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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재] 장공의 부활체와 사후생 이해 (3)
김경재 고문 | 승인 2011.06.07 10:40

지난 5월15일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의 '사후세계부정'발언과 관련하여 장공 김재준 선생이 이해한 사후생과 부활의 의미를 되새겨 보려는 취지로 연재중입니다. 덧붙여 이 글은 본지 고문위원인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가 제 24회 장공사상연구 목요강좌에서 발표했던 원고임을 밝힙니다.

부활사건의 가능성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체

1) 인간의 죽음은 본래적 창조태(創造態)에서 볼 때 타락태(墮落態)의 비정상적인 현실

장공의 신학적 인간학에서 주목을 끄는 것은, 그가 ‘인간의 죽음’이라는 자연질서의 현상마저도 원창조질서에서 변형된 비정상적 현상이라고 본다는 점이다. 장공의 신학적 인간학에서 놀라운 점은, 우리가 본 논문 제2장에서 살펴본 ‘성서적 실재론’을 받아들임에 있어서 장공은 진보적 신학자답지 않을 만큼, ‘철저한’(radical) 성서적 실재론자로서 성서주석을 견지한다는 점이다.

장공은 창세기 제1장에 서술된 창조기사를 물론 문자주의자들처럼 이해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인간이해에 있어서 장공은 창세기 제1장 안에 나타난 창조설화에서 두 가지 질서가 구분되어 있다고 이해한다. 두 가지 질서란 ‘자연질서’와 ‘영의 질서’이다.

자연질서에 속한 피조세계는 하늘과 땅과 바다와 공중에서 삶을 누리도록 축복받되 생물학적 번식과 신진대사를 반복하면서 생존하고 사멸하는 생명질서이다. 여기에서 죽음이란 생명체들이 지속적으로 ‘생육하고 번성하는’ 삶의 리듬을 이루는 과정으로서 자연질서에 속한다.

영의 질서는 피조물 중에서도 ‘하나님의 형상’(창1:26)을 닮도록 지음 받은 생명체 곧 인간생명의 질서이다. 장공은 구약신학 전공학자이다. ‘하나님의 형상’이 무엇인가를 두고 논쟁해왔던 조직신학적인 관념적 이해를 넘어서서, 장공은 인간생명체 그 자체가 ‘하나님을 닮은 영적 존재’임을 의미한다고 본다. 하나님의 형상을 인간성 안에 간직한 특수한 기능(언어기능, 지성기능, 양심기능, 진선미 분별기능 등)으로 보지 않는다. 하나님의 형상을 마치 조개 속에 진주가 박혀있듯이 인간성의 어느 부분을 의미하거나, 인간의 어느 부위에 박힌 특수자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창세기 창조설화가 기록되던 고대사회에서 고대제국을 통치하는 제왕들이 자기의 ‘얼굴형상’을 그림으로 그리거나 조각품으로 만들어, 지방 제후들의 통치영역에 안치하면 ‘제왕의 얼굴형상’ 그 자체가 제왕의 권위와 임재를 의미하는 상징기능을 갖듯이, 피조물로서 ‘인간생명체’ 그 자체가 창조주 하나님을 닮은 존재라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 생물학적인 외모를 닮았다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이시고 영적 존재이신 하나님이 창조하고 다스리고 영적으로 교통하는 모든 능력을 갖춘 피조물로서 닮았음을 의미한다. 장공은 진화론을 받아드린다. 그러나 인간존재가 진화과정의 정상을 차지하는 고등동물로서 온갖 이성적 지능을 구비하고 만물을 지배하는 자리에 오를지라도, 그 능력과 자질은 본질적으로 ‘자연질서’에 속한 것이어서 자연질서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며, 인간존엄성의 궁극적 근거가 되지 않는다고 본다. 그리스도교적 인간학에서 인간존엄성의 근거는 인간이 ‘영의 질서에 속한 피조물이라는 것’ 곧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라는 데서 찾는다. 장공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하나님의 창조설화에는 자연질서와 영의 질서라는 두 질서가 구분되어 있다. 인간은 하나님이 자기 형상을 따라, 자기를 닮은 피조물로 손수 지으신 특별창조에 속한다. 하나님이 영이신 것과 같이 인간도 영적 존재며, 영은 불멸한다는 견지에서 영적존재에는 본성적으로 죽음이 있을 수 없다. 이 영적 존재인 인간이 몸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본질적으로 영의 몸이어서 시간과 공간에 제약받지 않는, 그리고 물질적 보급을 생존의 필수조건으로 하지 않는 몸일 것이다. 이 영의 몸은 ‘영의 언어’를 갖고 있다. 영의 언어란 것은 인간들의 ‘말’이라는 표현기구를 통하지 않고 혼과 혼이 직접 통하는 ‘말없는 말’을 의미한다. …이 영의 몸이 지상에서의 생성단계에서 육의 몸을 갖고 번식의 축복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지면에 두루 퍼져 산다 하더라도, 어떤 기간 후에 죽음을 거치지 않고 영의 세계에 승화할 수 있을 것이다(에녹, 엘리야 승천기사).…타락 이전의 인간상은 예수의 부활체와 흡사하다. 예수의 부활한 몸도 예수의 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영화한 몸이어서 시공에 제약되지 않는 현현, 지상과 천상에 구애됨 없이 자유로운 몸이었다.      

다소 길게 인용했지만, 장공의 성경독해(聖書讀解)에서의 해석학적 입장이 얼마나 ‘성서적 실재론’의 기본입장에 철저한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문장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더욱이 위 인용논문 내용은 장공의 나이 80세 때(1980) 쓴 글이어서 더욱 소홀히 다룰 수 없다. 장공은 엘리야나 에녹의 승천기사를 허황한 신화나, 사막 회오리 바람에 말려 올라간 자연현상의 후대 과장된 설화라는 식의 합리적 해석을 경계한다. 장공은 거듭 말하기를 영의 세계에 있어서는 현대 과학적 인간의 지식이 너무 유치한 단계라고 말한다. 장공은 1985년 한국 퀘이커 여름수련회에서 행한 “역사의 원점을 찾아서”라는 제목의 기조강연에서도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은 생명의 주이시며 생명자체이기 때문에 그에게는 ‘죽음’이 없다. 영원한 삶이 있을 뿐이다. 인간도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에 본례적으로는 죽을 자로 지어진 것이 아니다. 생명이 정상태(正常態)요 죽음은 변태(變態)라 하겠다.…우리가 소위 ‘하관식’을 할 때 “육신은 흙에로, 영혼은 하늘에로”라는 선언을 한다. 그러나 그렇게 분리된 존재로서의 인간은 ‘인간’일 수가 없다. ‘산 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으로서의 인간, 영체로서의 ‘몸’, 생명의 주이신 하나님 날개 안에 품긴 인간의 작은 생명인 경우에는 인간생명의 영성(靈性)과 영생(永生), 그 몸의 영화 등을 기대할 수 있다.

위에서 인용한 두 곳의 장공 증언을 근거로 하여 볼 때, 장공의 신학적 인간학의 특징은 인간의 본래적 창조태(創造態)로서 몸은 일정기간 신진대사를 지속하다가 세포기능과 유기체로서 생리기능이 쇠약해져서 자연구성물로 되돌아가는 ‘자연사로서 죽음’이 당연하거나 본래모습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죽음이 인간의 운명이 된 것은 인간이 “본래적인 영의 질서에서 자연질서에로 타락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며, 타락의 본질은 창조주로부터 자기의 분리, 곧 생명동산의 질서에서 일으킨 영적 쿠데타의 결과라는 것이다.

타락의 결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2:19)는 창조주의 명령은 인간을 ‘죽음에로의 존재’로서 보는 것을 마치 당연지사처럼 느껴지게 하였다. 예수의 부활사건은 비정상태로 되어버린 인간생명을 정상태로 바로잡는 제2의 창조적 사건으로서 장공은 이해하는 것이다.(계속)

김경재 고문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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