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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루, 오클로스 ≠ 민중, 떠돌이 신학을 말하다.문동환 목사 인터뷰
편집부 | 승인 2012.04.21 00:38

92세. 근 한 세기를 살아온 노신학자임에도 세상과 교회를 향해 하고픈 이야기를 책에 담아  내고 노구를 이끌고 강정에 가서 평화를 위해 기여를 하고 싶어 하는 마음만은 열혈청년 못지않은 문동환 박사(한신대 기독교교육과 명예교수)를 만났다. 미국 뉴욕에 거주하다 지난 16일(월) 귀국 후 이미 몇몇 행사에 참여하며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고 벌써 7월까지의 일정을 염두에 두고 지인들과 일정을 조율 중에 있는 문 박사는 농촌에서 공동체운동을 하고 있는 곳에 방문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 인터뷰 중인 김희헌 본지 편집위원장과 문동환 박사ⓒ에큐메니안

다음은 20일(금) 오전 상도동에 있는 자녀의 집에서 가진 인터뷰 전문이다.

 

Q. 한국에는 어떠한 일정으로 오셨는지?

A. 내가 몸담았던 한신대 기독교교육학과 30주년 행사 참석하고 지역에 있는 농촌공동체를 순방하고 싶어서 귀국하게 됐다. 새 내일은 농촌에서 이뤄져야한다고 생각하는데 농촌의 공동체 운동들이 어떻게 진행되고 과제는 무엇이고 그들의 꿈이 뭔지 알고 싶다. 새 내일이 오자면 앞으로 생명문화공동체가 이룩돼야하는데 공동체간의 연계를 통해 더불어 새로운 생명문화가 창출해야한다. 새벽의집 공동체 시절부터(1970년대) 나는 산업문화는 죽음의 문화라고 생각했다. 산업문화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도시에서 생명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농촌에서 그곳에 맞는 교육과 문화를 만들어내야 한다. 이른바 도시산업문화로부터의 탈출문화이다. 지난 시절 수감생활과 정치활동 등 많은 문제와 준비 부족으로 이 일을 진행하지 못하다가 지금이라도 시작하려고 한국에 들어오게 됐다.

 

하비루, 오클로스 ≠ 민중, 떠돌이 신학을 말하다.

Q. 5월에 출간하는 선생님의 새 책 <바벨탑과 떠돌이>에 대한 이야기를 부탁드린다.

A. 교육하는 사람으로서 민중 신학에 의거한 교육 과정론을 만들고 싶었다. 민중이 어떻게 역사의 주체가 되는가에 대한 과정 말이다. 안병무 박사는 봉화처럼 터져 나온다고만 말했지 어떻게 그리 되는지의 과정은 얘기하지 않았다. 나는 교육하는 사람으로서 그 과정을 알아야한다고 생각했다. 정계은퇴 후 미국에서 신학공부를 다시 시작했는데 그 결과 민중이란 개념이 모호하다는데 이르렀다. 민중신학에서는 출애굽기의 하비루가 민중이라고 이야기하는데 하비루가 어떻게 민중이 되는지의 과정이 모호하다. 안 박사는 복음서의 오클로스가 민중이고 역사의 주인이라는 말만했지 어떻게 주인이 되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나는 하비루나 오클로스는 한국에서 말하는 민중이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렸고 그 대신 ‘떠돌이’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모세를 비롯한 하비루들은 출애굽 이후 미디안 광야 40년의 과정을 통해 새로운 대안을 찾기 위한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고 그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가나안이라는 새로운 것을 향해 나아간다. 예수시대의 경우에도 암하렛츠, 오클로스는 희망 없는 사람들이다. 한(恨)만이 남아있는 그곳에 예수가 태어났고 광야 40일 금식과 시험을 통해 소유와 지배, 종교권력이라는 악의 정수를 명확히 본 것이다. 이처럼 지금도 산업문화의 악을 명확히 보고 그것을 거부하고 새로운 생명문화를 창출해야한다. 이것이 책에서 이야기하고자하는 떠돌이 신학의 주된 내용이다.

   
▲ ⓒ에큐메니안

“모세와 예수가 하비루,오클로스와 씨름 했듯 나는 뉴욕 밑바닥에서 만난 떠돌이들과 씨름한다.”

Q. 해방과 민중에서 생명과 공동체로의 패러다임의 전환은 선생님의 삶과 학문가운데 어떠한 변화를 통해 가능했는지 말씀해달라.

A. 간도에서의 어린 시절 할머니와 어머니가 말씀하시길 “우리가 밥 지어 먹이지 않은 독립군은 없다.”할 정도로 기독교와 독립운동이 합쳐진 문화 속에서 자랐다. 어려서부터 “나라와 민족을 위하지 않은 삶은 헛된 삶”이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교육받으면서 왔고 김약연 목사의 삶에 감동을 받아 일찌감치 목사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1950년대 프린스턴 유학시절 역사적 예수를 알면서 젊은 시절 가져왔던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에 대한 의구심이 풀렸고 이후 해방신학과 민중신학, 동학사상에 심취하게 됐다. 나는 이러한 정신을 토대로 한국의 농촌에서의 교육운동을 꿈꿔왔고 학계에서는 민중교육운동을 벌여오기도 했다. 은퇴 후 미국으로 돌아가 살면서 뉴욕 산업문명 속에서 민중과는 다른 수만 명의 ‘떠돌이’들을 발견했다. 그들은 아무런 희망 없이 아우성을 치고 있었고 나는 하나님이 이들과 함께 하시는구나 깨달았다. 하비루와 오클로스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삼고 그들과 함께 씨름했던 사람이 모세요, 예수였다면 나는 떠돌이인 그들과 씨름해야겠구나 결심했다. 내 신학이 새롭게 발전되고 교육학적으로 이들을 섬기는 길은 바로 이런 것이구나 깨닫게 된 것이다.

Q. 그러한 열정을 촉발시켰던 원초적 경험은 어떤 것이었는지 말씀해 달라.

A. 밑바닥에서 만난 아우성 소리들이다. 만주시절 피난민들의 아이들을 국민학교 교사로서 가르친 적이 있다. 한겨울에도 맨발에 초신을 신고 학교에 온다. 아이들의 얼굴이 언 감자 같았고 아이들의 말은 싸움하는 말이었다. 나는 그 아이들의 얼굴에서 웃음을 보고 싶었다. 우여곡절 끝에 아이들의 마음이 열리고 하나 둘 아이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환하게 피어났다. 이후에는 아이들이 나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놓지 않는 정도가 됐다. 해방이후에도 서울에서 여중생들을 가르치던 경험이 있었는데 그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아픔을 내 몸으로 경험해야하고 그 아픔이 내 아픔이 되어야한다. 그들과 아파해야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내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

“Look at beautiful couple!”

Q. 아내이자 동지인 사모님과의 로맨스에 대한 이야기를 부탁한다.

A. 미국유학생활 8년간을 외롭게 살다가 박사논문을 쓰던 중 폐병으로 2년간 투병생활을 하게 됐다. 당시 나는 남자로서 별 매력이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나에게 추파를 던지는 미국여인들이 있었다. 퇴원 후 돌아간 학교에서 아내를 만나게 되어 사귀게 됐다. 당시 나는 38세였는데 15살 연하인 23세의 아내에게 프러포즈를 한 것이다. 당시 아내는 미국에서 흑인해방운동에 열심인 정의감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결혼 후 아내는 한국에 와서 한복을 입고 한국 사람처럼 살려고 노력했다. 내 50년 결혼생활은 한마디로 서로를 위한 깊은 배려라고 말할 수 있다. 수감생활을 하는 과정에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배려하는 마음을 놓지 않았다. 지금도 밖에 나가면 손잡고 돌아다닌다. 그러면 주위에서 “Look at beautiful couple!”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 문동환 박사와 부인 문혜림(페이 문, 본명 : 헤리엇 페이 핀치벡)사모ⓒ에큐메니안

Q. 요즘 한국교회의 부정적인 시각이 많은데 한국교회의 절망과 희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A. 나는 한국교회에 대해서 절망했던 사람이다. 한국교회는 산업문화 지향적이다. 그러다보니 교회는 예수의 전통과 매치되지 않는다. 고쳐보겠다는 여러 시도들도 결국엔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 것이다. 미국의 산업문화는 중산층을 위한 역사이다. 중산층은 산업문화에 안주하는 계층이다. 여기서 어떻게 새것이 나올 수 있겠나? 애굽 노예들이 모세에게 반대한 이유가 바로 그것과 같다. 예수도 그래서 도시로 가지 않은 것이다. 

Q. 1990년대 이후 성장주의에 빠진 한국교회는 결국 비판의 대상이 돼버렸다. 이후 희망의 징조들은 어디서 찾을 수 있나?

A. 내가 김대중을 도왔던 것은 민주주의를 위한 측면이었다. 그러나 그 시절 경제적인 면에서는 산업문화의 물결이 얼마나 심각 했나. 거기에 정착하려는 사람들이 있는데 어떻게 그것을 극복할 수 있나. 약간의 개선은 가능하겠지만 그 안에서의 희망 찾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산업문화로부터의 탈출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악을 명확히 보고 그것에 대한 내 나름의 단(斷)을 해야"

Q. 에큐메니칼 진영에서 활동하는 이들에게 하고픈 말씀이 있다면

   
▲ ⓒ에큐메니안
A. 악을 명-확히 봐야한다. 그것에 대한 내 나름의 단(斷)을 해야 한다. 그것이 부족하다. 뉴욕에서 이런 내 얘기를 듣는 사람들은 내 곁을 떠나고 만다. 단을 해야 하기 때문에. 모세, 예수, 최제우 같은 사람은 악을 명확히 보고 단을 한 사람들이다. 마음이 새로워지지 않고는 아무것도 안 된다. 악을 명확히 보고 단하지 않으면 새것이 될 수 없다.

Q. 여생동안 하고픈 것이 있다면

A. 바울과 예수를 교육학적인 측면에서 검토하는 것이다. 그들을 교육적인 면에서 재해석 평가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가을에 탈고하게 되면 내년에 출판할 예정이다. 그리고 요즘 나는 하나님 사상에 사로잡혀있는데 그 연구를 깊이 있게 하고 싶다. 야훼는 있을 것을 있게 하신 영이다. 이것은 유대인에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온 인류적인 문제이고 동양의 태극사상, 윤회사상과 일맥상통한다. 모든 생명이 결국 자연으로 돌아가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하듯이 야훼의 영은 자연에서 나타난다. 이러한 사상의 원류를 시베리아 동토에서의 삶에서 찾았고 그곳에서부터 출발한 모든 인류문명사에 대한 공부를 깊이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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