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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김용민보다 훨씬 더한 독설을 퍼부었다.한국교회에 대한 김용민의 비판은 기독교 본래 정신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다.
류상태 | 승인 2012.04.07 12:45

 1. 내가 만난 김용민이라는 사내에 대하여

   
 
내가 김용민이라는 사내를 처음 만난 건 2005년 여름 어느날이었다. 그는 나에게 정중히 요청했다. “<라디오 21>이라는 인터넷 방송에서 일요일 아침에 한시간 동안 진행하는 설교 프로그램이 있는데, 목사님께서 그걸 맡아주십시오.”

그가 내민 A4용지에는 예닐곱개의 짧은 토막칼럼이 적혀 있었다. “오늘은 처음이라 제가 적어봤는데 괜찮으시다면 이대로 하시면 됩니다. 다음부턴 목사님께서 직접 작성해서 진행해주십시오.” 젊은이는 큰 체구를 굽히며 깍듯이 예의를 갖추어 목사 자격을 상실한 나에게 계속 ‘목사님’이라고 불렀다.

그가 적어준 멘트에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저는 영원히 목사로 남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목사직을 내놓았습니다.” 2004년에 일어난 강의석 사건때 목사직을 반납하고 학교를 떠난 사건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나는 그의 해석이 부담스러웠다. 목사로 살아가는 걸 늘 버거워했던 내가 아니었던가? 자격 미달이라고 스스로 생각했기에 이참에 목사직을 내려놓고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아가게 된 걸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영원히 목사로 남기 위해 목사직을 내놓았다니... 일종의 과대포장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가 적어준 멘트를 그대로 읽었다. 그의 해석이 고마웠고, 그의 배려에 대한 예의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늘 주변의 눈치를 보며 소신껏 목회하지 못한 ‘먹사’였지만 어쨌든 목사로서의 양심을 마지막으로 한번은 지켜냈다고 스스로 생각했고, 목사직은 떠났어도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그의 해석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목사직을 반납한 그 시점에서도 결코 놓을 수 없었던 나의 사명, 내가 죽는 날까지 감당해야 할 소명이 있음을 하느님은 당시 김용민을 통해 확인해 주셨다. 그것은 ‘기독교에 대한 진실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다. 그것을 다시 일깨워준 김용민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한다.

 

2. 김용민은 ‘기독교 자체’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서론이 길었다. 내가 여기서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은, 요즘 언론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김용민 후보의 진실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며, 또한 사람들이 그에 대해 정확히 알고 선택할 수 있도록 자료를 제공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가 했다는 ‘막말’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싶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인간 김용민의 인격을 믿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개인의 해석이고, 다른 사람의 해석과 선택은 별개 문제이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기독교 문제를 떠나서까지 개인 김용민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는 건 아니기에 기독교에 관련된 문제에 집중하고자 한다.

김용민의 신앙과 신념이 7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면, 기독교에 대한 그의 생각을 나는 정확히 알고 있다. 하여 사람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기독교에 대해 ‘한국교회는 일종의 범죄집단이며 척결의 대상’이라고 말했다. 기독교인들의 분노를 살 만한 발언이다. 김용민의 이 말은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범죄집단이며 척결의 대상’이라는 말과 엄청난 차이를 갖는다. 그의 비판은 ‘기독교 자체’가 아니라 ‘한국교회’에 있음을 새겨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일제시대 일본의 신학자인 우찌무라 간조오는 “일본제국이 하루 빨리 패망하게 해 달라.”고 매일 기도했다. 당시 일본인들은 우찌무라가 매국노의 길을 간다고 맹렬히 비난했지만, 이 말과 “일본이라는 나라 자체가 패망하게 해 달라.”는 말과는 매우 다른 것이다. 우찌무라는 군국주의 일본제국이 망하지 않고는 일본의 미래가 없다고 판단했다. 민주주의가 꽃피는 아름다운 미래의 일본이 도래하기 위해서는 하루 빨리 ‘일본제국’이 망해야 한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나 역시 기독교에 대한 비판과 독설을 말과 글로 수없이 뱉어냈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가능하면 ‘현실기독교’ 또는 ‘배타와 독선에 쌓인 기독교’라는 전제를 달았지만, 기독교인들은 현실기독교에 대한 비판을 기독교 자체에 대한 비판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교리기독교를 비판하는 그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기독교 복음의 원형’에 대한 그리움과 그 회복을 염원하는 마음은 가슴 저미도록 내 마음 속 깊이 남아 있다. 김용민의 마음도 나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3. 예수는 당시 종교를 향해 김용민보다 훨씬 더한 독설을 퍼부었다.

다시 말하지만, 최근에 드러난 기독교에 대한 그의 독설은 독선과 배타에 쌓인 교리기독교, 탐욕과 부패에 젖은 현실기독교에 대한 것이지 결코 기독교의 본질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는 점점 더 배타와 독선에 빠져가는 교리기독교에 대해 나와 함께 아파했고, 기독교 복음의 원형이 갖는 아름다움과 매력에 대해 함께 그리워했다. 그가 나에게 내민 <류상태의 아침편지>라는 프로그램은 그런 그의 고심의 산물이었으며 기독교의 가치 회복을 위한 ‘예수 사람’으로서의 그의 몸부림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가 한국의 주류 교회들이 보이는 무모한 욕심과 배타, 사회 갈등 등을 싫어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 그는 현실기독교에 절망하고 있으며 척결대상이라고까지 말했다. 하지만 그건 예수님이 껍질에 쌓인 형식적인 유대교를 맹렬히 비난하고 싫어했지만 종교의 영성 자체를 부인한 것이 아닌 것과 같다.

김용민을 비난하는 시민들과 기독교인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한국의 주류 교회들이 보이는 배타와 독선, 재물의 사용, 부의 축적, 교회 세습, 건물짓기 경쟁 등의 작태에 대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가? 예수는 당시 ‘보수 정통’이었던 종교지도자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욕을 했고, 회칠한 무덤 같다고 비난했다.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의 상을 뒤집어 엎는 ‘행패’(?)를 부렸다. 김용민은 그런 예수님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한국 교회를 사랑하는 기독교인들이여,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라. 한국 교회의 오늘을 만드는 데 일조한 당신은 진정 기독교인으로서 하느님 앞에, 또한 예수님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가... 정녕 그렇다고 자신할 수 있다면 김용민에게 돌을 던져도 좋다.

류상태  sham5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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