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는 첫 사람들, 남자와 여자를 서로에게 쉼을 주고 안식을 주는 존재로 창조하셨음을 지난 글에서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남자에게 동산을 맡기시고 돌보는 일을 함께 하라고 여자를 만드셨음도 보았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위해 마련하신 에덴동산에서 첫 사람들은 서로를 돕고 쉼과 안식을 주며 기쁨으로 살게 하셨습니다.

그 뱀이 우리가 아는 뱀인가

그러나 창세기 3장에 들어서면서 첫 이야기에서부터 심상치 않은 장면이 연출됩니다. 뜬금없이 “뱀”이 등장하고 이 뱀에 대해 아주 간략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이후에 이어지는 이야기에서는 여자를 유혹(사실 본문에는 이러한 단어가 쓰이지 않기에 이렇게 말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그동안에 써 왔던 전통을 따라 이렇게 씁니다)해 하나님께서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창 2:17)고 하시며 금지하셨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도록 합니다. 

창세기가 말하고 있는 뱀에 대한 설명은 이렇습니다: “주 하나님이 만드신 들짐승 가운데서 가장 간교하였다.” 그런데 창세기 3장이 창세기에서 뚝 떨어진 글이 아니라면 앞에 등장했던 이야기들과 같이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즉 창세기 2:19에 하나님께서 “들의 모든 짐승과 모든 새를 이끌고 오셔서, 그 사람이 그것들을 무엇이라고 하는지 보셨다”는 말씀 속에 이 뱀도 분명히 있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을까 합니다. 남자가 “뱀”이라는 이름도 짓지 않았을까 합니다. 남자가 뱀이 자기 앞에 왔을 때, “어떻게 보았을까?” 하고 웃기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데 본문이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그냥 넘어가야지요.

어쨌든 창세기가 뱀을 설명할 때 사용한 “간교하다”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는 “arum”인데요, 여기 저기 사전을 찾아보면 그렇게 나쁜 뜻이 함축된 것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영리하고, 상황 판단이 빠른”이라는 뜻이 우세합니다. 우리가 이미 창세기 3장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기에 당연히 뱀이 나쁜 동물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아룸”도 조금은 부정적으로 번역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렇지만 성서에서 사용된 단어만을 가지고서는 그렇게 판단할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뱀이 원래부터 악한 존재라서 이렇게 표현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뱀이 원래부터 악한 존재여서가 아니라 여자를 유혹해서 하나님의 금지명령을 깨도록 했기 때문에 악한 존재가 된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 ▲여자와 남자에게 말을 하고 있는 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다 떠나서 문제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뱀은 말을 못하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뱀은 버젓이 여자에게 말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유일하게 금지하신 명령을 어기도록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오랫동안 이 뱀에 대해서 문자 그대도 받아들기 보다는 상징적인 어떤 것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뱀이 말을 하기 때문에 창세기 3장의 이야기를 이솝 우화와 같은 종류의 우화라고 봅니다. 유대인들의 탈무드는 여기에 등장하는 뱀을 사람의 악에 대한 충동으로 여겼습니다. 사람 그 자체 안에 들어 있는 악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 말입니다. 그리고 또 어떤 이들은 고대 근동의 신화에서와 같이 뱀은 바다와 관계가 있고, 바다는 창조주를 대항하는 악한 세력의 상징이라고 여긴 만큼 뱀이 악의 세력을 상징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학자들은 뱀이 “가나안의 번식교”(fertility cult)를 상징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창세기 3장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야웨를 따를 것인지 바알신을 따를 것인지를 선택하라”고 촉구하려는 목적으로 창작된 이야기라고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듯이 유목이나 유랑하던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에 정착하면서 접했던 문화적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자신들의 “야웨 하나님”과 “가나안의 바알신”을 동시에 섬겼던 상황을 두고 한 말이라고도 합니다.

신기한 해석 중의 하나는 고대 바벨론의 신화 중에 “길가메쉬의 서사시”와 창세기 3장의 유사성을 지적하며 신화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입니다. 이 서사시에 보면 길가메쉬가 온갖 역경을 무릅쓰고 가까스로 얻은 불멸의 영생초를 그가 잠깐 수영을 하는 사이에 뱀에게 도둑을 맞고 영생의 기회를 놓쳐버렸다고 합니다. 창세기 3장에서도 뱀에 유혹에 넘어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는 것이 금지된 것(3:24)과 거의 유사합니다. 즉 사람이 왜 영원히 살 수 없는가에 대한 신화적 해석이라는 말입니다.

구약성서는 이 뱀에 대해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에덴동산에 대한 이야기는 구약성서 몇 군데에 등장하지만, 뱀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을 언급하는 구약성서는 창세기 13:10; 이사야 51:3; 에스겔 31:9, 16, 18; 에스겔 36:35; 요엘 2:3 등입니다. 하지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창세기 3장을 제외하고 이 뱀을 언급하고 있는 다른 구약성서 말씀이 없습니다. 가장 유사한 이야기가 에스겔 28:11-19인데요, 다음과 같습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너는 두로 왕을 두고 애가를 불러라. 너는 그에게 전하여라.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너는 정교하게 만든 도장이었다. 지혜가 충만하고 흠잡을 데 없이 아름다운 도장이었다. 너는 옛날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서 살았다. 너는 온갖 보석으로 네 몸을 치장하였다. 홍보석과 황보석과 금강석과 녹주석과 홍옥수와 벽옥과 청옥과 남보석과 취옥과 황금으로 너의 몸을 치장하였다. 네가 창조되던 날에 이미 소구와 비파도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그룹을 보내어, 너를 지키게 하였다. 너는 하나님의 거룩한 산에 살면서, 불타는 돌들 사이를 드나들었다. 너는 창조된 날부터, 모든 행실이 완전하였다. 그런데 마침내 네게서 죄악이 드러났다. 물건을 사고파는 일이 커지고 바빠지면서 너는 폭력과 사기를 서슴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너를 더럽게 여겨, 하나님의 거룩한 산에서 쫓아냈다. 너를 지키는 그룹이, 너를 불타는 돌들 사이에서 추방시켰다. 너는 네 미모를 자랑하다가 마음이 교만하여졌고, 네 영화를 자랑하다가 지혜가 흐려졌다. 그래서 내가 너를 땅바닥에 쓰러뜨려 왕들 앞에 구경거리가 되게 하였다. 너는 죄를 많이 짓고 부정직하게 무역을 함으로써, 네 성소들을 더럽혔다. 그러므로 내가 네 한가운데 불을 질러 너를 삼키도록 하였으며, 너를 구경하는 모든 사람의 눈앞에서, 네가 땅바닥의 재가 되도록 하였다. 뭇 민족 가운데서 너를 아는 모든 사람이 네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멸망이 너를 덮쳤으니, 이제 너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에스겔 28장은 금지된 나무 열매나 뱀, 혹은 땅에 대한 저주가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창세기 3장은 부함들, 아름다운 보석들 그리고 거룩한 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역으로 에스겔 28장이 창세기 3장을 기록하는데 자료가 되지 않았을까 하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느 것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렇게 장황하게 뱀에 대한 해석을 소개한 것은 “뱀의 정체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밝히려는 시도 자체가 본문에는 드러나 있지도 않고, 구약성서에도 없으니 의문은 들지만 그런 물음 자체가 해결될 수 없는 점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오랫동안 뱀과 유혹 사이의 적당한 관계성에 대해 해석하고 확대해 보려고 노력했지만, 사실 창세기 3장 본문을 읽어보시면 알아차릴 수 있으시겠지만, 그런 것에 대해서는 전혀 이야기하고 있지 않습니다. 뱀을 사단이라고 말하지도 않고 뱀이 원래부터 악한 존재이기에 여자를 유혹했다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창세기 3장은 뱀이 아니라 여전히 남자와 여자에 대해

그리고 창세기 3장 그 자체로는 뱀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뱀이 이야기한 것에 대해 반응하는 여자와 남자의 책임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드라마로 말하자면 뱀은 지나가는 “행인 1”쯤 되고 당연히 주연은 여전히 “남자와 여자”라는 이야기입니다. 조금 더 이야기를 좁혀 보자면, 뱀이 여자에게 던지는 이야기 속에서 유혹 그 차제로 등장하는 것은 사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입니다. 

뱀이 여자에게 이야기하자, 여자는 그 나무에 대해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에 초점이 있습니다. 뱀이 어떤 이야기를 했든지 간에 여자가 그 나무에 대해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이야기는 전혀 다른 상황으로 전개되어 갔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창세기 3장 본문은 뱀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금지하셨던 명령을 남자와 여자가 어떻게 했는지에 중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하나님께서 창조의 목표로 설정하신 안식이 어떻게 남자와 여자에게서 이루어지고 있는가에 카메라의 초점처럼 맞추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금지하셨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에 잘 따라 사는 것이 여자와 남자가 안식하며 살 수 있는 길이었는데, 이것을 깨뜨림으로 어떻게 남자와 여자에게 주어졌던 안식 또한 깨어지고 있는가를 본문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금지를 깨뜨리지 않고 지켜가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 금지를 깨뜨리는 날, 하나님께서 주셨던 안식도 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남자와 여자에게 주셨던 안식이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음으로 어떻게 깨어지는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다시 이들이 안식하며 살 수 있는 길을 어떻게 마련해 주시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이정훈 기자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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