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빈국 라오스의 두메산골 

라오스 싸이냐부리 도(道)는 2007년 연소득이 368달러에 불과했다. 이 수치는 여기가 최빈국 라오스에서도 가장 빈곤한 지역임을 말해준다. 공식 집계로도 47개 소수민족들이 모여 사는 나라이니만큼 싸이냐부리 도는 읍내에서도 어렵지 않게 전통복장을 한 소수민족을 만날 수 있다.

▲ 2008년 라오스 싸이냐부리 읍내에서 열린 소수민족 몽족의 신년 행사, 처녀총각들이 줄을 맞춰 서서 공을 주고받으며 연인을 선택하는 놀이를 하고 있다. ⓒ 사진제공: 이영란

웬만한 4륜 차로는 접근할 수도 없어 오토바이로 라야 겨우 닿을 수 있는 깊은 산골은 거의 소수민족들이 사는 곳. 이들은 보통 여행안내서에서 많이 쓰는 고산족이라는 이름처럼 1500미터에 이르는 높은 산꼭대기에 있다.

베트남전쟁과 동시에 한편으로 미국이 라오스에서 벌인 비밀전쟁으로 이미 오래전부터 각종 국제기구의 배상 차원의 지원을 받고 있는 북동부와 달리, 타이와 접해있으나 높은 산지로 교통도 불편하고 국제적인 문제도 일으킨 적 없이 평화롭기만 한 라오스의 북서부 싸이냐부리는 그저 평범한 지역. 중앙정부는 물론 국제적 지원기구의 관심 사항에서도 소외되어 있는 곳이다. 바로 여기에 태양광발전기가 태어난 반싸멛(Ban Xamet, 싸멛 마을이라는 뜻)이 있다.

▲ 라오스의 두메산골 반싸멛의 마을회관 앞, 새로 지붕을 올리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모여 함께 갈대를 엮고 있다. ⓒ 사진제공: 이영란

그래도 라오스는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최빈국답지 않게 최소 한 마을에 초등학교 1개소는 둔다는 훌륭한 정책 덕분에 풀로 지은 교실 한 칸짜리라도 마을마다 초등학교는 있다. 반싸멛은 그런 마을들 가운데 위치한 중심마을. 그래서 180여명이 다니는 초라하지만 딱 하나, 중학교가 있다. 마을들 가운데 있다지만 산꼭대기에 있는 이 학교, 싸나싸이(승리라는 뜻)중학교에서 내려다보면 겨우 건너편 산 중턱에야 어렴풋이 이웃 마을이 보인다.

12시간을 걸어서 오는 학생들

학교가 위치한 마을 반싸멛에 사는 중학생들이야 등하교가 어려울리 없다. 그러나 그 건너 보이는 가까운 마을에서라도 통학하는 데는 온전히 걸어서 두세 시간이 걸린다. 조금 떨어져 있는 마을이라면 네다섯 시간. 열두 시간이 넘는 곳에서 오는 학생도 있다. 이건 거의 아침에 해가 뜨자마자 집을 출발해야 저녁에 학교에 닿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한낮에는 사막처럼 뜨겁고 어스름할 땐 춥기까지 한 산길을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오르내리는 새까맣게 탄 얼굴의 학생들이 보인다. 이들이 하는 공부는 통학하는 것부터 고행이다. 

▲ 기숙사생들이 학교로 돌아오는 일요일, 이제 막 공사가 한창인 반싸멛 가는 길을 오르고 있다. ⓒ 사진제공: 이영란

이렇게 매일 통학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싸나싸이 학교에는 기숙사가 있다. 이름이 그럴듯해 기숙사지 초막이며 판잣집이다. 산꼭대기는 물이 없고 그래서 씻을 곳도 화장실도 없다. 학생들이 알아서 지어먹는 끼니를 위해 고작 아궁이 같은 구멍이 있는 게 다인, 겨우 두 칸짜리 기숙사에 40명 학생이 기거한다. 명색이 기숙사인데 먹고 자는 것 외에 숙제도 하고 공부도 해야 할 텐데, 책걸상은? 여학생 방이나 겨우 문 같은 문으로 구분이 되어 있을 뿐, 밤 추위를 막기 위한 낡은 이불 몇 장 외엔 아무런 가구도 집기도 없다. 설사 뭐가 있다 해도 여기선 공부를 할 수가 없다. 해가 지면 반싸멛은 완전한 암흑. 별빛과 달빛 외에는 아무런 빛이 없다. 

▲ 한 낮에도 어두침침한 싸나싸이 중학교의 기숙사 내부, 사진기도 눈이 흐리다. ⓒ 사진제공: 이영란     ▲ 2010년 2월 반싸멛의 밤, 건기 막바지 화전을 일구기 위해 놓은 불만이 땅과 하늘을 구별할 수 있게 준다. ⓒ 사진제공: 이영란

전기를 수출하는 최빈국

라오스는 전기수출국이다. 라오스는 동남아시아의 어머니 강 매컹(Mekong)의 풍부한 수력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고 수출한다. (본류의 상류에 몇 개인지 정확하게 밝히지도 않고 댐을 지은 중국과 달리 라오스는 지금까지는 지류들에 댐을 지어 전기를 생산했다) 댐 건설로 인한 다른 문제들은 일단 제쳐두더라도, 문제는 나라가 전기를 수출하는데 대다수 라오스 국민들은 전기를 넉넉히 쓰지는 못한다는 데 있다.

이는 전기를 수입할 주변국이 자기 돈으로 댐을 짓고 직접 송전선까지 설치해 전기를 가져가기 때문이다. 국제기구나 선진국의 차관이나 원조로 지은 댐에서 생산되는 전기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목적대로 라오스의 국민소득(GNI), 화폐소득을 높이려면 돈 없는 라오스 사람들이 전기를 쓰기보다 팔아야 하는 것이 맞기 때문일 것이다. 
 

▲ 2011년 1월 라오스-타이 차량입출국 통로. 뒤로 국경을 가로질러 늘어선 송전탑이 보인다. ⓒ 사진제공: 이영란

싸이냐부리의 도청 소재지, 읍내에 전기가 들어온 것은 1992년 무렵이었다. 우리학교(필자가 파견되어 활동한 학교) 체육선생님, 아짠 씨파이는 그때 중학생. 읍내에 전기가 들어올  무렵 아짠 집에 처음 자전거 한 대가 생겼던 일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20년 전보다는 조금 공급범위가 넓어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도로변이 아니라면 읍내를 벗어난 곳에서 전기를 끌어다 쓰기가 쉽지 않다.

 

▲ 라오스 싸이냐부리 평야, 전형적인 시골이지만 읍내여서 도로를 따라 송전선이 지나가고 있다. ⓒ 사진제공: 이영란

 
최빈국의 태양광발전기 

▲ 반싸멛 마을회관에서 내려다본 이웃마을 모습, 가까운 마을서 오는데도 두어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다. ⓒ 사진제공: 이영란

반싸멛에 발전기가 있었다. 마을회관에 한 대, 여기 중학교에 한 대. 그나마 학교에 있던 것이 고장 나 교장선생님께서 내게 발전기를 꼽았던 것. 특별한 날은 저녁 두어 시간 전등 하나의 빛을 위해 천둥 같은 소음에도 불구하고 발전기를 돌린다. 그러나 문제는 소음이 결코 아니다. 라오스는 최빈국, 게다가 여기는 라오스에서도 산골짜기. 돈이 넉넉할 리 없다. 석유 1리터를 사는 값도 만만치 않은데다, 여기선 석유를 살 수도 없다. 그를 사러가기 위해 드는 오토바이 기름값은 배보다 배꼽이 더 큰 형국을 만든다. 받싸멛에서 빛은 이렇게 귀하다.

2009년 10월 드디어 에너지정치센터(기후변화와 에너지정책 관련 NGO로 특히 기후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라오스, 버마(미얀마), 인도네시아 등 제3세계와의 연대와 지원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에서 라오스의 두메산골, 여기 반싸멛 학교에 태양광발전기 지원을 위한 현지조사를 실시했다. 이번에도 우리학교 교장선생님이 나서 읍내에서 처리해야할 관공서 관련 업무를 해결해 주셨다. 전기관련 주무 부처인 싸이냐부리도(道) 에너지광산국은 아주 중요한 방문처였다. 공식적으로 확인할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 에너지정치센터의 싸나싸이 중학교 태양광발전기 지원사업 기념 간판. ⓒ 사진제공: 이영란

사실 태양광발전기 지원활동을 준비하면서 척척박사인 우리 교장선생님으로부터 3년 안에 반싸멛까지 송전선을 놓아 전기가 들어갈 계획이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상당기간 전기가 들어가기 어려운 곳으로 대상지역을 옮겨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바로 접었다. 우리 교장선생님도 그 계획이 절대 3년 안에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라 장담하셨을 뿐더러, 설사 싸나싸이 중학교 옆으로 전봇대가 세워지고 송전선이 지나간다 해도 학교는 전기를 연결해 쓸 수 없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 라오스의 두메산골 반싸멛의 어린이들, 앞에 있는 나무로 만든 작은 수레를 타고 놀고 있었다. ⓒ 사진제공: 이영란

지구환경을 위한다는 가치가 사치스러울 만큼 빈곤문제 때문에 라오스에서는 재생에너지가 중요하다. 더욱 외부의 계속적인 지원에 의지하지 않는 발전수단이 필요하다. 태양광발전기는 계곡이나 물이 풍부한 지역에서 쓰는 초소수력(pico-hydro power)발전기에 비해 높은 비용이 든다. 하지만 여기는 산꼭대기. 위도는 낮고 고도는 높은 만큼 태양광발전기의 효율 높다. 그리고 라오스 사람들이, 더욱 여기 산골 학교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전기는 우리 1/100이나 될까?

라오스 사람들은, 여기 산골학교는 그저 오토바이에 기름 넣어 오가기 어려울 때 급하게 읍내와 통화해야 할 때 절실한 휴대전화 충전할 수 있는 데 만족하고, 해지고 나서도 두세 시간은 움직일 수 있도록,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전등하나 밝힐 수 있는 작은 전기에 행복해 한다. (계속)

▲ 초등학교 3학년 라오스어 교과서. ⓒ 사진제공: 이영란

▲ 중등학교 2학년 사회 교과서. ⓒ 사진제공: 이영란

이영란 님은 중앙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행정학과)에 있으면서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한국국제협력단 해외봉사단원으로서 2년 동안 라오스 북서부 싸이냐부리에서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이영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원  forvega@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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