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도서관에서 제목에서부터 흥미를 유발했던 책 한 권을 대출해 왔다. ‘그레그 브레진스키’(Gregg Brazinsky)가 쓴 『대한민국 만들기, 1945~1987: 경제 성장과 민주화, 그리고 미국』(나종남 옮김 [서울: 책과 함께, 2011])이라는 책이다. 필자는 미국의 외교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 특히 “대한민국에 대한 미국의 국가 형성 정책에 한국의 여러 기관들이 긴밀하게 협조하여 발전 지향적 독재라는 독특한 형태의 정치적 발전을 이루었음을 강조”하기 위해 저술된 책이라고 한다.

미국의 원했던 대한민국의 모습이 무엇이었나

브레진스키가 제시한 “발전 지향적 독재”라는 개념은, 학자이자 정치 평론가인 ‘파리드 자카리아’(Fareed Zakaria)가 “대한민국처럼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등장한 신생 민족국가들이 민주주의 제도를 채택하여 발전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이 국가들이 처음부터 민주주의를 채택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며, “한국이 독재로부터 자유주의 독재 단계를 거쳐 민주주의로 진화했다”는 주장에 대해 의문을 품으며 내놓은 새로운 개념이다. 자카리아가 제시한 ‘자유주의 독재’라는 개념은 무엇인가? 

자카리아에 따르면, ‘자유주의 독재’는 “형태는 독재 정권이지만, 경제 발전을 추진하고 국내 질서를 유지하며 종교와 여행의 권리를 허용했던 정권을 지칭”했다. 하지만 브레진스키는 ‘자유주의 독재’라는 개념은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한국을 통치한 군사정권의 성격과 잘 들어맞지만, 이러한 경향은 한국이 민주주의가 굳건하게 자리 잡은 ‘아시아의 호랑이’, 즉 동아시아 신흥공업국의 하나로 등장한 이후에 해당한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발전 지향적 독재’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브레진스키는 자카리아의 ‘자유주의 독재’ 개념이 한국에서 ‘무엇이 일어났는가?’에 대한 설명은 가능할지 모르나 ‘왜 일어났는가?’에서 대해서는 만족스러운 설명을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으로부터 지원받은 수많은 독재 정권 중에서 아직까지 독재 상태 그대로이거나 혹은 중간에 공산화 되었던 국가와 한국의 치아기 무엇인지에 대해 설득력 있는 해답도 제시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우선 브레진스키가 제시한 ‘발전 지향적 독재’라는 개념을 살펴보기 전에 ‘발전 지향적 독재’가 왜 탄생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그의 말을 들어보자. 

필자는 미국의 정책 결정자들이 경제적 어려움과 정치적 혼란이 반공주의 전선에서 완충지대 역할을 해야 하는 한국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단다. 그런데 1960년대 봄에 수립된 민주정부는 미국의 입장에서는 골칫거리였다고 한다. 민주당 정권의 무능력이 지지자들을 실망시켰고, 미국 정부도 한국의 새로운 정부에게 경제발전을 추진할 능력이 있는지를 의심했다는 것이다.

▲ 『대한민국 만들기, 1945~1987: 경제 성장과 민주화, 그리고 미국』

그러한 상황에서 1960년 5월에 군사 반란이 발생하자 미국 정부는 처음에는 이를 반대했지만, 반란 지도자들이 경제 성장에 대한 굳은 결심과 열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미국 정부가 한국에서 민주정부를 복원하는 대신 군사정권을 지지하고 나섰기 때문에 한국에서 발전 지향적 독재자 출현했다고 브레진스키는 보았다. 특히 케네디 행정부가 박정희가 장교 출신이며 비교적 젊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꼈고, 박정희가 근대화와 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박정희 정권이 순조롭게 출발할 수 있었다고 브레진스키는 말한다. 

미국이 승인했기에 가능했던 박정희 정권

결국 브레진스키가 제시한 발전 지향적 독재라는 개념은 20세기 미국의 외교 정책에서 제3세계 국가에 소련을 주축으로 하는 공산국가에 대항할 민족국가 만들기의 한 면이 한국에서 나타난 것이라고 주장한다. 필리핀, 베트남을 거쳐 오늘날 이라크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이익을 추구하고 민주주의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 세계 각지에 수립한 민족국가의 일종이라는 말이다. 한 번도 경제 발전이나 민주주의를 경험하지 못한 국가라고 하더라도, 미국이 필요한 자원을 제공하면 그 국가들 스스로 경제 발전과 민주주의 성장을 추구해 공산주의에 대항해 미국의 이익을 대변할 국가가 될 것이라는 정책으로부터 시작된 점임을 분명히 한다.

1960~1970년대에 독재의 정당성을 경제 성장에서 찾으려했던 박정희의 ‘발전 지향적 독재’가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룩하자 미국은 계속해서 박정희 정권을 지지했고 한일 국교 정상화, 베트남 파병 등을 성공시키며 파트너십을 구축했다는 것이다. 결국 브레진스키가 제시한 발전 지향적 독재라는 개념은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받아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신속하게 복구한 북한을 예로 삼아 전세계에 선전될 지도 모를 공산주의의 우수성을 차단하고자 하는 미국의 의도에서 비롯돼 비록 국가 형태는 독재이지만 경제발전을 이룩하려는 박정희 식 경제발전 모델을 지칭한 것이다. 독재에도 불구하고 경제 발전의 의지를 가진 박정희 정권에 대한 미국의 승인이 가능했기에 등장할 수 있었던 개념이라는 말이다. 

브레진스키가 1945년부터 1972년까지의 시기를 집중적으로 다룬 것은 이 기간이 미국이 한국에 가장 깊이 개입한 시기였고, 한국의 국가 형성을 위해서 미국의 노력이 가장 활발하게 전개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가긴 중에 미국은 한국에 강력한 발전 지향적 독재가 등장하여 성장할 수 있도록 유도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한국이 민주주의 국가로 성장하기 위해 갖춰야 할 핵심적인 조직과 제도, 이상적인 목표 등을 만들고 그것을 전파하는 데 앞장섰다고 한다. 결국 박정희 정권이 성장, 발전,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는 미국의 개입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말이다. 

그러나 유신체제 이후 독재와 인권 탄압이 극심해지면서 미국은 박정희를 지지하는 한편 그를 대신할 경제적, 정치적 주체들을 발굴하려 했다고 밝힌다. 저자는 1980년대 군부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을 지지한 것은 미국의 최악의 실수 중 하나라고 표현한다. 한국 사회에 민주주의가 더 발전하기를 바라는 많은 조직과 사회 기구가 성장하고 있던 상황에서 전두환을 지지한 것은 미국의 오판이었고 결국 노동자층, 중산층까지 가세한 대중의 민주화 요구에 전두환 정권이 굴복하면서 한국은 경제 성장에 이어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고 보았다. 

브레진스키는 이 책이 “한국의 독자들이 각자의 정치 이데올로기를 잠시 접어두고 균형 잡힌 시각을 받아들여 ‘다각적 시작’”을 갖추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이렇게 될 때 “한국인들은 ”다른 사람들의 시각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상대방의 입장을 수용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자신의 주장이나 소속감을 더욱 강화“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다각적 시각을 가지고 한국인들이 자국의 국가 형성 과정에 대한 기존의 견해를 검토할 때 비로소 과거를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자신들이 이룩한 위대한 정치적, 경제적 성취를 사회의 화해와 화합으로 연결시킬 수 있게 된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의도와 주장이 옳고 그르고 떠나 이러 저러한 저자의 자료 제시와 더불어 전개되는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 얼마 전에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해 방송되었던 “박정희 정권에 대한 프레이저 보고서”를 글로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어쨌든 역사에 대한 중립적 시각이라는 것이 가능한지는 역사학을 전공하지 않은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누구의 의해 조작된 역사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역사가 서술된 책은 꼭 필요하리라는 생각은 든다. 

이정훈 기자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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