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임 이후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미 국방부와 미군을 현대기업처럼 만들기위해 노력했는데, 이러한 생각은 군대와 기업의 근본적 차이를 모르는 것이라는 비판이 있다죠?

네,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은 취임 직후부터 미군과 미국방부를 월마트 같은 현대기업처럼 만들겠다고 밝혔는데, 이렇게 군대를 기업처럼 만들려는 시도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리퍼블릭”이 비판했습니다.

월마트 같은 현대유통업체들은 무엇보다 재고관리가 컴퓨터화되어 재고를 많이 쌓아둘 필요가 없고, 필요가 발생할 때마다 재고가 유연하게 반응합니다. 예컨대 재래식 동네가게와 24시간 영업하는 편의점을 비교해보면 재래식 가게들은 물건들을 이곳저곳에 잔득 쌓아놓지 않습니까?

반면, 편의점들은 컴퓨터로 재고를 관리해서 들어가 보면 물건을 별로 없는데도, 꼭 필요한 것이 필요한 만큼 있습니다.

이렇게 군대도 병력이나 군수보급을 어떤 특정지점에 잔뜩 쌓아두지 않고 필요한 곳에 예상되는 수요에 맞춰 그때그때마다 유연하게 반응하도록 하겠다는 것이 럼스펠드의 구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CEO장군” “CEO지휘관”이 되어야한다고 주장했고, 그래서 많은 장교들이 경영대학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그리고, 많은 국방문서들에서도 경영학적 용어들이 등장했는데요, 가장 자주 쓰이는 말이 “효율성”입니다. 예컨대, 어떤 무기의 성능을 이야기할때에는 “투자 대비 효과”율을 논하고 있습니다.

Q. 그런데, 전쟁이라는 것이 그렇게 예상대로 착착 진행되는 것이 아닐텐데요?

네, “뉴리퍼블릭”은 바로 그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월마트 같은 기업체야 수요의 변화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때에 물건을 공급하지 못해 상품이 달리는 경우에도, 고객들이 조금 실망하고, 매상에 약간의 타격을 받을 뿐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전투가 벌어지는 전장에서는, 적이 어떤 작전을 펼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고, 또 꼭 필요한 순간에 병참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전투에서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아마도 많은 병사들이 전사하겠죠. 이러한 결과는 월마트와 달리 돌이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 이라크에서도 이런 문제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하는데요, 현장의 이른바 CEO장군들이 물자를 한꺼번에 많이 공급하지 않고 재고를 줄이기 위해 필요한 만큼 조금조금씩 공급하게 됨에 따라, 이라크반군들이 미군의 병참선을 공격 목표로 삼고 있다고 합니다.

예전 같으면 이라크반군이 방심하고 있을 때를 노려 병참작전을 하고, 이런 위험한 작전을 하는 김에 한꺼번에 많은 양의 군수품을 공급해두는데, 이제는 월마트나 편의점처럼 조금씩 보급하다보니 이라크반군의 공격에 노출될 위험성이 커졌다는 거죠.

“뉴리퍼블릭”은 럼스펠드와 그의 "CEO장군들"을 비판하면서, 이 사람들은 “전쟁에는 마찰이라는 것이 있고, 안개같이 한치 앞이 안보이는 ‘전쟁의 안개’라는 것이 있다”는 전쟁이론가 클라우제비츠의 가르침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다고 비판했습니다.

▲ 전쟁에서의 "마찰”, “전쟁의 안개”라는 것이 무슨 뜻이죠?

예를 들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반인들이 입는 바지는 지퍼가 달려있는데요, 군복 바지는 단추가 달려있어 좀 불편합니다. 그런데, 럼스펠드같은 사람들은 이렇게 단추 달린 바지를 비효율적이라면서 비판하는거죠.

그런데, 문제는 전쟁을 하면서 모래나 흙속에서 뒹굴다보면 지퍼는 모래가 끼이게 되어 열리지도 닫히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불편하지만 군복은 단추가 달려있는 겁니다. 좀 효율적이지 않더라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는 겁니다.

몇 년 전 초봄에 폭설이 내려 수많은 사람들이 고속도로에 갇혔던 적이 있었습니다. 도로공사가 평소 같으면 보유하고 있는 제설장비를 동원해서 길을 일찍 열었을텐데요, 도로공사가 얼마 전부터 당시 유행하던 경영아이디어에 따라 제설장비들을 필요한 겨울 몇 달 동안만 리스를 하기로 했던 겁니다. 그래서, 3월에 예상도 못했던 폭설이 내리니까 난리가 난 거죠.

전쟁이나 재해같은 것은 이렇게 예상하기가 어려은 부분이 많고, 또 그것이 발생했을 때 입는 폐해라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규모이기 때문에, 평소에 필요 없는 것 같더라도 대비를 해 두고 있어야 합니다.

봐야하는 시험이 중요할수록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필기구를 더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 좋은 것과 같습니다.

바로, 이렇게 일반 사기업과 군대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럼스펠드는 두 가지를 혼동했고, 그래서 이라크 전장에서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CEO정치갚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죠?

이것도 미국의 “CEO장군”론 만큼이나 문제가 많습니다.옛날에 서양의 대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사적 조직”과 “공적 조직”을 헷갈리지 말라고 경고한 적이 있습니다.

기업과 같은 사적인 조직에서, CEO나 보스는 마음대로 부하들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부하들은 상관의 말을 안 들었다가는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에 말을 잘 듣습니다. 하지만, 공적인 정치공동체는 아무리 규모가 작아도 시키는대로 고분고분 말을 따르질 않습니다. 부하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공동체 멤버이기 때문입니다.

직원이 100만명의 기업을 운영해본 CEO가 100명도 안되는 동네의 이장 직책을 잘 수행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CEO출신이 성공적인 정치가가 되기 위해서는, 정치공동체의 독특한 성격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이해가 없이는 실패할 위험성이 아주 많습니다.

공과 사는 절대 헷갈리면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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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규  athenian8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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