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치와 불빛

벽에 달린 그 것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하다. 어두운 밤, 좁다란 계단을 따라 올라와 문을 열고 들어오면 자연스럽게 그것을 누른다. 그러면 어둠은 사라지고 천장에서 빛이 쏟아진다. 사람들이 스위치라고 부르는 그것을 누르면, 빛이 나온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스위치를 눌러도 천장에서 빛이 쏟아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마도 무척 화가 날 것이다.

몇 년전, 메콩 강을 따라 배를 타고 올라가는 길이었다. 라오스의 아름다운 도시, 루앙파방에서 새벽 안개를 가르며 출발한 배는 깊은 계곡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저녁이 되서야 빡뱅이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출렁이는 배 그림자 속에서 무거운 배낭을 들고 선착장에 내렸다. 그 위로 보니 힘겹게 어둠을 밀쳐내는 전등 불빛이 소박한 식당과 게스트 하우스를 비추고 있었다.

그런데 그 불빛은 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깊은 계곡을 따라 울려 퍼지는 디젤 발전기의 웅웅거리는 소리가 사라지면, 그 불빛도 조용히 사라질 운명이었다. 다른 여행자들보다 늦게 도착한 탓일까, 마을의 가장자리까지 이어진 길 끝에 위치한 중국식 게스트하우스에서 겨우 방을 구할 수 있었다. 다행히 거기에도 스위치는 있었고, 익숙하게 그것을 누르자 한 쪽 벽 위에 달린 파리한 형광등이 켜졌다. 그 불빛은 머리맡에 놓은 퉁명스럽게 녹아내린 초 덩어리를 비추어 주었다.

저녁을 먹고 돌아온 시간, 조용해진 마을에서는 불빛도 사라져 버렸다. 몇몇 돈 있는 집에서 비싼 기름을 태워 저녁 몇 시간 동안만 전기를 만들어내는 발전기를 꺼 버린 탓이다. 그러고 나면 스위치를 아무리 눌러도 불빛은 나오지 않는다. 불평해도 소용이 없고, 화를 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이제는 머리맡의 초가 나서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스위치를 눌러 빛을 얻을 수 있다는 상식을, 만약 그런 기대가 무너질 경우에 화를 내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는 반응을 공유할 ‘우리’는 누구일까? 그 범위 내에 지구상에 살고 있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포함되는 것일까.

▲ 라오스 루앙파방가 국경 도시 후와이싸이를 잇는 메콩 뱃길 중간에 위치한 마을, 빡벵. ⓒ 사진제공: 한재각

중국에서 발원해서 인도차이나 반도의 여러 나라들을 적시면서 흐르는 거대한 강, 메콩은 풍요롭다. 오래 전부터 메콩이 안겨다준, 하류의 비옥한 토지, 풍부한 어자원, 강을 통해 허용했던 물자와 사람들의 왕래. 그러나 이제 사람들은 어머니 강, 메콩에게 좀더 근사한 것을 달라고 떼쓰고 있다. 같은 강이지만 국경을 넘어서면 ‘란찬강’으로 이름이 바꾸는 이 거대한 물줄기를 막아, 중국인들은 여러 개의 댐을 쌓고 '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근대화의 상징, 전기.

다행스러운 일인지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란찬강이 아닌 메콩 본류에는 댐이 들어서지 않았다. 그러나 메콩의 물고기와 사람의 배들이 자유롭게 위아래로 다닐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는 듯이 보인다. 메콩의 긴 허리를 품고 있는 라오스 정부는 그 수자원을 이용하여 ‘아시아의 밧데리’가 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논의해온, 메콩 본류의 여러 대형 댐 계획 중에 하나인 싸이냐부리 댐 건설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라오스 학교 선생님이 모는 오토바이를 타고 댐 건설을 위해 무자비하게 깎아낸 산길을 달렸다. 1시간 후, 뽀얀 먼지를 뒤집어 쓴 채로 싸이냐부리 댐 건설예정지 모래톱 위에 설 수 있었다. 겨울 건기로 많은 물이 빠진 메콩은 바닥의 기암괴석을 드러내며 누워 있었다. 공사용으로 쓸 철제 바지선을 조립하려는 시설들과 대여섯 명의 태국 노동자들, 그리고 강 아래 쪽으로 멱을 감는 것인지 물고기를 잡는 것인지 모를 라오스 아이들만이 고요한 메콩 풍광 속에 인적을 더하고 있었다. 몇 년 후 댐이 건설되면 이 풍광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사라지는 것은 풍광만이 아닐 것이다. 돌아가는 길, 오토바이를 모는 라오스 선생님은 길 아래의 마을을 가리키며 수몰될 예정이라고 알려준다. 행정적으로 댐의 관할 구역인 싸이냐부리도(道)의 에너지광산국장은 댐 건설로 10여개의 마을이 수몰되고 1,500여명이 이주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라오스 사람들이 전기를 사용하고, 또 경제를 발전시키려면 불가피한 희생이지 않을까.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그러나 에너지광산국장이 보여준 한 장의 지도는 머리를 혼란스럽게 했다. 싸이냐부리댐에서 생산된 전기를 공급하기 위한 송전탑 건설 계획도였다. 댐에서 시작된 송전선의 종점은 라오스의 어느 지역이 아니었다. “댐에서 생산된 전기는 우리가 사용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씁씁한 표정을 짓는 그는 태국 국경으로 넘어 이어져 있는 송전선을 가르키며 이야기했다. 싸이냐부리댐은 태국 남부의 산업단지에서 필요한 전기를 공급하게 예정인 것이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라오스 수도, 위양짠(비엔티엔)에서 만난 한 국제 NGO의 활동가(혹시 모를 라오스 정부와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서 익명을 요구했다)는 우리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그는 여러 댐 건설계획을 막아낸 태국 시민사회의 강력한 투쟁력이 빚어낸 딜레마를 이야기해줬다. 태국전력회사는 태국 국경 안에서 댐 건설이 어려워지자 이웃 나라 라오스에서 댐 건설을 추진하게 되었고, 그 중에 하나가 싸이냐부리댐이라는 것이다.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없는’ 라오스는 순응적이기 때문이다. 그 댐은 태국 자본에 의해서 건설되며 그로부터 생산된 전기도 거의 대부분을 태국에서 소비하게 된다는 것이다.

라오스 중앙정부는 수자원을 이용을 허용한 대가로, 태국전력회사로부터 얼마간의 지원금과 이익을 공유하게 될 것이라고 알려줬다. 그리고 이것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다. 라오스의 메콩 지류에 건설된 여러 댐들이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건설되며, 많은 경우 이웃한 국가(중국, 베트남, 태국 등)의 소비를 위해서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방식의 자원 수탈이라고 해야 하나. 이 가난한 나라의 관료들은 그 돈이나마 사회개발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 메콩 본류에 처음 건설되기 시작하는 싸이냐부리 댐 예정지. 댐 건설에 쓰일 철제 바지선을 만들기 위해서 시설과 태국 노동자들이 보인다. ⓒ 사진제공: 한재각

메콩 위로 짙게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고, 3시간 이상을 메콩을 따라 내려온 배는 드디어 아름다운 도시 루앙파방로 들어서고 있었다. 짙은 어둠 속에 휘황찬란하다고 할 전기 불빛이 꽃처럼 여기저기 피워 있었다. 전기가 들어가지 않는 메콩 강변 산골 마을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우리는 그 불빛이 예사롭지 않다. 그 산골 마을의 사람들이 전기를 어떻게 쓰고 있는지, 아니 대다수의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누구든 그럴 것이다.

그날 새벽 일찍, 메콩을 거슬러 올라가는 로컬 보트를 탔다. 관광객이 탈만한 것은 아니었다. 겨울 방학을 맞아서 고향 마을로 돌아가는 두 명의 학생들과 그 마을에서는 전기를 어떻게 쓰는지 한참을 이야기하는 사이에, 우리가 내려야 할 마을에 도착하였다. 배는 강변 모래 사장에 아무렇게 우리 일행을 내려다 놓고 요란한 모터 소리를 감추며 멀어져 갔다. 표류하다 겨우 도착한 무인도 마냥, 어찌해야 할 지 난망했다. 마을은 어디에 있을까. 우리가 만나야 할 이는 어떻게 찾아야 할까.

가파른 모래 사장 위쪽에 건물 지붕이 하나 보이고, 아이들 몇이 갑작스런 방문객이 신기해서 조심스럽게 쳐다보고 있었다. 무작정 올라가니 갑자기 찌린내가 코를 찌른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 마을에는 화장실이 없고, 모두 마을 밖 숲에서 해결한단다. 사정이 이러니 전기 쪽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위양짠의 교육부 공무원은 자신이 태어난 곳이라며 이 마을을 소개해줬고, 그곳 초등학교의 여선생님을 만나 마을 사정을 들을 수 있었다. 칠십 가구가 사는 이 마을에서 전기를 쓰는 집은 두 곳이라고 했다.

전기를 쓴다고? 그럼 전력선이 들어온다는 이야긴가. 그녀는 이 마을에 전기가 들어올 계획은 없다고 했다. 뱃길 이외에 마을로 연결되는 육로가 없기 때문에 전력선을 연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두 집에서 쓴다는 전기는 어디서 나는 것일까? 이미 낯선 방문객을 구경하기 위해서, 여선생님의 학생들일 것이 분명한 동네 꼬마들이 모두 몰려들어 있는 상황이었다. 그 중에 꼬마 네명이, 몇 달 후에 출산할 예정이라는 여선생님을 대신하여 우리에게 그 비밀을 알려주기로 했다.

꼬마들을 길잡이 삼아 마을 뒤쪽의 조그만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니, 멀리서 윙 거리는 소리와 함께 하늘색 파이프관이 보였다. 이야기로만 들어본 적이 있었던 초소수력(pico-hydro power) 발전기였다. 졸졸 거리며 흐르는 물을 가두는 댐―이것도 댐이라고 불러야 할까 싶지만―을 만들고, 아래 쪽에 설치한 두 대의 발전기까지 낙차를 이용하여 물을 내려보내서 그 힘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것이다. 이게 이 마을에 전기 불빛을 주는 녀석이구나. 기특했다.

이 전기를 쓴다는 두 집 중에 한 곳을 찾아갔다. 이 마을은 라오스 정부의 정책으로 고산지대에 사는 이들이 산에서 내려와 정착한 곳이라고 했다. 모두 가난한 이들이다. 그러나 전기를 쓰는 이들은 평야 지역에 살았던, 라오스에서 지배적인 종족에 속하는 이들이었다. 이런 초소수력 발전기가 있다는 사실도, 그것을 사서 설치할 지식과 기술도, 무엇보다도 이들의 경제력 수준에서 비싼 비용을 빌릴 수 있는 사회적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능력도 네트워크도 없는, 대부분의 고산족들은 감히 전기를 쓸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 마을에 전기를 도와줄 수 있을까.

▲ 루앙파방에서 배를 타고 3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외딴 마을. 70가구 중 2가구에게 전기를 공급하고 있는 초소수력 발전기(pico-hydro power) ⓒ 사진제공: 한재각

라오스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개발도상국에는 농촌에 거주하는 인구가 대단히 많지만 그들에게 전기를 공급할 만한 경제적 능력이 부족하다. 많은 개발도상국에서 농촌 전기화(rural electrification) 사업은 중요한 과제이지만, 지리적 조건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이들에게 전기를 공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전봇대를 박고 전력선을 연결하는 일이 경제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라오스보다 경제적 수준이 나은 태국과 같은 곳도 마찬가지다.

2004년 태국 정부는 전기 공급이 되지 않는 외딴 지역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서 독립형 태양광 발전시설을 공급하였다. 가정용 태양광 시스템(Solar Home System:SHS)이라는 것으로, 한 집에서 전등 두 개와 TV 정도를 켤 수 있는 용량의 태양광 패널과 제어기, 그리고 축전지로 구성된 것이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어디나 있을 법한 관료적 일처리 방식으로, 설치가 잘못되거나, 고장난 것에 대한 A/S가 부족하고, 무엇보다도 이것을 관리․운영할 기술인력에 대한 교육을 하지 않으면서 많은 태양광 발전기가 고장이 났다.

다행스러운 일도 있다. 태국과 버마 국경 지역에서 흩어져 살면서 분쟁을 겪고 있는 카렌족을 지원하던 NGO들의 일부가 이 문제에 주목하였다. 국경그린에너지팀(BGET)이라는 NGO는 이미 버마 국경 지역의 반군 야전병원을 위해서 태양광 발전기를 공급하고 기술인력을 훈련한 경험이 있었다. 또한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국경 지역의 마을에 초소수력을 이용하여 전기를 공급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기도 했다. 이들이 태국 정부가 방치해놓은 가정용 태양광 시스템의 부품을 교체하고 이를 관리운영할 기술인력을 훈련시키는 일을 떠맡았다. 태국 국내외의 단체들이 재정적으로 그들을 도왔다.

개발도상국에서 농촌전기화 사업을 위해 태양광이나 초소수력과 같은 재생에너지를 이용하는 일은 이제 특이한 경우가 아니다. 세계은행이나 아시아개발은행과 같은 곳에서도 재생에너지를 이용한 농촌전기화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중앙집중적인 전력망 건설은 경제적으로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이용할 수 있는 태양광이나 수력 에너지 자원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농촌전기화사업을 위해서 재생에너지 설비를 어떻게 공급하고 관리운영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태국 정부처럼 선심성으로 설비를 뿌리고, 이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투자는 소홀히 하는 문제를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가지 대안을 방글라데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라민 은행은 태양광 시스템을 보급하는 자회사를 가지고 있다. 그라민 샥티(‘샥티’는 에너지란 뜻이다). 이 회사는 그라민 은행의 마이크로 크레딧 방식을 활용하여 태양광 설비를 설치하는데 필요한 돈을 빌려주고, 이를 설치한 가정은 그동안 등불을 켜기 위해서 지불한 등유 구입비용을 아껴서 매달 돈을 갚도록 했다. 또한 전기불을 켜서 일할 수 있는 시간을 연장하여서 얻은 수입의 일부를 이용하면, 돈을 갚아야 할 시기는 더욱 단축되고 얼마 후에 태양광 시스템은 자신의 것이 된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라민 샥티는 전국 각지에 가정용 태양광 시스템을 공급할 뿐만 아니라, 이에 대한 운영․관리를 위한 기술인력을 교육할 기술센터를 설립하였다. 교육을 받는 이들의 상당수는 여성으로서, 이들에게 새로운 교육 및 직업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태양광 발전기에 들어가는 설비의 일부를 방글라데시에서 조립․생산하도록 하면서, 국내 산업을 형성․발전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와 비슷한 일은 라오스의 ‘선라봅(Sunlabbo)'이라는 일종의 사회적 기업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 태국 북서쪽, 탁(Tak)주(州)의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BGET가 진행하고 있는 태양광 발전설비 관리운영 교육 모습. ⓒ 사진제공: BGET

녹색성장을 이야기하는 한국 정부는 녹색 ODA를 늘리겠다고 천명하고 있다. 2008년에는 도쿄에서 열린 G8에서 동아시아 기후파트너쉽 계획을 발표하면서, 2012년까지 2억불(2천억원)을 개발도상국에서 지원하겠다고 약속하였다. 환영할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녹색ODA'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하지 않다. 또한 기본적으로 포함될 것으로 보이는 재생에너지 지원을 어떻게 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 충분한 경험도 없다. 이에 대한 토론도 부족한 상황이다. 스리랑카에 지원하기로 한 500KW급의 대규모 태양광 시설, 캄보디아 시골 마을에 지원하기로 한 독립형 태양광 시설 등, 여러 사업이 동아시아 기후파트너쉽을 통해서 지원되고 있다. 혹시 태국 정부의 실패를 반복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사회적 관심이 필요한 상황이다. (계속)

한재각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부소장  hancl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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