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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너 마리아 릴케, 고독했던 한 시인섬세함과 여성성이 시대를 살리는 길이 아닐지
이정훈 기자 | 승인 2013.02.13 17:20

읽어도 이해도 안 되는 책이 몇 권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M. Heidegger의 『존재와 시간』이었다. 책이 시작하는 곳에 인용된 이상한 그리스어 문장도 제대로 뭔 뜻인지 몰랐다. 책을 읽고 있는 것인지 한글을 보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어짜자고 하이데거의 책들은 번역만 되어 출판되면 꼬박꼬박 구입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낑낑거리고 읽기는 했지만, 정말 머릿속에 남아 있는 거 하나없는 책들이었다. 거기에 하이데거 해설서들은 좀 많은가? 그 책들도 꼬박꼬박.

어쨌든 하이데거의 책들을 읽다보면 이상하게 시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 중에서 제일 많이 인용되는 시인 둘을 들자면, Friedrich Hölderlin과 Rainer Maria Rilke이다. 횔더린은 하이데거 보다 100년 정도 앞서는 시인이었고, 릴케는 동시대 사람이다. 서로 참 깊은 교감도 있었던 것 같다.

두 사람의 대표작이 쏟아져 나온 시기도 거의 비슷하다. 릴케의 대표작인 『두이노의 비가』는 1923년에,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은 1927년 각각 출판되었다. 한 번은 하이데거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나의 철학이라는 것은 릴케가 시적으로 말한 것을 사유로 전개한 것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이 정도면 말 다한 것 아닌가 싶다.

   
▲ 섬세하고 고독했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
어쨌든 이걸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니 그냥 넘기기로 하고. 난 처음 하이데거 책에서 “라이너 마리아 릴케”라는 이름을 접하고는 하이데거가 여성 시인을 좋아했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참 누구한테 말하기도 부끄러운 우스꽝스러운 헤프닝이다. 알고 보니 남성 시인이었다.

그런데 왜 저런 여성스러운 이름을 가지게 되었을까 궁금했었다. 알고 보니 아무래도 어머니 영향이 크지 않았을 싶다. 릴케의 어머니는 첫 번째로 얻은 딸에게 집착이 컸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 이후에 태어난 릴케는 7살인가 8살 때까지 여자옷을 입으며 거의 여자 아이로 키워졌다고 한다. 참 희한한 인생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릴케의 시는 괴장히 여성스럽고 섬세하다고 한다. 딱히 어머니 영향만이라고도 할 수 없는게 그와의 만남을 회상한 회고록을 남긴 여성이 내가 알기만 해도 4명이다. 바랑둥이였는지 어쨌는지는 알길 없으나 참 여복은 타고난 시인인가보다. 여성을 사랑하지 않으면 시인이 안 되는 모양이다. 그래서 내가 시인이 안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릴케의 시를 본격적으로 맘 먹고 모두 읽어 본 적이 없어서 뭐라고 할 말이 없지만, 페이스북 이웃 한 분은 “몽환적”이라고도 하던데, 난 딱히 와닿지 않는다. 하지만 몇 편 읽어보지 않은 릴케의 시에서 느껴지는 것은 참 고독하고 섬세한 것만은 나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다. 릴케의 시 중에 “고독”이라는 시가 있는데 다음과 같다.

 

고독

 

고독은 비처럼

바다로부터 저녁을 향해 올라 온다.

멀리 외딴 벌판으로부터 고독은

언제나 외로운 하늘로 올라가서는

처음 그 하늘에서 도시 위로 떨어져 내린다

 

모든 골목길마다 아침을 향해 뒤척일 때,

아무것도 찾지 못한 육신들은

실망과 슬픔에 젖어 서로를 떠나 갈 때,

그리고 서로 미워하는 사람들이

한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그 뒤엉킨 시간에 비 되어 내리는

 

고독은 냇물과 더불어 흘러 간다

그냥 읽기만 해도 고독이 뭔지 알 것 같은 시이다. 처음 저 시를 읽고는 정말 우울하기 그지 없는 시구나 싶었다. 번역도 참 잘 했지만, 시 자체가 정말 고독하게 보인다. 

그리고 릴케가 쓴 “사랑은 어떻게”라는 시가 있는데, 이 시도 처음 읽고서는 웃기도 했지만, 자기도 모르게 찾아 온 사랑에 대해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구나 싶어 무릎을 치기도 했다. 참 기가막히 시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집

사랑은 어떻게

 

그리고 사랑은 어떻게 그대를 찾아왔던가?

빛나는 태양처럼 찾아 왔던가, 아니면

우수수 지는 꽃잎처럼 앚아 왔던가?

아니면 하나의 기도처럼 찾아 왔던가? --- 말해다오

반짝이며 행복이 하늘에서 풀려 나와

날개를 접고 마냥 흔들리며

꽃럼 피어나는 내 영혼에 커다랗게 걸려 있었더니라

 

릴케의 시 하나만 더 소개하고 긴 글을 마쳐야겠다. “존재의 이유”라는 시다. 읽으면 읽을수록 하이데거가 왜 그토록 릴케의 시들을 칭찬했는지 알만하다 싶다. 이 시까지 읽으니 대중가요 한 곡이 생각난다.

 

존재의 이유

아! 우리는 세월을 헤아려 여기저기에

단락을 만들고, 중지하고, 또 시작하고

그리고 두 사이에서 어물 거리고 있소.

 

그러나 우리가 마주치는 것은 어쩌면

모두가 친한 관계에 있고, 태어나고, 자라고

자기 자신으로 교육되어 가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는 결국 그저 존재하면 되는 겁니다.

다만, 단순하게 그리고 절실하게 말이요.

 

마치도 대지가 사계절의 돌아감에 동의 하면서

밝아졌다, 어두워 졌다 하며 공간 속에 푹 파묻혀서

하늘의 별들이 편안하게 위치하는

그 숱한 인력의 그물 속에 쉬는 것 밖에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 것과 같이...

이정훈 기자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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