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봄 날씨 덕에 꽃들이 만발해 마음마저 설레게 하던 토요일 오후. 제가 사용하고 있는 장애인용 전동 스쿠터라도 타고 가까운 화계사라도 가고 싶었지만, 서울역 바로 옆에 위치한 한국철도공사 서울지역본부를 찾아갔습니다. 파업을 시작한 지 벌써 50일을 넘기고 있는 KTX 여승무원들을 찾아 사정도 들어보고 인터뷰도 할 겸 해서 말입니다.

▲ 농성장 입구에 붙어 있는 투쟁 구호와 문구들이 여느 농성장과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그동안 KTX 여승무원들은 제 기억 속에 늘 친절하고 밝은 미소로 일반 승객들뿐만 저 같은 장애인들에게 더 편안함을 선사했던 것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건물까지 점거하고 파업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참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남자들도 파업이나 농성이 장기화 되면 몸에 무리가 생기고 병도 생기는데, 특히 여자들은 더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입니다.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찾아간 서울지역본부 건물은 인천공항으로 연결될 지하철 공사가 한창이어서 목발을 짚고 걷기에는 위험스러움을 무릅쓰고 건물 안으로 들어서야 했습니다. 예상했던 거와는 다르게 겉모습은 여느 농성장과 다를 것이 없어 보였습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처음으로 눈에 들어온 광경은 차가운 건물 맨 바닥에서 지내고 있는 상황이라 은박으로 된 스티로폼 자리들이 사람 하나 지나다닐 통로를 제외에는 빼곡하게 깔려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어떻게 잠을 잘까 하는 걱정도 했지만, 이리 저리 둘러보니 개인 침랑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토요일 오후 햇살이 좋아서인지 여기 저기 침랑에 햇빛을 쏘여주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또 여기저기 간단한 음식 정도는 해먹을 수 있는 주방 기구들도 흩어져 있기도 하고 신발을 놓아두는 공간도 종이박스로 아담하게 만들어 놓기도 했습니다.

▲ 농성장에서 만난 정혜인 씨는 농성이 장기화되어 힘든 것도 있지만, 국회에서 연행되었다가 생전 처음 가본 유치장 경험이 더 놀라고 힘들었다고 합니다.

이리저리 둘러보고는 KTX 여승무원 부산지부장이었던 정혜인(26세) 씨와 몇 마디 나누게 되었습니다. 처음 이곳으로 올 때는 380명이 함께 들어왔는데, 이런 저런 사정으로 80명은 중도 하차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300명이 계속해서 농성 중이라고 했습니다.

농성이 길어지고 맨 바닥에서 생활하다보니 특히 여자 분들이기에 하혈을 하는 분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것도 생리대가 모자랄 정도로 말입니다. 그리고 “어깨나 허리가 많이 아프다고 호소한다”고 합니다. 한 마디로 골병이 들어 몸이 아픈 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국회에서 농성을 벌이다가 연행되어 어제까지 경찰서 유치장 있다가 석방되어서 많이 당황하고 놀랐다고 합니다. 태어나서 경찰들과 그렇게 직접적으로 몸을 부대낄 일이 없었던 여승무원들이 대부분이고, 거기에 유치장은 근처도 안 가본 처지들이라 더 그랬다고 합니다. 많이들 울었다고 합니다. 유치장에 들어서면 핸드폰이나 귀금속, 윗 속옷, 스타킹 등을 벗고 수색을 받아 수치심 때문에라도 더 많이 울었다고 합니다.

▲ 맨바닥에 깔려 있는 스티로폼 위에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침랑을 따뜻한 봄 햇살에 말리고 있었습니다.

아무런 해결책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그런 일까지 당하게 돼 더 많이 힘들었다고 합니다. 거기에 새로 채용된 180명의 여승무원들이 5월1일부터 근무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허탈하고 마음이 무겁다”고 지금의 분위기를 전해 주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될지 막막하다고 속을 털어놓는 분들도 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비정규직은 열등한 사람의 몫이고, 노동자는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람들이라고 하는 생각이 바뀌고, 일하는 사람이면 모두가 노동자라는 신성하기까지 한 노동자 의식을 가지게 되었다고 고백하더군요. 거기에 파업이나 농성은 빨갱이나 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마지막 몸부림이라는 사실까지.

몸도 마음도 힘들어서 그래서였는지, 제가 찾아간 토요일 오후에 작은 체육대회가 건물 옆 좁은 공간에서 열렸습니다. 배드민턴, 훌라후프 돌리기, 제기차기 등 작은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종목들로 이루어진 행사였습니다. 물론 큰 상품은 아니지만, 선물도 준비되어 있더군요.

▲ 농성한지 50여일이 지나면서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 있었지만, 처음으로 함께 한 작은 체육대회에서 환한 모습으로 웃고 있었습니다.

아프고 힘들 텐데 체육대회 때문에서인지 밝은 표정의 얼굴들이 보기 좋았습니다. 서로 장난도 치고 즐겁게 운동에 열중하면서 그동안 쌓여 던 아픔들과 스트레스를 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가로이 토요일 오후를 즐길 수 있는 날이 언제였던가 하는 말들도 여기저기에서 하더군요.

그러다가 운동하던 분들을 괜스레 붙들고, “혹시 기독교인이 있으면 한 명 소개해 주세요.” 그리고선 어렵스레 찾아낸 명하영(26세) 씨에게 건넸던 말. “교회에서는 하영 씨가 농성 중인 거 아세요?” 무슨 심보 때문에 제가 하영 씨에게 이런 말을 했을까요? ‘교회가 이들을 돌보지 않는 것 같아 혹시나 섭섭해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물어보았던 것 같습니다. 섭섭함은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아직 여승무원들의 투쟁에 연대하고 있는 인권단체나 운동단체는 없다고 합니다. 도시 노동자라서 그럴까요? 비록 자회사라고 하지만, 정규직이라는 꼬리표가 붙어서 그럴까요? 하지만, 이들도 노동자이고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 체육대회가 열렸던 곳이 작은 공간이라 할 수 있는 운동이 몇 가지 없었습니다. 줄넘기, 훌라후프 돌리기, 배드민턴, 제기차기 등.

이정훈 기자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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