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체 게바라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 일본 산 담배

페이스북 이웃님이 올리신 재미있는 사진 한 장을 보았습니다. 담배 상자 겉면에 “체 게라바”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 일본산 담배 사진이었습니다. 처음에 보고는 한참을 웃었습니다. 판 팔 여름옷이나 머그컵에 “체”의 사진이 있는 것은 보았는데 담배에도 사진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고 재미있기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 『혁명을 팝니다』

그렇게 웃고 나서 번뜩 책 한 권이 기억났는데요, 조셉 히스(Joseph Heath)와 앤드류 포터(Andrew Potter)가 공저한 『혁명을 팝니다』(The Rebel Sell, 윤미경 옮김[서울: 마티, 2006])였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이 책 겉표지도 “체”가 그려져 있는 모 커피 판매점의 컵이었기 때문입니다. 묘하게 겹쳐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제가 이 책을 서점에서 처음 보았을 때, 책 내용을 살펴 볼 이유도 없이 집어 들었던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한 가지는 “체”의 얼굴이 보였기 때문이었고, 또 한 가지는 책 제목에서 풍기는 인상이,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흔히 일컫는 용어로, “자본주의 시대”에 혁명이라는 것이 어떻게 유통되고 있는가를 다루고 있을 것 같아서였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좀 부끄럽지만, “체”의 얼굴이 모 커피 판매점의 컵이라는 것도 몰랐고, 두 번째 이유도 책을 막상 읽어보니 전혀 다른 내용이었기에 또한 부끄러웠습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소위 현대 자본주의 문화에 대해 “반문화”(Countercultural)가 어떻게 오히려 자본주의 문화에 첨병이 되고 있는가를 다루고 있었습니다. 저자들은 반문화 개념의 이면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반문화라는 이름은 실상 소비주의라는 동굴 속에서 그 영역을 더 넓혀가는 최전방의 광부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역설합니다.

사실 반문화를 이야기하는 이들이 대안이라고 주장하는 것들은 이미 기존 사회라는 큰 들에서 다른 방향으로 동굴을 파내는 것일 뿐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결코 동굴 밖으로 나오는 행위는 아니라고 혹평합니다. 이들은 현실을 바꾸고자 한다면 현실을 전복시키는 막연한 환상 속에서 뛰놀기보다는 더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막연한 반발심에서 펑크 음악을 하고, 컨버스를 신고, 체제 전북을 위한 시위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선이라고 인정되는 범위 내에서 법적이고 제도적인 측면에서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라고 조안합니다. 반문화 세력이 때때로 사회규범, 법률, 관료조직 자체를 부정한다고 질타합니다. 하지만 저자들이 보기에 이러한 현상들은 인간이 사회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필수적이라고 인정해야 하는 울타리라고 합니다. 이 울타리 안에서 현실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이 책에서의 ‘혁명’은 문화에서의 혁명, 즉 ‘반문화’의 문화를 말하고 있었습니다. 기성 문화와 사회에 반기를 드는 각계의 현상을 반문화라고 정의하고, 현대에서의 반문화는 ‘반소비문화’를 말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남과 달라 보이고 싶어 하고, 이것이 소비문화의 기본 힘이라고 합니다. 소비문화의 리더들은 어떤 반문화의 독특함, 혹은 그것이 쿨, 또는 “힙 하다”는 생각에 대중이 따라하지 않거나 혹은 그 독특한 행태에 대중/사회가 적응해서 특별히 충격을 주지 못하고 더 이상 특별해 보이지 않으면 새로운 반문화를 개척한다고 합니다. 

▲ 체 게바라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 판팔 여름옷

그리고 이것은 계속 반복되며 더욱 빠른 속도로 소비된다고 합니다. 소비자는 군비경쟁 시나리오와 같은 딜레마에 빠지게 되고, 군비경쟁의 딜레마에서 빠져나오는 유일한 방법은 서로에 대한 신뢰라고 합니다. 소비 경쟁의 딜레마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별 방법은 없어 보이고, 교복처럼 모두가 같은 옷을 입게 될 때 소비가 줄어든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자들은 차별화보다는 “과감하게 동일해지는 것”(『혁명을 팝니다』, 237)이라고 말합니다. 

사실 이 책의 내용은 한국의 현실에서는 많이 낯선 것입니다. ‘반문화’라는 말 자체가 익숙하지도 않고, 기존 기득권에 대한 저항의 형태는 대부분 정치 형태의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 우리의 현실은 반소비와 같은 대안적 논쟁까지는 이르지 못한 것 같고, 착한 소비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가까운 미래에 대한 하나의 준비로써 읽어 본다면 가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인의 자유를 좀 더 제한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할 것이라는 보장에 대한 대가로 개인들이 자유를 포기할 의향이 있다면 여기에 잘못된 것은 전혀 없다. 결국, 문명은 규칙을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들의 필요와 이해를 존종해서 개인의 이해 추구를 축소하기로 한 우리의 의지를 토대로 세워졌다. 정치 좌파들이 잘못된 반문화의 이상에 헌신함으로써 문명의 근본원리에 대한 신념을, 역사의 어느 때보다도 그런 신념이 필요한 시기에 버렸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참으로 마음 아픈 일이다.”

이정훈 기자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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