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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과 현대의 부자세습 차이여론반전, 삼성보다 두가지만 앞서면 현대도 성공한다
양문석 | 승인 2006.04.13 00:00

때만 되면 전경련이나 경총 그리고 조중동과 경제지들은 한국에서는 기업인들을 존경하는 풍토가 없다며 매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기업인들에 대해서 ‘존경’할 것은 강요해 왔다. 하지만 이건희 이재용의 부자세습과 정몽구 정의선의 세습과정을 보면서 이들은 어떤 말을 할 것인지 궁금하다.

조중동의 삼성 8천억 환원금은 있고 5조원 부채는 없다

이건희와 삼성은 ‘삼성자동차 경영실패’로 무려 5조원의 부채를 지고 있으면서도 아직 갚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이건희가 갚겠다고 대국민선언을 하는 광경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이건희가 미국으로 도망갔다가 수 개 월 만에 돌아오면서 5조원의 부채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은 채, ‘8천억 원의 사회환원금’을 내겠다고 선언함으로써 ‘여론뒤집기’에 성공한다.

5조원의 부채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언론들이 침묵해 준다. 그냥 내기로 한 8천 억 원만 부각시킨다. 국민들은 언론들이 제시하는 여론의 로드맵에 의심조차 못하고 끌려 다닌다. 그렇다면 여론뒤집기의 공신은 언론이다. 그 언론이 8천 억 원을 어떻게 처리했는가? 8천 억 원이라는 엄청난 액수도 여론뒤집기의 요인이었겠지만, 결정적인 요인은 삼성이 ‘사용주체와 사용처’를 애매모호하게 처리함으로써, 누가 어떻게 쓸 것인가를 ‘논란’으로 여론을 몰아간 것이 여론뒤집기의 핵심이었다. 

당연히 여기에 ‘조중동’이라는 거대신문들이 이 논란에 불을 붙였고, 기름을 부었다. 삼성은 내놓은 돈이니 관여하지 않겠다면 팔짱끼고 구경하면서 비난여론에 대한 ‘태풍의 눈’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된다. 삼성의 이건희 父子에게 쏟아지는 비난여론을 회피하는데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검찰이 감히 삼성 이건희 부자에 대한 직접수사는 뒷전하고 압수수색조차 엄두를 못 내게 여론을 변질시켜버린다.

혹자는 이 과정을 보면서 ‘돈이면 다 된다.’고 투덜거린다. 아서라! 착각이다. 돈으로 다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돈을 갖고 어떻게 언론플레이를 잘 하느냐에 따라 ‘다 되기도’하고 ‘전혀 안되기도’ 한다. 삼성은 다되는 쪽이다. 삼성의 부자세습 과정에서 드러난 탈법행위가 8천 억 원을 수단으로 삼아 여론분위기를 반전시키고 검찰의 재수사의지마저 꺾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는 ‘전혀 안되는’ 쪽에 가깝다. 정몽구에서 정의선으로 이어지는 ‘부자세습’은 성공한 듯 보였으나 지금 엄청난 위기에 직면했다. 검찰관계자들은 삼성의 ‘부자세습’보다 현대의 ‘부자세습’방식이 훨씬 더 치밀하고 세련됐다고 평가한다. 그런데도 현대의 부자세습은 사법처리를 목전에 둔 상태를 어떻게 설명하고 이해해야 하나?

현대, 똑같은 이건희 수법으론 어림없어

이미 삼성의 부자세습 완결과정에서 국민들은 충분히 학습했다. 정몽구의 미국도피도 이건희가 이미 써 먹은 수법, 사회환원금 운운도 이건희가 해 먹은 수법이다. 이런 상황에 굳이 사회환원금을 기획한다면 삼성보다 두 가지는 앞서야 한다.

첫째, 8천 억 원보다 훨씬 더 충격적인 액수라야 한다. 둘째, 삼성이 구사한 ‘사용주체 및 사용처의 모호성’수법보다 훨씬 더 많은 논란을 일으킬 수 있는 새로운 수법이어야 한다. 셋째, 삼성 이상으로 조중동과 경제지등 수구언론들의 의제설정과 확산과정에서의 지원을 이끌어내야 한다. 

   
▲ 양문석 EBS 정책위원
다시 말하자면, 현대도 돈만 쓰는 것이 아니라 그 돈으로 현대를 겨냥하는 비난성 논란거리가 아닌 제3자들 간의 다양한 논란거리를 확대재생산할 수 있는 수법과 언론의 전폭적인 지원방안을 마련하면 현재의 비난여론과 검찰수사의 칼날을 비킬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아니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봐야 한다.

문제는 ‘직업에 귀천이 없다.’식으로 들어온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상식의 붕괴를 어떻게 설명하느냐다. 현실과 이상은 다르다고 설명할 것인지, 아니면 애초부터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말은 迷信이었다고 설명할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평등할 수 있도록 검찰과 법원을 강제하기 위한 전술적 슬로건이었다고 설명할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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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글은 '언론노보'에 실렸습니다.  양문석 님은 '언론노보'에 기고하신 글의 전제를 허락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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