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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재] 장공의 부활체와 사후생 이해 (1)스티븐 호킹의 사후세계부정 발언에 기하여
김경재 고문 | 승인 2011.05.24 00:08

지난 15일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의 '사후세계부정'발언과 관련하여 장공 김재준 선생이 이해한 사후생과 부활의 의미를 되새겨 보려는 취지로 연재를 시작합니다. 덧붙여 이 글은 본지 고문위원인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가 제 24회 장공사상연구 목요강좌에서 발표했던 원고임을 밝힙니다.

장공의 성서적 실재론 ①

장공은 20대 초반 성령은혜 안에서 그리스도를 맘에 주님으로서 영접한 후, 평생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았고, 그의 평생 그리스도께서 자기와 동행하셨다고 고백하였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장공의 일생은 ‘그리스도이신 예수’의 삶과 십자가 죽음과 부활과 승천사건에 대한 성서적 증언에 대한 고백에 기초하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그는 ‘성서적 실재론자’이다. 장공의 ‘성서적 실재론’을 바르게 이해하지 않고서는 그가 왜 ‘부활의 몸’을 강조하고 ‘사후생’을 신앙했는지 이해하기 어렵게 된다.

그런데, ‘성서적 실재론’(Biblical Realism)은 성서를 어떻게 이해하는지 일반에게 충분히 알려져 있지 않다. 보수적 기독교인들은 ‘성서적 실재론’(Biblical Realism)을 보다 보편적 개념인 ‘성서주의’(Biblicism)와 동일시하거나, 보다 구체적 신학개념인 ‘성서영감설’(Biblical Inspirationalism) 및 ‘성서문자무오설’(Literally Biblical Infallibilism)과 같은 개념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도 있다.

네덜란드의 조직신학자요 선교신학자인 쟌 용어네일(Jan A.B Jongneel)에 의하면, ‘성서적 실재론’은 성서가 증언하는 구원체험 증언의 주제사실(主題事實, Die Sache)이 계몽주의자들의 ‘이성적 판단기준과 사상’에 의해 변형되고 훼손되고 무시되는 것을 저항해온 독일 경건주의 신앙운동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18세기에 절정에 달했던 계몽주의의 비판정신은 기존의 권위적이고 신성화된 일체의 신념들과 제도들에 대하여 이성적 검증을 요구하였기에, 성서학의 발달에 지대한 공헌을 촉발시키는 긍정적 공헌도 하였던 것이다. 성서연구에 있어서 ‘역사적-비평적 연구방법’(die historisch-kritische Methode)의 발달이 그것이다.

그러나, 성서를 ‘계시적 영감의 경전’으로 확신하고 일체의 학문적 비평연구를 이단시하였던 정통보수주의자들은 성서에 대한 ‘역사적-비평적 연구’를 매우 위험하고 비신앙적 태도라고 생각했던 것이고, 그러한 자기방어적이며 경직된 태도는, 한국 교회사의 비극이라 할 수 있는 예장총회(1953)에서 김재준의 조선신학교 교수직 파문과 이단정죄로 나타났다.

다른 한편, 역사비평적 방법을 철저하게 밀고나간 극단의 19세기 자유주의 신학그룹에게 있어서는 성서가 증언하는 근본적 ‘주제사실’의 본질자체를 위협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들에게는 신적 구원행위를 증언하는 성서의 초월적 사건들이, 극단적으로는 20세기 불트만신학에서처럼 ‘비신화화’(非神話化) 대상이거나 부정될 것으로 치부되어 갔다. 그 결과 그리스도의 몸의 부활증언이 ‘실존론적으로 십자가 사건의 의미의 부활’로서 이해하고, 극단적으로는 ‘케류그마의 비신화화’에로까지 치닫게 되었다.
 
20~21세기 신학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지성과 신앙이 함께 숨쉬는’ 신학적 담론공간으로서 ‘성서적 실재론’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입장인가?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 특징을 열거함으로서 ‘성서적 실재주의’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고, 그 입장에 선 장공의 신앙을 오해 없이 바르게 파악할 수 있다.
 
첫째, ‘성서적 실재론’이란 성서가 증언하는 중심주제들을 관념적으로나 신화적으로 보지 않고 현실적인 실재로서 고백한다. 
예를들면, 하나님의 현실적 실재성과 자기계시, 말씀의 그리스도 안에서 화육, 성령의 능력 안에서 치유와 중생, 그리스도의 대속적 십자가 죽음, 영화된 몸으로서 그리스도의 영체부활, 성령의 강림과 하나님나라의 진행중인 현실성 등을 ‘실재적인 진실’로서 믿는다.

둘째, ‘성서적 실재론’이란 성서가 증언하는 구원사건들이 역사과학적인 의미에서의 ‘역사개념’에 갇혀있지 않지만 철저하게 역사적 사실을 관통하고 발생하며, 인간학적 ‘인격개념’에 유폐되지 않지만 철저하게 인격적 응답성과 자유를 중요시한다. 특히 하나님과 인간의 상호관계에서 역사적 사건과 인격적 책임성을 강조한다.

셋째, ‘성서적 실재론’이란 성서관에 있어서 성서가 신적 영감에 의해 기록되어  오류가 없는 경전이라고 믿는 ‘성서문자영감론’을 거부하며, 동시에 성서는 ‘역사적-문헌비평적 연구방법’에 의해 밝혀지는 단순한 인류의 정신문화적 책이라고 균질화시키는 ‘성서계시부정론’을 거부한다. 

크게 보아 말하면, 칼 바르트가 그의 <로마서 강해> 제2판 서문에서 취하는 입장 곧 성서연구에 있어서 ‘역사비평적 연구방법’은 정당성을 가지지만, 그 방법은 성서가 증언하려는 원주제(Die Sache)를 바르게 이해하도록 돕기 위한 ‘이해를 위한 준비’ 단계로서 타당하다는 입장이다. ‘역사비평연구방법’은 성서케류그마가 증언하는 ‘계시적 구원진리의 사실’이 말하려고 하는 그 실재성을 드러내고 조명하며 봉사하는 기능이 있을 뿐이다라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넷째, ‘성서적 실재론’은 하나님의 자기계시와 구원의 역사적 사건에도 불구하고, 창조세계 전체를 완전하게 인간 지성으로써는 이해할 수 없다고 보는 입장으로 곧 인간의 인식론적 피조성과 한계성,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적 초월성을 겸허하게 받아드린다. 

이것은 칼 바르트가 거칠게 말한 ‘시간과 영원 사이의 무한한 질적 차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과 영원, 땅과 하늘, 사람과 하나님의 ‘무한한 질적 차이’는 플라톤 철학적인 양자사이의 분리를 상정하는 이원론이 아니다. ‘무한한 질적 차이’는 ‘시공간적 분리’나 ‘실체론적 분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날마다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고 있지만(행17:28), 하나님은 하나님이요, 사람은 하나의 피조물로서 사람일 뿐이다. ‘성서적 실재론’은 이 ‘질적 차이’의 교차점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본다.

다섯째, ‘성서적 실재론’은 관념성이 아닌 실재성을, 보편성이 아닌 구체성을, 이론이 아닌 실천을, 가능태가 아닌 현실태를 강조하기 때문에, 신앙의 진실성 판단기준을 이론으로서가 아닌 “나무의 열매”로서 판단한다.

성령의 실재성을 삼위일체론으로 말하기보다는 ‘성령의 열매’(갈5:22~23)로서 말하고,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다”(히11:1)고 본다. 그리스도 부활의 사실성과 그 실재성은, 그 신앙을 고백하는 신자공동체와 개인 생활신앙에서의 역동적 생명력과 죽임의 권세를 이미 이긴 승리적 삶의 현실성으로서 증언한다. 성서실재론은 종말적 삶을 “이미…그러나 아직”(Already…Not Yet)이라는 긴장과 과도기적 중간시대 의식으로 산다. 어둠은 지났고 이미 동은 텄으나 새벽의 아침 해는 아직 환하게 밝지는 않았다.  (계속)

김경재 고문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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