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규 목사(89)가 4월 30일(월) 오후 3시 성공회대학교 성미가엘 성당에서 명예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아래는 명예신학박사학위 수여를 받은 박형규 목사의 강연 전문이다.

감사의 인사말과 지나온 삶

박형규 명예신학박사

저는 오는 전혀 예기치 못했던 큰 선물을 받고 어리둥절 하여 말도 제대로 못할 상태에 있습니다. 총장님께서 저의 집까지 오셔서 명예박사학위를 주시기로 결정이 됐다고 말씀하셨을 때, "무슨 연유로 제게...?"라고 묻고 싶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후로 저는 매일같이 "내게 명예박사학위를 주는 이유가 뭘까?"하는 즐거운 고민을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제 나름대로 해답을 찾았습니다. 제가 찾아낸 해답은 이렇습니다.

첫째, 이 명예박사학위는 학문적 업적을 평가하여 주는 박사학위가 아니다.

둘째, 명예박사학위는 사회발전의 과정에서 이에 크게 이바지한 사람에게 대학이 이를 평가하고 그에게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함으로서 대학의 교육적 성과와 수준을 높이고 대학이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임을 확인한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저는 성공회라는 교단과 저와의 관계를 회상하게 됐고, 그 관계가 결코 범상한 것이 아니었음을 느끼게 됐습니다.

저는 1960년 4.19혁명이 일어났을 때 학생들이 총을 맞고 피 흘리며 죽어가는 그 현장에서 목사로서의 나의 삶이 거짓되고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의 저의 설교는 과격해 졌습니다. 교인들이 걱정이 돼 나도 모르게 저는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했습니다. 뉴욕 유니온 신학교에서 1년만에 석사학위를 받았는데 총장이 박사학위까지 하고 가라고 권했지만 바로 귀국했습니다. 교회에서는 저를 담임목사로 추대했지만 저는 이를 거절하고 몸을 숨김과 동시에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친척들에게 맡기고 다른 가족들은 마산으로 내려 보냈습니다. 그 당시의 저의 이런 행동은 가히 미친 짓이라 하겠지요. 그 후 저는 담임목사가 유학중인 초동교회에서 일 년 동안 목회를 했고, 그 후 여신도회가 주관하는 베다니학원장, 한국기독학생회(KSCM)총무, 기독교서회 정기간행물 부장 겸 월간 "기독교사상" 주간, 기독교방송 상무 등을 거치면서 기독교가 우리나라와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항상 고민해 왔었습니다. 그런데 교회와 기독교 기관들이 나라와 국민들에게 이바지할 일들이 많은데도 교회는 교세의 확장에만 몰두하고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 것을 안타깝게 여길 때가 많았습니다.

제가 기독교방송 상무로 있을 때 열악한 노동조건에 항의하는 평화시장 노동자 전태일열사의 분신자살 사건이 일어났고 기독교방송이 이를 보도했다는 이유로 저는 상무직에서 물러나 실업자가 됐습니다.

실직 후에도 저의 일상은 여전히 바쁘게 돌아갔습니다. 생계를 위해 책을 번역하는 일, 크리스천-아카데미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일, 도시빈민선교, 기독교사회선교협의회 등등 분주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중 서울제일교회의 설립자이신 이기병 목사님이 돌아가신 후 제가 주일예배 설교를 해왔던 서울제일교회에서 제게 담임목사가 돼 달라는 청을 받고 이를 수락했습니다. 취임식 때 김재준 목사님이 설교를 하시면서 "목사가 설교하는 이 강단은 목숨을 거는 곳이라는 것을 명심해야한다."는 말씀에 내 눈에는 눈물이 고이고 내 축도는 울먹인 목소리였습니다.

제가 서울제일교회 목사가 됐다는 소식을 듣고 뜻있는 대학생들이 몰려왔고 저녁 늦은 시간에는 청계천 노동자들이 몰려와 대학생들과 사귀고 배우고 했습니다. 이를 위험시 한 독재정권은 폭력집단을 동원해 예배와 집회를 방해하고 폭력으로 교회를 파괴하려 했습니다. 이런 폭력에 대항할 수 없었던 교회는 마침내 중부경찰서 앞 노상에서 만 6년 간 노상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 노상예배는 전 세계에 소문이 퍼지고 한국을 방문한 외국의 목사들은 이 노상에서 설교하는 것을 큰 영광으로 여겼다고 합니다.

성공회대학이 세워진 이 장소는 내게 젊었을 때의 추억을 일깨워 주는 곳이기도 합니다. 아직도 그 건물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대학생들과 함께 민주화 운동을 모의하느라 밤을 새웠던 건물이 이곳에 있는 성공회수련관이었습니다. 지금도 그 건물의 일부가 남아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게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담긴 건물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1987년 6월 10일에 시작된 6월 항쟁의 본부가 서울에 있는 성공회 주교좌성당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성당의 종탑에서 군부독재의 종말을 고하는 조종이 울려 퍼졌고, 서울을 비롯해 전국의 도시들과 농촌에서 동시다발로 군부독재타도와 민주회복을 외치는 함성이 이어져, 마침내 군부독재는 물러가고 민주주의가 회복되는 길이 열렸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그 때일을 회상하면서 당시 주교좌성당의 책임 신부였던 고 박종기 신부님과 그분의 가족들의 헌신적 봉사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20여명의 국민운동 간부들은 경찰이 성당을 포위하기 전에 들어와 신부님 사택에서 숙식했고, 나는 김영삼 당시 야당 총재와 함께 차를 타고 들어가 김성수 주교님을 만나 '주교좌성당을 대회본부로 써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제가 오늘 성공회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는 것도 이런 인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서울에 있는 주교좌대성당 뒤쪽 주교님 사무실과 사택이 있는 언덕에는 그 때일을 기념하여 세운 비석이 있습니다. 비문은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유월민주항쟁 진원지
6월 민주항쟁이 이 자리에서 시작되어
마침내 민주화의 새 역사를 열다

유월민주항쟁 십년을 기념하여 세우다.

1997. 1. 10

제가 오늘 명예박사학위를 받게 되는 영광을 그 때 저와 함께 투쟁에 참가한 모든 분들께 돌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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