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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인권과 해방을 위해 힘쓰는 이들을 대신해서 받은 상”마틴 루터 킹 목사 기념 퍼레이드 ‘그랜드 마샬’ 이해학 목사 인터뷰
편집부 | 승인 2012.02.28 15:48

 

   
▲ 미국에서 매년 1월 셋째주 월요일은 마틴 루터 킹 목사를 기리를 퍼레이드가 펼쳐진다. ㅣ 사진제공 이해학 목사

지난 116(현지시각) 미국 LA 마틴 루터 킹 주니어 거리에서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 1929.1.15.~1968.4.4.)목사의 생일을 기념하는 퍼레이드 행사가 열렸다. 27회를 맞는 이 행사는 미국 전역에서 펼쳐지는데 그 중 100만 명이 넘은 인파가 몰리는 LA 퍼레이드가 규모면에서는 최고이다. 보통 카퍼레이드 리더를 그랜드 마샬이라고 칭하는데 이해학 목사(NCCK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주민교회)2012년 마틴 루터 킹 목사 기념 퍼레이드에 인터내셔널 그랜드 마샬로 초청되어 행사에 참여했다.

 
   
 
퍼레이드 행사에 참여했던 소감과 특히 은퇴(31일 주민교회에서 원로목사 추대식을 갖는다)하면서 느끼는 소회를 듣고자 217일 여의도에 위치한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사무실에서 이해학 목사를 만났다.
 
 
행사에 참여하게 된 경위는
 
처음 행사 주최 측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을 때는 나대신 다른 사람을 추천하겠다고 사양했다. ‘우리나라에는 마틴루터킹 목사이 정신으로 살아가는 인권운동가들이 많다.’며 문정현 신부, 김진숙 지도위원, 한상렬 목사 등을 언급했지만 결국 나로 귀결됐다. 행사 주최 측에서 나를 추천한 이유는 킹 목사와 같은 목사라는 점과 민주화, 통일운동을 통한 수차례 투옥, 이주노동자들 인권을 위한 노력, 강제병합 일본에서 피해 받은 희생자들의 인권보호 운동 등 종합적으로 볼 때 내가 적합하다는 판단하에 수락청탁이 들어왔다. 그렇게 해서 결국 내가 LA에 가게된 것이다. 가서보니 생각했던 것 보다 대단한 행사였다. 130여개의 단체가 참여하여 행진 대열 자체만 수키로에 달하는 장관을 펼쳤고 그 행진대열 양옆에는 수많은 시민들이 나와 환호하며 킹 목사를 기리는 퍼포먼스에 함께 했다.
 
   
▲ 행사전 리셉션에서 연설을 하는 이해학 목사 ㅣ 사진제공 이해학 목사
   
▲ 이해학 목사는 '마틴 루터 킹 브라보, 프리덤, 리버티'를 외치며 행진했다. ㅣ 사진제공 이해학 목사
미국에는 부활절, 성탄절 말고 두 개의 명절이 더 있다. 그것은 조지워싱턴과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생일이다. 마틴 루터 킹 목사 생일에는 전국적으로 퍼레이드가 펼쳐지는데 그 중 LA행사가 가장 규모가 큰 행사다. 이 행사에 한국인들이 참여하게 된 계기는 1992LA 흑인폭동 이후였다. 그 사건은 한흑갈등이 심각했던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래리 그랜트라는 친한파 흑인이 이 행진을 우리끼리 하지 말고 한인과 함께 화해축제로 열어가자는 제안을 통해 한인을 비롯한 아시아계 사람들을 인터내셔널 그랜드 마샬로 초청하게 된 것이다.
 
 
행사에 참여하고 난 소감은
 
내가 가끔 꾸는 꿈이 하나 있는데 해방의 행진 대열의 맨 앞에서 횃불을 들고 인도하는 꿈이다. 그 꿈이 이번에 이루어진 것 같아 감회가 새로웠다. 행사를 하기 전 리셉션 자리에서 수락연설을 했는데 나는 한국에는 나보다 훨씬 더 많은 헌신하는 인권운동가들이 있다. 그 분들을 대신해서 왔다고 생각한다. 킹 목사의 정신이 미국과 한국을 넘어 전 세계에서 자유와 해방을 위한 더 큰 행진으로 나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사진제공 이해학 목사
   
▲ 퍼레이드에 참가한 한인들과 함께 ㅣ 사진제공 이해학 목사
기독교인으로서 마틴루터킹 정신으로 살아간 사람을 찾다보니 나로 귀결된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기독교 빈민운동, 민주화 독재반대투쟁, 그로 인한 두 차례 투옥, 통일운동, 재야통일운동의 지도부에 있으면서 기독교 통일운동과의 교류 협력관계를 모색한 점, 통일운동과 관련한 차례 투옥, 과거 일본에 의해 강제동원 되고 희생된 사람들의 인권회복을 위해 노력한 점 등이 인정되어 그랜드마샬로 추대되었다고 본다. 한마디로 우리나라의 빈민들과 억압당하는 소수자들의 친구가 되고자 하는 활동들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금년도에 마틴루터킹 정신으로 살아간 사람으로 인정해주고 행사에 세워줬다고 생각한다.
 
킹목사는 기독교 목사집안에서 자란 엘리트였다. 그 참신하고 똑똑한 젊은 목사가 한 흑인 아주머니의 불의에 대한 항거를 목격함으로 흑인들과 함께 흑인해방, 인간해방의 행진을 시도한 것이 미국사회에 큰 바람을 일으켰다. ‘I have a dream’ 그 명연설은 오늘날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이라는 소기의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도 흑인들은 차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킹 목사의 정신은 현재진행형이다. 킹 목사의 정신은 계승 발전되어야 한다. 지구촌으로 그 정신이 확산돼야 한다는 의지의 표출이 이번 행사인 것이고 그 일에 내가 기수역할을 한 것이다. 내게는 은총이고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위로 받는 때도 있구나.’라는 것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다음에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그 행진에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아직도 LA사회에는 한흑갈등의 불씨가 여전히 남아있다. 1992년 한흑갈등 이후 흑인들이 한국인을 보는 시선은 좋지만은 않다. 같은 소수민족이라기보다는 돈을 많이 벌어 미국 주류사회로 편입된 사람들이라는 시각이 존재한다. 이러한 한흑갈등을 해소하고 화해와 상생의 길로 가자는 노력의 일환으로 킹 목사 기념 퍼레이드에 한인들을 초청하는 것인 만큼 앞으로 한인과 흑인사회에 좋은 소식이 있기를 바란다.
 
 
3월에 은퇴를 하게 되는데 감회는 어떠한지
 
   
 
나는 그간의 목회를 교회목회만이 사역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교회목회와 더불어 다양한 운동 민주화, 통일, 빈민, 외국인 노동자 지원활동 등 모든 과제들이 사역의 장이고 그것 자체가 사역이라고 생각해왔다. 이제 39년간 섬겨온 주민교회를 마무리하게 되는데 내가 하는 사역 중 교회사역만 마무리한다고 생각한다. 그간 해왔던 민주, 인권, 통일운동은 계속 할 수 있다고 본다. 지금까지는 다른 사람들이 안하기 때문에 내가 다양한 분야에 나선 측면이 있지만 앞으로는 내 역량에 맞게 선택과 집중을 통해 활동할 것이다. 어디에 집중할지는 쉬면서 생각할 것이다.
 
은퇴 이후 백두대간을 타면서 그간의 삶도 반성하고 건강회복하고 앞으로의 행보를 정하는 시간을 갖겠다. 영적인 힘이 뒷받침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남은 한 세대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깊은 영적 통찰을 하기위한 시간을 가져야한다.
 
독수리가 40년 되면 발톱도 부리도 휘어져서 짐승을 잡을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죽을 수밖에 없지만 그 때 독수리는 둥지에서 자신의 발톱과 부리를 갈아서 없애고 새로 자라기까지 진통을 겪는다. 그렇게 새 발톱과 부리를 얻은 독수리는 다시 40년을 살아갈 수 있다고 한다. 나도 늦었지만 여생을 위한 새로운 발톱과 부리를 세우는 영적 훈련을 해보려고 한다.
 
 
후배 목회자들에게 당부하고픈 말은
 
내 반성에서부터 시작한다. 두 가지인데 하나는 자기 자리를 끝까지 지키라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다.’라고 생각한 것을 상황이 안 되고 조건이 안 맞아서 포기해버리고 다른 삶의 방식으로 전환시켰던 것이 조금 후회스러울 때가 있다. 예를 들면 빈민들과 함께 더 깊은 가난의 자리를 함께하고 그 자리를 축복의 자리로 만들고 생명의 힘을 끌어내는 빈민운동을 하기로 했다가 정치적 탄압으로 포기하고 정권투쟁으로 전환한 점이 후회된다. 지금은 시대도 많이 달라졌고 옛날처럼 지독한 탄압과 가난한 국면은 넘어섰지만 자기 자리를 지키는 정신은 중요하다. 지금 젊은 목회자들이 이것이 나를 하나님이 부르신 자리라고 생각한다면 그 자리에서 생명의 열매를 맺도록 노력해야한다. 물이 나올 때까지 우물을 파는 심정으로 본디 자신의 자리를 지켜 달라.
 
   
 
 
두 번째는 산파는 산모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산모가 어린애를 낳으러 산파에게 갔다. 산파의 역할은 강심제를 놔주거나 배를 문질러 애가 잘 나오도록 도와주는 역할인데 산파가 자신이 애기를 낳겠다고 낑낑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목회자가 민중의 삶을 대신해버리고 민중의 삶을 자기화해버리는 우를 범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우리의 과제는 사람이 스스로 자기의 길을 찾고 행동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돕는 보조자로서의 역할이다. 민중, 백성, 교인이 삶의 주인이 되게 해야지 목회자들이 그 삶을 대신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그런 부분은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탄압이 심하고 교회가 울타리역할을 했던 시절 그러한 목회자의 활동을 합리화한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교인들이 모든 문제를 껴안고 씨름하는 운동으로 나가야하고 목회자는 돕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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