의 보이지 않는 성전 곧 하느님 나라였습니다.

위기는 기회라고 말들 합니다. 남한교회의 위기입니다. 그러나 이는 기장정신을 갖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한신학도 여러분에게는 새로운 기회입니다. 이 기회를 위해 벅찬 희망을 안고 준비하고 또 준비하십시오. 숫자라는 세상 성공에 매몰되지 마십시오. 저는 요즘 기장 총회를 바라볼 때에 마음이 안타깝습니다. 철 지난 남의 옷을 어떻게 제 몸에 맞춰 볼까 이리 째고 저리 꼬매는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숲 속의 나무는 해가 비추는 한쪽으로 자라도록 방향지어져 있습니다. 그걸 알고 나아가면 그게 자유요 자기 주체성이요 성공이고 은혜입니다.

진리 안에서 자유하십시오. 그리고 승리하십시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삶이 다하는 그날까지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파견사)
친구여 나를 아는 모든 나여.
부탁이 있네. 나를,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영원히 기억해주기 바라네.
그러면 뇌성 번개가 천지를 무너뜨려도, 하늘의 바닥이 빠져도, 나는 두렵지 않을 걸세.
그순간 무엇이 두려워야 한단 말인가?
두려워서야 될 말인가?
도리어 평온해야 될 걸세.
완전한 형태의 안정만을 요구하네.
순간, 그 순간만이 중요한 거야, 그 순간이 지나면 그후론 거짓이 존재하지 않네.
그후론 아주 완성된 백일세. 그 순간은 영원토록 존재하는 거니까 전후는 염려없네.

 

 

한신대학원채플 2010년 11월 9일

조헌정 목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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