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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까지 제2의 종교개혁 의제 만들자”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 이은선, 이정배 교수 인터뷰
“신학, 교육, 사회, 정치, 경제, 문화 등 다양한 방면에서 개혁의제를 만들자”
편집부 | 승인 2012.11.05 16:38

   
▲ 10월 31일 오전 종로구 부암동 삼거리에 있는 카페에서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 회장 이은선 교수와 직전 회장인 이정배 교수를 만났다.ⓒ에큐메니안 고수봉 기자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제2의 종교개혁을 이야기하는 학자들을 만났다.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 회장 이은선 교수(세종대)와 직전회장인 이정배 교수(감신대)가 그들이다. 부부사이인 두 교수는 올해 초부터 2013년 체제가 아닌 2017년 체제를 준비하자는 주장을 해온바 있다. 종교개혁 500주년인 2017년까지 앞으로의 5년을 종교개혁 즉 교회개혁을 위한 다양한 분야에서의 의제를 통해 16세기 종교개혁을 평가하고 앞으로의 종교개혁의 구체적인 대안을 위한 이론적 실천적 작업을 제안한 것이다.

본지는 제2의 종교개혁 의제 만들기 그 첫 번째 시작인 11월 16일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의 심포지엄을 준비하는 두 교수를 만나 심포지엄의 취지와 앞으로의 계획을 들었다.


편집자 : 현재 기독자교수협의회 회장직을 맡고 계신데 그 조직에 대한 설명을 부탁한다.

이은선 : 1957년 한국사회 민주화운동을 시작으로 만들어진 조직이다. 많은 교수들이 7,80년대 옥고를 치르면서 민주화운동에 복무했던 기독교 교수들의 모임이었다.

   
▲ 이정배 교수(감신대 종교철학)ⓒ에큐메니안 고수봉 기자
이정배 : 한완상, 이문영, 노정선 교수 등 많은 교수들이 회장직을 맡아왔고 민주화운동시절에 회장을 맡으면 옥살이를 하곤 했다. 또한 기독자교수협의회 회장은 당연직으로 KSCF이사가 되기도 하면서 학생운동의 울타리가 되어주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민주화시절 그 뿌리는 남아 있으나 많이 약해진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과제를 찾고자 모색 중이다. 원래는 신학자가 회장직을 맡는 게 아니라 교인들이 하는 건데 안병무 교수도 회장직을 맡으면서 목사나 신학자가 회장직을 맡기도 했다.

직전회장을 내가 맡았는데 다음 회장을 이은선 교수가 맡게 됐다. 원래 부부가 이렇게 하면 안 되는데 기독자교수협의회 선배 교수님들의 압력으로 어쩔 수 없이 하게 됐다. 기독자교수협의회는 아직도 민주화가 안 됐다.(웃음) 둘이 함께 의논하며 해보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기독자교수협의회가 최근까지 해왔던 주요사업으로는 4,5년 전부터 불자교수협의회와 연합행사를 진행했고 겨울에는 동학, 의병유적지탐사 등의 사업을 해왔다.

남은 5년은 한국기독교의 새판 짜기를 위한 ‘카이로스적’ 때
2013년 WCC총회,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 2019년 3.1운동 100주년…

이은선 교수가 회장직을 맡으면서 논의 끝에 도출해낸 결론이 ‘2010년대 5,6년 남은 이 시점이 한국기독교의 새판을 짜는데 결정적인 중요한 시점이 아닌가.’였다. 카이로스적 때가 아닌가 생각한 것이다.

살펴보면 몇 가지 중요한 시기가 우리 앞에 놓여있다. 2013년 WCC를 부산에서 개최하지만 한국교회가 재정만 부담하고 있고 한국적인 의미화가 제대로 반영이 안 될 것 같은 우려가 많다. 또 하나는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인데 이날을 무슨 제삿날 기억하듯이 넘어가면 안 될 것이다. 지금 보수 기독교 진영에서는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사업회를 마련해 준비하고 있다. 또 구텐베르크성당의 많은 여각을 이미 선점하면서 분주히 움직이고 있지만 진보(에큐메니칼 진영)쪽에서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어 걱정이다. 한국교회의 현실이 이런데 반성보다는 과시용으로 행사가 진행되는 분위기가 많다는 게 문제다. 또 하나는 2019년은 3.1독립선언서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당시 동학 천도교를 비롯해 우리민족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은 기독교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어떻게 이 빚을 갚아야 할지 깊이 생각해야한다.

이런 생각을 해볼 때 남들은 2013년 체제를 이야기하지만 우리는 2017년 한국교회의 종교개혁의제를 내놓아야하고 그렇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지 의견을 나눠왔다. 2017년 개혁의제를 중심으로 준비하고 있다.

19세기 조선민중을 해방시킨 기독교, 지금은 16세기 이전 교회의 모습과 흡사

   
▲ 이은선 교수(세종대 교육학)ⓒ에큐메니안 고수봉 기자
이은선 : 19세기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민중들을 해방시킨 측면이 존재한다. 또 그 이전으로 거슬러 가면 16세기 중세 억압받던 민중들을 해방했던 게 기독교였다. 이러한 전통 속에 있는 종교개혁이 오늘날 다시 중세로 돌아가는 것 같은 한국기독교를 본다. 민중해방과 여성해방이 기독교사상을 통해 이뤄졌지만 오늘날 아직도 많은 민중들이 해방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종교개혁의 정신을 지속해 가는 것이 필요하고 그러려면 새로운 Input이 있어야 하는데 16세기당시에는 르네상스, 합리주의, 인쇄술 등을 통해 민중들이 자각하는 기회가 열렸는데 오늘날에는 새로운 Input이 어디에서 올수 있을까? 그것은 아시아 종교와의 대화 속에서 그 동력을 얻고 수혈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교회가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몇 안 되는 나라다. 한국의 기독교가 변하고 그곳에서 해방의 메시지가 확산된다면 한국사회를 변화시키는 좋은 추동력이 될 것이다. 이런 것을 기독자교수협의회가 함께 모여 점검하고 사회정치문화경제 모든 면을 변화시키는데 직접적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이정배 : 루터가 종교개혁을 했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당시에는 천지가 개벽할 사건이었다. 그러나 종교개혁 이전 100년의 전 역사가 있었던 것처럼 이 땅에 들어온 지 1백년 밖에 안 되는 기독교가 벌써부터 말기적 증세를 보이고 있다. 쉽게 회복되리가 생각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교회개혁은 신학개혁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두 번째 종교개혁을 말하는 배경에는 이러한 문제의식이 밑바탕에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종교개혁직후부터 수많은 학자들이 제기해온 주제이기도 하다. 루터의 종교개혁의 한계점으로 지적되는 칭의론, 영주들과의 야합 등 종교개혁의 많은 점을 비판하는 학자들의 주장이 그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종교개혁신학은 사영리로 둔갑해서 한국교회를 지배하는 신학이 돼버렸다.

‘가톨릭과 개신교 이외에 제2의 종교개혁의 길은 없는가,’

우리는 과감하게 도전하고자 하는 부분은 종교개혁의 의미와 한계점을 명확히 집어보는 것이 첫 번째 과제이다. 그래야 교회개혁도 새롭게 할 수 있다. 이번 11월 16일 첫 프로그램에서 유럽사를 전공한 사람의 눈으로 본 종교개혁을 보는 것으로 시작하려 한다. 또 보편적 역사 속에서 종교개혁을 짚어보고 역사적인 예수를 통한 기독교의 원류의 입장에서 종교개혁을 다시 바라보려고 한다. 히브리의 초자연주의의 틀을 독일의 신비주의의 틀로 해석한 것이 프로테스탄트라는 전제하에 종교개혁을 근본적으로 독일적인 종교라는 측면에서 바라보고자 한다. 이러한 시도를 시작으로 ‘기존의 가톨릭과 개신교이외에 제2의 종교개혁의 길은 없겠는가,’ 다시 물어보려는 것이다. 심층종교, 영성의 시대, 두 번째 차축시대, 후천의 시대 등 시대변화를 예감하는 무수한 말들이 나오고 있는데 그 말의 핵심은 여성과 동양이 들어있다. 이런 가운데 동양에서 WCC총회가 열리고 종교개혁500주년을 지나는 2010년대에 이러한 아시아적인 에토스(ethos)가 기독교를 새롭게 이해하고 변화하는데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지 지켜봐야할 대목이다.

종교개혁, 의미는 있지만 그것이 상수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여전히 그것 자체도 변해야한다는 인식이 한국교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본다. 개신교가 자본주의 확립에 많은 기여를 했는데 자본주의 이후의 세상을 꿈꾼다면 자연스레 개신교 문제를 건드리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종교개혁과 관계된 기독교 전통 원리에서부터 미래시대 안목과 아시아의 정신, 여성성 등 여러 각도로 종교개혁을 새롭게 의미 짓고 한계도 분명히 적시해야한다. 앞으로 5년간 무수한 아이템을 가지고 이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교회중심주의를 벗어날 단초를 동양종교와 교육에서 찾다.

이은선 : 루터의 만인사제설과 독일어 성서번역은 훌륭한 업적으로 본다. 하지만 만인사제설의 본질은 하나님과 직접 교통할 수 있는 권리와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인데 경건주의가 종교개혁을 비판한 것은 만인사제설을 정치 종교 교육 사회적으로 실천하지 못했다는 측면이었다. 또 기독교가 기존 가톨릭의 계급적인 성직자 제도는 없앴지만 여전히 성직자 중심주의는 극복하지 못했고 한국교회는 여전히 심각한 문제로 남아있다. 이러한 루터의 종교개혁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단초를 동양의 불교나 유교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함석헌 선생은 “미래의 종교는 노력의 종교가 될 것이다,”라고 주장하며 자기구원과 대속과 자속의 문제에서 자속의 속성이 많이 내포된 기독교를 이미 전한바 있다. 아시아 종교가 의미하는 각자에 존재하는 신성을 강조하는 불교, 유교를 받아드리면서 기독교가 전통적이고 좁은 의미의 교회중심주의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종교개혁 후속 작업은 교육개혁이었다. 현재 교육도 문제가 되고 있는데 종교와 교육이 무관한 것처럼 보이는데 이 두 가지 영역을 같이 가져가야한다. 근본적인 정신은 제도를 뛰어넘어 하늘과 통할 수 있는 거룩의 씨앗을 갖고 있다는 정신을 어떻게 확장시킬 것인가가 중요한 것이다. 유교에서 ‘각자가 다 성인이 될 수 있다. 군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하듯이 에릭 프롬이 ‘누구나 다 그리스도가 될 수 있다. 신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듯이 급진적인 세속화 내지는 재세속화의 근원이 어딘가를 정치, 교육, 문화적으로 구체화 되는 종교교육이 되어야한다. 이를 통해 교회중심주의, 기독교중심주의 인간중심주의를 개혁해야한다. 아시아의 종교도 서양에게 좋은 자산이고 서양문명도 동양에 좋은 자산이듯이 동서양이라는 부모의 좋은 유산을 대화를 통해 인류의 문명의 전환을 위해 이 두 자산이 가치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제2의 종교개혁은 범인류적인 종교개혁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한다.

개혁적인 집단들을 엮어보자.

이정배 : 범인류적인 종교개혁을 말하지만 기독교가 어떻게 더 풍요로워질 수 있을지가 주된 관심사이다. 종교개혁과 교육개혁이 함께 가야한다고 본다. 둘은 별개가 아니라는 것이다. 교육에서는 혁신학교 등의 노력이 있어왔지만 그에 비해 종교는 교육보다 변하기 더 어려운 현실이다. 종교계 안에서는 캐캐묵은 문제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개혁에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미미하나마 교회 안에서 대안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씨앗을 어떻게 묶어 낼 수 있을지가 큰 문제이다. 그래서 교파를 막론하고 대안적 교회를 꿈꾸는 교회들 간의 공동연회, 공동노회를 만들어 시도해 볼 수 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대안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 봐야한다.

한 예로 감신대 82학번은 당시 문교부의 정책으로 320명이라는 많은 목회자를 배출하게 됐다. 현재 이들은 감리교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학번인데 감리교내 대형교회를 맡고 있는 목회자들은 대부분 70년대 학번들이라 연령차이로 이들 대부분은 대형교회로 가지 못하고 90년대 학번 이후의 목회자들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는 흐름이 생긴 것이다. 따라서 이들을 중심으로 감리교내 주류에 편집하지 않고 개혁적인 성향을 갖게 된 집단이 형성 됐다. 앞으로 이들을 중심으로 감리교내 개혁운동이 일어나지 않을지 기대를 하게 된다. 교파별로 존재하는 이러한 흐름과 집단을 모아보자. 이러한 내용을 이미 새길교회에 제안 한 바도 있다. 함석헌의 퀘이커교는 루터의 만인사제설을 행동에 옮기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것처럼 앞으로 목사와 평신도가 새로운 관계로 정립해야한다. 이런 것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제2의 종교개혁은 미완의 과제로 남게 될 수밖에 없다.
 
우리시대에 필요한 97개조 의제를 만들자.

종교개혁의 의미와 한계는 분명히 있다. 한계는 한계대로 철저히 인정을 하자. 그렇게 된다면 루터의 종교개혁 당시의 명제도 달라질 수 있다. 루터의 종교개혁이 상수가 아니다. 루터의 개혁교회운동은 또 하나의 독일적 교회일수 있다. 아시아적인 교회도 얼마든지 가능할 수 있다. 우리에게도 함석헌, 유영모, 김재준과 같은 개신교 유산이 존재하는데 이러한 것을 ‘어떻게 계승해 낼 것인가.’라는 물음과 함께 기독교의 근원인 예수에서부터 앞으로의 미래를 바라보고 동서양의 차이에서 남녀의 성에서 교육과 종교의 관계 속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총체적으로 종교개혁의 문제를 집어내면서 2017년을 바라보고 우리시대에 필요한 97개조 의제가 무엇인지 만들어내야 한다. 이러한 틀 속에서 역사 속에 새롭게 태동되는 교회를 사건으로 만들어내고 싶다. 그런 형태의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 실험해 보고 싶다.

16세기 루터의 종교개혁을 가능하게 한 카이로스적 사건 속에서는 매체의 발견, 민족주의 등장, 구테베르크의 활자발명, 교회의 타락 등 ‘때가 차게 된’ 그시대의 흐름이 존재했었다. 2010년대는 어떠한가. SNS의 발달과 탈민족시대(다민족시대), 탈근대. 유기체적 세계관, 아시아적 종교의 부흥 등 달라진 많은 상황 속에서 종교를 다시금 돌아봐야할 필연성이 생겼다. 이런 아이템을 체계화 시켜서 발전시키며 공부하는 모임을 교육과 교회 안의 신학을 중심으로 작업을 해 나갈 것이다.

교회개혁의 핵심은 교회주의극복과 신학개혁, 교육개혁

편집자 : 개혁의 대상이 되는 교회의 문제는 구체적으로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에큐메니안 고수봉 기자
이은선 : 교회에만 집중하지 않고 큰 차원에서 개혁을 밀고 나가면 교회는 스스로 변화해 나갈 것이다. 전문명적 급변기에서 정치가 개혁 되도 종교의 궁극적 물음에 귀의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속성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통합적인 사고를 종교와 정치, 문화적 측면이 같이 개혁의 대상이 되어한다. 예전 한국교회에서 종교뿐만 아니라 정치, 문화, 교육 등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지금 한국교회는 현재에 안주하려 하는 움직임이 있다 그러다보니 교회 안으로 매몰되는 측면이 많다. 정치에 무관심하고 오로지 교회의 성장만이 관심의 대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가 자신의 역량을 사회, 정치, 교육 등에 할애하지 않게 됐다. 그리고 한국교회는 성직자 중심주의 남성 중심주의를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 것도 문제이다.

이정배 : 중세교회의 타락은 결국 신학의 타락이었다. 신학의 타락이 교회의 타락의 빌미를 준 것이다. 지금의 교회가 타락하게 된 이면에는 신학이라고도 할 수 없는 교회에서 통용되는 신학의 타락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오직 믿음, 오직 은총’이라는 교리에는 무엇이 전제되어야하는데 밑도 끝도 없이 ‘믿음만, 은총만’ 그것만 강조하는 한국 교회 안에서 타락된 신학의 모습을 보게 된다. 타락된 신학의 구조가 많은 교회에서 통용되고 있는 것이 큰 문제이다. ‘교회개혁은 신학개혁’이라는 명제를 다시 내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교회가 신학의 말을 듣고 존중했지만 지금은 더 이상 교회는 신학을 무시하고 있다. 

이은선 : 신학이 문제라고 하는 것은 결국은 지성의 타락이라고 생각한다. 각자가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이 부재한 가운데 신학과 지성이 완전히 나눠져서 교회에서는 자신의 지성을 내려놓고 초등생 수준의 지성만 갖고 있어야 교회에서 견딜 수 있는 사고가 부재한 신학과 신앙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교육의 문제와 연결된다.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은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지 못하는 인간이 2차 세계대전과 유대인 학살을 자행 한 것처럼 교회에도 이 논리가 그대로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고 신앙의 문제를 고뇌하고 어떠한 결론을 얻을 수 있을까.’ 이런 물음이 결코 신앙과 이분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의 교육이 진정으로 사고하는 사람을 키워낸다면 그런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단순한 종교적 권위에 무방비상태로 있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세속학문에서 최고의 권위를 가진 사람도 교회에만 가면 반(反)지성으로 변해버리는 오늘날의 한국사회가 결국에는 이런 식으로 만드는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슐라이어마허가 교회개혁의 일환으로 베를린대학을 세웠던 것처럼 교육은 교회개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어떠한 기독교로 바뀌어야하는가’라는 물음에는 신학자가 대답해야

편집장 : 제2의 종교개혁운동이 구체적인 실천과 대안을 내놓기 위한 전망은 어떤가.

이정배 : 두 가지 방식이 존재한다. 극단적 투쟁을 택하는 방식은 학생들조차도 비판능력과 야성을 잃어버린 상황에서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그래도 크게 믿는 부분은 다른 각도에서 그래도 학생들이 침잠하면서도 과격성의 방식이 아닌 근본으로부터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을 하는 씨앗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적이 자기 안에 있는 것을 알면서 문제의식을 심화시키고 있는 젊은이들이 있다는 것과 또 하나는 시대가 달라져서 서서히 변할 수 있는 여건들이 갖춰졌다. 한꺼번에 빨리되는 방식도 있지만 조금씩 천천히 바꿔나가는 방법도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가치현실의 문제들을 교육으로 학생들을 달라지게 할 수 있다. 그리고 세계자체도 급변하고 있기 때문에 그 흐름에 대응하는 우리의 실천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와 자기 확장을 위해 100년 동안 지금까지의 방식으로 밖에 할 수 없는 점 이해한다. 그러나 ‘더 이상은 안 된다. 이대로라면 죽는다.’ 그렇다면 ‘어떤 기독교로 바뀔 거냐.’는 흐름으로 바뀌어야한다. 그러나 대세가 그렇게 하면 죽는다는 입장에 서 있다면 이제는 과거의 방식이 아닌 소프트한 분위기로 바뀔 수 있는 ‘때’는 무르익지 않았나 생각한다. 지금은 때가 달라졌다. 시대가 달라졌다. ‘기독교인들이 이 변화를 어떻게 감지하게 할 것이냐.’라는 물음에는 신학자들이 답변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신학자들조차도  교회에 종속된 이들이 많은 게 문제이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예민하게 지적해주는 신학자들이 있어야하고 신학생들을 만나야하고 그 안에서 개혁을 점화할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될 것이다. 이런 모습이 우리의 희망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가져갈 이런 모임들이 대학원생들도 함께 만나게 되기를 희망한다.

이은선 : 결국은 인식의 문제이다. 교회 내에서도 성경공부 모임이 아닌 인식의 틀을 바꿀 수 있는 모임들을 활성화 하고 그 안에서 세계에 대한 이해와 인간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켜낸다면 삶 자체가 변할 수 있다. 실천이라는 것은 인식과 떨어질 수 없고 실천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인식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제2의 종교개혁은 목회자가 변한다면 기존의 교회를 통해서 가능할 수 있다.

이정배 : 앞으로 제시할 종교개혁의제 중 하나가 작은교회운동이다. 한국교회를 탈자본주의화 시킬 것인가에 대한 대답으로 작은교회운동이 적절한 대안이 되리라 생각한다. 교회가 스스로 긍정적인 창조적인 해체를 한다면 그 안에서 해결될 한국교회의 문제는 많으리라 생각한다.

끝에서 시작을 보다.

편집자 : 2010년 후반기를 카이로스적 상황이라고 진단한 배경은 무엇인가?

이정배 : 100년밖에 안된 한국교회의 역사적 상황에서 이미 종교의 말기적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인식이 그 배경이다. 한국교회의 말기적 현상을 보면서 망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새로운 시작의 여지도 봐야한다고 생각한다. 어둠이 짙은 것은 빛이 가까이 왔다는 증거인 것처럼 새로운 시작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고려해야할 다른 한 가지는 한국교회는 우리민족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는 인식이다. 말기적 증상이 개인적으로는 또 다른 희망의 징조로 봐야한다. 절망하면서도 절망으로 끝나지 않고 희망의 메시지를 보아야한다. 어쩌면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게 두려운 이야기이다. 그래도 무엇인가 양심을 갖고 유산을 가지고 짊어질 짐을 갖고 나아가야한다. 첫 발걸음을 띄어보자. 이 시기에 카이로스적 의미가 있다면 ‘발 한 번 띄어보자.’라는 의미에서 2017년 교회 개혁의제 이야기를 하자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책임감으로 인문학적 신학적 배경을 통해 제2의 종교개혁 의제 만들기를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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