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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열사 김세진의 성경과 찬송[인터뷰]아버지 김재훈 장로와 나눈 김세진 열사의 마지막 모습
이정훈 | 승인 2006.04.28 00:00
   
 
▲ 김세진 열사의 부친 김재훈 장로.
김세진 열사 20주기 추모 예배와 기념 심포지엄의 준비를 위해 KSCF 사무실을 찾은 김재훈 장로는 김세진 열사의 마지막 유품이 성경과 찬송가였다며 회고했다.
 

5월3일, 민주열사 고 김세진 씨의 20주기가 되는 날이다. 김세진 씨는 1986년 당시 서울대 자연대 학생회장으로, 같은 해 4월28일 아침 관악구 신림동4거리에서 서울대 총학생회 주관으로 열린 전방입소 반대시위에서 이재호 씨와 함께 온몸에 신너를 뿌리고 불을 붙였다.

감리교 청년이기도 했던 김세진 씨의 추모예배를 매년 개최해왔던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KSCF), 한국기독청년협의회(EYC) 기독교계 단체들은, 올해 20주기를 맞아 추모예배와 기념 심포지엄을 EYC가 주관하여 개최하기로 했다.

추모행사 준비를 위해 KSCF사무실을 찾은 김세진 씨의 아버지 김재훈 장로를 만나, 당시의 기억과 근황에 대해 인터뷰를 가졌다.

현재 서울제일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김재훈 장로는 생전의 김세진과 함께 자교감리교회를 출석했지만, 분신 당시 교회의 태도에 실망해 교회를 옮겼다고 말했다. "아내는 줄곧 여선교회 회장을 맡아왔고, 세진이는 학생회장까지 했는데, 장례식에 담임목사 조차 오지 않는 교회를 더이상 다닐 수는 없었다"며 "교회를 떠날 때 무척 가슴이 아팠다"고 당시의 실망감을 전했다.

전국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 이사로, 또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 국가기념사업분과위원장 등으로 활동 중인 김재훈 장로는, 자신의 소개를 한사코 '김세진 열사의 아버지'로 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김 장로는 "추모사업 기념사업 많이 하지만, 세진이가 정말 하고자 했던 뜻이 무엇인지는 알려지지 못했다"며 아쉬워 했다.

김재훈 장로는 김세진 씨가 89년 평양의과대학에서 졸업장을 받은 것에 대해 묻자, “평양대학교에서는 세진이의 자리를 마련해 놓고 영정과 그날그날 기록한 노트, 화환 놓기를 4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지금도 부학장 방에는 김 열사의 영정 사진과 졸업장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김 장로는 “졸업장을 받기 위해 북한을 방문할 계획은 없지만, 기회가 된다면 받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아직도 김세진 씨의 대학 동료들과 친분을 맺고 있다는 김 장로는, “자식 같은 세진이 친구들에게 기회 있을 때마다 정치계에는 입문하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너희들이 아직 들어갈 만큼 깨끗한 정치판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래서 “운동권 출신 국회의원들이 많이 있지만 세진이 또래의 83학번은 아직 없는데 내 책임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한편으로 미안한 듯 웃었다.

김 장로는 김세진 씨의 마지막 날의 상황을 들려주었다. 김세진 씨가 마지막 머물렀던 자취방을 찾아갔는데, 방에는 성경과 찬송이 펴쳐진 채 있었다. 김 장로는 친구로부터 "시위 전날 밤에 김세진 씨가 성경을 읽고 찬송을 부르더니 혼자 펑펑 울더라" 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그래서 펴진 성경과 찬송을 보았어요. 성경은 시편23편이었고, 찬송은 431장(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이더군요. 그리고는 10분 동안을 혼자서 펑펑 울었다더군요.”

이젠 “세진이의 생각이 나의 생각이 된 것 같다”는 김재훈 장로는, “한국 교회 교인들은 하나님이 아니라 미국을 믿는 것 같다”는 일침도 잊지 않았다. 이런 모습은 “이란, 이라크 침공하는 문제에 대해 아무 말도 안 하는 모습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고 하며, 이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모른다”고 깊은 한 숨을 쉬었다.

▲  김세진 열사가 분신하고 교회를 떠나셨다고 들었습니다. 지금은 어떠신가요?

교회를 떠났다가 지금은 한국기독교장로회 서울제일교회에 출석하고 있습니다. 원래는 자교감리교회를 다녔습니다. 자교교회는 감리교회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 중 하나였고, 보수성이 강했습니다.

세진이가 84년도 자교교회 학생회 회장을 했었는데요, 원래 여름수양회를 산이나 바다로 가잖아요. 그런데 세진이가 회장을 했을 때는 농활을 갔거든요. 그런데 교회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그 정도로 교회가 보수적이었습니다.

그 당시 마경일 담임 목사는 그렇게 보수적이지 않았지만, 다른 곳으로 이동하셨고, 새로 부임한 담임목사는 대조적으로 보수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세진의 분신을 이해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고민하면서 돌아다녔는데, 그 당시 서울제일교회가 목요일마다 노상 기도회 하는 것을 보고 그곳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 평양대학에서 졸업장을 수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때 느낌이 어떠셨는지요?

그러한 소식을 직접 받지 못했습니다. 평양대학의 부학장님의 방에 영정사진과 졸업장이 있다고 합니다. 평양 방문 시 찾아가기를 바란다는 뜻을 전해 들었습니다.

 

   
 
기념 심포지엄 준비를 위해 함께 자리를 마련한 김오성 KSCF 총무와 서울제일교회 구창완 목사, 이두희 EYC 총무와 강서구 EYC 사무국장.
 

▲ 혹시 직접 평양을 방문하실 계획은 있으신지요?

아직 계획은 없습니다.

참 섭섭한 것이 서울대학에서는 졸업장을 줄 생각도 없습니다. 민주화 기념 사업회에서는 졸업장을 신청하라고 했는데, 졸업장이 신청해서 받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신청할 생각도 없습니다.

▲ 평양대학에서 졸업장을 수여하게 된 과정을 알고 있으신지요?

북한에서는 4년 동안 학교 교실에 세진이 자리를 마련해 놓고 영정과 화환을 그 자리에 수업 시간마다 놓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른 학생이 노트를 정리해서 같이 놓기를 4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고 나서 졸업장을 주었다고 합니다. 서울대에서 분신한 학생들의 학모님들이 있습니다. 그 분들과 의논하면서 같이 받자고 했고, 저 보고 대표로 받으라고 했습니다. 저도 기회가 되면 받으려고 합니다.

▲ 김세진 열사가 살아있으면 나이나 위치가 중진이 되어 있을 텐데요.

65년생이니까 42이나 43이 되었겠네요. 지금은 다들 잘 되었고 중진급들이 되었더군요. 그런 모습을 보면 저도 좋습니다. 친구들이 1년 두 번씩 우리 집을 방문합니다. 모이면 운동 이야기는 하지 않고, 가족 이야기만 합니다. 친구들 중에 아직 노동현장에 있는 애들도 있지만, 다들 운동한 이력들이 있어 변호사나 회계사가 많습니다. 청와대에도 3명이나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국회의원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 것이 내 책임인 것도 같습니다. 세진이 친구들만 만나면 정치판에는 들어가지 말라고 기회 있을 때마다 당부했습니다. 너희들이 아직 정치할 판이 아니라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4월 마지막 주 서울대에서 추모식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도 만날 때마다 정치하지 말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너희들은 너희들이 있는 직장에서 개혁하는 사람이 되라고 신신당부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들 중에서 임종석 국회의원은 제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찾아 왔더라고요. 국회의원 나간다고요. 종석이 한양대니까 종석이한테는 국회의원 나가라고 했습니다.

▲ 김세진 열사의 아버지로서가 아니라 교회 장로로서 한국교회가 어떻게 가야 할 지 한 말씀해주세요.

세진이 생각이 제 생각이 된 것 같습니다. 한국 교회 교인들은 하나님이 아니라 미국을 믿는 것 같습니다. 미국이 기독교 국가니까 하나님 나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란, 이라크 침공하는 문제에 대해 아무 말도 안 하는 것을 보니까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 마지막으로 한 말씀해 주세요.

세진이 분신하고 나서 친구 중에 하나가 세진이가 있었던 방을 알려준다고 하기에 찾아가봤습니다. 그랬더니 냄비 하나, 주전자 하나, 성경과 찬송가 합본이 된 것 하나 이렇게 있더군요. 그리고 집 주인에게는 세진이가 아니라 철우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고, 학생이 아니라 슈퍼에서 일하는 것으로 알고 있더군요.

   
 
▲민주열사 김세진.
 

알고 보니 딴 집에서 있다가 이곳으로 와서 짐이 없었습니다. 이 집으로 이사 올 때, 1년 치 20년만 원을 냈고 방을 빼게 되면 인문대 학생에게 주라고 했다더군요. 그런데 방이 빠지지 않아 줄 수 없다고 주인이 그러더군요. 그래서 제가 개인적으로 돈을 마련해서 주었습니다.

그리고 28일이 세진이가 분신한 날인데, 26일에 마지막 편지가 왔어요. 저를 안내해 준 그 여학생이 그러더군요. 세진이가 잠을 자지 못해 부모님께 편지도 못썼다고 자기한테 그랬다고요. 그리고는 혼자서 시편23편을 읽고, 찬송가는 431장(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을 불렀다더군요. 그리고는 10분 동안을 혼자서 펑펑 울었다는군요.

평소 세진이가 성격이 독하다고 알려져 있는데, 전혀 그렇지는 않아요. 어렸을 때부터 울지는 않았고, 말도 길게 하지 않고, 말 길게 하는 사람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요. 왜 울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니 분신하려는 생각을 했나 싶어요.

장시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이정훈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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