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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겁고 무기력한 삶 앞에서 담담하게서정주,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이정훈 기자 | 승인 2013.01.25 00:21

   
▲ 연꽃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서정주

섭섭하게,

그러나

아조 섭섭치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 서정주, <선운사 동백꽃 보러갔더니> (서울: 시인생각, 2012), 18.

 

문학은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가?

‘미당 서정주’ 시인에 대한 나의 마음은 양가적이다. 그간에 알려진 그가 살아왔던 삶을 생각하면 참 밉기도 하다. 한 때 이런 마음으로 그렇게 좋아했던 그의 시집을 모두 내다버린 경험이 있다. 하지만 나이가 조금 더 들어 어쩔 수 없이 그의 시를 읽을 기회가 생기면 시를 읽을 때마다 마음이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문학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해답과 딜레마를 미당 시인은 잘 보여준다. 지금에서 이 물음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적어도 “미당은 제외되었을지는 몰라도, 나 그의 시 앞에서 구원을 얻는다.” 생이 한 번 더 있어 그를 만날 수 있다면, 꼭 물어 보고 싶다. “왜 그렇게밖에 살 수 없으셨나요?” 하고 말이다. 

어쩌면 이런 물음과 물음은 인간적인 그의 삶에 비해, 그의 문학은 인간적이기를 넘어섰던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실수할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태어났고, 실수를 통해 배워나가는 삶이기 때문이다. 완전무흠(完全無欠) 하여 조금의 결점도 찾을 수 없는 완벽한 인간이란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없었다’고 해야 할 만큼 인간의 영역이 아닌 신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그런데 ‘미당’ 시인의 삶에서, 인간으로서 따뜻한 곳만을 찾아 살고자 했던 욕망은 너무나도 인간적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만약 그가 이토록 탁월한 시들을 세상에 내어놓지 못했다면 어쩌면 너무도 간단하게 그의 삶에 대한 면죄부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당은 너무나 탁월한 시인이었다. 그래서 어쩌면 그의 삶에 대한 태도가 용서받기 어려운지도 모를 일이다. 즉 그가 탁월한 문학적 결과물을 생산해 내는 순간 그는 한 인간적 존재가 아니라 신성을 지닌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 그가 지닌 인간적인 결점은 쉽사리 용서할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린 것 같다. 미당은 그의 문학으로 인해 구원받았으나, 동시에 그의 문학으로 인해 버림받았는지 모른다.

조금은 멍한 시간에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를 다시 읽으며 문득 '담담하게 살자'는 생각이 떠오른다. 섭섭하지만 아주 섭섭하지는 말고, 조금만 섭섭한 듯 살고, 이별이라도 영 이별이라 하지 말고 죽어서 어딘가에서 만나게 되거든 만나기로 하는 이별로 살아가자. 연꽃을 만나러 가느라 가슴 쿵쾅거리는 바람이 아니라 이미 만난 바람처럼 담담하게 그것도 엊그제 만나고 돌아가서 아직 그 마음이 덜 씻겨진 바람이 아니라 한두 해쯤 전에 그렇게 진즉에 이별한 바람처럼 담담하게 말이다. 

   
▲서정주, <선운사 동백꽃 보러갔더니>

이정훈 기자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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