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더하는 교회, 한신대 대학원 구약학 박사과정)

▲ 이정훈 기자

1982년 11월 14일 맨체스터(Manchester) 대학교의 ‘맨슨 기념 강연’(the Manson Memorial Lectuer)에서, 영국의 신약학자인 제임스 던(James D. G. Dunn)은 “새로운 유대교 이해에 따른 새로운 바울 연구 운동”을 가리켜 “The New Perspective on Paul”(“바울 새 관점 운동”)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던이 이 운동의 태동을 에드 샌더스(E. P. Sanders)가 1977년에 출판한 Paul and Palestinian Judaism에서 시작되었다고 보았습니다.

샌더스는 이 책에서 예수와 바울 시대의 유대교가 율법을 지켜 의/구원을 얻으려는 “율법주의”로 이해한 기존의 시각은 서구 사회의 편견인 “반 유대인운동”(the Anti-Semitism)에서 출발했다고 반박했습니다. 샌더스는 제2 성전 시대(주전 536-주후 70년), 특별히 주전 200-주후 200년 사이에 기록된 초기 랍비문헌, 사해문서, 외경과 위경의 문헌들 등의 자료를 연구해, 1세기 유대교는 하나님의 은혜와 계약을 강조한 은혜의 종교임을 밝혀냈습니다.

샌더스에 따르면, 유대인들에게 있어 율법은 의와 구원에 도달하는 수단이 아닌(“Not Getting in”), 이미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택과 계약에 의해 주어진 계약 백성의 신분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But Staying in”)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율법은 그 자체 계약 백성의 신분에 합당한 삶을 살지 못한 사람들에게 속죄의 제사를 통해 계약백성의 신분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유대교에 있어서 의와 구원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기인한다고 보았습니다. 샌더스는 이와 같은 유대교의 종교 시스템을 가리켜 “계약적 율법주의”(Covenantal Nomism)이라고 불렀습니다.

샌더스는 자신의 책에서 계약적 율법주의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습니다.

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선택하셨다. 그런 다음 ⑵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셨다. 율법은 ⑶ 선택을 유지하시는 하나님의 약속과 ⑷ 순종의 요구 사항을 함께 갖고 있다. ⑸ 하나님은 순종에 대해서는 보상하시고, 불순종에 대해서는 심판하신다. ⑹ 율법은 속죄의 수단과, 속죄의 결과로 인한 ⑺ 계약관계의 유지 및 재확립을 제공한다. ⑻ 순종, 속죄 및 하나님의 자비에 의해 계약 안에 머무는 자들은 모두 구원 받게 될 그룹에 속하게 된다. 첫 번째 마지막 요점에 관한 중요한 해석은 선택과 궁극적인 구원은 인간의 성취가 아닌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 영국 성공회 사제이자 신약학자인 니콜라스 톰 라이트(N. T. Wright)

“새 관점 운동”이 일어난 지 30년이 지나면서 어떤 학자는 “신학의 코페르니쿠스 혁명”이라는 말을 사용하며 이 운동이 기독교 전반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다고 평가했습니다. 이러한 “새 관점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대표적인 인물로는 앞서 언급했던, 샌더스, 던 그리고 오늘 제가 소개하려고 하는 책의 저자인 영국의 신약학자 ‘니콜라스 톰 라이트’(N. T. Wright)입니다. 

라이트는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율법 및 율법의 행위를 지키려는 것은 구원을 위한 공로를 쌓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어디까지나 참된 계약 백성의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고 하며 샌더스에 의견을 따르고 있습니다. 또한 새로운 유대교 이해에 근거해 루터와 칼빈 등 종교개혁자들이 바울 복음의 중심이라고 여겼던 “이신칭의”를 새롭게 해석합니다.

라이트에 따르면 바울의 이신칭의 구원론의 중요한 요소인 “전가”(imputation)의 가르침은 성서적 근거가 없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칭의를 현재적인 칭의와 최종적인 심판에서 주어지는 칭의로 나누고, 전자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의해 결정되어지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신자의 전 삶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라이트는 이신칭의 교리가 근본적으로 유대인들의 민족적 자랑을 비판하기 위한 논쟁 교리라는 입장에 서 있습니다. 이신칭의 교리는 근본적으로 죄인인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을 통해서 죄와 죽음과 사탄의 세력은 물론,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으로부터 자유하게 되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구원론의 주제가 아니라는 합니다. 그것은 유대인과 이방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계약적이며, 교회론적이며, 그리고 에큐메니칼 주제라고 합니다. 즉 바울의 이신칭의 교리는 “당신이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는가를 말하는 개인의 구원 교리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당신이 계약 백성인가를 말해주는 교회론이다.”고 언급했습니다. 

라이트는, 일단 “새 관점 운동”이 옳건 그르건 판단하기 이전에, 이러한 그의 사상을 배경으로 신약성서를 주석하고 책들을 출판하고 있습니다. 이 주석책들이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이하 줄여서 ‘IVP’)에서 출판되고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한 주석”입니다. 지금까지 IVP에서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갈라디아서·데살로니가전후서, 로마서가 출판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주석서의 장점은 전통적인 주석책들의 형태인 어려운 글의 내용과 각주가 가득한 주석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리스어 단어를 설명하거나 구절구절 설명하는 방식이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를 전해주며 주석해 갑니다. 그렇지만 어려운 단어나 신학적인 설명이 필요한 단어에는 * 표시를 해 두고 책의 제일 뒤에 따로 설명을 하고 있는 친절함도 갖추고 있습니다. 또한 라이트는 자신이 일상에서 경험한 일들을 시작으로 해서 본문을 주석하는 신선한 모습을 갖추고 있습니다. 로마서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로마서 4장 18-25절을 주석하면서 라이트는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 

▲  신약학자 니콜라스 톰 라이트(N. T. Wright)가 저술하고 있는 신약성서 주석책 중 로마서

“1980년대 초에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이민 갔을 때, 초기 개척자들을 생각하곤 했다. 그들은 미지의 나라에서 무엇을 발견할지, 날씨가 어떨지, 어떤 곡물이 자랄지, 혹은 어떤 미래나 희망이 있을지 알지 못한 채 그 땅에 도착했다. 우리는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여 주는 협동 농장을 갖춘 개척자 마을을 방문했는데, 삼사백 년 전에 들어온 사람들의 대단한 용기에 놀랐다. … 그러나 초기 개척자들은 희망을 잃지 않고 일하면서 가장과 공동체와 나를 세웠다. 그래서 나는 아브라함의 터무니없는 *믿음과 소망, 처음에 *언약 가족을 시작했던 그 믿음과 소망을 생각하면서 초기 개척자들을 떠올린다. … 그러나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한 바울의 묘사는, 불가항력적인 역경 앞에서 보여 준 굉장한 신뢰를 단순히 설명한 것보다는 더 깊은 의미가 있다. 이는 12장에 나타난 인류의 타락에 대한 바울의 설명을 일부러 뒤집는 것이다. 여기서 1:20과 이어지는 내용을 돌아 볼 필요가 있다. 바울이 말하는 것은, 아브라함의 믿음과 그와 같ㅇ든 종류의 믿음(바울이 4장 마지막에서 보여 주겠지만, 그것이 바로 기독 신앙을 의미한다) 안에서, 인간은 다시금 연합되어 참된 인생이 무엇인지 재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톰 라이트, <모든 사람을 위한 로마서 1부 1-8장>, 신현기 옮김 [서울: IVP, 2010], 120-122)

이렇게 라이트는 이 책의 원제와도 같이 “모든 사람을 위해” 이 책을 저술하고 있습니다. 추상적이거나 현학적이고 사변적인 글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이해하고 성서의 깊은 뜻을 새길 수 있도록 주석을 해놓았습니다. 쉽다고 무시할 수 있는 책이 아니라 원숙한 경지에 이른 그의 신학적 능력을 이 책을 통해 마음껏 풀어내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목회자이건 평신도이건 모든 사람들을 위해 참 좋은 주석책이 출판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정훈 기자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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