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사람이야기 사람과 교회 단신
‘베드로의 통곡’과 ‘짐승의 시간’을 잊지 말자고 김근태 의원의 서거를 추모하며
김경재 고문 (한신대 명예교수) | 승인 2011.12.31 10:00

타협보다는 원칙을 중요시했던 정치가, 불의한 강자에게는 강하되 고난당하는 약자에겐 따뜻했던 진정한 정치인 김근태 의원(1947-2011)이 2011년 12월30일 서거했다. 그를 가까이 대한 정치계 사람들은 그에게 ‘국제신사’라는 별명을 붙였다고 들었다. 신학교 교수인 필자에게는 김근태 의원과 개인적으로 가깝게 사귀며 지낸 영예는 없지만, 멀리서나마 그를 존경하고 아끼고, 큰 일물로서 한국정치를 제대로 이끌 잠룡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그 기대와 꿈을 다 이루지 못하고, 1970-80년대 민주화투쟁기간에 당한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문후유증으로 26년간 시달리다가, 64세의나이로 일찍 타계하고 말았다. 필자보다 나이는 7년 아래이지만, 나는 진정으로 그를정치인으로서 존경하고 사랑했다.

종종 이런 저런 모임에서 김근태 의원을 만날 때 느낀 소감은, 진정한 ‘외유내강’의 사람, 맘이 따뜻한 정치인, 겸손한 정치인, 뜻이 올곧고 지조를 굽히지 않으나 인간이란 존재는 한없이 나약할 수 있음을 경험을 통해 아는 정치인이라는 느낌이었다. 그에겐 정치가에게 흔히 느껴지는 영악하고 권모술수에 능하고 자기 밥그릇을 먼저 챙기는 모사꾼의 냄새가 풍기지 않았다. 그는 인간의 연약함과 위대함을 동시에 아는 사람 같았다. 나는 저와 같은 사람이 한 나라의 큰 정치를 맡았으면 백성이 좀 편하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약육강식과 권모술수가 판치는 부정적 정치세계에 발을잘못 들여놓은 사람 같기도 했다.

세상적인 눈으로만 본다면, 경기고와 서울상대 출신의 엘리트 교육을 받은 자요, 세상이 독재자 앞에 벌벌 떨던 시대였던 30대 중반엔 ‘민주화운동 청년연합’ 초대 의장과 2대 의장을 연임했고,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시절 잠시 서울의 봄이 오자 도봉갑에서 3번이나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열린우리당 당의장과 보건복지부장관 경험까지 했다면 그의 정치가로서 일생이 실패와 좌절의 역사라고만 말 할 수 없겠다. 그러나 그는 양심적이고 신사도를 지키며, 단합된 민중의 힘을 믿었던 민주주의 신봉자였기에 현실정치 파워게임 현장에서는 어딘가 안 어울리는 ‘정치계의 알바트로스(바보새)’였는지 모른다.

그의 서거소식을 접하고 맘이 아프지만 아름답게 다가오는 것은 그의 정치적 업적이나 미래 한국에 대한 정치적 비전이라기보다는 1985년 법정에서 그가 했던 증언의 말, ‘짐승의 시간’이라고 고백했던 양심고백적 증언이었다. 김근태 의원은 1985년 전두환 군부독재치하에서 당시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 끌려가 몽둥이 구타, 물고문, 전기고문 등 인간한계상황을 초과하는 육체적 정신적 극한 상황에 날마다 직면했다. 그때를 회상하며  인간존재가 감내 할 수 있는 한계에 대하여 진솔한 증언을 했다.

“알몸으로 바닥을 기면서 살려달라고 애원하며 빌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고 그들이 쓰라는 조서내용을 보고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청년들과 민주인사들과 죄 없는 시민들이 오늘의 MB정권에서 보는 ‘알량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이름도 없이 고문을 당하고, 피를 흘리고, 생명을 바치고, 청춘을 바쳤던가? 김근태 의원이 법정에서 했던 양심고백인 ‘짐승의 시간’을 민주운동시기라는 과거사의 한 에피소드로 이야기하는 것에 대하여, 우리는 내면의 저항과 역사를 너무 쉽게 망각하는 현실적 시민철학에 소스라치게 놀라고 반성해야 한다. 오늘 산자들 모두는 인간성의 이기적 속성과 동물적 생존욕구에 매몰된 자화상을 부끄럽게 반성해야 한다.

짐승 같은 고문전문가들이 내몬 극한상황의 고문 앞에서, 김근태의 인간 양심은 ‘짐승같이’ 신음하며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빌지는 않았지만, 양심의 의지적 지배를 이탈한 김근태의 감각적 육신은 결국 그렇게 한 셈이었다는 것을고백했다. 그것은 작은 여자 아이가 베드로에게 예수도당에 속한 한패라고 지적 할 때, “나는 아니다. 맹세코 나는 저 예수를 아는바 없다”고 스승을 배반하고 돌아서서,세 번이나 모른다고 했던 자신의 비겁함과 연약함을 스스로 용서하지 못해 통곡하고 울었던 ‘베드로의 통곡’보다도 훨씬 더 절박한 한계상황인 ‘짐승의 시간’에 대한 고백인 것이다.

김근태 의원의 인간 승리는 사육신처럼 끝까지 ‘짐승 같은’ 시간을 잘 견디어낸 영웅적 면모에 있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이 땅의 민주화와 인권운동과 노동운동 시기에 끌려가서 비슷한 고문을 당하고 난 후, 자신의 나약함과 배신을 용서하거나 가족이나 대중 앞에 고백하지 못한 채, 스스로 자폐증 환자처럼 안으로 기어들어가 폐인이 되거나 세상을 은둔해 버리고 말았다. 김근태 의원의 위대성은 스스로 ‘짐승 같은’ 시공간에서 한 마리의 연약한 짐승이 되었음을 용감하게 양심고백 함으로써, 좌절하지 않고 불의와 죄악을 끝까지 은폐하려는 더러운 권력과 인간악 앞에 당당하게 맞서 투쟁을 이어갔다는 점에 있다. 우리는 그 점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그냥 과거사의 하나라고 넘어가서는 안 된다. 김근태라는 한 인간이 온 몸으로 역사를 진보시킨 진정한 투사가 된 것은 ‘짐승의 시간’ 체험과 고백 이전의 영웅 같은 정치투쟁만이 아니라, 도리어 그 이후에 했던 그의 진솔한 삶의 용기와 진실과 정의를 위한 투쟁 때문이었음을 말하고 싶다. 김근태에게 ‘로버트 케네디 인권상’(1987)과 독일 함부르크 자유재단이 ‘세계의 양심수’(1988)로 선정 표창한 것을 과거사에 대한 표창이라고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 두 상이 가지는 의미는 어느 자격미달의 대통령이 한 시대를 집권한 정치적 영예보다도 훨씬 더 가치 있고 항구적인 것이다.

김근태라는 한 정치인의 위대성은 어디 있는가? 그 사람처럼 독재권력에 의해 고문으로 당하고 ‘짐승 같은’ 존재경험을 했던 사람들은 정치행위의 무의식 속에 복수심, 증오심, 인간성 부정, 폭력숭배, 민주적 절차 부정에로 빠져들기 십상인데, 그는 끝까지 ‘민주주의’의 가치와 필요성을 알고 신념으로 지켜간 사람이었다.

그의 생애 마지막 부탁의 말이라 전해지는 것은 이렇다.

“최선을 다해 참여하자. 오로지 참여하는 사람만이 권력을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권력이 세상의 방향을 바꿀 것이다.”

이 시대에 이 말 보다 더 귀중한 말이 또 있을까? 김근태 의원의 마지막 부탁의 말을 새김질 하다 보니, 20세기 위대한 기독교 윤리학자 라인홀드 니버의 말이 생각난다.  “정의를 위한 인간의 능력이 민주주의를 가능케 하고, 불의를 위한 인간의 경향성이 민주주의를 필요로 한다.”

새 날이 샌다. 날이 밝으면 서울대학교 장례식장 분향소를 찾아가 김근태 의원에게 작별의 인사를 드려야겠다. 들고 가는 손에는 흰 국화꽃 한 송이 대신 ‘임을 위한 행진곡 가사’를 가지고 가서 분향하고 절해야겠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 동지는 간곳없고 깃발만 나부껴 /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라 /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끝없는 함성 /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2011.12.31. 새벽)

김경재 고문 (한신대 명예교수)  jacobjae@chol.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 19 한국기독교회관 503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3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