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는 뱀이 여자를 유혹하는 장면에서 그동안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이 뱀을 어떻게 해석해 왔는지 간략하게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본문 자체의 초점이 뱀이 무엇인가 맞추어져 있지 않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남자와 여자의 책임성에 있음을 말씀드렸습니다. 이번 글에서 조금 더 자세하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뱀이 어떻게 여자를 꼬드겼던 거기에 중심이 있지는 않습니다. 거기에 넘어가버린 여자와 남자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즉 창세기를 첫 장부터 읽어왔던 독자들은 하나님께서 유일하게 금지하셨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남자와 여자가 먹었으니, 하나님께서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말씀이 어떻게 될지에 시선이 고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당장 죽어야 할 것 같은 상황인데 하나님께서 여자와 남자에게 질문만 던지십니다. 그리고 3장 본문에 끝에 가면 남자와 여자는 죽지 않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하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약간 고개가 갸우뚱거려지게 만드는 이야기들입니다.

▲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 도망가는 남자와 여자

하나님께서 질문하신 것은 이것인데

우선 하나님의 질문과 여자와 남자의 대답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남자와 여자는 뭐가 어찌된 영문인지 “눈이 밝아져서, 자기들이 벗인 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엮어서, 몸을 가렸다”(7절)고 합니다. 그러고는 “날이 저물고 바람이 서늘할 때에, 주 하나님이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듣고 “주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하나님의 첫 질문은 “네가 어디에 있느냐?”입니다. 남자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제가 들었습니다. 저는 벗은 몸인 것이 두려워서 숨었습니다.” 늘 홀라당 벗고 살았던 사람들이, 그리고 늘 하나님과 일대일로 대화까지 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벗었다는 것이 두려워졌다니 이게 뭔 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 전 장인 2장 25절에는 “남자와 그 아내가 둘 다 벌거벗고 있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했고, 어차피 하나님께서 만드실 때부터 벌거벗은 채로 창조되었던 사람들이 뭐가 부끄러웠다는 것인지 모를 일입니다. 어쨌든 뭔가 시선의 변화가 일어난 것만은 분명하게 보입니다. 예전에 가졌던 시각에서 다른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남자에게 하나님께서 또 질문하십니다. “네가 벗은 몸이라고, 누가 일러주더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고 한 그 나무의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아담이 대답합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짝지어 주신 여자, 그 여자가 그 나무의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그것을 먹었습니다.” 질문은 A인데, 대답은 B가 나옵니다. 하나님의 돌직구 질문에 제대로 된 대답은 이래야 합니다. “누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그 열매를 먹었더니 벗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자는 왜 이렇게 대답했을까요? 불편한 진실입니다.

남자의 질문을 잘 살펴보면 “내 책임은 하나도 없음”이라고 항변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냥 여자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짝지어 주신 여자”라고 합니다. 근데 2장에서 남자는 여자를 보자마자 이렇게 외칩니다. “이제야 나타났구나, 이 사람아! 뼈도 나의 뼈, 살도 나의 살”이라고 하며 최고의 찬사를 날렸는데 말입니다. 결국 모든 책임은 “하나님, 당신께 있습니다”고 외치는 것입니다. 여자처럼 말하고 있지만, 하나님이 책임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남자에게 더 이상 질문하지 않으시고, 여자에게 질문을 날리십니다. “너는 어쩌다가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 여자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뱀이 저를 꾀어서 먹었습니다.” 일견 타당한 대답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뱀이 아무리 미사여구를 동원해 꾀었다고 한들, 결심 굳게 하고 안 먹으면 그만인 일입니다. 여자도 남자와 같이 동문서답에 책임전가는 기본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은 사실 뱀의 꼬드김에 빠져서 나무의 열매를 먹은 것은 여자인데 질문은, 차라리 심문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인 것 같습니다, 남자에게 하나님께서 먼저 시작하셨습니다. 여자에게는 질문도 달랑 하나만 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을 할 수 있다고 했던 뱀에게는 아예 질문도 하지 않으십니다. 결국 이것만 놓고 보자면, 금지하셨던 나무의 열매를 먹고 일어났던 일의 정확한 의미가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던 금지명령을 남자와 여자가 어떻게 지키는지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그것에 대해 남자와 여자가 어떻게 책임지고 있는지가 본문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말로 영리한 것이 무엇인가

이제 하나님의 심문은 끝났습니다.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는 남자와 여자가 정말 죽을 것인지 말 것인지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내려질 차례가 된 것입니다. 뱀부터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됩니다. 뱀에게 심판을 이렇게 내리십니다. “모든 집짐승과 들짐승 가운데서 네가 저주를 받아, 사는 동안 평생토록 배로 기어 다니고, 흙을 먹어야 할 것이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 가운데서”라는 말은 히브리어 “min”을 번역한 것입니다. 제일 많이 쓰이는 뜻으로는 “…에서, …으로부터”와 “…보다 더”라는 비교급으로 많이 사용됩니다.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한데요, “모든 집짐승과 들짐승으로부터”와 “모든 집짐승과 들짐승보다 더”입니다. 미묘한 차이가 존재합니다. 첫째 번역을 따르자면, 모든 동식물들이 저주를 받은 것이 아니라 뱀만 저주 받았다는 말이 됩니다. 둘째 번역에 따르면, 모든 동식물들도 저주를 받았는데, 뱀이 더욱 큰 저주를 받았다는 말이 됩니다. 전통적으로 후자의 번역을 따르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 뱀을 심판하시는 장면에서 “저주를 받아”라는 말에 사용된 히브리어는 “arur”인데요, 3장 1절에서 뱀을 이야기하는 구절, “가장 간교하더라”에서 사용된 히브리어 “arum”과 발음이 유사합니다. 지난 글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아룸”은 “간교하다”는 뜻도 되지만, “영리하고, 상황 판단이 빠른”이라고 번역도 가능합니다. 학자들은 히브리 문학에서 전혀 다른 뜻이지만 발음이 비슷한 단어들을 사용해 효과를 주고 있다고 하면서 이것을 “말놀이”(a word play)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이렇게 해석하면 어떨까 합니다. “뱀이 영리하다고는 하지만, 결국 뱀이 한 일은 더욱 저주를 받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고 말입니다. 요즘 쓰는 말로 하면 “헛 똑똑이”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지혜롭고 영리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하는 단어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한 가지 뱀이 저주 받는 장면에서 잠시 언급되었지만, min이라는 단어를 해석하면서 뱀만 저주를 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동식물들이 저주를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뒤에 등장하는 구절들을 보면 땅도 저주의 대상에 포함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것을 두고 이렇게 표현합니다. “모든 피조물이 이제까지 함께 신음하며, 함께 해산의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로마서 8:22)

마지막으로 뱀을 저주하시는 말씀에서 “흙을 먹어야 할 것이다”고 하십니다. 이것을 꼭 문자 그대로 흙을 먹는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도 곤란할 것 같습니다. 구약성서에 여러 곳에 보면, 시편 72:9; 이사야 49:23; 미가 7:17 등은 원수들이 패배하여 그의 정복자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흙을 핥는 모습으로 묘사하며 굴욕적인 상황을 이야기합니다. 

특히 미가서 7:17은 폭력을 일삼는 다른 민족들을 향해 하나님의 심판을 이야기 하는 장면에서 “그들이 뱀처럼 티끌을 핥으며”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구약성서에서 흙을 먹는다는 표현은 정복자 앞에 엎드린 피정복자의 굴욕적이고 가련한 모습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뱀은 분명히 하나님 앞에서 패배한 피조물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야기가 너무 길어진 것 같습니다. 창세기 첫 몇 장이 이렇게 길어질 수밖에 없는 위치적인 것도 있지만, 그간에 해석들에서 짚고 가야할 것들이 너무 많아서입니다. 지루하시더라도 조금 참아 주셨으면 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남자와 여자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심판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정훈 기자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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