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는 하나님께서 금하셨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난 후 남자와 여자가 하나님께 동문서답 하고 서로의 책임을 상대편에게 돌려는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뱀에게 내리신 벌까지 읽어보았습니다. 뱀의 지혜로움은 결국 헛된 것이었다는 점도 지켜보았습니다.

창세기 3장에서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는데요, 하나님께서 2장에서는 분명하게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게 될 때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를 죽이지 않으시고 질문 공세를 펼치셨습니다. 이 모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잘 알려진 해석대로 하나님의 질문 공세는 남자와 여자, 자신들이 저지른 일들을 돌아볼 기회라는 점입니다. 그러나 남자와 여자는 하나같이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고 발뺌하기에 급급했습니다. 급기야 그 모든 책임은 하나님이 지셔야 한다는 모순에까지 도달했습니다.

더 이상 가족이 아니다

여기서 나타나는 모습은 분명히 ‘책임전가’(責任轉嫁)입니다. 사실 성서 본문 자체만 놓고 본다면 책임저가를 해도 별 문제없는 상황입니다. 뱀이 나타나서 여자에게 말을 건넸고, 여자는 자기만 먹었으면 될 일을 남자에게 주어먹게 했으니 말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책임전가는 공동체를 파괴시키며 동시에 공동체가 파괴되면 책임전가가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창세기 본문에서 책임전가는 공동체를 파괴를 드러내는 하나의 표시가 아닐까 싶습니다. 하나님, 사람, 뱀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는 것은 각각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 그리고 사람과 자연 사이에 분열과 소외가 일어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람은 가장 먼저 하나님 탓을 합니다. 

공동체의 파괴 속에 소외된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제일 먼저 하나님을 탓한다는 것은 참 놀랄만한 일입니다. 이 점에서 창세기 3장은 매우 날카로운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책임지기 싫어하는 사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담아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3장의 이야기는 클라이맥스로 점점 치달아 올라갑니다. 여기에 들어서면 하나님께서 당신이 만드신 자연만물에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어려움들을 부과하고 계십니다. 깨어진 관계들은 모두 함께 아픔을 겪게 됩니다. 

지난 글에서 잠시 언급했던 대로 뱀은 하나님의 징벌로 배로 땅을 기어 다니며 흙을 먹습니다. 그러다가 사람의 발꿈치를 물면 언제나 그들에게 머리를 짓밟히게 됩니다. 여자는 임산과 해산의 고통을 당합니다. 또한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 아래 복종하며 살게 됩니다.

창세기 3장16절에서 여자에게 내려진 “네가 남편을 지배하려고 해도”(weel-ishek teshuqatek) 하는 이 구절에 대한 해석이 분분합니다. 새번역이 “지배하다”로 번역한 “teshuqa”는 “요구하다”는 뜻에 더 가깝습니다. 그래서 문자적으로 번역해 본다면 “그러나 너의 남편에 대한 요구가 있을 것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해산에 대한 깊어진 고통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남편과의 성적 교제를 요구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유대의 한 학자는 이 구절을 여성의 성적 만족은 남편의 주도권 아래에 놓이게 된다고 주석했습니다. 또 어떤 성서학자는 여자가 남자에게 금지된 열매를 주어먹게 함으로 남자를 중심한 그들 사이의 상호 돕는 관계가 뒤바뀌어 이제 여자가 남자를 이끄는 관계가 되었고, 여자는 계속해서 남자에게 주도권을 요구하게 되지만 결국 남자의 다스림을 받게 된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저런 해석을 살펴보아도 결국 아이를 낳는 해산의 고통이 큼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여전히 성행위에 대한 갈망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더 이상 서로 “돕는 자”의 관계는 파괴되었습니다. 여자는 이제 남자의 지배 아래에 있게 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여자만 벌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남자 또한 살아가기 위해 피땀 흘려 땅을 갈아야 한다는 벌이 내려집니다. 그리고 그것은 평생 동안 계속될 것임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수고해야 하는 것은 땅이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땅을 경작하는 일이 이전보다 더 어려워졌음을 나타냅니다. 땅 역시 벌을 받아 풍성한 생산력이 줄어들었다는 것입니다.

구약성서학자들은 실제로 이 내용들이 벌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사람들의 실제적인 모습을 나타낸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따라서 창세기 3장의 본문이 고통스러운 현실을 원인에서부터 따져보고 있는 기능을 한다고 주장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고통스러운 현실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던 원래의 창조질서가 아니라 사람의 잘못으로 인해 일그러진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고 주석합니다. 

▲ ▲자연파괴는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사람도 자연도 고통스러운 현실

한 가지 더 주목해야 할 사실은 사람, 동물, 땅, 이들의 고통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고통스러운 삶의 현장에서 창세기 본문은 어떤 존재가 먼저 벌을 받고, 더 심한 벌을 받았는가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모든 창조세계가 하나의 ‘공동운명체’라고 이야기합니다. 

생산력을 잃고 메마른 땅, 가시덤불과 엉겅퀴만을 내는 거친 대지를 바라보면 땅이 벌을 받았다는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뱀과 땅이 벌을 받았다는 점이 아니라 그 벌이 사람의 잘못 때문에 주어졌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벌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공격으로 되돌아온다는 점입니다.

동물들은 때론 사람을 공포에 몰아넣고 사람은 그들과 싸워야만 합니다. 식물들도 사람들에게 풍성한 먹을거리를 제공하지 않기에 사람은 끊임없이 애써야만 합니다. 자연세계의 벌은 사람으로 말미암아 내려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사람이 감수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결과이며 사람이 결국에는 뱀이 먹을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계속됨을 보여줍니다.

사람을 포함한 창조세계 전체를 공동운명체로 보는 생각은 예언서에도 나타납니다. 예언서의 심판 선포를 살펴보면, 예언자들의 경고는 오늘날의 자연파괴 현실과 일치할 뿐만 아니라 창세기 3장에서 설명되고 있는 창조세계의 공동운명성을 명확하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우선적으로 살펴볼 것은 야웨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만이 아니라 자연만물 전체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사야 34:1에 보면 에돔을 향한 심판 예언은 사람뿐만 아니라 자연세계 안의 모든 피조물들에게도 선포됩니다. 땅과 땅에서 자라나는 모든 식물들과 그 위에서 살고 모든 동물들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모습은 호세아서에도 등장합니다(호 4:1-3). 북이스라엘이 그들의 죄악으로 인해 받을 심판이 창조세계의 차원에까지 설명되고 있습니다. 요엘서 1장에서 동일한 모습이 드러납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부패와 악에 물든 사람으로 인해 전체 피조세계가 고통을 받는다고 이야기합니다. 

아마도 창세기를 읽는 어느 시대의 독자들이건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누구든지 이 고통스러운 현실이 어디에서부터 출발했을까 하고 한 번쯤은 생각해 보았을 것입니다. 창세기 3장은 바로 이러한 고통스러운 현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자기 길로 가버린 첫 사람들에 의해, 그리고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자신들에 의해 일어나고 있는 현실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정훈 기자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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