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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앙에 요구되는 두 가지 덕성은?[인터뷰]예수 향한 헌신과 타자 향한 개방 강조한 폴 니터 교수
김희헌 편집위원장 | 승인 2011.01.10 17:21

세계적인 신학자 폴 니터 교수(유니온신학교, 폴 틸리히 석좌교수)와  5일 오후 서울 신정동 대한불교조계종 국제선센터 5층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며칠 전 부산 해운정사에서 차분하게 진행될 계획이었던 애초의 인터뷰는 니터 교수의 꽉 찬 일정 때문에 취소되었다. 이날도 니터 교수는 오전부터 또 많은 일정을 소화하느라 분주하셨다. 그래서 필자도 오후 7시 30분에 있을 마지막 <종교 간의 대화모임 : “가슴을 열어 빛을 보다”>를 앞두고 마음이 바빠질 수밖에 없었다.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으며 진행된 이번 행사의 수많은 일정 속에서도, 에큐메니안을 위해서 인터뷰 시간을 배려해 준 불교측 행사주관자께 감사드린다. 니터 교수는 “한국에 온 목적이 많은 사람들과 대화하기 위해서였다”고 말씀하셨다. 출국을 하루 앞 둔 한국에서의 마지막 날 진행된 인터뷰에서 니터 교수는 자신의 신학적 신념과 한국에서 가졌던 경험을 잔잔하게 들려주셨다. 

   
▲ 국내 진보-보수 기독교인의 대화를 제안한 폴 니터 교수. ⓒ <에큐메니안> 신용철

한국엔 몇 번이나 방문하셨나요? 많은 나라들을 다니셨는데, 한국의 종교문화나 사회적인 분위기에 대한 선생님의 느낌은 어떠신지요.

한국에 온 것은 이번이 다섯 번째입니다. 첫 번째는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릴 때, 크리스천아카데미 주최로 열린 회의에 고 변선환 교수 초대로 왔었습니다. 한국에 와서 첫 번째로 느낀 것은 기독교가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비교할 때 매우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점입니다. 두 번째로 느낀 것은 이번 방문을 통해서 더욱 분명하게 발견한 것입니다. 이전의 방문에서는 이번처럼 집중적인 종교 간의 대화가 없었기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이번에 여러 불교 사찰과 수도회를 방문하고 또 진제 큰스님과의 대화를 통해서 한국에서 불교가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과 비교해 볼 때 한국에서 불교의 수행은 일반불자들의 수행과 깊이 결합되어 있습니다. 이점은 독특한 현상으로써 매우 인상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세 번째로 느낀 것은 일부 기독교인과 불교 공동체 사이에 있는 긴장감입니다.

말씀하시려는 그 세 번째의 주제는 다음 질문과 이어지는데요. 선생님께서는 이미 한국에서 보수적인 기독교인에 의해서 발생했던 불행한 사건들, 예를 들어 사찰방화나 불상훼손 등에 관한 사건들을 알고 계신 줄로 압니다. 이번 한국 방문에서 진제 스님을 포함해 한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계시는 불자들을 많이 만나셨다는 것을 보도를 통해 봤습니다. 종교 간에 증오(hatred)의 문화를 신학적으로 키워왔던 한국의 기독교에 대한 그분들의 반응이나 평가를 들으면서, 선생님께서는 무엇을 느끼셨는지요.

이 질문에 대해서는 내가 새해 첫날 했던 경험과 연관해서 답변을 할 수 있겠습니다. 진제 스님이 저를 대구 동화사의 신년축하법회에 초대해서 법당의 제일 높은 자리에 앉히고 모든 수행자와 회중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바로 그곳은 예전에 (기독교인의) 땅밟기(intrusion)가 있었던 곳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기독교인인 저를 초대해 그 자리에서 강연을 하도록 했다는 것은 자신들의 가장 성스러운 공간을 침범 당했던 불교 공동체가 기독교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 지를 보여주는 놀라운 사례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경험이 저의 마음을 깊이 사로잡았습니다.

예전에 내가 한국 기독교인이 저질렀던 행동에 대해서 듣고, 미국에 살지만 같은 기독교인으로서 큰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이번 방문에서 그분들에게 “그런 행동을 모든 한국의 기독교인과 연관 지어서는 안 됩니다. 한국에도 그런 야만적인 행위에 동의하지 않는 수많은 기독교인이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김 박사님은 조금 전 그들을 가리켜 ‘보수적인’ 기독교인이라고 했는데, 나는 그들을 ‘극단주의자(extremist)’ 또는 ‘폭력주의자(terrorist)’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저지른 행동에 대해서 수치심을 느끼는 기독교인들이 한국에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동화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용서를 구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는데, 그분들은 나의 마음을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그것은 나에게 큰 감동이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한국의 일반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말씀해 주셨으면 하는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그것은 기독교 영성의 본질이 과연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종교 다원주의란 좋지 않은 이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미 여러 권의 책에서 기독교의 종교성을 재해석해 오셨고, 특히 2009년엔 <부처 없이 내가 기독교인이 될 수 있었을까>라는 책을 통해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셨습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동화사에서 진제 스님으로부터 “진아(眞我)”라는 법명도 받으셨는데요. 아마 많은 경건한 일반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선생님과 같은) 기독교인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불교적-기독교인(Buddhist Christian)이라고 밝힐 수 있는가에 대해 무척 궁금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묻고 싶은 것은 선생님이 생각하는 기독교 신앙/영성의 본질은 과연 무엇인가입니다.

   
▲ 폴 니터 유니온신학교 교수와 본지 김희헌 편집위원장이 5일 오후 서울 신정동 대한불교조계종 국제선센터 5층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 <에큐메니안> 신용철

기독교 신앙의 본성이 무엇이냐는 주제를 다루기 전에 다원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먼저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그 동안 ‘다원주의자’로 불리는 많은 신학자나 기독교인들과 교분을 나눠왔습니다. 저희 가톨릭의 교황 베네딕트 16세께서는 다원주의(pluralism)를 상대주의(relativism)라고 말하시곤 하는데, 저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원주의는 간단히 말해서, 자기 자신의 종교적 정체성에 근본적으로 충실함과 동시에 우리 기독교인이 하나님이라고 표현하는 절대적인 존재의 경륜이 우리가 파악하는 그 모든 것을 넘어선다는 것을 인정하는 정신을 의미합니다. 후자는 사실 기독교적 신념의 일부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해하는 모든 것을 넘어서는 신비 자체라는 것이지요.

예수께서는 복음서에서 이점을 매우 분명하게 말하셨어요. “아버지께서 나보다 크시다”고 말하실 때, 그것은 우리가 이해하는 모든 것을 넘어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독교) 신앙의 자료와는 다른 것들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는 활동하신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독교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의 가장 중심적인 질문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이것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자신의 믿음을 깊이 이해하고 그것을 따라 모든 힘과 정성을 다해 살아가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이 다른 종교를 통해서도 말씀하시고 활동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진실로 열린 자세를 가질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 주제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을 조금 더 자세히 들어보고 싶습니다. 종교 다원주의 신학자들, 특히 존 힉 박사나 존 캅 박사의 견해와 선생님의 입장 사이에는 조금 복잡한 긴장관계가 있는 듯합니다. 그분들의 생각과 비교해서 선생님의 다원주의적 사고는 어떤 특징을 갖습니까.

내가 직접 존 캅 박사의 다원주의 사상을 다룬 논문들을 편집해서 <기독교와 세계를 변혁하기: Transforming Christianity and the World>란 책을 만든 후에 든 생각은, 내가 존 힉보다는 존 캅의 견해에 더 가깝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존 힉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던 동안에 난 그가 존 캅 만큼 개별 종교의 독특성에 대해 이해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언젠가 존 힉에게 그 점에 대해서 물어봤어요. 그러자 힉은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성(absoluteness)’이란 주제를 다룬 내 책을 읽고 나서, “당신은 신학적으로 포괄주의(inclusivist)가 되어가는 것 같군요”라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나는 “난 여전히 다원주의자입니다. 그러나 나는 개별 종교가 갖는 특이성을 존중하고자 할 뿐입니다. 난 나의 기독교 신앙 공동체와 대화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 자신을 내 신앙공동체로부터 끊어내고 싶지 않아요”라고 답변했습니다. 그러자 존 힉 박사는 “아, 우리 사이에는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내 생각에 당신은 교회를 위한 사도였던 바울이라면, 나는 교인의 자격을 빼앗긴(unchurched) 사람들을 위했던 요한이라 할 것입니다. 내가 교회에 남아있기를 포기한 사람들을 위해 신학하기를 원한다면, 당신은 교회에 남아있는 사람들을 위해 노력하는 것 같아요”라고 하더군요. 나 역시 그런 점이 우리 사이의 차이였다고 봅니다.

내 자신의 경험을 보면, 기독교 신학의 기초에 관한 신학 작업을 한 이후에 난 점점 종교 간의 대화라는 주제에 관심 갖게 됐습니다. 단순히 공부만 하지 않고, 점점 다른 종교와 (특히 불교와) 관계를 맺는 내 활동을 강화시켰습니다. 예전에는 참선(Zen Meditation)을 많이 했지만, 요즘은 티벳 불교의 선수행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불교식 수행을 하면 할수록 나의 기독교적 믿음 즉, 하나님에 대한 신앙, 구원에 대한 믿음, 죽음 이후의 삶의 의미,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의 의미 등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다루는데 부처님의 도움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설명하는데 간혹 사용하는 비유입니다. 나는 불교라는 안경을 쓰고 있습니다. 안경을 벗고도 나는 기독교라는 나의 눈으로 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안경을 벗은 눈은 안경을 낀 눈보다 약합니다. 내가 오랫동안 불교라는 안경을 쓰고서 성경을 읽거나, 폴 틸리히나 칼 라너에 대해서 공부하고 글을 쓰거나, 가톨릭교회의 공식 교리문서를 읽는 일을 하는 동안 나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봅니다. 내가 불교인이 된 건가? 이 질문에 대해서 나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답하기 위해서, 나의 기독교적 신앙에 불교의 도움이 무엇이었는지를 스스로 묻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바로 그런 경우라는 것, 즉 나는 불교적 기독교인(Buddhist-Christian)이라고 말하게 된 것입니다.

본래의 질문에 대한 답을 보다 직접적인 방식으로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기독교 영성의 본질(nature)이나 기독교 신앙에서 중요한 덕성(virtue)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간단하게 말하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만, 내가 이해하는 기독교 영성은 예수의 길을 따라가려는 노력이요, 이 노력은 다른 신앙의 길에 대한 개방을 동반한다는 것입니다. 이 주장은 존 캅 박사의 말입니다. 다른 신앙의 길을 향해 열린 마음을 갖도록 하는 것이 예수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과 또 오고 있는 하나님나라를 믿기 위해서 나는 예수의 길을 따르려고 노력합니다. 이런 노력을 함과 동시에, 다른 종교 영성에 대해서도 열려있어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그렇기 때문에 두 가지 덕성을 요구합니다. 하나는 예수를 향한 헌신(commitment to Jesus)이요, 다른 하나는 타자를 향한 개방(openness to others)입니다. 

   
▲ 본지 편집위원장 김희헌 박사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연구실장) ⓒ <에큐메니안> 신용철

이번 질문은 한국의 진보적인 신학자와 신자들을 염두에 두고 답변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제 생각에 포스트모던이라는 우리 시대가 길러낸 두 가지 중요한 신학적 화두는 ‘다양성’과 ‘해방’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의 평생의 신학적 여정에서 이 두 가치는 하나의 체계로 점차 결합되어 왔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의 신학의 특징은 해방신학과 종교신학이 창조적으로 종합되어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선생님의 신학은 신학계에서는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 인터뷰에서는 그 동안 여러 가지 종교사회적인 활동을 하실 때, 선생님께서 품고 계신 신학적인 입장이 어떤 효과와 실제적인 장점을 주었는지에 대해서 그 경험을 듣고 싶습니다.

내 경험에 비춰보면, 다양성을 존중하려 할 때 오는 도전은 단순히 다양성에 대한 수락 자체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내가 다원주의를 통해 말하려는 것은, 종교 간의 차이를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입니다. 종교의 진정한 다양성을 존중하는 학자들이 있지요. 예를 들어 린드백(George A. Lindbeck)이나 하임(S. Mark Heim)은 다양성에 관한 귀중한 작업을 했습니다. 그러나 다원주의자는 다양성을 존중할 뿐만 아니라 그 다양성 가운데에서 대화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사람이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다양성이란 현대신학에서 충분조건이라기보다는 필요조건이요, 따라서 신학으로서의 충분성을 갖기 위해서는 해방을 향한 대화가 필요하다고 보면 될까요.

내가 해방이라는 주제를 다양성과 연관시키는 이유는 어쩌면 해방이 그 자체의 진가를 갖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오래 전 내가 해방신학을 진심으로 접하게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이때 나는 나의 아내와 살바도르에서 해방신학자들과 함께 작업했습니다. 이전의 나의 종교신학이 해방이라는 주제와 연결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내는 이렇게 물었지요. “어떤 것이 더 긴급한 것이에요? 만약 당신이 선택해야만 한다면, 종교 간의 대화를 택하겠어요, 아니면 해방을 택하겠어요?” 나는 해방을 택하겠다고 말했는데, 그 때가 처음이었던 같아요.

하지만 해방은 다른 것을 요구합니다. 어느 누구도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행하는 폭력, 불의, 고문, 여성에 대한 학대 등의 악한 일을 홀로 감당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함께 일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다시 종교적 다양성의 문제로 되돌아가 봅시다. 우리 시대에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부정적일지 몰라요. 오늘날 탈근대주의자들은 이런 공통분모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나는 그들에게 그런 것을 상관 않는다고 말하겠어요. 대신 우리는 다양한 우리를 연결할 수 있는 공통분모를 반드시 발견해야만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물론 우리를 잇는 것들이 많이 있지요. 그러나 우리를 잇게 만드는 근본적인 사항 중의 하나는 인간과 자연이 당하는 고통(suffering)의 문제입니다. 모든 종교가 이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종교의 근원적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여기서 출발할 수 있다고 봅니다. 무엇인가 절박하다면, 그것이 절박하기 때문에 대화할 기회를 제공합니다.

선생님께서 내일이면 미국으로 돌아가십니다. 한국의 기독교인들 가운데 특히 <에큐메니안> 독자를 포함해 진보적인 신앙인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씀은 없으십니까? 그리고 한국의 민중신학 그룹에 대한 이해, 기대, 당부 등이 있으시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한국의 진보적인 신학자와 기독교인들은 불교 공동체와의 대화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대화는 이전보다 훨씬 긴급한 사안이 되고 있는데, 그것은 불교 공동체를 향한 기독교의 폭력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민중신학자들은 특히 불교 공동체와의 화해를 위해 연대하고, 기독교가 진실로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를 그들에게 말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어쩌면 이것은 상대적으로 쉬운 일인지도 모릅니다.

두 번째가 더 어렵고도 중요한 일입니다. 그것은 진보적인 신학자/신앙인들이 보수적인 기독교인과 해야 만 할 대화입니다. 나는 한국이 어떤 특별한 상황에 놓여있는지 자세히 모르기 때문에 어떻게 그 대화가 가능할 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그것이 한국 상황에서도 연관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보적인 기독교인과 보수적인 기독교인의 대화가 진행될수록 그 대화가 시작된 지점의 주변이 변해가기 시작하는데, 그 변화는 보다 보수적인 기독교인에게서 주로 일어납니다. 그들이 고통(당하는 사람)에 대해 기독교인으로서 뭔가를 해야 한다고 느끼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마치 고통이 종교 간의 대화를 가능케 하는 토대로 여겨지는 것처럼, 한국의 진보-보수의 기독교인들은 서로의 차이를 말하기 전에 함께 일할 수 있는 지점 즉, 고통에 대해 함께 대답할 수 있는 곳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질문은 아닙니다. 인터뷰 전에 드렸던 <생명과 평화를 여는 2010년 한국 그리스도인 선언> 운동이 2010년에 일어나, 금년에는 사무국을 꾸리고 <생명평화마당>이라는 흐름을 만들고 있습니다. 많은 계획들이 있지만, 그 가운데 WCC 10차 총회(2013년 10월 3~12일)를 맞아 국제학술회의를 계획하고, 이를 위해 2011년과 2012년 2년 동안 한국의 민중신학 그룹과 토착화신학 그룹이 <생명평화신학>이란 주제로 함께 준비하려고 합니다. 2013년 국제학술회의를 위해서는 세계의 신학자들과의 연대를 미리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도 이 흐름에 동참해주셨으면 합니다.

아주 기쁜 소식입니다. 나도 그와 비슷한 문제로 다른 그룹들과 논의 중에 있습니다. 이 일이 구체적으로 진행되어 가는대로 서로 연락하면서 함께 준비하도록 합시다. 오늘 한국에서 활동하는 좋은 신학그룹을 소개받고 만나게 돼서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 폴 니터 유니온 신학교 교수. ⓒ <에큐메니안> 신용철

 

김희헌 편집위원장  kimhiheon@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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